볼리비아에서의 성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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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신 주님의 큰 사랑과 평화의 축복을 빌면서 ...

얼마전 우리 본당을 다녀가신 박 테오도라 수녀님께서 보내오신 볼리비아에서의 성주간 이야기입니다.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같이 나누고자 올려 봅니다. ...안셀모

산호세의 들꽃들과 함께 하시고자 하시는 분은 연락주세요. (jdyoon [at] gctsemi [dot] com)

볼리비아에 대한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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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곳의 성주간 전례를 통한 저의 체험을 나누어드리고 싶습니다.

많은 비로 엄청난 희생을 치루고도 희망을 잃지 않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나누는 아름다움을 곳곳에서 보면서 이것이 이들의 삶 속에 깃든 신앙의 힘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생각할수록 마음아프고 여러가지로 어려움이 많은 중에서도 이번 성지주일과 성주간에는 어느 해보다 생생한 전례를 체험했습니다. 그 체험을 적어봅니다.

남미 모든 나라가 그러하듯이 볼리비아도 사제가 절실히 부족하여 많은 교회가 목자없이 부활을 맞는 안타까운 현실에서 그래도 저희가 사는 곳에는 가까이 살레시오 수도원이 있어서 성주간과 부활대축일을 잘 준비하고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성지주일에는 신자들이 마을 어귀에 모여 각자 집에서 준비해온 올리브가지나 종려가지를 손에들고 사제가 낭독하는 복음을 들은 후 1년내내 짐을 싣거나 사람을 태워본 적이 없는 당나귀에에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으로 분장한 젊은이를 태워 앞세우고 성당입구까지 행렬을 했습니다. 미사중 복음이 선포될 때와 호산나를 노래할 때도 손에 든 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함께 했지요. 2천년전 바로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모습이 생생이 느껴졌어요. 제가 그 군중 속에 있는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성목요일의 전례는 여러 마을의 신자들이 살레시오 수도원 성당에 모여 함께 했는데 복음 낭독 후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예식이 아주 실감나게 진행되었는데, 제단을 오르는 계단에 열 두 제자로 분장한 이들이 자유로운 형태로 앉고 키가 작고 왜소한 인디오 출신의사제가 그들에게 차례로 다가가서 발을 씻겨주는데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가슴 뭉클함이 있었습니다, 발씻는 예식이 끝나고 유다가 돈주머니를 들고 나간 뒤, 열 한 제자는 성찬례를 봉헌하는 제대 가까이에 초대되어 성찬례가 계속되었습니다. 남미의 신자들은 거양성체때 언제나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이라는 신앙고백을 소리내어 바치는데, 이날은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나의 믿음을 더해주시고 내 형제들의 믿음을 더해주소서"(Senor mio, y Dios mio. Aumenta mi fe y aumenta la fe de mis hermanos) 라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참 아름다운 고백이었습니다.

영성체 예식 후, 사제가 성체를 모시고 전체 신자를 한바퀴 돌아서 성당 한쪽에 마련된 현양제대에 성체를 옮겨모시는동안, 열 한 제자는 제대를 치우고 ... 이어 모든 신자가 현양제대 쪽을 향해 무릎을 꿇고 다함께 딴뚬에르고 를 노래하였습니다.

키작은 흰색 야생글라다올러스로 소박하게 꾸며진 현양제대 뒤편 벽에는 Eucaristia Donacion de Amor 이라고 써있었는데, 우리를 위해 온전히 자신을 내어놓으신 주님 사랑의 결정체인 성체성사에 대한 이 표현을 우리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그 어감을 제대로 전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참 아름다운 밤, 복된 밤이었습니다.

성금요일에는 오후 3시에 네 곳의 마을에서 각기 준비한 십자가의 길 행렬을 시작하여 4시에 성당에 모여서 성금요일의 예절을 바치기로 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가야출파' 에서도 3시에 공소에 모여 성금요일의 전례가 거행되는 성당에까지 길목 곳곳에 각 처의 신비를 묵상할 수 있도록 꾸며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쳤는데, 전 날 비가와서 흙길이 엉망이 되었는데도 각 처의 신비를 묵상하며 경배드릴 때는 모두가 진창이 된 흙바닥에 그대로 무릎을 꿇었습니다. 어떤 그룹은 실제 무거운 십자가를 교대로 지고 긴 행렬을 하면서 1시간을 넘게 걷고 또 걸었습니다. 참으로 마음이 뜨거웠습니다.

그렇게 모여온 네 그룹의 신자들이 모두 모여 성금요일의 예절을 시작했는데 ... 어린아이서부터 노인까지 발디딜 틈도 없이 성당에 꽉찼습니다. 그래서 예절 중에 개별적인 십자가의 경배를 할 수가 없어서 공동으로 바치고 모든 예식이 끝난 뒤, 1시간을 넘게 개별 경배를 하였습니다. 말그대로 '북새통' 같은 모습이었으나 너무도 평화롭고 인간미 넘치는 예절이었습니다.

부활성야의 전례는 말 그대로 축제였습니다. 미사가 거행될 성당에 들어서니 "우리는 죽은 이들 속에서 그를 찾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살아계십니다" 라는 글이 제대 벽면을 채우고, '그리스도의 빛'을 노래하며 입장하는 사제가 걸을 통로 양편에는 혼배미사에서 신부가 걷는 꽃길처럼 장궤틀 마다에 야생 안개꽃 묶음이 놓이고 바닥에는 생생한 꽃잎이 뿌려져 있었습니다.

빛의 예식은 성당 앞 마당에서 시작되었는데, 마당 한 가운데 나무를 쌓고 이들 특유의 방법으로 새불을 이루어서 부활초에 불을 붙이고 다함께 촛불을 밝혀 "그리스도 죽음을 쳐이기셨도다" 는 노래를 부리며 마당을 길게 행렬하여 성당으로 들어와 인디오 출신의 사제가 이들의 언어로 '부활찬송'을 아름답게 노래했고, '대영광송'을 노래할 때는 종과 오르간뿐 아니라 성당 곳곳에서 폭죽을 터트리고, 제단 위 사제를 비롯하여 성당 내 모든 이가 다함께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세례성사는 없었으나 성수축성 예절 후 사제는 성수채를 사용하지 않고 제단에 놓인 꽃을 따서 성수에 적셔 긴시간동안 성당 전체를 돌며 모든 신자들에게 일일이 성수를 뿌려주는데, 이들은 손에 성수를 받아서 머리에, 얼굴에, 품에 안은 아이에게까지 발라주는 것이 마음에 깊게 와닿았습니다.

세 시간이 넘도록 계속된 부활성야의 예절이 끝나고 서로가 서로를 축복하는 "Feliz Pascua!" 라는 인사를 나누며 기쁨과 평화로 충만한 마음으로 자기의 마을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올 성주간은 삶도, 죽음도 모두가 축제임을 새삼 깊이 느끼고 체험한 은혜충만한 시간이었습니다. 다만 한가지 아쉬움이 있었다면 그토록 긴 축제의 시간을 마치고나서 아무것도 나누워 먹을 것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따뜻한 차 한잔, 부활계란 하나가 그리웠습니다.

조용히 어둠 속으로 멀어져가는 이들을 바라보면서 ... 내년 부활에는 부활 달걀 하나라도 나누어 먹을 수 있는 밤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마음에 내내 남았습니다.

형제님, 가족 모두에게 부활하신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빌며, 기쁜 날에는 작은 것이라도 서로 나눌 것이 있음에 감사하는 삶이기를 빕니다.

볼리비아에서, 테오도라 수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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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어느새...

어...모양이 바꿨어요...
다니엘 형제님이 그 새 포맷을 손 보시고 홈피 얼굴 정중앙에 가져다 놓으셨네...맞죠?
감사합니다.
샬롬!!!
안셀모

넵.. 중요한 내용이라..

본당 교우님과 공유함이 마땅한 듯하여서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아니 그 사이에

아니 그 사이에 백과사전에 지도까지...
늙은이는 못 따라 가겠구만...너무 감사해서 해본 소립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온 가정에 가득하시길 기도 드립니다.
안셀모

Feliz Pascua!

10년이 지난 지금도 "Happy Easter!" 라는 말이 기쁘게 느껴지지 않고,
아는 이는 물론이고 모르는 사람들까지 깊은 포옹으로 키스해 주며
"Feliz Pascua!"라며 즐거워 하는 소박한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모든 삶은 빈곤하고 열악하지만, 그 따스한 마음은 잊을 수가 없네요.
제가 살던 Buenos Aires의 이웃에서 소식들으니 흐뭇합니다.
감사합니다. 소식 전해 주셔서...

사진도 함께 왔으면 참 좋았을텐데요..

제가 인터넷으로 대충 사람들이 찍은 사진들 봤는데,,개마고원, 평야, 밀림과 같은 환경이 많더군요. 사진도 함께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볼리비아 한국 대사관의 정보를 보니 이런 대목이 있네요.

"1825년 볼리비아 독립이래 156년간 193회의 군부반란 및 쿠테타가 발생, 민간정부는 통산 44년간 집권한데 반해 군부가 112년간 집권해 왔으나 평균 집권기간은 10개월 이상 지속되지 못하였음."

이미 수십년 전부터 민간정부 계승이 정착되어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있으나, 아직도 각 지역별로 사병같은 군대조직이 많이 산재하여, 세력다툼을 하고 있으며, 수많은 백성들은 굶주림과 질병으로 힘들어하고 있다고 합니다.

내년 부활에는 부활 달걀 하나라도...

"내년 부활에는 부활 달걀 하나라도..."라는 이 말 한마디가 "나는 내일 갈아 입을 속옷이 있어서 미안하다."라고 하셨던 그 한마디 못지 않게 계속 마음을 흔들고 있네요...
내년 부활에는 부활 달걀이 듬뿍 있는 부활 성야가 되게 할 수는 없을까요???
사진은 한번 부탁드려 보겠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평화...
안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