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자료 모음

성당에서 매월 사용되고 있는 소공동체 모임지 자료실은 아래의 링크를 이용하시면 됩니다.

소공동체 모임지

** 수원교구에서 활용되고 있는 소공동체 봉사자를 위한 자료집 코너 (eBook 시리즈)

2003년판 신님 구역장, 반장 교육



소공동체 봉사자 교육 1단계 - 신임 구역, 반장을 위한 교재



소공동체 봉사자 교육 2단계 - 소공동체 활성자를 위한 교재



소공동체 봉사자 교육 2단계 - 지도자용 지침서



그리고 아래의 목록은 소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자료 모음 코너입니다. 소공동체 모임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외부자료와 저희 본당의 모범사례 등을 소개하기로 하겠습니다. 이 자료들이 소공동체 모임을 활성화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소공동체장 워크샵(Workshop)에 대하여..

2008년 12월 17일 구역장 회의에서 캠벨 새구역장님에 의해 소공동체장 모임 활성화를 위해 Workshop의 회의 기법을 도입하여 문제점과 이슈를 고찰하는 방안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소공동체장 워크샵(Workshop)은 심층적인 소공동체 지도자 교육이라고 간주하면 무난한 듯 합니다.

- 소공동체 모임이란 무엇인가?
- 소공동체 모임은 왜 필요한가?
- 소공동체 모임은 어떻게 만드는가?
- 소공동체 모임 리더(지도자)의 역할은 무엇인가?
- 소공동체 모임의 지향은 무엇인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등등의 기초적인 물음에 답하며, 소공동체를 이끌어갈 지도자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의 일환입니다.

이에 따라 관련 자료를 수집하여 올립니다.

[소공동체] 제1차 소공동체 봉사자를 위한 워크샵

제 1차 워크샵을 위해 지난 구역장회의에서 4분을 선임하여 워크샵 추진을 준비하도록 결정하였습니다.

권혁윤 세레자 요한 캠벨 구역장
박주암 레오볼드 밀피타스 구역장
나종빈 프란치스코 구역부회장
최일해 다니엘 로스알토스 구역장

현재 위 4명의 봉사자들은 소공동체의 첫번째 워크샵이 의미있게 성공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많은 연구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그 내용을 정리하여 올려드릴 계획입니다.

[자료] 제1차 소공동체 봉사자를 위한 워크샵 사전 배포 자료 모음

2008년 4월 12일(토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워크샵을 위한 사전 학습자료가 오늘 소공동체장 모임에서 배포되었습니다. 2008년 3월 25일 소공동체장 모임에 참석못하신 교우님들이나 소공동체 협력교우님으로 워크샵에 참석하시는 교우님들은 당일 자료를 배포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웹에도 자료를 첨부합니다. 소공동체 모임에 참여하시는 모든 교우님들이 열람하시면 앞으로 소공동체 모임을 해나가시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제1차 소공동체 봉사자를 위한 워크샵 사전 학습용 자료 (PDF 문서, 총 51페이지)

[자료] 제1차 소공동체 워크샵 기초 자료

다음 자료는 이번 제1차 소공동체장 워크샵을 위한 기초자료입니다. 실제 워크샵에서 심도있게 다뤄지는 내용은 아니지만, 미리 예습을 해오면 매우 큰 도움이 됩니다.

이 자료는 2005년 수원교구 소공동체장 교육에 직접 활용된 자료입니다. (소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자료 모임에 있는 내용과 동일하며, 이를 출력용 PDF 문서로 만든 것입니다.)

이번 워크샵에 참여하는 소공동체장들에게 인쇄물로 배포될 예정입니다.

제1차 워크샵 기초 학습자료 - 복음화란 무엇인가
제1차 워크샵 기초 학습자료 - 소공동체란 무엇인가
제1차 워크샵 기초 학습자료 - 소공동체 봉사자의 자세
제1차 워크샵 기초 학습자료 - 복음 나누기 7단계

워크샵 계획서

제1차 소공동체 봉사자를 위한 WORKSHOP 계획서입니다. 첨부파일을 참조하여 주십시요.

제1차 소공동체 워크샵 일정(4월12일)과 장소(Saint Patrick's University)

찬미 예수님

기쁜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2월 19일, 제1차 소공동체 워크샵 준비팀은 장소에 대한 사전답사를 하였습니다. 일정은 4월 12일(토요일)로 정해졌으며, 장소는 Menlo Park에 위치한 Saint Patrick's Seminary & University로 제안되었으며, 같은 날 저녁 구역장회의에서도 논의되었습니다. 시간은 오전부터 오후까지 대략 7-8시간 정도 할애하는 프로그램을 기획중입니다.

피정겸 워크샵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를 물색하면서 스티브 학사님과 함 마티아 형제님의 도움을 얻어 이날 사전 답사를 두루하였습니다. 저희 구역사목부에서는 최선을 다해 모든 구역장님이 이번 워크샵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소공동체 반장님은 물론이고, 소공동체에 관심이 많은 교우님들의 참여도 환영합니다.

각 구역장님들을 통해 연락이 가실 것입니다. 소공동체 반장님들과 참여하실 교우님들은 미리 이날을 위해 일정을 조절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 워크샵이 주님 뜻에 따라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교우님들의 많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소공동체장님들은 물론이고, 여러 교우님들의 의견을 받습니다. 좋은 의견이나 하시고 싶은 말씀은 댓글로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일정: 2008년 4월 12일 (토요일)
장소: Saint Patrick's Seminary & University (http://www.stpatricksseminary.org/)
주소: 320 Middlefield Road, Menlo Park, CA 94025

신학교 정문

워크샵 메인 회의실

신학교내 성전

찾아오시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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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설문지와 설문지 보고서

지난 4월 12일 진행된 "제1차 소공동체 봉사자를 위한 워크샵" 평가설문지 양식과 그에 결과를 담은 보고서입니다.

[공지] 제1차 소공동체장 워크샵 (4월12일, 토요일) 초대장

제 1 차 소공동체 워크샵“소공동체여 일어나 걸어라!”
교우님을 제 1 차 소공동체 워크샵에 초대합니다.

찬미 예수님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혼자 있도록 부르시지 않고 함께 공동체로 살아가도록 부르셨습니다. 그후 그리스도교 초기 공동체로서의 신앙생활을 하였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친교의 공동체로서의 소공동체 교회상을 구현하도록 요구받았고, 우리교회도 10년이 넘게 소공동체를 통한 신자들의 신앙의 활성화를 시도하였지만, 처음에는 활성화 되는듯 하였으나, 이제는 열정이 많이 줄어듬을 느낌니다. 어떤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공동체를 이루고 복음의 맛을 들이게 하는 것이 소공동체이며, 소공동체는 작고 보잘 것 없는 풀뿌리와 같은 이들을 공동체의 중심에 둔다는 의미를 지니며, 각자가 가진 다양한 은사에 따라 누구나 인격적 주체이며 책임자로서 참여해야 하는 교회구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위 뜻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하여, 저희 구역부 희의에서 결정하고 신부님의 재가를 받아, 여러분들을 모시고 하루 아래와 같은 주제로 워크샵을 가지고저 결정하엿으니 바쁘시드라도 하루시간을 할애하여 “소공동체를 통한 하느님 말씀전파의 소명”에 활력이 되도록 모두 참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래 참가 신청서를 작성하여 해당 각 구역장님들께 제출하여 주십시요.)

워크샵 내용은, 1) 소공동체장에게 요구되는 하느님의 뜻을 배우고, 2) 현재 교회에서 소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의 유형을 살펴보고, 바라고 싶지않은 지도자상과 바라고 싶은 지도상을 확실하게 적립한 후에, 참가자들로부터 “소공동체를 활성화하기 위해서 우리 모두 무엇을 원하는지 또 무엇을 해야 되는지? 를 함께 발견하기 위해서 모입니다. 그날 하루시간 틀림없이 성령님께서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하심을 의심치 않으며, 그분이 우리를 도와 주실것입니다.

천주교 산호세 한국 순교자 성당, 구역사목부 드림

일시 2008년 4월12일 (토), 9:00 AM - 6:00 PM
장소 Menlo Park 에 위치한 신학교
Saint Patrick's Seminary & University (http://www.stpatricksseminary.org/)
320 Middlefield Road, Menlo Park, CA 94025
대상 소공동체장, 구역장, 소공동체를 사랑하는반원
참가비 없음.점심/ 간식/ 음료수 제공
준비물 성경, 묵주, 필기도구
인원 40명 – 50명
연락처 각 구역별 구역장님
참가자 현황 파악 담당자
박주암 레오볼드, 핸드폰 925-852-1868
최일해 다니엘, 핸드폰650-380-6785
초대장(신청서) PDF 파일로 다운받기

각종 회의에 대한 정의(설명)

'회의'의 모든 유형에 대해 일반적으로 '미팅'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즉 '회의(미팅)'는 모든 종류의 모임을 통칭하는 가장 포괄적인 용어이며 이는 컨벤션, 컨퍼런스, 포럼, 세미나, 워크숍, 전시회, 무역쇼 등으로 다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분류는 참석자의 수, 프리젠테이션의 유형, 참가청중의 수, 회의 형식(형식적 또는 비형식적)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회의 (Meeting)

모든 종류의 모임을 총칭하는 가장 포괄적인 용어입니다.

컨벤션 (Convention)

컨 벤션은 회의분야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용어로써, 일반적으로 대회의장에서 개최되는 일반단체회의를 말하며 그 뒤에 소형의 브레이크아웃 룸에서는 위원회를 열기도 합니다. 브레이크아웃(breakout)이란 큰 단체가 몇 개의 작은 그룹으로 나누어질 때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기업의 시장조사보고, 신상품 소개, 세부전략 수립 등 정보전달을 주목적으로 하 는 정기집회에 많이 사용되며 전시회를 수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컨퍼런스 (Conference)

컨퍼런스는 컨벤션과 유사하나 일반적 성격의 문제보다는 좀 더 전문적인 문제를 다룹니다. 즉, 컨벤션은 다수 주제를 다루는 업계의 정기회의에 자주 사용되는 반면 컨퍼런스는 주로 과학이나 기술, 학술분야의 새로운 지식습득 및 특정 문제점의 연구를 위한 회의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컨그레스 (Congress)

컨그레스는 컨퍼런스와 유사하나 이 용어는 유럽에서 국제회의를 지칭하는 것으로써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포럼 (Forum)

포럼은 제시된 한 주제에 대해 상반된 견해를 가진 동일분야의 전문가들이 사회자의 주도하에 청중 앞에서 벌이는 공개토론회로써 청중이 자유롭게 질의에 참여할 수 있으며 사회자가 의견을 종합합니다.

심포지움 (Symposium)

심포지움은 포럼과 유사하나 제시된 안건에 대해 전문가들이 청중 앞에서 벌이는 공개토론회로써 포럼에 비해 다소 형식을 갖추며 청중의 질의 기회도 적습니다.

렉처 (Lecture)

렉처는 심포지움보다 더욱 형식적이며 한 연사가 강단에서 청중에게 연설을 합니다.

세미나 (Seminar)

세미나는 대면토의로 진행되는 비형식적 모임입니다. 주로 교육 목적을 띤 회의로서 30명 이하의 참가자가 어느 1인의 지도 하에 특정분야에 대한 각자의 경험과 지식을 발표하고 토론합니다.

워크숍 (Workshop)

워크숍이란 최대 35명 그리고 보통은 30명 정도의 인원이 참가하는 훈련 목적의 소규모 회의로써 특정 문제나 과제에 관한 아이디어나 지식, 기술, 통찰방법 등을 서로 교환합니다.

클리닉 (Clinic)

클리닉은 소그룹을 위해 특별한 기술을 훈련하고 교육하는 모임입니다.

패널토의 (Panel Discussion)

청중이 모인 가운데 2~8명의 연사가 사회자의 주도 하에 서로 다른 분야 의 전문가적 견해를 발표하는 공개 토론회로써 청중도 자신의 의견을 발표할수 있습니다.

전시회 (Exhibition)

전 시회는 전시참가업체에 의해 제공된 상품과 서비스의 전시 모임을 말합니다. 무역이나 산업, 교육분야 또는 상품 및 서비스 판매업자들의 대규모 전시회로서 회의를 수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시회는 컨벤션이나 컨퍼런스의 한 부분에 설치됩니다. 엑스포지션(exposition)은 주로 유럽에서 전시회를 말할 때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무역박람회 (Trade Show 또는 Trade Fair)

무역박람회(교역전)는 부스(booth)를 이용하여 여러 판매자가 자사의 상품을 전시하는 형태입니다. 전시회와 매우 유사하나 다른 점은 컨벤션의 일부로서 열리지는 않습니다.

화상회의 (Teleconferencing)

화상회의는 화면을 통하여 다른 몇 개의 장소에서 동시에 회의를 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참가자들이 각기 다른 장소에서 TV화면을 통해 상대방 을 보면서 의견을 교환하는 것으로 고도의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이용합니다.

소공동체 지도자 양성을 위한 워크샵의 진행 요령

워크샵은 간단히 다음과 같은 형식으로 흔히 진행됩니다.

1. 문제, 이슈 (당면한 현황을 가능한 구체적으로 제기합니다.)
2. 이슈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전문가의 의견 또는 강의
3. 이 문제(이슈)에 대한 문제 인식에 대한 상호 의견 교환
4. 이 문제(이슈)에 대한 해결방안을 모색
5. 이 문제를 그룹별로 집약하여 발표
6. 향후 정책에 효과적으로 반영

워크샵은 특정 문제(이슈)를 효율적으로 토론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개발된 회의방식입니다. 워크샵은 참여자의 자발적이고, 심층적인 토론이 매우 중요하며, 이를 적절하게 집약하는 기술이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대체로 워크샵은 이슈해결에 도움이 될만한 전문가의 강의를 듣고 소그룹으로 나뉘며, 그룹별 토론 후, 발표하여 정리하는 방식입니다.

워크샵은 토론에 참여하는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문제점에 대한 인식 정도, 심각성 정도를 서로 솔직하게 공유하고, 당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Brainstorm과 같이 원점으로 돌아가 마구잡이식으로 문제점을 나열하며, 실타래를 처음부터 차근차근 풀어가는 것도 큰 도움이 됩니다.

예로, 구역별 소공동체 모임이 왜 필요한가? 우리는 그 모임을 통해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일까? 와 같은 원초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답을 구하는 노력이 Brainstorm의 한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워크샵의 주제가 "소공동체 모임의 활성화를 위하여" 라고 가정하면, 소공동체 모임을 왜 활성화하는 것이 필요한가? 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필요성이 공유되면,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소공동체 모임인가? 그렇게 하기 위해 지도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등등의 구체적인 질문에 서로 답을 구하면서 문제해결 방법의 뼈대를 찾는 것입니다.

문제 해결의 방법이 너무 구체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점은 그 문제점 해결을 위한 방안에 대해 여러 토론자의 경험을 공유하고 큰 가닥을 잡는 것이지, 어떤 통일적인 실행지침을 만드는 것이 워크샵의 목적은 아닙니다.

모든 토론자(소공동체장)는 큰 줄기를 함께 이해하며, 해야할 일에 대해 공감을 하게 되더라도, 구체적인 실천방안은 각 공동체의 내부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한 예로, 소공동체 모임은 계속되어야 하는데, 그 모임을 자청해서 이끌어갈 '지도자(반장)가 없다' 라는 점이 이슈가 되었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그런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를 놓고 토론하게 됩니다.

초기의 워크샵은 그룹별로 중구난방 토론식으로 진행되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토론 참여자가 토론방식에 익숙해지면, 효율적인 문제해결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1차 워크샵은 어쩡쩡한 결론이 도출되더라도, 2차, 3차, 지속되어 갈수록 심도있고, 효율적인 결론을 유출하게 됩니다. 물론 토론자가 자주 새로운 인물로 바뀌게 되면 토론의 성숙도가 더뎌지지만, 기존 토론자와 새로운 토론자가 적절하게 섞여있으면 꾸준히 성숙되어 갑니다.

워크샵은 효율적인 토론을 하는 것 외에도 친교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줍니다. 강의식 토론은 아무리 다수가 참여하더라도 강의자와 토론자간의 일대일 토론형식을 띱니다. 그러므로 친교 네트워크이 매우 더디게 진행됩니다. 그러나 그룹토의 방식인 워크샵은 토론자간의 친교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심도있고, 효율적인 결론을 도출하는데 유용할 뿐만아니라 공동체 네트워크를 형성시켜 줍니다.

이 워크샵 방식의 회의를 소공동체장 교육(모임)에 반영하려면, 우선 시간이 충분해야 합니다. 그러나 한달에 한번 1시간 30분의 여유를 갖는 모임에서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워크샵은 최소한 다음과 같은 시간적 여유가 필요합니다.

그룹당 5명씩의 토론자가 있을 경우

1. 문제(이슈)제기와 설명 (10분)
2. 이슈해결이 도움이 될 수 있는 전문가의 강의 (40분)
3. 그룹 나누기 (10분)
4. 1차 그룹토론 - 문제 공유 (40분)
5. 2차 그룹토론 - 문제 해결방안 (40분)
6. 그룹 발표 - 40분
7. 정리와 반영 - 20분

총 소요시간: 4-5시간 이상

워크샵은 대체로 중간 휴식이 필요합니다. 간단한 다과나 차를 마시면서 분위기를 전환하면서 여유있게 토론하는 것이 좋습니다. 시간에 쫓기면서 토론을 하게 되면 효율적인 토론보다는 결론을 내기 위한 억지 토론이 될 수도 있음을 주의해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이러한 워크샵을 매월 소공동체 모임에서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이는 분기별로 하는 것도 좋은 방안입니다. 즉 1년에 4번, 한달에 소공동체 모임이 한번 있으므로, 지난 3번의 모임 경험을 토대로 워크샵을 하게 되면, 토론자간 새로운 경험과 시도를 공유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워크샵을 피정과 곁들여하는 것은 가톨릭 교회에서 흔히 사용하는 방법중의 하나입니다. 여유로운 피정 프로그램속에서 나눔을 하게 되면, 차분한 토론을 통해 현실적인 대안에 접근할 수 있으며, 마지막에 전례를 하면서, 토론자가 함께 모색한 해결방안에 대한 실천의지를 다질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의 분기별 워크샵(또는 피정안의 워크샵)과 기존의 월 소공동체 교육모임(강의식 회의)을 잘 배합하여 활용하면, 소공동체 지도자 양성과 소공동체 활성화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가상 소공동체 지도자 교육을 위한 워크샵 시나리오

소공동체 지도자 양성을 위한 가상 워크샵 시나리오를 구성해보았습니다. 이 내용은 말 그대로 가상이며, 구역장 회의를 통해 결정된 사항이 아닙니다. 워크샵 프로그램 개발을 위하여 참고 자료로 사용하기 위한 가상 시나리오이며, 실제 상황에서 달라질 수 있습니다.

** 피정 형식을 띈 워크샵

최소한 8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므로, 가깝고 한적한 피정장소를 이용하여, 프로그램을 실시합니다.

프로그램의 소요시간이 하루일정을 꼬박 잡으므로, 가능한 최대한 많은 소공동체장이 참여 할 수 있는 요일과 시기를 선택합니다. (토요일?)

아침 9시 정도에 일찍 모입니다. (성서, 묵주, 성가집, 기도서를 지참하도록 합니다.)

- 참가자들이 모두 모이면, 우선 서로 인사와 간단한 소개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줍니다.
- 워크샵 리더가 워크샵의 목적과 의미를 설명합니다.
- 워크샵 주제에 도움이 되는 자료를 배포합니다. (기초자료와 워크샵 Worksheet)
- 간단한 휴식
- 워크샵 주제에 도움이 되는 전문가(신부님, 수녀님, 또는 자체 준비에 따른 주제발표) 강의
- 그룹 나누기
- 그룹별 주제(문제)에 대한 공유를 위한 사전 토의 (Brainstorm)
- 점심과 휴식
- 그룹별 주제(문제) 해결을 위한 접근 토의 및 해결 모색 (다양한 사례 공유)
- 그룹별 정리 발표
- 간식과 휴식
- 미사 전례
- 마침 정리
- 워크샵 결과물은 자료로 정리하여 기록으로 남김

이를 위해서는 구역장 모임안에서 워크샵 프로그램 기획과 준비를 위한 그룹이 필요하며, 사전 프로그램 심의를 통해 프로그램을 확정하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참여자들의 반응과 의사에 따라 워크샵 시기와 일정, 그리고 소요시간 등을 조정하여 향후 워크샵을 조정합니다.

[사례] 가톨릭여성연구원 ‘자아성장과 갈등해결 워크숍’

[사례] 가톨릭여성연구원 ‘자아성장과 갈등해결 워크숍’

지난 5월 청년들을 대상으로 열린 「자아성장과 갈등해결 워크숍」에서 참가자들이 개인 작업을 통해 스스로가 원하는 바를 탐색하고 현재 하고 있는 행동의 효율성을 평가해보고 있다.

갈등 해결할 주체는 바로 ‘나’
변화 바라는 욕구를 동기로 활용
효율적 결과위해 행동방향 변화

부부, 부모와 자식, 시부모와 며느리 등의 가족관계를 비롯해 신자와 성직자, 직장동료 등 모든 사람은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고 그 속에서 살아간다.

일상에서 겪는 갈등의 대부분도 이러한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갈등이 발발했을 때 『왜 나만 노력해야하느냐』며 불만을 토로하며 자신보다는 상대방의 행동이 변화되길 기대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행동을 하는 데 있어서 자기 내면에서 선택된 결정보다 주변 사람들이나 조건, 사건 등 외부환경의 제약을 많이 받곤 한다.
가톨릭여성연구원이 마련한 「자아성장과 갈등해결 워크숍」은 다양한 갈등을 해결할 주체는 바로 「나」 자신임을 깨닫고 스스로 행동을 주도적으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과정을 통해 효율적으로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선택이론」을 바탕으로 한 현실요법(Reality Ther apy)과, 현실요법을 구조화된 프로그램으로 체험함으로써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성인 자아성장훈련(Quality Manage ment Training)을 근간으로 한다.

「선택이론」에 따르면 행동은 구체적으로 신체반응과 느끼기, 생각하기, 활동하기로 나눠진다. 그중 생각하기와 활동하기는 개인의 선택에 의해 통제가 가능하지만 신체반응과 느끼기는 대부분 조절하기 힘들다. 프로그램의 가장 큰 목적은 이러한 생각하기와 활동하기를 변화시킴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욕구를 충족하는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다.

워크숍에서는 보통 8주 과정인 정규 프로그램을 주1회 총 4주 과정으로 압축해 진행한다. 참여인원은 10~15명 가량의 소수 그룹으로 구성한다. 참가자들은 기본적인 강의를 들은 후 대부분 실제 질문지 등의 작업을 통해 내부의 갈등을 짚어보고 효과적인 행동방향을 찾아가는 연습을 한다.

우선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탐색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는다. 이어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은 어떤 것인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어떤 행동을 했으며 그 행동이 얼마나 도움 혹은 피해가 되었는지 되짚어본다. 나아가 가장 행복한 결과를 낳게되는 행동은 어떤 것인지 계획을 세우는 단계가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의 마음과 인간관계를 해치는 행동과 보다 좋게 하는 행동을 지속적으로 찾게 된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특히 상대의 행동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내가 직접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 내 행동의 변화만이 갈등 상황과 상대방의 행동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상대방 행동의 변화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원하는 욕구를 동기로 활용해 더 효율적인 결과를 낳도록 행동방향을 바꾼다.

「자아성장…」프로그램 전문가 박은미씨는 『많은 참가자들이 스스로가 원하는 욕구가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갈등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받는다』며 『직접적인 행동의 변화를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연습이 필요하지만 정확한 욕구와 시행착오 내용을 알면 올바른 행동 계획을 세워 실천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 프로그램은 리더십 향상에도 큰 효과를 보여 현재 서울대교구 사제연수 과정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각 본당이나 기관단체에서 신청하면 출장 워크숍도 가능하다. 하반기 일반 대상 워크숍은 9월 3일부터 4주간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 서울 명동성당 범어관 511호에서 열릴 예정이다. 여성부 지원 프로그램으로 지정돼 1인당 1만 5천원의 저렴한 비용으로 참가할 수 있다. ※문의=(02)2164-4804, 4552, 016-9282-0719 cwrik. c atholic. ac.kr

주정아 기자 stella [at] catholictimes [dot] org

[자료] EP-1234 프로그램: 본당 이렇게하면 활성화된다 (평화신문에서 발췌)

미래사목연구소의 차동엽 신부님의 EP-1234 프로그램을 소개합니다.

EP-1234 를 따르기만 하면 본당 활성화가 가능합니다.
반드시 되게 돼 있습니다.
어떤 본당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 차동엽 신부 -

[EP-1234] 본당 이렇게하면활성화된다 - 시작하며

[EP-1234] 본당 이렇게하면활성화된다 - 시작하며: 미래사목연구소장 차동엽 신부

EP-1234 를 따르기만 하면 본당 활성화가 가능합니다.
반드시 되게 돼 있습니다.
어떤 본당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미래사목연구소 차동엽 신부는 확신했다. EP-1234 는 본당이 활성화할 수 있는 원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했기에 모든 상황 모든 본당에서 적용이 가능하다는 것.

  EP-1234는 심각한 위기국면에 직면한 한국 가톨릭교회를 살려보려는 순박한 애정과 무모한 모색의 결과로서 생겨난 하나의 몸부림입니다. 시행착오를 통해 끝없는 혁신의 길로 가야 하는 참으로 비장한 교회 존재 방식의 대안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일선 본당에서 EP-1234 를 현실화할 수 있을까. 차 신부에 따르면 EP-1234 는 인식의 문제가 가장 선행돼야 한다. EP-1234 라는 모델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사목 일선에서 균형잡힌 통합적 사목을 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는 것이다.

 차 신부는 이와 관련 복음적 사목(EP)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교육 이라며 EP는 1234의 10가지에 대해 점검표를 만들어 수시로 점검하고 교육하고 반복하는 과정 이라고 설명했다. 즉 EP-1234 는 10가지 본당 활성화 인자 각각을 위한 비전을 복음에서 찾아내고 그 비전을 교육하는 과정으로도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 과정은 디딤돌을 잘 놓는 것에서 출발한다. 차 신부는 EP-1234를 본당에 적용하기 전에 본당의 사목실태를 진단하는 것이 필요한 만큼 본당 간이진단 프로그램도 함께 마련했다 며 많은 본당에서 EP-1234를 통해 스스로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고 말했다.

 차 신부는 이 EP-1234를 체계적으로 엮은 「성공적인 교회들에는 비밀이 있다」(에우안겔리온)를 발간 보급에도 나서고 있다.

우광호 기자
[평화신문 2005.08.07]

[EP-1234] 본당 이렇게하면활성화된다 - ① 총론

[EP-1234] 본당 이렇게하면활성화된다 - ① 총론

위기감이 팽배합니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가 최근 발표한 「2004 교세통계」에 따르면 고해ㆍ혼인성사 참여자는 갈수록 줄고 있고 쉬는신자는 전체 신자의 36%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교회 활성화 대안으로 주목받았던 소공동체 운동도 맞벌이 부부 증가 등 영향으로 갈수록 활력을 잃는 분위기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물러설 수는 없습니다. 교회 활성화를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평화신문은 이 파고를 이겨낼 방향타로 EP-1234 를 제안합니다. 이번 호부터 EP-1234 가 어떤 것인지 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어떤 효과가 있는지 모두 12회에 걸쳐 살펴볼 것입니다. 또한 가능하다면 원하는 본당에 프로그램을 실제로 적용하는 시도도 해볼 것입니다. 본당 활성화를 위해 고민하는 사목자와 사목위원 및 단체장들의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

글 싣는 순서

① 총론
② EP 1 - 교회 토양: 제 1 계명 - 성령이 현동하게 한다  
③ EP 2 - 교회 뿌리: 제 2 계명 - 합심하여 기도한다
④ EP 2 - 교회 뿌리: 제 3 계명 - 전신자의 은사를 일깨운다
⑤ EP 3 - 교회 줄기: 제 4 계명 - 소공동체를 세포조직으로 만든다  
⑥ EP 3 - 교회 줄기: 제 5 계명 - 조직 기능을 최적화한다  
⑦ EP 3 - 교회 줄기: 제 6 계명 - 뉴 리더십을 발휘한다  
⑧ EP 4 - 교회 가지: 제 7 계명 - 수요 중심으로 복음을 증거한다  
⑨ EP 4 - 교회 가지: 제 8 계명 - 은총의 축제로 전례를 행한다
⑩ EP 4 - 교회 가지: 제 9 계명 - 고감도 사랑의 친교를 이룬다  
⑪ EP 4 - 교회 가지: 제10계명 - 토털 서비스로 섬긴다  
⑫ 종합

 신자수 4000명의 A본당. 주일마다 성당에는 신자들로 가득찬다. 주임신부와 보좌신부는 고해ㆍ혼인ㆍ병자성사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하지만 이상하다. 주임신부는 늘 바쁘기는 한데 뭔가 알맹이가 빠진 느낌 이라고 말한다.

 주일미사에 정기적으로 나오는 신자 비율도 30% 수준에 불과하다. 그나마 성당에 나오는 이들도 건성건성 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도대체 신자들 눈에서 열성을 읽을 수 없다. 쉬는신자도 30%를 넘고 있다. 본당에서 무슨 행사를 하려고 해도 신자들이 잘 모이지 않는다. 최근에는 고민이 또 하나 늘었다. 유아세례자가 해가 갈수록 줄고 있다.

 주임신부는 결심했다. 다른 본당에서 실시해 큰 성과를 거뒀다는 좋다는 약 들을 찾아 나섰다. 우선 평화신문에 보도된 본당 활성화 사례들을 찾아봤다. 결론이 내려졌다. 선교운동 소공동체 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했다. 고리기도 방문ㆍ거리선교 묵주기도 봉헌운동 구역반 미사가 이어졌다. 남성 신자 신앙 활성화를 위해 아버지 모임 과 축구단 모임 도 만들었다. 결과는 당연히 좋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이게 웬일? 신자들은 예전보다 더 뚱 한 표정이다. 왜 귀찮게 하느냐 는 표정들이다. 도대체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주임신부는 자신의 능력에 의문을 품는다. 내가 문제가 있는 것일까. 왜 신자들이 따라오지 않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많은 본당에선 어느 본당에서 어떤 방법(프로그램)을 사용했더니 좋은 성과가 나왔더라 는 소문을 들으면 그것을 곧바로 도입하려 한다. 하지만 이 접근법은 성과를 가져올 때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성과를 전혀 가져오지 못할 때가 많다. 본당 주임신부 역량이나 신자들 자질 부족 때문이 아니다. 사목상황 이 다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본당에서 성공한 활성화 모델이 다른 본당에 적용될 경우 어느 경우에는 통하고 어느 경우에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 경험이다. 방법적 접근이 지니는 한계 때문이다. 방법적 차원만 흉내내서는 진정한 본당 활성화란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 진단이다. 각 본당 성공 사례에 깔려있는 그 원리들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 이제 본당 활성화를 가능하게 하는 원인들을 분석할 때다.

 역사적으로 성공한 교회들이 있었고 실패한 교회들이 있었다. 이중 성공한 교회들에는 비밀이 있다. 바로 EP-1234 다. EP-1234 를 개발한 인천교구 미래사목연구소(소장 차동엽 신부)는 EP-1234 가 단순히 공허한 이론적 기획이 아니라고 말한다. EP-1234 는 역사적으로 그리고 세계적으로 성공한 교회들의 성공비결 을 원리적으로 종합한 사목모델이라는 것. 덧붙이자면 일선 사목현장(본당 사목)에서 열매를 맺는 것으로 검증된 인자(factor 본당 활성화를 가능하게 하는 요소들)들 만을 체계적으로 집성한 모델이다.

  EP-1234 에서 EP 는 복음적 사목(Evangelical Pastoral) 약어. 사목 전체를 총괄하는 사목 비전을 의미한다. 1234 는 ▲1: 교회 토양(교회 활성화를 위한 동력원)에 속하는 한 가지 요소(성령) ▲2: 교회 뿌리(영적 인프라)에 속하는 두 가지 요소(기도 영성ㆍ전신자 은사 계발) ▲3: 교회 줄기(시스템 및 조직)에 속하는 세 가지 요소(소공동체ㆍ기능적 조직ㆍ뉴 리더십) ▲4: 교회 가지(사명 및 열매)에 속하는 네 가지 요소(수용중심 선포ㆍ은총의 축제ㆍ고감도 사랑ㆍ토털 서비스)를 각각 의미한다.

 1 2 3 4에 속하는 요소를 모두 모으면 10가지 본당 활성화 인자가 된다. 이 인자들은 전체 교회 유기체적 질서(토양-뿌리-줄기-가지) 안에서 서로 지원하고 열매 맺는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결국 EP-1234 는 10가지 활성화 인자를 교회 전체 차원에서 인식하고 연결시킬 때 본당 활성화가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 있다는 제안이다.

 이 인자들을 종합하면 교회 활성화를 위한 10계명이 제시된다. ▲1계명: 성령이 현동하게 한다(교회 토양) ▲2계명: 합심하여 기도한다 ▲3계명: 전신자의 은사를 일깨운다(이상 교회 뿌리) ▲4계명: 소공동체를 세포조직으로 만든다 ▲5계명: 조직이 기능을 최적화 한다 ▲6계명: 뉴리더십을 발휘한다(이상 교회 줄기) ▲7계명: 수요 중심으로 복음을 증거한다 ▲8계명: 은총의 축제로 전례를 행한다 ▲9계명: 고감도 사랑의 친교를 이룬다 ▲10계명: 토털 서비스로 섬긴다(이상 가지)가 바로 그것.

 서울대교구 사목국장 정월기 신부는 지난 4월 미래사목연구소가 주관한 EP-1234 제안 학술발표회 에서 EP-1234는 내ㆍ외적으로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는 한국교회에 원리를 바탕으로 체계적 접근방식을 담고 있는 희망적 대안 이라며 본당이 경영 합리화를 꾀하지 않으면 종교 시장화 물결 안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에 적절한 본당 활성화 모델이 제공돼 환영한다 고 말했다.

우광호 기자 kwangho [at] pbc [dot] co [dot] kr
[평화신문 2005.08.07]

[EP-1234] ② EP 1 - 교회 토양: 제 1 계명 - 성령이 현동하게 한다

[EP-1234] ② EP 1 - 교회 토양: 제 1 계명 - 성령이 현동하게 한다

EP-1234 에서 EP(복음적 사목 Evangelical Pastoral)-1 은 교회 활성화를 위한 동력원 즉 토양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한가지 요소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 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구원활동이 성령의 감도를 받아 이뤄진 것처럼 교회 안에서 이뤄지는 모든 사목활동도 성령의 현동(現動) 속에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성령은 그래서 복음적 사목의 첫머리에 놓입니다.

성령은 나머지 EP-2 EP-3 EP-4 를 살리고 죽이는 전권을 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첫번째 교회 활성화 인자(因子)요 가장 중요한 활성화 인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일선 사목현장에서 본당 활성화를 위한 가장 기초적 인자(Factor)로 작용한다. 미국 가톨릭 본당 협의회 연구팀은 최근 한 연구에서 탁월한 복음적 성과를 낸 본당들의 공통점을 발표했다. 그 공통점 중 한 요소가 바로 성령의 역사하심을 믿고 따르는 두려워 하지 않음이다.

 아무리 최첨단 장비를 갖춘 공장이라도 전원이 끊기면 가동되지 않는다. 교회에도 성령이 끊기면 그 순간부터 작동하지 않는다. 또 교회는 생동력의 원천인 성령으로 말미암아 탄생하고 성장하고 쇄신된다. 마치 뿌리가 없으면 나무도 설 수 없듯 성령은 교회를 이루는 뿌리다. 나무 뿌리가 눈에 보이지 않듯 성령도 실제로 작용하고 있지만 포착할 수 없다. 인간이 호흡하는 공기처럼 필수적이고 바람이나 폭풍처럼 역동적이며 볼 수는 없으나 강력한 그 무엇 그것이 바로 성령이다.

 교회는 다락방에서 이 성령의 강림을 통해 탄생했다. 그리고 이 성령은 계속 교회를 세우고 교회를 수호한다. 또 교회를 성장시키는 주체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이다. 그런데 하느님은 교회 안에서 성령을 통해 활동하신다. 교회의 지속도 하느님의 영인 성령으로 보장된다. 쇄신 또한 성령의 감도로 이뤄진다.

 성령을 본당에서 현동하게 하는 것이 본당 활성화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관건은 성령께 주도권을 드리는 것이다. 이미 신자들에게는 세례와 견진을 통해 성령의 은사가 주어져 있다. 하지만 사람이 스스로 힘으로 일하려 하고 성령께 기회를 드리지 않으면 성령은 역사하시지 않는다. 이 숨어 있는 특은을 되살려야 한다. 성령의 은사를 신자 개개인이 스스로 발견하고 발휘하도록 할 때 본당 활성화를 이룰 수 있는 기초가 세워지는 것이다.

 사목자 입장에서는 신자들이 그 은사를 발견하도록 도와주고 발휘하도록 독려하고 활용할 기회와 장을 마련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가지고 있는 성령의 씨앗이 꽃으로 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 지휘봉은 사목자들에게 맡겨져 있다. 소홀히 여기면 고사하고 귀하게 여기고 가꾸면 만개한다.

  그것은 권세나 힘으로 될 일이 아니라 내 영을 받아야 될 일이다 (즈가 4 6). 교회의 존속과 성장에 관한한 이 말씀은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다.

우광호 기자 kwangho [at] pbc [dot] co [dot] kr
[평화신문 2005.09.04]

[EP-1234] ② EP 1 - 교회 토양: 제 1 계명 - 성령이 현동하게 한다 (사례 1)

[EP-1234] ② EP 1 - 교회 토양: 제 1 계명 - 성령이 현동하게 한다 (사례 1)

미국 개신교계의 경우 종교다원주의 확산과 자유주의 신학 영향으로 신자 수가 급감하는 위기상황에서도 유독 성령 을 강조한 오순절 계통 교단들이 평균 인구 성장률보다 3~4배 더 높은 신자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 연감에 의하면 1965년에서 1994년까지 30년간 미국 교회의 교단별 교세 성장률을 비교할 때 오순절 계통 교단들이 괄목할만하게 약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조사기간 동안 이른바 비오순절 주요 개신교 교단(장로교 감리교 등) 교회는 신자 수가 평균 18% 감소했지만 같은 기간 오순절 계통 교단 교회는 평균 470%의 비약적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하느님의 성회 는 306% 하느님의 교회 (클리브랜드)는 252% 그리스도 안의 하느님의 교회 는 무려 1232%나 성장했다. 한국에서도 장로교와 개신교 등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반면 여의도 순복음교회 를 위시한 오순절 계통 교단들이 초고속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오순절 계통 신자들이 장로교 감리교 등 비오순절 계통 교단의 신자 수를 앞지르고 있다. 2000년 통계에 의하면 불과 40년 전만 해도 이름조차 생소했던 전 세계 오순절계 교단들의 신자 수가 5억2000만명에 이르고 있는데 이는 오순절 계통을 제외한 세계 개신교 총 신자 3억4000만보다 훨씬 많은 숫자다.

 물론 개신교계 안에서 오순절 교단의 이런 성과에 대해 개인 구원과 양적 성장에 치중한 기형적 현상이라는 비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오순절 계통 교단은 사회복지 사회참여 등 다양한 사회적 노력을 통해 스스로의 잠재력을 외부로 확대시키는 보완적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교회가 성령으로 충만해져 있다면 다른 모든 기능과 역할이 언제든지 수행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은 교회는 외형적 성장도 내적 결실도 불가능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우광호 기자
[평화신문 2005.09.04]

[EP-1234] ② EP 1 - 교회 토양: 제 1 계명 - 성령이 현동하게 한다 (사례 2)

[EP-1234] ② EP 1 - 교회 토양: 제 1 계명 - 성령이 현동하게 한다 (사례 2)

▲철야 성체조배 ▲ 다락방 기도회 ▲성령기도회 월례회의 ▲은혜의 날 치유 미사…. 서울대교구 연신내본당(주임 오태순 신부) 주보는 성령 으로 가득차 있다. 본당 상징도 하늘에서 성령이 강물처럼 흘러내리는 형태다.  단순히 외형적 모습만 성령 으로 치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태순 주임신부는 사제가 먼저 성령으로 성화해야 한다 영적 부대가 있어야 한다 는 신념으로 하루 3~4시간씩 성체조배를 거르지 않고 있으며 관련 신심 행사를 이끄는 등 모범을 보이고 있다. 또 ▲매주 목요일 성령 기도회를 만들었고 정기적으로 ▲가정(가계) 치유미사 ▲자녀 축복 미사 등을 봉헌하고 있다.

 성령이 불붙기 시작하면서 숨어 있던 양들이 나타나 목자를 따르기 시작했다. 2003년 신설 당시 미사 참례자가 350여명에 불과했지만 2년여 만에 620여명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밋밋한 신앙생활을 유지하던 신자들이 성령을 체험하고 나니 삶이 달라졌다 며 성당에 몰린 결과다. 이제는 성체조배가 일상화됐고 각종 기도회는 신자들로 넘치고 있다. 30~40대 젊은 부부 신자들도 눈에 띄게 늘었고 청년회 회원들도 40여명 가까이 늘었다.

 백광열 보좌신부는 주임 신부님의 기도와 겸손 성령에 대한 관심이 본당에 큰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며 성령께 의탁하는 것이 교회 활성화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새삼 느꼈다 고 말했다. 백 신부는 나아가 본당 사제의 성령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본당 활성화의 가장 큰 단초 라고 말했다. 백 신부는 오태순 신부가 지난해 12월 사제수품 35주년 미사에서 말한 내용을 소개했다.

  나는 지금까지 내 뜻대로 살았고 내가 무슨 일을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지만 앞으로는 하느님 뜻대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사제 겸손한 사제 주님께 봉헌된 삶을 사는 사제로 살고 싶다.

우광호 기자
[평화신문 2005.09.04]

[EP-1234] ③ EP 2 - 교회 뿌리: 제 2 계명 - 합심하여 기도한다

[EP-1234] ③ EP 2 - 교회 뿌리: 제 2 계명 - 합심하여 기도한다

  본당 활성화 방안 EP-1234 에서 EP(Evangelical Pastoral 복음적 사목)는 사목전체를 총괄하는 복음적 비전 교육을 말하고 1234는 교회 유기체의 각 기관에 배속되는 열가지 활성화 인자를 말한다. 그림 참조 그중 EP-1은 교회 활성화를 위한 동력원 곧 토양에 해당하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 성령을 의미한다. 그래서 성령이 현동(現動)하게 하는 것이 바로 교회 활성화 10계명 중 제1계명이다.

 EP-2는 교회 유기체의 뿌리에 배속되는 2가지 인자를 말한다. 그것은 곧 기도(영성)와 전 신자 은사계발이다. 성령의 무한한 은사는 영적 인프라 요 뿌리 격인 기도 를 통해서 전신자 은사 계발 로 드러나게 된다. 뿌리는 토양에 있는 성령의 은사가 줄기로 전달되는 통로 역할을 한다. 그래서 본당 활성화 십계명의 제2계명은 합심하여 기도한다 이다.
 
 본당 활성화의 동력원으로 토양에 속하는 성령이 교회라는 유기체(나무)에서 활동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 일차 통로인 뿌리가 튼튼해야 한다. 성령의 충만한 은사들 곧 교회 활성화를 위한 무한한 가능성들은 뿌리를 통해서 줄기로 옮아가고 마침내 가지에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이 뿌리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기도다. 뿌리가 기도로 토양 속에 튼튼히 박혀 있을 때 토양으로부터 성령의 은사를 빨아들여 줄기에 전달할 수 있다. 기도는 성령의 은사가 교회 조직 안으로 흘러들게 하는 통로이다. 뿌리가 튼튼하지 못하면 곧 교회 공동체가 기도로 충만해 있지 않으면 성령의 은사를 나무 전체에 전하는 통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기도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도록 하는 통로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1테살 5 1)라고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본당 공동체가 활성화되기 위해 최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개인으로 그리고 공동으로 기도하는 일이다. 실제로 평화신문 등 교회 매체들을 통해서 소개된 모범 사례나 성공 사례를 모아보면 많은 본당들이 기도 하나만으로도 훌륭한 성과를 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 가톨릭 본당협의회 연구팀이 조사한 탁월한 본당들도 기도하는 깨어 있음 의 자세를 교회 활성화 인자로 꼽았다. 기도는 이처럼 신자들 자신과 공동체를 변화시키고 하느님의 강력한 개입을 이끌어내기에 가장 강력한 교회 활성화 인자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기도는 본당 공동체에 성령의 불씨를 살려 불길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통로 성령을 수용하는 펌프다. 사도 바오로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성령의 불을 끄지 말라고 당부했는데(1테살 5 19) 성령의 불을 끄지 않도록 하려면 기도가 필수적이다. 기도가 없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성령의 불길을 일으킬 수 없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느님께 믿음을 두는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하느님께 믿음을 두는 공동체는 기도하는 공동체다.

 기도가 성령이 활동하시는 통로임을 보여주고 또 기도를 통해 활성화된 가장 대표적 사례로 예루살렘 교회를 꼽을 수 있다. 사도들은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였고 (사도 1 14) 이렇게 기도하고 있을 때 사도들에게 성령이 내려오셨으며 그 성령에 힘입어 3000명이나 세례를 받은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예루살렘 공동체는 이후 교회의 모델이 되고 있는데 이는 이 교회 공동체가 기도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사도 2 43-47 참조).

 기도는 개인기도 공동기도 할 것 없이 이처럼 활기찬 신앙생활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 그런데 EP-1234에서 더욱 강조하는 기도는 공동기도다. 공동기도란 신자들이 함께 모여서 바치는 기도를 말한다. 기도를 통해서 활성화된 본당 사례들을 보더라도 공동기도가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공동기도를 어떻게 바치느냐 하는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함께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반모임 구역모임 단체회합 기도모임 등 공동기도의 형식은 참으로 다양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신자들이 함께 모여서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에서도 나의 집은 뭇 백성이 모여 기도하는 집이라 불리리라 (이사 56 7)고 가르친다. 기도 지향이 공동체의 현안과 활성화를 위한 것일 때 공동기도는 더욱 중요하다.

  본당의 선교 성공 사례들을 보면 하나같이 선교가 기도의 열매였다는 것이 드러난다. 신자들이 마음을 모아 지속적으로 바친 기도가 신자들을 성령의 은사로 무장시켜 열심히 뛸 수 있도록 해줬기 때문이다. 기도 없이는 본당이 활성화될 수 없다.

  기도에 관한 마지막 한 가지. 개인으로든 공동체로든 모든 일을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치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 모두는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기도로 꽉 차 있어야 한다. 기도는 우리의 영적 호흡이다.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의 영적 삶은 죽은 것과 다름 없다. 개인도 그렇고 본당도 그렇다.

정리=이창훈 기자 changhl [at] pbc [dot] co [dot] kr
[평화신문 2006.01.31]

[EP-1234] ③ EP 2 - 교회 뿌리: 제 2 계명 - 합심하여 기도한다 (사례)

[EP-1234] ③ EP 2 - 교회 뿌리: 제 2 계명 - 합심하여 기도한다 (사례)

서울대교구 시흥4동성당(주임 이상헌 신부)에서는 매일 오후 3시만 되면 신자들이 모여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본당의 신심단체나 구역ㆍ반에서 기도 모임을 갖는 게 아니다. 이 때가 되면 시간이 되는 신자들은 그냥 성당으로 온다. 그리고는 함께 묵주기도를 드리고 성경을 읽는다. 묵상 기도를 할 때도 있고 특별한 지향이 있으면 지향대로 기도를 바치기도 한다. 이렇게 공동으로 바치는 기도는 4시까지 계속된다.

 신자들이 많은 것도 아니다. 적을 때는 두세 명 남짓일 때도 있다. 그러나 보통 10여명이 기도 모임에 참석한다.

 이렇게 함께 기도하는 시간은 매일 밤 10시부터 11시까지 한 번 더 마련된다. 밤 기도는 보통 성령쇄신봉사자들이 중심이 돼 이뤄지지만 원하는 신자면 누구나 기도 모임에 참석할 수 있다.

  이렇게 전 신자를 대상으로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기도 모임은 벌써 만 3년 가까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기도 모임을 시작한 것은 이보다 5~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는 신자들이 사순시기와 대입 수능시험을 앞두고 100일 동안 매일 밤 9시부터 2시간씩 기도 모임을 가졌다.

 그러다가 이상헌 신부가 부임한 이후 기도 시간을 한 시간으로 줄이는 대신 매일 오후 3시와 밤 10시 두 차례 갖는 것으로 바꿨다.

  신자들이 하루에 두 시간씩 기도를 계속하는 것은 무리일 것 같아서 한 시간으로 줄이는 대신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두 차례 기도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신자들의 의견을 물어 바꿨습니다.

  처음에는 자신도 함께 기도에 참석했지만 요즘은 게을러서(?) 함께 못할 때가 많다는 이 신부는 기도에 나오는 신자들의 수가 많고 적음을 떠나서 1년 365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같이 3년 가까이 기도모임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 이라고 전한다.

 기도모임에 참석하는 신자들은 또 다른 측면에서 매일 기도모임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성당 공동기도에 나가지 않더라도 매일 오후 3시만 되면 아 지금이 기도 시간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자연히 마음으로라도 동참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신자들과 일치가 되는 것 같아요 (천효순 힐다 60).

  오후 3시 기도 시간이 아니더라도 성당을 찾아 기도하는 신자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매일 하는 공동기도가 신자들에게 기도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줬다고 할 수 있어요 (김영애 데레사 50).

 기도의 힘 덕분일까. 시흥4동본당은 친교와 화합이 잘 이뤄진다. 본당의 크고 작은 일들을 늘 함께 하는 화목한 분위기가 강점이라고 이 신부는 덧붙인다.

 외적으로 두드러진 활동은 없지만 시흥4동본당은 전 신자에게 열려 있는 매일 기도모임을 통해서 성령의 현동을 체험하고 있다. 서로 잘난 체하지 않는다는 것 본당 공동체 전체에 일치하고 화목하는 분위기가 살아 있다는 것이다.

이창훈 기자
[평화신문 2006.01.31]

[EP-1234] ④ EP 2 - 교회 뿌리: 제 3 계명 - 전신자의 은사를 일깨운다

[EP-1234] ④ EP 2 - 교회 뿌리: 제 3 계명 - 전신자의 은사를 일깨운다

기도없인 구현 불가능

본당 활성화 십계명의 제3계명은 전 신자 은사계발 이다. 여기서 은사란 성령의 선물을 말한다. 곧 본당 공동체 전 구성원에게 성령께서 내려주시는 다양한 은사들을 일깨움으로써 공동체를 활성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제3계명은 제2계명의 연장선에서 추구된다. 합심하여 기도하는 제2계명을 소홀히 하고서는 전 신자 은사계발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전 신자 은사계발은 기도와 함께 교회라는 조직의 영적 인프라(기초구조)를 이룬다. 본당 공동체를 나무라는 유기체에 비유할 때 은사계발은 기도와 함께 뿌리에 해당하는 인자(因子)다. 토양인 성령이 기도를 통해 신자들 안에서 다양한 은사로 표출되는 것이다.
 
 은사계발 왜 중요한가

  초대 교회 공동체는 성령의 은사가 잘 드러난 공동체였다. 사도 바오로에 따르면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다양한 성령의 은사를 주시는데 그 은사들은 곧 지혜의 은사 지식의 은사 믿음의 은사 치유의 은사 기적의 은사 예언의 은사 식별의 은사 방언의 은사 방언을 해석하는 은사 등이다(1 코린 12 7-11). 중요한 것은 이 은사들이 공동선을 위한 것 곧 교회의 유익과 성장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다(1코린 12 7; 14 1-13.22 참조).

 초대교회 공동체와 마찬가지로 오늘에도 교회 공동체가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으려면 성령의 다양한 은사들이 공동체 구성원들에게서 계발돼야 한다. 이는 참여 민주주의 또는 참여 사회 라고 하는 시대적 분위기와도 맥을 같이 한다. 따라서 전 신자 은사계발이란 신자들이 단순히 사목 대상으로 수동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게 아니라 교회의 주체가 돼 능동적으로 활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은사계발 어떻게 할 것인가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 인용된 리브스의 우화 동물학교 는 은사계발이 왜 그리고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내용을 소개하면 이렇다.

  옛날 동물들이 신세계에서 직면하게 될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학교를 열었다. 그들은 달리기 오르기 수영 날기 등으로 교과목을 짜고 동물들 모두가 똑같은 과목들을 수강토록 했다. 오리는 수영 과목은 교사보다 잘했고 날기도 꽤 훌륭했다. 그러나 달리기는 매우 부진했다. 그래서 방과 후에도 나머지 공부를 했고 나중에는 달리기 연습 때문에 수영 수업에도 빠지게 됐다. 그러다 보니 물갈퀴도 닳아서 약하게 됐고 수영에서도 평균 점수밖에 못 받게 됐다. 토끼는 달리기는 일등으로 시작했으나 수영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느라 신경쇠약에 걸렸고 다람쥐는 오르기는 뛰어났지만 교사가 맨 땅에서 날아 오르도록 했기 때문에 좌절에 빠졌다. 학년말이 되자 수영은 아주 잘 하나 달리기ㆍ오르기ㆍ날기는 약간만 잘 하는 이상하게 생긴 뱀장어가 가장 높은 평균점수를 받아 졸업생 대표가 됐다.

 이 예화는 각자의 고유한 은사를 존중하지 않으면 교회 공동체 역시 이렇게 하향 평준화에 빠지는 비극을 겪을 수밖에 없음을 일깨워준다.

  전 신자 은사계발이란 오리는 오리로 토끼는 토끼로 뱀장어는 뱀장어로서 타고난 자질을 키울 수 있도록 돕고 기를 살려주며 그 은사들을 활용할 공간과 여지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 신자 은사계발에서 사목자의 역할은 특출한 능력으로 신자들을 훌륭하게 돌보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잘하는 사목은 전 신자가 각자의 은사들을 발휘하도록 깨우치고 돕고 기회를 주는 사목이다.

정리=이창훈 기자
[평화신문 2006.02.22]

[EP-1234] ④ EP 2 - 교회 뿌리: 제 3 계명 - 전신자의 은사를 일깨운다 (사례)

[EP-1234] ④ EP 2 - 교회 뿌리: 제 3 계명 - 전신자의 은사를 일깨운다 (사례 -
마산교구 창원 가음동본당 은사계발

구역모임에서 사목위원 직접 뽑아

마산교구 창원 가음동본당(주임 강윤철 신부) 사목협의회 위원들은 여느 본당과는 다른 방식으로 구성된다.

 사목협의회는 11개 위원회를 두고 있는데 신자들은 구역 모임에서 각 위원회에서 활동할 적임자 5명씩을 추천한다. 여기에 기존 위원장이 추천한 2명과 본당 신부가 위촉한 이들 그리고 당연직으로 참여하는 단체 대표들이 위원으로 합류한다.

 회장은 협의회 총회에서 선출해 주임신부 인준을 받고 회장단은 회장이 제청해 사목협의회 총회 동의를 얻어 주임 신부가 인준한다.

  이렇게 각 위원회 위원들이 구성되면 위원장 또한 위원들이 선출해 회장 제청으로 주임 신부가 인준한다. 부위원장은 위원장이 선임해 위원들 동의를 얻고 위원회 산하에 평균 3~4개씩 있는 분과장들 역시 위원들이 뽑아 위원장 동의를 얻는다.

 사목협의회 구성을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은 아래로부터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본당 봉사자들이 적재적소에서 봉사할 수 있도록 말하자면 신자들이 지닌 잠재력과 은사를 최대한 발휘토록 하기 위해서다.

  가음동본당은 소공동체 구성도 독특하다. 가장 큰 특징은 지도력의 분산. 그래서 구역에는 구역장과 총무 외에 부구역장 선교부장 봉사부장 홍보부장 친교부장 같은 직책을 두어 저마다 역할을 분담토록 하고 있다. 이는 반도 마찬가지다. 사도 라고 부르는 반장(소공동체장) 외에 부사도(부반장) 총무 선교 봉사 친교 같은 담당을 두고 있다.

 이렇다 보니 소공동체원(반원) 거의 전부가 각자 역할을 맡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구역ㆍ반장 또는 총무에게 집중됐던 역할을 소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분담해 맡을 뿐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어 즐겁게 일을 하게 된다. 또 본당 전체로서는 전 신자의 1인 1직책 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참여효과도 높아진다.

 가음동본당에는 또 하나의 특별한 모임이 있다. 소공동체 연수팀이다. 10여명으로 이뤄진 소공동체 연수팀은 교구 소공동체 세미나를 수료한 후 본당에서 별도로 6주간 교육을 받은 이들이다. 지난 2004년부터 8차례에 걸쳐 본당 신자들을 대상으로 구역별 소공동체 교육을 실시한 것을 비롯해 신입교우나 새 영세자들을 대상으로 소공동체 교육을 실시하고 인근 본당에서 요청이 오면 파견 교육도 나가는 등 소공동체 운동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소공동체 연수팀은 현재 본당에서 소공동체 모임에 어려움을 겪는 공동체가 있으면 4~6회 정도 모임을 이끌어 공동체가 다시 활성화하도록 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가음동본당은 이런 식의 사목협의회와 소공동체 운영을 통해 전 신자가 참여하는 교회 역할을 분담하는 교회상을 구현해 나가고 있다. 신자들의 다양한 은사들이 계발되고 이것이 본당 공동체 활성화로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본당이 이런 시도를 하기에 앞서 준비한 것이 있다. 바로 말씀의 생활화 다. 2003년부터 성서읽기 운동을 시작한 가음동본당은 이듬해부터는 ①날마다 성경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기 ②성경 쓰기 ③성경 가훈ㆍ좌우명 갖기 운동을 통해 말씀의 공동체를 구현해 나가는 데 힘을 쏟아왔다. 이런 노력과 함께 사목협의회 및 소공동체 구성과 운영 방식도 바꿔온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신자들 반발도 만만찮고 회의적 시각도 컸다. 그러나 이제는 많은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본당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우정모(요셉 48)씨는 지난해 본당 행사를 보면 예전에 비해 구역들이 저마다 독특한 색깔을 띠면서 활성화하는 것 같고 참여율도 높아졌다 면서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분위기가 눈에 띈다 고 말한다.

 여성부회장 이정원(소피아 49)씨도 그동안 반신반의한 경우가 적지 않았는데 지난해 여름 전국 소공동체 대표자 연수에 가서 보니 우리 본당이 제대로 해나가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됐다 면서 소공동체 모임에는 요즘 여성 80% 남성 60% 정도의 참여율을 보이고 있다고 전한다.

 강윤철 주임 신부는 본당이 이 단계에 오기까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 고생이 컸다 고 털어놓으며 현재 단계는 뿌리를 내렸다고는 볼 수 없지만 자리를 잡아가는 단계라고는 말할 수 있을 것 이라고 평가했다.

  강 신부 말처럼 참여하는 교회 소공동체 중심의 교회를 지향하는 창원 가음동본당의 현재까지 과정은 성공한 사례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본당이 복음적으로 활성화되기를 바라는 이들에게 가음동본당은 분명히 눈여겨볼 만한 본보기이다.

 강 신부는 또 이렇게 전 신자들이 함께 하는 교회 공동체를 가꿔가는 데 필요한 사목자ㆍ지도자의 자세와 관련 다음과 같은 글을 인용했다. 공동체로부터 그가 우리를 위해 해줬다 는 말을 들으면 나쁜 지도자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도록 그가 도와줬다 는 소리를 들으면 그저 그런 지도자입니다. 공동체로부터 우리가 이를 해냈다 는 소리가 나오면 훌륭한 지도자입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 [at] pbc [dot] co [dot] kr
[평화신문 2006.02.22]

[EP-1234] ⑤ EP 3 - 교회 줄기: 제 4 계명 - 소공동체를 세포조직으로 만든다

[EP-1234] ⑤ EP 3 - 교회 줄기: 제 4 계명 - 소공동체를 세포조직으로 만든다

EP-1234 에서 EP(복음적 사목 Evangelical Pastoral)-3 은 본당 활성화 인자 열가지 가운데서 교회 유기체의 줄기에 해당하는 세 가지를 말한다. 소공동체와 기능적 조직 뉴리더십이 그것이다. 기도와 은사계발을 통해서 드러난 성령의 은사는 이제 교회 조직을 통해서 통합될 필요가 있고 교회 조직에 해당하는 세 가지가 바로 소공동체와 기능적 조직 뉴리더십인 것이다. 그 중에서 소공동체를 세포조직으로 삼는 것이 본당 활성화 제4계명이다.
 
 ▨소공동체란 무엇인가

 요즘 소공동체란 말을 모르는 신자는 거의 없다. 현재 신자들 사이에서 소공동체는 일반적으로 반모임 또는 구역모임과 동일시된다.

 소공동체는 다음과 같은 것을 지향한다. 1)규모 면에서 소수 사람들로 구성된 교회 공동체 즉 소수이기에 서로 친밀감을 느낄 수 있고 공동체에 속한 누구나 그 공동체의 주체로 체험되게 한다. 2)단지 규모만 작은 것이 아니라 보잘 것 없는 이들 가난한 이들을 놓치지 않고 공동체 중심에 둔다. 3)하느님 앞에 작은 자들 가난한 자들임을 고백하는 공동체다. 4)가장 작은 단위 공동체 곧 가정 공동체와 이웃 공동체를 세포 조직으로 하여 이를 우선적으로 성장시킨다.

 따라서 소공동체는 작고 보잘 것 없는 풀뿌리와 같은 이들이 공동체의 중심이 되며 공동체원 각자가 가진 다양한 은사에 따라 누구나 인격적 주체로서 책임자로서 참여하는 교회 구조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제시하는 교회 곧 친교의 교회 참여하는 교회 모습에 부응하는 것이다.

 요컨대 소공동체는 개인적이고 형식적이며 본당 중심적이고 의무 중심적 신앙생활을 공동체적이며 역동적이고 현장 중심적이며 복음 중심적 신앙생활로 변화시키는 것을 지향한다.

 ▨왜 소공동체인가

 신문이나 잡지 등 교회 매체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소공동체가 활성화한 본당은 살아있고 활력에 넘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소공동체가 살아있는 세포조직으로서 본당이라는 유기체에서 줄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 세포 조직 곧 소공동체가 살아있지 못하면 전 신자 기도 및 은사 계발(뿌리)을 통해 드러난 성령의 풍부한 은사들이 가지까지 연결되지 못해 열매를 맺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소공동체는 교회가 살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 중 하나가 아니다. 소공동체는 전략이 아니라 생존이다. 전략은 여러 가지 대안 가운데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지만 생존은 선택 문제가 아니라 필수적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중대형 본당으로는 복음적 교회 공동체 모습을 구현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소공동체 기능

 소공동체는 세포조직으로서 본당 조직 및 뉴 리더십과 함께 교회 유기체의 줄기 를 형성한다. 이 줄기는 뿌리로부터 기도(영성) 및 은사를 수렴하고 통합 조정한 후 다시 가지로 분배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따라서 소공동체 기능은 무엇보다도 수렴하고 파견하는 기능이다. 풀뿌리 같은 신자들의 다양한 의견(영성)들과 다양한 재능(은사)은 소공동체를 통해 수렴돼 본당 조직 및 뉴리더십 같은 줄기 를 통해 사목 역량을 극대화하도록 통합 조정된 후 다시 소공동체를 통해 분배되고 현장으로 파견됨으로써 삶의 현장에서 예배와 증거와 나눔과 섬김으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소공동체는 단순히 수렴하고 전달하는 기능으로 그치지 않는다. 소공동체는 통합하는 기능도 수행한다.

 우선 소공동체는 필요한 은총을 자급자족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믿음이 약한 사람은 믿음이 강한 사람을 통해서 믿음을 키울 수 있게 된다. 삶에서 부딪치는 여러 문제들을 소공동체로 가지고 와 공동체 구성원들이 함께 기도하고 성령의 은총으로 지혜를 모음으로써 해결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겠다 (마태 18 20) 하신 예수님 말씀은 소공동체에 해당한다.

 나아가 소공동체는 자율적 교육의 장으로서 또 사명을 깨닫고 수행하도록 돕는 장으로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말씀 을 중심으로 모이는 소공동체는 하느님 말씀을 배우고 나누고 적용하고 실천하게 해주는 좋은 교육의 장이 될 수 있다. 또 공동체 구성원들이 개인으로나 공동체적으로 교회 사명 곧 예배와 증거와 나눔과 섬김을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소공동체의 조직화

 소공동체를 어떻게 조직해야 할까. 가장 바람직한 것은 평신도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소공동체가 자생적으로 생겨나도록 하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위로부터 하향 지시적으로만 소공동체를 조직화하는 것도 좋지 않다. 위로부터는 지속적 교육과 지원으로 방향을 설정하고 뒷받침하며 아래로부터 자발적 움직임을 통해 소공동체가 조직되도록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정리=이창훈 기자
[평화신문 2006.03.10]

[EP-1234] ⑤ EP 3 - 교회 줄기: 제 4 계명 - 소공동체를 세포조직으로 만든다 (사례)

[EP-1234] ⑤ EP 3 - 교회 줄기: 제 4 계명 - 소공동체를 세포조직으로 만든다 (사례 - 인천교구 계산동본당 소공동체 모임)

남녀반장 함께 둬 참여와 친교 강화

▲ 계산동본당 2구역 2반 공동체 가족들이 2월16일 소공동체 모임을 하면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인천교구 계산동본당(주임 최병학 신부). 4개 지역 18개 구역 87개 반으로 이뤄진 이 본당에는 여느 본당과는 다른 소공동체 조직이 눈에 띈다. 우선 여성 반장 외에 남성 반장을 두고 있는 반들이 있다.

  남녀 반장을 함께 두고 있는 반에서는 통상적 소공동체 모임은 여성 반장이 주도하지만 여성들만으로는 쉽지 않은 복지활동 같은 일이나 남성 반원들의 참여와 친교를 강화하는 일은 남성 반장이 맡아서 한다. 여성 반장 외에 남성 반장을 더 둔다는 것은 봉사자 수가 그만큼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봉사자가 많아짐으로써 반모임뿐 아니라 구역모임도 자연히 더 활성화된다.

 그래 선지 구역(반) 사정에 따라 한달에 한번 또는 두번 소공동체 모임을 갖고 있는 계산동본당의 경우 반원들이 모이지 않아 반모임을 하지 못하는 반은 거의 없다. 87개 반 가운데 평균 82~83개 반이 매월 소공동체 모임을 갖고 있다. 소공동체 모임은 대체로 목요일 낮 또는 저녁에 열린다. 목요일은 소공동체 모임을 하는 날이라는 인식이 은연 중에 신자들에게 들어 있다. 반 모임 참석 인원은 평균 7~8명 정도다. 본당 전체로 볼 때 반모임 참석자는 평균 600~700명선. 주일미사 참례 인원이 평균 2500~3000명임을 감안한다면 참석률이 대단히 높은 편이다.

 계산동본당 구역 모임은 남녀 구역장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남녀 구별없이 구역장과 부구역장 총무를 각 한 사람씩 두고 있다. 이외에 구역마다 남성회장을 별도로 두고 있다. 여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축된 남성들의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한 장치다.

 남성회장은 구역 모임 외에 한 달에 한 번 구역 남성모임을 별도로 주관한다. 구역 남성모임은 구역 형제들의 친교뿐 아니라 복지활동이나 선교활동 등을 통해 구역 활성화를 도모한다. 구역들은 구역 남성모임 외에 구역 전체모임을 한달에 한번 또는 3개월에 한번 정도 갖고 구역 활성화를 위한 제반 사항들을 협의하고 실천한다.

 본당에서는 매월 본당 사목회장 주재로 지역장과 구역장 회의를 열어 각 소공동체에서 제기된 의견들을 본당에 전달하고 본당 사목방침들을 소공동체에 전한다. 소공동체에서 올라온 의견들은 사목평의회를 통해 조정해 시행하게 된다.

  계산동본당의 이같은 소공동체 모임 조직과 운영은 이제 정착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신자들의 전출입이 상대적으로 많은 지역적 특성을 지녔음에도 인천교구에서 소공동체 모임이 활발한 본당으로 꼽힌다. 이는 지난 90년대 초반부터 본당이 소공동체 중심 체제로 운영돼 소공동체 모임이 아주 자연스럽게 신자들에게 각인돼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택시 운전을 하면서도 소공동체 모임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류순자(클라라 49)씨는 소공동체 모임을 통해 얼굴을 한 번씩이라도 더 보게 되고 그럼으로써 친교도 훨씬 돈독해진다 면서 소공동체 모임을 통해 가족같은 분위기가 형성돼 좋다고 말한다.

 본당 사목회 김영원(시몬) 회장은 교우들 사이 유대가 좋을 뿐 아니라 본당 일에 관심이 많고 호응도와 참여도가 높은데 이는 소공동체로 인한 변화 라고 말했다.

  계산동본당은 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올해부터는 구역 수호성인을 정해 수호성인 축일이 되면 구역별로 기념미사를 봉헌하고 축일 행사를 갖도록 하고 있다. 또 본당 빈첸시오회 활동을 구역 단위로 시행하는 등 구역별 나눔과 선교 활동도 더욱 활성화해 나갈 계획이다.

 본당 사목회 강상호(필립보 44) 공동체분과장은 소공동체를 통한 구역 활성화를 바탕으로 올해부터는 지역을 작은본당 형태로 운영할 정도로 활성화한다는 게 본당 신부님 방침 이라고 전했다.

이창훈 기자 changhl [at] pbc [dot] co [dot] kr
[평화신문 2006.03.10]

[EP-1234] ⑥ EP 3 - 교회 줄기: 제 5 계명 - 조직 기능을 최적화한다

[EP-1234] ⑥ EP 3 - 교회 줄기: 제 5 계명 - 조직 기능을 최적화한다

EP-1234 십계명에서 5계명인 조직 기능의 최적화는 소공동체 및 새로운 지도력과 함께 교회 유기체의 줄기인 EP(복음적 사목 Evangelical Pasto-ral)-3 에 해당한다. 교회 유기체가 왕성한 생명력을 유지하려면 조직이 효율적 기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조직은 공동체에 필요한 기능을 수행하도록 개선해 나가야 한다. 조직이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구성돼야 그 조직에 필요한 은사를 지닌 평신도 지도자들의 발굴이나 지도력의 위임이 가능하다.
 
 ▨기능 조직이란 무엇인가

 조직은 세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첫째가 직계 조직이다. 직계 조직에서는 명령체계가 상부에서 하부로 내려간다. 권한과 책임이 위에서 아래로 주어지며 위에서는 생각하고 기획하고 지시하며 아래에서는 그 지시에 따라 행동한다.

 둘째는 구조 조직이다. 구조 조직에서는 명령체계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지만 아래에서는 서로 연합하고 협동해서 일할 수 있다. 명령을 받아 시행하면서도 각 분과와 부서간 상호 관계를 중요하게 여긴다.

 셋째는 기능 조직이다. 기능 조직은 구조 조직 형태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으로 하부 부서나 분과에 자율적으로 기획하고 수행할 수 있는 권한이 어느 정도 위임돼 있다. 그래서 구성원들은 자기들의 목표가 무엇인지 알며 맡은 업무의 책임과 권한의 한계가 분명하다. 또 자체적으로 필요한 분야 인재를 양성해 일을 시킬 수 있다.
 
 ▨왜 기능 조직인가

 교회 조직이 기능 조직이고 또 기능 조직이어야 하는 이유는 교회 조직을 운영하는 3대 원리에서 연유한다. 교회 조직의 3대 운영 원리는 교계원리와 협의체원리 보조성원리를 말한다. 이 세 가지가 조화롭게 맞물려 운영될 때 교회 조직은 훌륭한 기능을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교계원리는 교회가 위계조직에 의해 운영된다는 것을 말한다. 초대 교회는 위계제도에 따른 교계직무를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섬김 또는 봉사 로 이해했다. 하지만 시대를 거쳐 내려오면서 위에서 시혜를 베풀고 명령을 내리고 아래에서는 주어지는 은사를 받고 명령을 이행하는 일방적 형태로 흐르는 경향이 많았다.

 이를 바로잡은 것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였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평신도가 사목 대상일 뿐 아니라 사목 주체임을 또한 교계직무가 봉사와 섬김을 위한 것임을 확인한 것이다. 교계직무가 교회 공동체를 위한 봉사와 섬김의 사명을 제대로 수행할 때 그 권위가 바로 설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권위주의에 빠지고 만다.

 협의체 원리 역시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확인하고 요청한 교회조직 운영 원리다. 주교회의나 교구사목평의회 본당사목평의회(사목회) 등은 모두 협의체 원리에 따른 것이다. 함께하는 교회 모습을 구현하는 게 바로 협의체 원리다. 함께하는 교회는 또한 참여하는 교회다. 참여 는 교회 정신에도 부합할 뿐 아니라 실제로도 큰 힘을 발휘한다. 참여를 통해 공동체의 일체감이 증대되고 힘을 안배할 수 있게 된다.

 중요한 것은 함께하고 참여하는 협의체 원리가 실행 과정에서만이 아니라 의사 결정 과정에서도 존중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못할 때 참여는 통합적 참여 가 아닌 형식적 참여 로 그치고 만다.

 보조성 원리란 상위 집단은 하위 집단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하위 집단에 개입할 때는 도와주는 차원에서만 개입해야 함을 말한다. 이 보조성 원리는 상호존중 원리라고 할 수 있다. 보조성 원리는 교계원리의 우선권을 인정하되 그 독단을 경계하며 협의체 원리를 지원하되 그 부작용인 다수의 횡포를 용인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조성 원리는 모두가 사는 길이다.

 ▨어떻게 기능조직을 최적화할 것인가

 교계 원리와 협의체 원리가 무리없이 조화를 이루도록 하려면 보조성 원리가 제대로 기능을 해야 한다. 본당에서는 본당신부 사목평의회 소공동체 사이에 보조성 원리가 잘 반영된다면 그 본당은 최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소공동체(반ㆍ구역 또는 지역)의 자율권을 충분히 보장하면서 본당 공동체와 연대성을 유지하는 선에서 재정 활동 계획 등에 자치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 한다.

 다음으로 반ㆍ구역ㆍ지역ㆍ사목평의회 등 각각의 차원에서 협의체적으로 수렴되고 결정된 사안을 각각의 상위 조직 차원에서 잘 수용돼 기능이 올바로 발휘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

 또 범본당 차원의 결정(교계원리)을 간섭이나 지시로 오해하지 않도록 구역ㆍ반 조직의 중재가 효율적으로 이뤄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창훈 기자
[평화신문 2006.03.17]

[EP-1234] ⑦ EP 3 - 교회 줄기: 제 6 계명 - 뉴 리더십을 발휘한다

[EP-1234] ⑦ EP 3 - 교회 줄기: 제 6 계명 - 뉴 리더십을 발휘한다

  본당 조직에 가장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사람은 사목자다. 한국 천주교회에서 본당의 사활은 사목자 곧 사제의 리더십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EP-1234 에서 요청하는 리더십은 바로 사목자들에게 해당한다. 리더십이란 공동 목표를 향해 집단의 활동을 이끌어가는 한 개인의 영향력 행사 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런데 EP-1234 의 제6계명이 요청하는 리더십은 뉴 리더십이다. 말하자면 새로운 개념의 리더십이라는 것이다. 뉴 리더십은 소공동체 기능 조직과 함께 교회 유기체의 줄기에 속한다.
 
 ▨뉴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리더십 유형을 결정하는 변수로서 일반적으로 지도자 (추종)집단 공동 목표 이 세 가지가 꼽힌다. 뉴 리더십의 새로움은 이 세 가지 변수와 관련해서 설명할 수 있다.

 우선 지도자를 보는 관점의 변화가 새로운 리더십을 요청한다. 독점과 통제 직위 중심에서 공유와 친화력 역할 중심으로 지도자를 보는 관점이 바뀌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추종) 집단의 변화가 새로운 리더십을 요청한다. 신자들이 교회 운영 동반자로서 받아들여지고 자신들 제안이 수렴돼 교회 운영에 반영되기를 점점 크게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로는 공동 목표가 새로움을 요청한다. 신자 개개인 욕구와 바람을 수용한 목표가 설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새 시대가 요청하는 뉴 리더십은 세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뉴 리더십은 공동 참여형 리더십이어야 한다. 지도자가 스스로를 동반자로 여기며 신자들 참여의식과 주체 욕구를 반영해 공유비전을 추구하는 리더가 돼야 한다. 둘째 조정자형 리더십이어야 한다. 지도자는 신자들의 다양한 이해 관계와 사고방식을 잘 중재하고 조정함으로써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개척자형 리더십이어야 한다. 시대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줄 아는 리더가 돼야 한다.
 

 ▨뉴 리더십의 역할

 뉴 리더십을 지닌 사목자는 두가지 역할을 수행한다.

 첫째는 구심적 리더십이다. 신자들과 본당 공동체가 전체 교회의 일원임을 느낄 수 있도록 주교와 또 동료 사제들과 유대관계를 통해 구심 역할을 하고 신자들 일치를 위해서도 힘써야 한다. 그뿐 아니라 신자들 은사 계발을 격려하고 계발된 은사들을 조직적으로 수렴하고 통합 조정하며 최종 책임자로서 지도력을 행사해야 한다.

 둘째는 원심적 리더십이다. 이것은 신자들이 파견받은 사명을 생활 현장에서 능동적으로 수행하도록 독려하고 촉진하는 역할을 말한다. 또 신자들이 사회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신앙 역량을 키워주고 다양한 카리스마를 발휘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역할도 원심적 리더십에 해당한다. 이런 의미에서 본당신부는 촉진자요 격려자요 교육자다.
 

 ▨교회 운영에서 지켜야 할 원칙과 교회 리더의 자질

 교회는 군대나 일반 사회와 다른 조직이다. 교회는 이익집단이 아니라 공동사회이고 현세적인 것을 넘어서 초월적인 것을 추구한다. 이는 교회가 인간들로 이뤄져 있지만 또한 신적 기원을 지니는 데서 연유한다.

 여기서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교회에는 민주화 원칙이 일방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교회는 이를 넘어서야 한다. 곧 교회 지도층에 대한 존중(교계 원리) 신자 참여권 존중(협의체 원리) 이 두가지 원활한 조화(보조성 원리)가 아주 잘 어우러진 동반 여정 곧 시노드의 길을 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교회 운영에서 준수돼야 할 원칙이다.

 교회 리더 역시 사회 리더와는 다른 자질을 지녀야 한다. 무엇보다도 교회 리더에게는 지배보다는 섬김 명령보다는 모범을 요청된다. 그렇다면 이에 부응하는 인격을 갖춰야 한다. 성경은 교회 지도자가 갖춰야 할 인격으로 성실 열정적 신앙 겸손 온유 인내 사랑 등을 제시한다.

 다음으로 교회 리더는 영성적이어야 한다. 이는 리더십 또한 성령의 은사 곧 카리스마라는 사실에서 연유한다. 따라서 교회 리더는 리더십을 강화하기 위한 훈련도 받아야겠지만 그보다 우선적인 것은 기도다. 훌륭한 리더가 되려면 기도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

 이와 함께 교회 리더는 일반 사회 리더에게 요구되는 자질 곧 결정력 조직력 비전력 같은 역량도 아울러 갖춰야 한다.
 
 EP-1234 모형도에서 뉴 리더십은 생명유기체 줄기(기둥)의 중심에 위치한다. 뉴 리더십이 기능을 상실하고 정체되면 거의 모든 것이 작동을 멈추게된다. 그만큼 뉴 리더십이 중요하고 그 영향력이 크다는 말이다.

정리=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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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신문 2006.04.07]

[EP-1234] ⑦ EP 3 - 교회 줄기: 제 6 계명 - 뉴 리더십을 발휘한다 (사례)

[EP-1234] ⑦ EP 3 - 교회 줄기: 제 6 계명 - 뉴 리더십을 발휘한다 (사례 - 서울대교구 화곡동본당 차원석 신부)

작은 일도 회장단 회의에서 결정

서울대교구 화곡본동본당 주임 차원석 신부는 회의를 많이 하는 사제다. 차 신부는 본당 회장단 회의(회장ㆍ 부회장ㆍ 총무ㆍ기획분과장ㆍ 남녀총구역장ㆍ 수녀)를 한 달에 두 번은 꼭 한다. 문제가 되는 것을 토론해서 결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현안에 대한 토론보다는 미래 지향적인 것을 의제로 삼아 논의한다. 적어도 두 달 앞서서 생각하자 는 취지에서다.

  중요 사안은 분과장들이 포함된 상임위원회 회의(매달 1회)에 부쳐 결정하고 더 중요한 사안은 사목회 전체회의(매달 1회 소집)에서 결정하지만 웬만한 일들은 회장단 회의에서 결정하고 시행한다. 차 신부는 여기에서도 두 가지 작은 원칙을 갖고 있다. 하나는 본인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생각해도 회장단에서 반대하면 결코 추진하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소해한 일이라도 회장단 회의에서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니까 독단적 이라는 말은 듣지 않는 것 같다 고 차 신부는 말한다.

  차 신부가 이렇게 회의를 통해 모든 일을 결정하는 것은 독단적 이라는 말을 듣기 싫어서가 아니다. 신자들의 솔직한 의견을 존중하고 신자들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특히 회장단과 한달에 한번 정도는 식사 자리를 함께 하면서 친교를 나눈다. 허물없이 흉금을 터놓고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

 또 회의 때는 무엇이든지 용납한다. 격한 소리가 나오더라도 제지하지 않고 격의 없이 진지하게 회의가 이뤄지도록 한다. 속된 말로 빡시게 회의를 한다. 이렇게 하다 보니 때로는 서로 상처를 주고받기도 한다. 차 신부는 이럴 경우에 중재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회의 결과는 반드시 기록으로 남기고 홈페이지에 올려서 신자들이 열람할 수 있도록 한다. 모두에게 공개할 수 없는 내용은 등급을 매겨 등급에 해당하는 신자들이 볼 수 있도록 한다. 이렇게 투명하게 일을 처리함으로써 신자들에게 신뢰감을 깊이 심어주고 관심도와 참여도도 높일 수 있다.

 화곡본동본당은 지난해 10월 서울대교구에서는 처음으로 공동사목을 시행 현재 한 지붕 세 가족(화곡본동 화곡6동 신월1동 본당) 생활을 하고 있다. 물론 공동사목은 교구장 의지에 따른 것이지만 화곡본동이 제일 먼저 공동사목을 시행하게 된 것은 차 신부 나름대로 뜻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이벤트 차 라고 불릴 정도로 기발한 착상을 통해 매주일 성당을 찾는 신자들에게 뭔가 기쁨과 즐거움을 주고자 노력한 차 신부는 어느날 충격을 받았다. 성당에 오면 재미있고 활기차서 좋은데 과연 우리 신부님이 언제 내 이름을 알고 계셨나? 언제 나를 기억하고 손 한번 잡아 주셨느냐? 하는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고객(신자) 만족을 넘어서 고객 감동을! 이란 신조로 지내왔는데 그 소리는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당시 신자가 1만3000명이고 34개 구역에 216개 반이 있었는데 신자들을 다 기억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다른 이유들도 있다. 다른 교구에서는 사제들이 서품 5~6년 차가 되면 본당 주임으로 사목하는데 서울은 여전히 보좌로 한 부분만 담당하고 있는 현실 본당을 신설할 경우 부지 마련과 성전 신축 등 신자들이 져야 할 엄청난 재정 부담 등이 공동사목이라는 대안을 생각하게 했고 이것이 교구 방침과 맞아떨어지면서 일차적으로 공동사목을 시행하게 된 것이다. 물론 현재 시행 중인 공동사목이 완전하다는 결코 아니다.

 그러나 차 신부의 이런 사목 방식은 교회 활성화를 위해 요청되는 뉴 리더십과 맥을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차 신부가 밝히는 사목 신조(?) 몇 가지를 소개한다.

 -고객 만족을 넘어서 고객 감동을!
 -밥값(?)을 하자.
 -두 달 전에 미리 생각하자.
 -(신자들에게) 믿고 맡기자.
 -재탕하지 않는다.(고민을 많이 해서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
 -(본당 신부들과 수녀들이) 우르르 몰려 다니지 않는다.

이창훈 기자 changhl [at] pbc [dot] co [dot] kr
[평화신문 2006.04.07]

[EP-1234] ⑧ EP 4 - 교회 가지: 제 7 계명 - 수요 중심으로 복음을 증거한다

[EP-1234] ⑧ EP 4 - 교회 가지: 제 7 계명 - 수요 중심으로 복음을 증거한다

EP-1234에서 EP(복음적 사목)-4 는 교회 유기체의 가지 또는 열매에 해당하는 4가지 인자를 말한다.

 교회 사목에 활력을 주는 원천인 성령의 무한한 은사(EP-1)는 교회 유기체의 뿌리에 해당하는 전 신자 기도(영성)와 은사계발(EP-2)을 통해 드러난다. 이렇게 드러난 기도(영성)와 은사들은 소공동체 기능적 조직 뉴리더십(EP-3)이라는 세가지 조직 요소에 의해 수렴 통합 조정돼 사목 일선에 분배되고 가지를 치고 열매를 맺게 된다. 그 가지 또는 열매에 해당하는 네가지(EP-4)가 바로 복음증거(Martyria) 전례(Liturgia) 친교(Koinonia) 섬김(Diakonia)이다.

 이 네가지를 21세기 사회 문화적 상황을 고려해 다른 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수요 중심의 복음선포 은총의 축제인 전례 고감도 사랑의 친교 토털 서비스를 통한 섬김이다. 신자들은 각자 받은 은사에 따라 4가지 사명을 수행하는 주체로 파견된다. 각자 은사에 따라서 선교 일선이나 전례 친교 봉사에로 부르심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를 총괄해서 지휘하는 것은 줄기에 해당하는 소공동체-본당 조직-뉴리더십이다.

 EP-1234의 제7계명은 수요중심의 복음증거다. 복음증거가 교회 사명의 핵심이라는 것은 신자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복음증거를 나타내는 라틴어 마르티리아(Martyria)는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고난을 견디어내고 기꺼이 순교하기까지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만큼 뜨거운 열정으로 복음을 선포하고 증거하라는 것이다.
 
 ▨복음증거란

 복음증거 또는 복음선포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교황 바오로 6세가 발표한 「현대의 복음선교」는 교회의 복음증거 또는 복음선포의 의미를 잘 표현하고 있다. 교회로서 복음 선교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보다 넓은 지역에서 또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선교하는 것만이 아니고 하느님 말씀과 구원 계획에 상반되는 인간의 판단 기준 가치관 관심의 초점 사상의 동향 사상의 원천 생활 양식 등에 복음의 힘으로 영향을 미쳐 그것들을 역전시키고 바로잡는 데 있다고 하겠다 (19항).

 이렇게 볼 때 복음선포는 단지 믿지 않은 이들을 교회로 인도해 세례를 받고 하느님 자녀로 다시 태어나도록 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복음선포 또는 복음증거는 신자들의 삶 자체가 복음적으로 바뀌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수요자 중심 복음선포

 지금까지 교회의 복음선포 활동은 대체로 선포자 중심이었다. 우리가 이렇게 좋은 것을 갖고 있으니 와서 보라 는 식이었다. 그러나 종교 시장 으로 표현되는 21세기 선교 상황은 수요자 중심 복음선교로 전환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수요자 중심 복음선교란 복음의 수요자 곧 미(비)신자들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고 그들 처지와 눈높이에 맞춰 다가가 복음을 선포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수용자들의 필요와 요청에 부응해 때로는 해방자로 때로는 치유자로 때로는 착한 목자로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해야 한다.

 수요자 중심의 복음선포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갖춰야 할 요건들이 있다.

 첫째는 강생의 영성이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어 길 잃은 이들을 찾아나셨듯이 강생의 영성은 왜 오라 고 하지 않고 가야 하는지 왜 그들의 입장이 돼야 하는지 를 먼저 생각하고 실천하는 영성이다.

 둘째는 시대 징표를 읽을 줄 아는 눈 과 백성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귀 가 있어야 한다. 시대 징표를 헤아릴 줄 모르고 백성의 소리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복음은 더 이상 기쁜 소식이 아니라 공허한 소리가 되거나 오히려 신음하는 이들의 어깨에 무거운 짐을 올려놓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 하지 않는 (마태 23 4) 꼴이 될 수도 있다.

 셋째는 실질적 대안 제시 능력이다. 우리 인생의 온갖 물음에 대한 궁극적 해답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나 믿지 않는 이들이 그리스도를 궁극적 해답으로 믿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중재하고 도와주는 것은 바로 교회의 몫이다. 복음선포자의 몫인 것이다.
 
 ▨수요자 중심 복음선포의 방법

 수요자 중심 복음선포가 왜 필요하고 또 이를 위해 어떤 준비를 갖춰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수요자들이 처해 있는 처지와 환경 등을 고려한 다양한 복음선포 방법들이 동원돼야 한다. 그래야만 복음선포가 효과를 낼 수 있다. 이와 관련한 방법들은 기존의 다양한 선교방법들이나 미래사목연구소장 차동엽 신부가 최근 펴낸 「선교훈련 시그마 Σ코스」 등을 활용할 수 있다.  

정리=이창훈 기자
[평화신문 2006.05.08]

[EP-1234] ⑨ EP 4 - 교회 가지: 제 8 계명 - 은총의 축제로 전례를 행한다

[EP-1234] ⑨ EP 4 - 교회 가지: 제 8 계명 - 은총의 축제로 전례를 행한다

EP-1234에서 EP(복음적 사목 Evangelical Pastoral)-4 곧 교회 유기체의 가지 또는 열매에 해당하는 두번째는 전례다. 전례는 하느님 현존을 체험하는 것이기에 신자들에게 기쁨을 주고 그들 삶을 변화시키며 나아가 다른 이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끄는 은총의 축제 여야 한다. 전례가 은총어린 축제로 신자들에게 다가가고 신자들을 감동시킨다면 지루한 전례 때문에 신자들이 특히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은총의 축제인 전례

 은총의 축제로서 전례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 전례에 성령의 감도가 깃들어 역동성이 살아나도록 해야 한다. 전례가 역동적이 될 때 신자들은 전례에서 살아 계신 하느님을 체험하고 감동받게 된다.

 둘째 전례의 본질을 드러내야 한다. 특히 미사 전례의 경우 미사의 본질을 분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말하자면 은총의 축제 라는 점에 치우친 나머지 미사 전례의 본질을 해칠 정도로 음악이나 조명 그밖의 인위적 기법에 지나치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셋째 미사 전례가 신자들에게 재충전 시간 이 되도록 해야 한다. 곧 안식일의 의미가 미사 전례에서 살아나야 한다는 것이다. 신자들이 하느님 품에 안겨 전인적으로 안식을 취하고 성령의 생기로 충만한 전례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전례가 은총의 축제가 되려면

 미사 전례가 전례가 은총의 축제가 되려면 미사 고유의 정신을 살리면서 축제 체험 감동을 좋아하는 오늘날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주말 연속극처럼 기다려지는 미사 눈물과 웃음이 있는 미사 성령께서 역동적으로 이끌어가는 미사가 돼야 한다. 이렇게 전례를 은총의 축제로 거행하려면 다음 몇 가지 요건들을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첫째 하느님께 초점을 둬야 한다. 신자들을 즐겁게 하려는 오락적 요소로 미사의 초점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둘째 전례의 형식과 자유로움 간의 균형을 살려야 한다. 전례에는 지켜야 하는 상징과 의식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치게 딱딱해서는 곤란하다. 지나치게 전통과 의식만 강조하거나 너무 영적인 것으로만 이해해서도 안 된다. 형식에 생기를 불어넣는 자유로움도 필요하다.

 셋째 신자들이 동참하는 전례가 돼야 한다. 보는 미사 구경하는 미사 단지 자리를 지키는 미사가 아니라 함께 참여하는 미사가 돼야 한다. 지켜야 할 형식과 전통에 충실하면서도 참신한 발상으로 신자들의 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

 넷째 복음을 살리는 강론이 돼야 한다. 신자들은 복음에 충실한 강론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실제적 문제에 빛을 던져주는 강론을 바란다. 질책과 단죄보다는 복음을 통해 용기와 위로를 주고 복음을 현실에 쉽게 적용할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내용이어야 한다.

 다섯째 성가를 통해 신자들의 영적 감성을 고취시킬 수 있어야 한다. 성가가 살아 있는 곳에는 미사 전례가 생동감 넘치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정리=이창훈 기자
[평화신문 2006.05.21]

[EP-1234] ⑨ EP 4 - 교회 가지: 제 8 계명 - 은총의 축제로 전례를 행한다 (사례)

[EP-1234] ⑨ EP 4 - 교회 가지: 제 8 계명 - 은총의 축제로 전례를 행한다 (사례)

서울 반포4동본당 주일 밤 10시 미사

 ▶반포4동성당 주일 밤 10시 미사에서 음악 봉사를 하는 성가대와 연주자들. 현악기 몇대가 전례 분위기를 바꿔놓는다.

 부활 제3주일인 지난 4월30일 밤 9시20분 서울 반포4동성당. 아래층 한쪽에서 성가대 노래 소리와 악기 소리가 간간이 들리는 가운데 몇몇 봉사자들이 성당문 입구에 작은 봉헌초들을 갖다 놓았다.
 
 ▶9 시30분쯤 되자 성가연습을 마친 성가대원들이 성당으로 올라오더니 초를 하나씩 들고서는 성당 가운데 통로를 통해 제대 앞으로 가서 제단 중앙에 놓고는 성가대석으로 향했다. 미사에 오는 신자들도 저마다 초를 하나씩 받아들고서는 제단에 봉헌한 후 자리에 가서 미사 준비를 했다. 미사가 시작할 때쯤 되자 수백개의 봉헌 초가 제단 중앙에서 불을 밝히고 있었다.

 본당에서는 주일 밤 10시 미사에 참례하는 신자들을 위해 봉헌초를 마련한다. 초를 봉헌하는 것은 이 주일미사가 다른 누구가 아닌 나를 위한 미사라는 것. 구경하듯이 미사에 참석해 자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신자 공동체와 함께 미사에 참여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초를 봉헌한 후 자리에 앉으면 왠지 더욱 경건해지는 느낌이다.
 
 ▶밤10시. 미사가 시작됐다. 이 미사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강귀석 주임신부가 집전한다. 미사가 시작되자 열려 있던 성당 문들이 조용히 닫혔다. 늦게 온 신자들은 뒤에 서 있다가 본당 수녀와 봉사자들의 안내로 전례에 방해가 되지 않게 조용조용 빈 자리를 찾아갔다.

 시작 성가를 비롯한 미사 성가곡은 가톨릭성가와 복음성가(생활성가)가 섞여 있었다. 성가대가 주도를 하지만 신자들이 함께 부를 수 있는 곡들로 선곡됐다. 오르간 외에도 바이올린 2대와 첼로가 반주를 해서 그런지 성가 분위기가 훨씬 살아 있었다. 화답송으로는 떼제 성가 찬미하여라 를 불렀다. 떼제 성가 특유의 단순하고 반복되는 가사와 가락은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르면서 그 뜻을 새길 수 있도록 도와줬다.

 미사가 거행되는 동안 성당 안은 조용하고 경건하면서도 찬미하는 분위기가 살아 있었다. 전례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조용 움직이며 안내하는 봉사자들 노래가 지루하고 단조롭지 않도록 생활성가와 가톨릭성가를 적절히 섞어 선곡하고 성가를 주도적으로 끌어가는 성가대와 악기들의 반주 등이 그런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자아내고 있었다.

 
 미사 강론. 성당 안은 빈 자리가 거의 없을 정도로 500명이 넘는 신자들이 있었지만 10분 남짓한 강론 시간에 주보를 읽는 등 해찰하는 신자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생활에서 부딪치는 사례를 복음 말씀과 연결짓는 강론 내용을 모두가 경청하는 모습이었다.

 ▶신자들의 기도(보편지향기도) 시간. 모두들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바이올
린과 첼로 파이프 오르간의 연주소리가 은은하게 울려퍼지는 가운데 약 4분 정도 침묵 중에 기도를 바쳤다.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시간. 주례 사제는 오늘 평화의 인사는 수고했어요 괜찮아요 로 합니다 하면서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에 따라 신자들도 서로 수고했어요 라고 인사하고 괜찮아요 로 화답했다. 웃음과 함께 기쁨이 묻어나는 인사였다.

 미사 전례에서 주례 사제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미사 전례 형식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신자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됐다.
 

 ▶ 영성체 시간에는 성체성가를 함께 부르고 나서 성가대가 특송으로 찬미했다. 성가대 특송은 신자들에게 음악과 함께 침묵 중에 기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10시 정각에 시작한 미사는 11시 5분쯤에 끝났다. 미사 후 성가대는 성당 문을 나서는 신자들을 위해 민요를 선물했다. 남아 있던 신자들은 박수로 감사와 격려 표시를 했다.

 미사를 마치고 성당 문을 나섰다. 서늘한 밤공기 때문일까. 상큼하다는 느낌과 함께 여운이 남았다. 좋은 영화나 연주회를 감상하고 나왔을 때와 같은 그런 여운이.

  반포4동성당의 주일 밤 10시 미사는 요란하지 않고 깔끔했다.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미사에 집중하게 해주었다. 반포4동성당 주일 밤 10시 미사에 가보세요. 너무 좋아요. 시간이 될 때마다 이 성당 주일 밤 10시 미사에 참례한다며 기자에게 가볼 것을 권한 인근 본당 신자 부부의 말이 떠오르면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반포4동성당에서는 모든 미사를 이렇게 거행하는 게 아니다. 주일 밤 10시 미사는 이른바 특화 미사 다. 분위기를 바꾸고 변화를 준다면 신자들에게도 좋지 않을까 해서 강귀석 주임신부가 시작했다.

  물론 여러 준비가 필요합니다. 성가와 음악이 중요하기 때문에 따로 마련해야 하고 성가대에도 투자를 해야 합니다. 강론 준비를 비롯해서 그날 전례나 신자들의 분위기에 맞는 적절한 멘트를 통해 변화를 주려는 노력도 기울여야 합니다.

 특화된 성가를 위해서 반포4동본당은 가톨릭성가와 생활성가 복음성가 등에서 발췌한 곡으로 별도 성가책을 만들어 성당에 비치했다. 또 주일 밤 10시 미사를 전담할 성가대도 결성했고 음악적 효과를 살리고자 바이올린과 첼로 주자 등에게 유급으로 봉사토록 했다. 이들은 신자들과 함께 부르는 성가 외에 보편지향기도 시간과 영성체 후에 묵상을 도와줄 음악을 연주한다.

  오르간과 함께 이들 현악기 몇대는 성가대의 부족함을 충분히 메워줍니다.
악기 몇 대가 발휘하는 위력이 대단히 큽니다.

 전임지에서도 특화 미사를 하곤 했다는 강 신부는 주일 밤 미사 외에도 매주 화요일 밤 9시 미사와 금요일 오전 10시 미사도 특화 미사 로 집전하며 금요일에는 강론 시간을 이용해서 성서 강의도 한다.

이창훈 기자 changhl [at] pbc [dot] co [dot] kr
[평화신문 2006.05.21]

[EP-1234] ⑩ EP 4 - 교회 가지: 제 9 계명 - 고감도 사랑의 친교를 이룬다

[EP-1234] ⑩ EP 4 - 교회 가지: 제 9 계명 - 고감도 사랑의 친교를 이룬다

▨친교(koinonia)의 사명

 친교는 교회가 개인주의, 형식주의, 수직적 위계구조 등의 모습에서 벗어나 신자들 간 온전한 신뢰와 사랑, 인격적 만남으로 삼위일체의 삶을 구현하는 공동체라는 점에서 교회의 본질적 존재방식이자 사명이다.

  친교는 생활과 신앙 차원에서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가진 것을 함께 나눔으로써 일치를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친교가 교회의 기본 사명에 속하는 이유는 교회가 본질적으로 한분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살아가는 가족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또한 친교는 삼위일체 신앙의 정수다. 삼위일체의 본질은 사랑이며, 따라서 사랑의 친교는 바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관련된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5).
 
 ▨여러 차원의 친교

  친교는 여러 차원에서 요청된다. 첫째는 신자들 사이의 내적 친교다. 교회 공동체의 대형화와 익명화 현상은 '소외의 보편화' 현상을 낳고 있는데 이는 친교의 필요성을 더욱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교회는 신자들이 열린 대화를 통해 서로 인격을 나눌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해주거나 중재하고 소공동체 활성화를 통해 인격적 나눔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는 종파와 종교를 달리 하는 이들과 외적 친교다. 개신교 신자들, 타종교 신자들과 대화를 통해 친교를 도모하고, 비신자들과도 사귐과 나눔을 통해 친교를 증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는 연대적 사랑의 친교다. 특별히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사랑, 원수를 향한 사랑으로 이어지는 연대적 사랑은 친교의 영성이 지향하는 바다. 이는 친교가 궁극적으로는 섬김과 통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깨우쳐 주는 대목이다.
 
 ▨고감도 사랑의 친교

  그동안 가톨릭 신자들은 마음에 사랑을 품고 있어도 드러내지 않는 것을 겸덕으로 여겨왔다. 그래서 개신교 신자들에 비해 덜 친절했다. 그러나 오늘날은 '마음만'으로는 통하지 않는 시대다. 드러내야 하고 표현해야 한다. 친절하고 따뜻한 표정, 말씨와 자세 등으로 서로를 안아줄 수 있어야 한다. 공동체를 위해 자기 욕심을 버리고 겸손하며 남을 이해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친교의 핵심은 사랑이다. 사랑이 없는 행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진정으로 하느님의 뜻을 이룰 수 없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행위 바탕에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 이 사랑은 타인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사람의 다름과 잘못까지도 받아들인다. 사랑은 또한 혼자만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전해야 한다. 우리는 하느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 사랑을 주변에 옮겨야 한다.
 
 ▨고감도 사랑과 소공동체

  고감도 사랑은 규모가 작을수록 수월해진다. 공소 공동체는 규모나 시설에서는 열악한 상황이지만 사랑의 나눔과 친교 공동체로서는 모범이 될 수 있다. 현재 농촌을 제외한 대부분의 도시 본당은 신자가 2000명이 넘고 대도시 본당 신자는 5000명에 가깝다. 교회가 10여년 전부터 소공동체 운동을 펼치고 있는 것도 이렇게 대형화한 본당에서는 고감도 사랑의 공동체를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고감도 사랑을 나누는 소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적절한 규모가 중요하다. 적절한 규모의 공동체를 구분하는 식별 기준은 다음과 같다.

  첫째, 모든 이에게 공통적으로 있는 인간성이 발견될 수 있을 만큼의 크기. 곧 고통과 두려움과 즐거움을 서로 나눌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둘째, 각자가 하나의 인격으로 받아들여질 만큼 개별성이 보장돼야 한다. 셋째, 최대한도의 인간적 가까움, 안온함, 공동 연대감 등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작은 규모여야 한다. 넷째, 공동체 성원이 자신의 공동 책임성을 실천할 수 있는 만큼의 규모여야 한다. 다섯째, 개별 공동체 성원이 공동체 전체의 운영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 만큼의 크기여야 한다.

 주의할 것은 끼리끼리 모임을 구성하지 말아야 한다.

정리=이창훈 기자
[평화신문 2006.06.02]

[EP-1234] ⑩ EP 4 - 교회 가지: 제 9 계명 - 고감도 사랑의 친교를 이룬다 (사례)

[EP-1234] ⑩ EP 4 - 교회 가지: 제 9 계명 - 고감도 사랑의 친교를 이룬다 (사례)

의정부교구 구리본당 친교 모범사례

▲ 구리본당은 소공동체를 중심으로 복음적 친교 공동체를 가꿔가고 있다. 사진은 구리본당 15구역 구역 공동체 신자들이 불우이웃을 돕기 위해 자체적으로 마련한 자선 바자. 구리본당 제공.

의 정부교구 구리본당(주임 서춘배 신부)은 부활이나 성탄 같은 대축일이나 명절 때 그리고 새 사제 탄생과 같이 본당에 경사가 있는 날이면 성당 인근 주민들에게 부활 달걀 바구니나 떡 같은 작은 선물을 돌린다. 성당의 축제를 신자들만 축제로 지내지 않고 그 기쁨을 이웃 주민들과 나눈다는 취지에서다. 평소 성당 신자들로 불편함도 적지 않았을 텐데 참고 지내온 주민들에게 대한 고마움의 표시도 들어 있다.

 의정부교구 1지구 지구장좌인 구리본당은 이주노동자사목도 활발하다. 1년 6개월 전 교구가 출범하면서 이주노동자사목을 본격화했고 지난해 말부터는 본당 부주임신부 1명이 아예 이주노동자사목을 전담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쓰라며 할머니들은 쌈짓돈을 모아 오고 신자들도 틈나는 대로 달려와 사무실 수리와 차량 지원 등 봉사활동을 자원해서 한다. 얼마 전에는 방글라데시에서 온 젊은 새댁이 본당 교우 집을 친정으로 삼아 한달 이상 출산 및 산후 조리를 하고 간 적이 있다. 집 주인과 이웃 교우들이 정성껏 산모와 아이를 돌봐주었음은 물론이다.

 본당에서는 지역 어르신들을 위해 노인대학을 운영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비신자가 10여명 있었으나 이제 모두가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됐다. 본당 노인대학 어르신들은 다른 것보다도 성경 말씀을 더 듣고 싶어한다고 노인대학 관계자는 전한다. 주방에서 봉사하는 아주머니 가운데는 독실한 불교 신자도 있다.
 

 ▨소공동체를 통한 친교

 소공동체가 활발한 구리본당은 별도 예비신자 교리반이 없다. 예비신자들은 매주 반모임(소공동체 모임)에서 「함께 하는 여정」이나 반모임지를 가지고 공부를 한다. 소공동체 모임 시간이 곧 예비신자 교리 시간인 셈이다. 물론 한달에 한번은 본당에서 보충 교육을 받는다. 이렇게 해서 6개월이 지나면 세례를 받는다. 이렇게 하니까 새 영세자 가운데 쉬는 신자가 없다. 소공동체 모임 자체도 더욱 진지해진다. 예비신자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되고 이런 것들이 소공동체 활성화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한다.

 이런 식의 소공동체 모임은 자연 신자들간 친교와 나눔을 더욱 두텁게 해준다. 소공동체를 통해 신자들은 이웃의 아픔과 슬픔 기쁨을 함께 하며 멀리 있는 혈연보다 더욱 가까운 가족적 분위기에서 살아간다. 불이 나서 삶의 보금자리를 몽땅 잃어버렸지만 본당 신자들의 위로와 격려 물질적 도움과 기도 덕분에 더 큰 힘을 얻어 살아가는 신자 가정 가장이 세상을 떠나자 함께 했던 구역 형제들이 서로 힘을 모아 자녀를 뒷바라지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 교우들의 극진한 사랑과 보살핌 속에 아내를 먼저 하늘 나라에 보내고 이제는 사정상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하지만 교우들 사랑 때문에 이사를 가지 못하고 있는 형제…. 구리본당이 2년 전부터 매년 펴내고 있는 「소공동체에 관한 교우들의 보고서」에는 이런 사연들이 가득하다.

 
 ▨친교를 위한 다른 배려들

 소공동체를 통한 친교는 기도를 통한 내적 친교와도 연결된다. 이런 내적 친교를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 기도지향판과 미사지향판이다. 성당 입구 한쪽에는 신자들이 갖가지 사연과 함께 기도 지향을 써붙인 기도지향판이 있다. 이 기도지향판을 보면서 신자들은 서로 기도를 해주고 이를 통해 하나가 된다.

 미사지향판은 기도지향판과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미사지향을 위해 보통 미사예물을 바치게 되는데 신자들은 미사지향으로 봉헌할 예물을 가난한 이들에게 희사하고 미사지향판에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라고 써놓으면 사제는 그 지향대로 미사를 봉헌해준다. 이를 통해 영적 기도와 물질적 나눔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본당 주일학교 운영 또한 친교를 지향하고 있다. 본당은 학년별로 주일학교 반을 편성하는 것이 아니라 본당 전체를 8개 공동체로 나눠 중1부터 고2까지 한반으로 편성해 나눔 중심으로 주일학교를 운영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학생들은 관계의 폭도 넓히고 핵가족 중심 가정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공동체 정신도 체험하게 된다.
 
 ▨말씀을 통한 복음적 친교를 향한 여정

 구리본당은 소공동체를 중심으로 사랑의 친교 공동체를 가꿔가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부족한 점도 많다. 다른 본당에 비해 소공동체가 활발하지만 아직도 소공동체 모임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구역 반들도 있다. 신앙 안에서 말씀을 통해 복음적 친교를 나누는 공동체로 성숙하려면 앞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주임신부는 말한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신자들이 한 가족처럼 가깝게 지내게 됐다는 사실이다. 박용숙(아녜스) 여성총구역장은 아픈 사람이 있으면 함께 기도해주고 좋은 일이 있으면 함께 기뻐하고 슬픈 일이 생기면 서로 위로하는 모습을 보면 피를 나눈 혈육보다 교우들이 더 친밀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 같다 고 말한다. 복음적 친교를 향한 여정을 이미 걷고 있는 것이다.

이창훈 기자 changhl [at] pbc [dot] co [dot] kr
[평화신문 2006.06.02]

[EP-1234] ⑪ EP 4 - 교회 가지: 제10계명 - 토털 서비스로 섬긴다

[EP-1234] ⑪ EP 4 - 교회 가지: 제10계명 - 토털 서비스로 섬긴다

'EP(Evangelical Pastoral)-1234'에서 가지 또는 열매에 해당하는 네가지 중 마지막은 섬김(Diakonia)이다. 디아코니아는 원래 '식탁에서 시중 드는 것'을 가리키던 용어였으나 성경적 의미로는 남을 위해 봉사하고 섬기며 헌신하는 삶을 나타낸다. 이웃을 위한 봉사, 특히 보잘것없고 소외된 이웃을 위한 봉사는 소외된 이웃들에게 삶에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줄 뿐 아니라 주변의 다른 이들에게도 기쁨과 감동을 안겨준다. 그리고 이는 궁극적으로 교회 발전에도 동력이 된다. 전통적으로 각 본당 연령회(또는 애령회) 상가 봉사활동이 선교에도 큰 힘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해 준다.

 
 ▨섬김의 사명

  섬김은 세상을 향한 교회의 사명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통치자라는 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르 10, 42-43). 그리고 최후 만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심으로써 이런 섬김의 모범을 보여주셨다. 섬김은 사랑의 구체적 표현이며,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알게 해주는 증표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 34-35).

  이처럼 그리스도의 삶에서 유래하는 교회의 섬김은 자기 울타리를 넘어서는 이웃 사랑의 실천 방법이다. 섬김은 단순한 양적 선교 전략의 차원을 넘어서는 교회의 본질적 사명이요 존재 이유이다. 이는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 현대인들 특히 가난하고 고통받는 모든 사람의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제자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고뇌"(사목헌장 1항) 라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가르침에서 잘 드러난다.

 섬김 곧 봉사를 통해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인간의 수호자'로서 그리스도교의 매력과 향기를 발산해 비그리스도인들의 세상에서 오아시스가 된다. 그럼으로써 교회는 세상 구원을 위한 성사가 되는 것이다.
 
 ▨토털 서비스

  현대 사회에서 섬김의 사명을 올바로 구현하는 길이 바로 '토털 서비스'(total service), 곧 완전한 봉사다. 서비스 산업의 발달로 토털 서비스에 익숙해져 있는 현대인들은 종교 영역에서도 영적 서비스뿐 아니라 다양하고 종합적 서비스를 받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톨릭에서는 전통적으로 세례ㆍ견진ㆍ고해ㆍ혼인ㆍ병자성사를 통해 전 생애에 걸친 영적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이런 영적 서비스 외에 현실 삶에 필요한 다른 부가적 서비스들도 요구하고 있다. 최근 법률 상담, 자녀교육 상담, 수지침 봉사, 영화 상영, 음악회 개최 등과 같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본당들이 늘고 있는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

 그러나 토털 서비스 차원의 섬김이 제대로 구현되려면 유념해야 할 점들이 있다. 첫째, 서비스를 제공받는 사람 입장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서비스 전략의 다양화와 다변화가 필요하다. 둘째, 평생 동반 서비스 체계를 구축할 수 있어야 한다. 세례와 첫영성체부터 병자성사까지 이어지는 성사적 봉사가 모든 이들에게 제공되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 셋째, 각 지역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사회봉사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맞벌이 부부가 많은 곳에는 탁아소가, 노인들이 많은 지역에는 노인대학이, 가난한 무의탁자가 많은 곳에는 무료급식소가 필요한 것이다. 넷째, 생명ㆍ문화ㆍ환경 운동을 주도적으로 전개할 필요가 있다.

정리=이창훈 기자
[평화신문 2006.06.19]

[EP-1234] ⑪ EP 4 - 교회 가지: 제10계명 - 토털 서비스로 섬긴다 (사례)

[EP-1234] ⑪ EP 4 - 교회 가지: 제10계명 - 토털 서비스로 섬긴다 (사례 - 수원교구 상현동본당 봉사활동)

▲ 상현동본당은 구역별로 인보마을, 성모영보자애원, 천상의 집 등 지역 사회 불우한 이웃들을 찾아 봉사활동을 함으로써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하느님 나라의 기쁨도 함께 체험하고 있다

수 원교구 상현동본당(주임 김동원 신부) 4지역 금호5차 1구역 여성 신자들은 매주 월요일 아침이면 용인에 있는 성모영보자애원으로 간다. 그곳 요양원 환우들에게 점심을 차려주기 위해서다. 차로 50분 정도 달려 요양원에 도착해 담당 수녀와 조리사 2명을 도와 식사 준비와 배식을 하고 설거지까지 하면 오후 2~3시가 돼야 끝난다.

 보통 4~5명이 한조가 돼 200명 가량 되는 환우들에게 식사 봉사를 하다 보면 한나절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고 피곤하지만 봉사를 통해 얻는 게 더 많다고 최원숙(클라라, 53) 구역장은 말한다.

 "시설에 계시는 분들이 저희들 봉사에 정말로 고마워하시는 것을 보면서 작은 나눔에 큰 보람을 느낍니다. 또 그분들 모습을 통해서 저희들 일상 생활에서 감사할 일이 너무 많다는 것도 깨닫게 되고요."

 지난 4월부터 여성 신자들의 봉사활동이 호응을 얻으면서 그동안 시간을 내지 못했던 구역 남성 신자들도 이달부터 매달 한번씩 봉사활동에 나서기로 했다.

  이 구역뿐 아니다. 상현동본당 7개 지역 36개 구역 거의 대부분이 봉사 장소를 정해 매주 또는 매월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한다. 아직 활동을 하지 않고 있는 일부 구역들도 하반기부터는 실시할 계획이다. 현재 신자들이 봉사하고 있는 사회복지기관이나 시설들은 성당 인근 무의탁 노인들을 위한 '천상의 집'을 비롯해 수원 시내에 있는 우만종합사회복지관, 용인에 있는 인보마을과 성모영보자애원 등 10여곳에 이른다.

 이같은 봉사활동은 '가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여라'는 올해 본당 사목목표에 따라, 지역 사회 봉사활동을 통해 하느님 나라 건설에 참여하고 또 신자들 자신이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체험하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지난 3월부터 본격 시행하고 있다.

 물론 봉사활동을 갑자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지난 2003년 1월 수지본당에서 분가, 신설된 이후 상현동본당 신자들은 천막 성당에서 생활하면서도 뜻있는 신자들끼리 또는 구역별로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해왔다. 봉사가 때로는 귀찮고 힘들기도 하지만 봉사를 하면서 오히려 더 많은 도움을 얻고 보람을 느끼게 되고, 구역이 활성화되는 등 봉사활동을 통한 긍정적 체험들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본당에서는 올해 사목목표에 맞춰 지역 사회 봉사를 전 신자 대상으로 확산시키기로 하고 구역별 봉사활동을 시행하게 된 것이다. 본당은 신자들의 봉사활동을 격려하고자 올해 구역당 봉사활동 지원비를 책정했고, 봉사활동 체험을 나누고자 구역별로 활동 내용과 활동 체험 및 소감 등을 기록으로 남기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까지는 100여명에 그쳤던 봉사 인원이 올해에는 500명 선에 이를 정도로 봉사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상현동본당은 이런 정기 봉사활동 외에도 사회복지분과 산하 사랑의 나눔부를 통해 신자들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가진 것을 나눠 가난한 이웃에게 전하도록 하고 있으며, 환자간호부와 상담부를 통해 호스피스 봉사 활동과 상담 봉사활동도 펴고 있다.

 한국 천주교회 창설자 중 한사람으로 유교 문화와 사상적 기초에서 복음을 받아들인 직암(稷菴)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 1751~1792) 선생 기념 성당인 상현동본당은 직암 선생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지난 몇해 동안 사목목표를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로 설정해왔다.

 본당 신설 첫해인 2003년에는 본당 기본 조직을 갖춘 데 이어 2004년에는 '수신의 해'로 신자 영적 쇄신을 위해, 지난해는 '제가의 해'로 가정 성화를 위해 노력을 집중했다. 그리고 올해는 '치국의 해'로, 하느님 나라를 위한 노력에 힘을 쏟고 있다.

 김동원 주임신부는 "치국의 해를 맞아 선교활동을 통해 하느님 나라 선포에 앞장서며, 가난하고 불우한 지역 사회 형제들을 찾아 봉사하는 활동을 통해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세우고자 노력하고 있다"면서 지역 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창훈 기자 changhl [at] pbc [dot] co [dot] kr
[평화신문 2006.06.19]

[EP-1234] 종합: 모범 본당의 공통 요소

[EP-1234] 종합: 모범 본당의 공통 요소

한 인자라도 잘 이뤄지면 조직 유기적 기능

EP-1234와 관련된 본당 사례를 취재하면서 사례로 제시된 본당들에는 특별히 두 가지 공통되는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 어느 한 측면이 활발한 본당은 다른 측면들도 대체로 활발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은사계발이 비교적 잘 이뤄지는 본당은 소공동체가 활발하고 본당 조직도 유기적 기능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창원 가음동본당, 안양 매곡본당). 또 소공동체가 활발한 본당은 친교나 봉사, 복음선포 활동도 상대적으로 더 활발한 모습이었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차동엽 신부는 "EP-1234가 지닌 통전적 전망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 말하자면 본당 활성화를 위한 열가지 인자가 개별적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음을 보여주는 표지라는 것이다.

 둘째, 본당 활성화에는 사제, 특히 주임사제가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 점은 기자들이 본당을 취재하면서 흔히 느끼고 많은 신자들도 공감하는 부분이지만, EP-1234 취재 과정에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EP-1234에서는 이를 본당 활성화 제6계명인 리더십과 관련지어 풀어낸다.

 성령의 활동에 감화되고(토양) 기도와 은사계발(뿌리)을 통해 드러난 신자들의 은사가 복음선포와 예배(전례), 친교와 봉사라는 가지를 거쳐 열매를 맺으려면 줄기를 통과해야 한다. 신자들이 받은 다양한 은사는 줄기를 통하지 않고서는 결코 열매를 맺지 못한다. 이 줄기를 이루는 것이 소공동체와 조직, 그리고 리더십인데, 리더십이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소공동체가 세포조직으로서 기능을 원활히 하고 조직이 유기적 기능 조직으로 활동을 채비를 갖췄다 하더라도 소용이 없다. 그러나 리더십이 제대로 발휘된다면 소동체나 기능적 조직이 조금 미약하더라도 얼마든지 강화될 수 있다.

 차 신부는 이와 관련 "EP-1234의 열가지 활성화 인자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지만 여섯번째인 리더십이 사실상 다른 9가지 인자를 활성화하는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말했다. 리더십이 살아날 경우 나머지 전체가 살아난다는 것이다.

  어느 사제도 자신이 책임진 본당 공동체가 활기를 잃어버리기를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문제는 방법이다. 뉴 리더십에 부합하지 않는 방법으로 리더십을 발휘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뉴 리더십이 기능을 상실하고 정체되면 거의 모든 것이 작동을 멈추게 된다. 그만큼 영향력이 크다는 말이다.

이창훈 기자
[평화신문 2006.06.23]

[EP-1234] 종합: 어디에나 열려있는 EP-1234

[EP-1234] 종합: 어디에나 열려있는 EP-1234

EP-1234, 교회 활성화 비전 제시

▲ EP-1234 곧 본당 활성화 십계명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어느 한가지 인자가 활성화하면 다른 인자들도 활성화한다. 사진은 서울 반포4동 주일 밤10시 미사에 참례하고 있는 장면

EP-1234, 곧 복음적 사목-십계명은 닫혀 있는 틀이 아니라 열려 있는 틀이다. 다시 말하자면 본당 활성화 또는 성공적 교회 모델로 꼽을 수 있는 어떠한 프로그램도 'EP-1234'의 틀에 다 넣을 수 있다는 말이다. EP-1234를 제시한 차동엽(미래사목연구소장) 신부는 "EP-1234는 본당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모아 놓은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법들에 들어 있는 원리들을 뽑아낸 것이기 때문에 이 열가지 활성화 인자에 속하지 않는 활성화 방안이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EP-1234는 복음적 사목 비전(EP)과 동력원(1), 영적 인프라(2), 조직(3) 및 사명(4)을 통전적, 통합적으로 아우른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동력원(1)은 생명유기체의 토양에 해당하는 성령, 영적 인프라(2)는 뿌리에 해당하는 기도(영성)과 전신자 은사 계발, 조직(3)은 줄기에 해당하는 소공동체와 유기적 기능조직과 리더십, 그리고 사명(4)은 가지 및 열매에 해당하는 수요 중심의 복음선포와 은총의 축제인 전례, 고감도 사랑의 친교, 완전한 봉사(total service)를 말한다.

 그러나 EP-1234가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전제돼야 하고 또 지향해야 할 측면들이 있다. 이를 도외시할 때 EP-1234는 기능을 상실할 뿐 아니라 그것을 EP-1234라고 부를 수도 없다. 그 측면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첫째, EP-1234의 비전은 예수님의 복음적 사목 비전 및 그에 기초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아시파(AsIPA:아시아의 통합적 사목 접근), 한국 천주교회의 각 교구 시노드가 표방하는 '하느님 백성'(=참여)과 코뮤니오(Communio=일치, 친교 또는 연대)의 교회관을 핵심 비전으로 삼는다.

 둘째, EP-1234는 교회 건설의 활력을 동력원(1, 성령)과 영적 인프라(2, 기도와 은사계발)의 협동으로 보는 신인상보적(神人相補的) 전망을 취한다. 다시말해서 교회 건설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주도 하에 인간의 협력으로 이루어진다는 자세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셋째, 교회 운영 구조(소공동체와 유기적 기능 조직, 리더십)와 관련, 자발성을 바탕으로 사제ㆍ수도자ㆍ평신도가 함께 참여하는 공동책임 구조를 지향한다. 그리고 실제에 있어서는 교계 원리와 협의체 원리, 보조성의 원리가 조화를 이루며 다양한 계층의 신자들이 자신들의 신앙감각에 따라 자율적으로 유지되도록 한다.

 넷째, 사명(수요 중심의 복음선포, 은총의 축제 전례, 고감도 사랑의 친교, 토털 서비스) 수행이 '보수'와 '진보'를 모두 아우르는 차원에서 이뤄지기를 바란다. 즉 현재 교회 안팎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이름으로 수행되는 모든 일을 다 가치 있는 거룩한 직무로 여긴다.

 다섯째, EP-1234는 가톨릭교회의 신원인 동시에 소명이기도 한 '가톨릭'(catholic)의 이상, 즉 보편성을 구현하고자 한다.

 여섯째, EP-1234는 역사적 변천에 대해 통전적 전망을 견지한다. 즉 끝없는 성찰과 쇄신에 열려 있다.

정리=이창훈 기자changhl [at] pbc [dot] co [dot] kr
[평화신문 2006.06.23]

[EP-1234] 종합: 본당 활성화 방안 개발한 미래사목연구소 차동엽 신부

[EP-1234] 종합: 본당 활성화 방안 개발한 미래사목연구소 차동엽 신부

"교회 활력 되찾는 '누룩' 역할 기대"

" 본당 활성화 방안 EP-1234를 발표하고 관련된 교육을 시작한 지 1년이 됐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호응해 주셨습니다. EP-1234는 위기 국면에 직면한 우리 한국가톨릭교회가 활력을 되찾기를 바라는 애정에서 생겨난 하나의 몸부림입니다."

 '본당 활성화를 위한 EP-1234' 기획 연재를 마무리하면서 만난 차동엽 신부는 이같이 말하면서 EP-1234가 교회 활력을 되찾는 데 씨앗과 누룩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하게 기대했다.

  지난해 4월 EP-1234가 발표되고 난 이후 연 4000명 정도가 교육을 받았다고 전한 차 신부는 교육을 통해 △본당 신부가 일하기가 쉬워졌고 △신자들의 의욕적으로 바뀌었으며 △성령의 활동과 은사에 대해 새롭게 깨닫게 됐다는 등의 피드백을 받았다고 말했다.

 차 신부는 특히 "연수를 받은 본당 신부님들에게서 일하기가 휠씬 쉬워졌다는 말을 듣곤 하는데 이는 EP-1234 교육을 통해 신자들이 자신들이 해야 할 역할을 새롭게 인식하게 됐기 때문"이라면서 "신부님들이 연수를 받으면서 자신들이 부족했던 점들을 반성하게 된 점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또 이런 맥락에서 EP-1234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유 비전을 갖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P-1234에서 제시하는 비전과 활성화 원리를 사목자가 먼저 인식하고 이를 신자들과 공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비전과 인식을 공유하게 될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차 신부는 EP-1234의 열가지 인자 중에서 어느 하나만 잘 돼도 그 공동체가 살아날 것이라면서 그러나 개인적으로 가장 역점을 두고 싶은 것은 세번째인 전 신자 은사계발이라고 말했다.

 " 현재 주일 미사에 나오는 신자들 가운데서 봉사하고 활동하는 신자들은 5~10%에 불과합니다. 5~10%가 아니라 신자들 모두가 각자 나름대로 은사가 있음을 확인하고 이를 십분 발휘하도록 하는 게 필요합니다. 소수가 아니라 모든 신자가 함께 손을 잡고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한국 가톨릭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바로 전신자 은사계발로 본다는 차 신부는 전 신자 은사계발에 투신하면 그 성과가 당장에 눈에 보이지는 않겠지만 반드시 그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P-1234 교육 연수는 현재 대전교구 정하상 교육회관(041-863-5690)에서 상설 과정으로 실시되고 있으며, 미래사목연구소(031-997-0935)를 통해서 신청할 수도 있다.

이창훈 기자
[평화신문 2006.06.23]

[자료] 교회 활성화 모델 EP-1234 (미래사목연구소, 차동엽 신부)

미래사목연구소 홈페이지 사목자료실안에 있는 EP-1234 원문입니다. 일전에 올려드린 평화신문 발췌본과 비교하여 읽으시면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교회 활성화 모델 EP-1234 (미래사목연구소, 차동엽 신부) PDF 파일로 다운받기
목 차

1. 논의의 기점

   1) 통합사목모델 연구
   2) 교회의 위기 현실

2. 본당 활성화 방안 EP-1234

  1) 길이 있다
  2) 성공 사례에 깔려있는 원리들
  3) 본당활성화 모델 EP-1234의 탄생

3. 본당 활성화 모델 EP-1234의 구성 및 원리

  1) 본당 활성화 모델 EP-1234의 구성
  2) EP(=복음적 사목)
  3) 10가지 교회 활성화 인자: 교회 활성화 10계명
  4) EP-1234의 통전적 전망(integral perspective)

4. EP-1234의 적용

  1) 간이진단 및 처방
  2) EP-1234의 의의

[자료] 신임 구역장, 반장 교육 교재 - 수원교구 2005판

천주교 수원교구 복음화국에 2005년에 실시한 교육프로그램에 대한 소개입니다. 참고자료로 올려드립니다.

시 간 프 로 그 램
09:30-10:00 접 수 및 성 가
10:00-10:50 강의 1. 복음화란 무엇인가?
11:00-12:00 강의 2. 소공동체란 무엇인가?
12:00-13:00 점 심 식 사
13:00-13:30 소공동체가 배우기
13:30-14:20 강의 3. 소공동체 봉사자의 자세
14:30-15:20 강의 4. 복음나누기 방법 및 복음나누기 7단계
15:30-16:30 파 견 미 사

복음화란 무엇인가? - 복음화국장 이찬종 요셉 신부


복음화란 무엇인가? - 복음화국장 이찬종 요셉 신부

현대에 이르러 사회는 특별하게 어느 곳을 지칭하지 않더라도 거의 대부분 도시화되었고, 나머지도 급속하게 도시화로 치닫고 있는 과정이라고 진단할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인 추세로 말미암아 교회 역시 도시들이 가지는 특징들을 안고 있다. 즉, 대형화를 비롯하여 익명화 현상이 거의 전반적으로 교회에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전통적인 사회에서 누리던 관계나 인간적인 친밀감, 그리고 소속감 같은 것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 실정이다. 수원교구 역시 몇 년 사이 괄목할 만한 교세 성장을 이루었지만 성장 자체가 본당의 비대화와 교회의 내적 공동화를 초래하여 사목자들과 신자들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어렵고, 신자들은 유대감을 상실하여 공동체로서의 교회 정체성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교회는, 과연 ‘세상이 교회를 통해서 복음화 되고 있는가? 신자들이 참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인가? 혹시 교회가 오히려 세속화되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우려를 끊임없이 갖게 된다.

이미 시대의 징표를 읽은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현대 세계로의 적응’ (Aggiornamento) 이라는 주제로 교회 전반에 걸친 변화와 쇄신을 주창한 바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 신자들이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복음적 삶을 통해 세상을 성화시켜 나가는 일은 점점 힘겹게만 보인다. 더구나 삶의 자리 도처에는 그리스도에 반하고, 교회전통을 위협하는 사고와 동향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고개를 들고 있다. 교회와 그 신자들이 이러한 시대의 변화와 유혹에 맞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길은 자신이 먼저 뼈를 깎는 쇄신의 과정을 겪음으로써 가능하다. 따라서 우리는 끊임없이 복음 말씀에 비추어 삶을 반성하고, 복음의 빛으로 스스로를 정화시켜 나가야 한다. 그러할 때 우리 자신이 먼저 변화되어 세상을 복음화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는 복음화에 속수무책이었다는 말인가? 아니다. 물론 지금까지 우리가 교회 안에서 노력해 온 모든 것(예비자 입교, 성사생활, 단체활동 등)이 복음화의 중요한 부분이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다만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세상을 복음화 시키는 방식에 수동적이 측면이 많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가 세상을 향해 더 나은 복음화, 즉 ‘새로운 복음화’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신자 공동체의 삶이 주체가 되는 보다 능동적인 역할이 요구된다 하겠다.

그렇다면 오늘날 교회가 그토록 부르짖는 복음화란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신자들이 복음화를 이루기 위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살펴보자.

1. 복음화란 무엇인가?

1) 복음서에 나타나는 ‘복음화’의 의미

예수님께서는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마르 1, 15)고 말씀하시며 당신 친히 나자렛 회당에서의 이사야 예언서의 두루마리를 받아들고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이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눈 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가 4, 18-19)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 졌다”(루가 4, 21)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대로 실제로 묶여있고 눈먼 이들을 만났다. 세리였던 자캐오가 예수님을 만나 새로운 그리스도인이 되어 예수를 따랐고, 악령 들린 이가 예수님을 만나 새사람이 되어 예수를 따라가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또한 절름발이와 나병 환자들과 중풍병자를 고쳐 주셨고,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씻어드렸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가시는 곳마다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셨는데, 하느님의 사랑이 세상 모든 사람들, 특히 소외받고 억눌린 이들에게까지 전해지도록 하는 모든 것이 복음서에서 말하는 ‘복음화’이다.

이처럼 복음서에서 언급되는 ‘복음’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기쁜 소식’이다. 그렇다면 ‘복음화’라는 것은 ‘복음을 통해 기쁨이 넘치게 되는 것’이라고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의 참된 사랑 안에서 내 삶과 가정이, 내 이웃과 나라가 복음을 통해 기쁨이 넘치게 되는 것이 바로 복음화인 것이다.

  • 성서에 나타나는 복음화는 하느님의 사랑이 세상 모든 사람들, 특히 소외 받고 억눌린 이들에게까지 전해지도록 하는 모든 행위이다.
  • 복음은 기쁜 소식이다. 복음화는 복음을 통해 기쁨이 넘치게 되는 것,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 실현을 앞당기는 것을 의미한다.

2) 복음화의 정의

‘복음화’(Evangelizatio)라는 말은 1960년대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문헌에 공식적으로 수록되었고, 1974년 10월 “현대 세계의 복음화”라는 주제로 로마에서 개최된 제3차 주교대의원회의를 기점으로 교회의 본질적 활동을 지칭하는 용어로 공식 사용되기에 이른다. 이 주교대의원회의에서는 복음화를 “복음 안에 선포된 그리스도 신비에 사람들을 인도하도록 하는 모든 활동을 통틀어 복음화라고 한다. 그러므로 애덕의 증가와 성사 집행 없이는 온전한 의미에서 복음화를 이룰 수 없다. 더구나 그리스도께 대한 기쁜 소식의 선교 없이는 복음화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신약 성서에 의하면 복음화의 중심점은 그리스도 신비의 선포인 것이다”라고 규정한다.

이렇게 규정된 “복음화”의 개념은 1975년 12월 8일 반포된〈현대의 복음선교〉를 통해서 정착된다. 즉 “복음화는 ‘보아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묵시 21,5; 2고린 2,17)라고 한 것과 같이 그 힘으로 인류를 내부로부터 변혁시켜 새롭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복음화란 “단순히 보다 넓은 지역에서 혹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선교하는 것만이 아니고, 하느님의 말씀과 구원계획에 배반되는 인간의 판단 기준, 가치관, 관심의 초점, 사상의 동향, 사상의 원천, 생활 양식 등에 복음의 힘으로 영향을 미쳐 그것들을 역전시키고 바로잡는” 것이다. 따라서 복음화 활동을 펼친다는 것은 하느님의 구원계획과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모든 것을 바로잡는다는 의미이다.

간혹 복음 선교를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에게 설교하고, 교리를 가르치고, 세례를 주고, 기타 다른 성사를 주는 것’이라고 정의하려는 의도가 있다. 이는 복음화의 풍부하고, 역동적인 참모습을 부분적 또는 단편적으로 규정하려는 것이다.

  • 복음화란“복음 안에 선포된 그리스도의 신비에 사람들을 인도하도록 하는 모든 활동을 통틀어 말한다.”
  • 복음화란 “단순히 보다 넓은 지역에서 혹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선교하는 것만이 아니고, 하느님의 말씀과 구원계획에 배반되는 인간의 판단 기준, 가치관, 관심의 초점, 사상의 동향, 사상의 원천, 생활양식 등에 복음의 힘으로 영향을 미쳐 그것들을 역전시키고 바로잡는”것이다.

3) 새복음화

1980년대에 들면서 “새로운 복음화” 내지 “새복음화”라는 용어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사용되었다. 즉 라틴 아메리카 복음전래 500주년을 경축하는 행사 준비의 일환으로 1983년 3월 9일 아이티의 수도 포르 토 프랭스에서 제 19차 라틴 아메리카 주교정기총회가 개최되었는데, 그 정기총회에서 행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연설문에 “새 복음화”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다.

새복음화는 복음화가 일단 이루어진 지역에서 반복하여 복음화를 시도하는 재복음화와는 다른 개념이다. 새복음화는 과거사를 새롭게 해석하고, 현실을 새롭게 분석하며, 세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역사를 동시대인들이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복음적 언어로 전해야 하는 사명을 가리킨다. 때문에 ‘새복음화’는 ‘새로운 열정으로’, ‘새로운 방법으로’, 나아가 보다 나은 세상을 향한 해방을 선포하는 ‘새로운 표현으로’ 이루어지는데, 여기에서 뜻하는 ‘새로움’은 “시대의 뜻”을 통해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려는 교회의 새로운 자세를 의미한다.

  • 새복음화라는 것은 과거사를 새롭게 해석하고, 현실을 새롭게 분석하며, 세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역사를 동시대인들이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복음적 언어로 전해야 하는 사명을 가리키는 것이다.
  • 새복음화에서 뜻하는 ‘새로움’은 “시대의 뜻”을 통해서 드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려는 교회의 새로운 자세를 의미한다.

2. 복음화의 요소

1) 말씀의 선포(예언직)

복음화에 있어서 복음을 해설하고 교리를 설명하는 말씀의 선포는 그 기본을 이룬다. 바오로 사도는 “말씀을 전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들어야 믿을 수 있고 그리스도를 전하는 삶이 있어야 들을 수 있습니다”(로마 10, 14-17)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구원을 위해 필요한 신앙은 말씀을 통한 복음 선포를 전제하고 있다. 즉 복음을 내 삶의 기반으로 삼아 생활하고 소공동체 모임 안에서 복음 나누기를 통해 삶과 신앙의 일치를 이뤄, 복음의 기쁜 소식을 이웃에게 전해야 한다.

2) 생활의 증거(왕직)

말과 일치된 생활은 언어로 표현된 진리가 참되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생활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들이 선포하는 사랑은 추상화되고 말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바오로 사도는 “내가 남들에게는 이기자라고 외쳐놓고 나 자신이 실격자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1고린 9, 27)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실격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 바오로 사도처럼 성실히 생활 속에서 하느님을 증거해야 한다. 이는 예수님께서 왕다운 자유의사로 성부께 순종함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영광을 차지했듯이, 제자인 우리도 왕다운 자유로 극기와 거룩한 생활로써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다른 사람들 가운데서도 예수님께 봉사하는 겸손과 인내로써 우리의 이웃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여야 하는 것이다.

3) 성사생활(사제직)

말씀과 생활의 증거로 비신자들을 신앙에 귀의시킨 다음에는 성사를 통하여 초자연적 생명으로 인도하고 이 생명이 더 풍부해지도록 해야 한다. 즉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거나 거룩한 삶을 살아서 이 세상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이다. 모든 일 - 기도, 사도직 활동, 결혼생활, 가정생활, 노동, 심신의 휴식 등 - 을 성령 안에서 행하며 생활의 번민을 잘 극복해 낸다면, 이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뜻에 일치하는 영적 제물이 되어, 미사 때 혹은 다른 전례를 통해 정성되이 성부께 봉헌된다.

교리를 가르치고 복음을 해설하는 말씀의 선포를 복음화의 출발점이라고 한다면, 성사로 말미암은 내적 변화와 새 생활은 그 도착점이라고 할 수 있다.

말씀선포(예언직) → 생활에서의 증거(왕직) → 성사생활(사제직) → 내적변화와 새생활

3. 복음화 과정

일반적으로 복음화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복음 말씀을 들음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모르는 사람들은 먼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며,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들어야 한다. 그래야 예수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고 그분께서 외치신 기쁜 소식을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누군가가 복음화 되기 위해서는 복음을 먼저 접해야 한다. 처음으로 교회에 입문하는 사람들은 복음을 접하게 되며, 기존의 신자들은 복음말씀을 지속해서 듣고 묵상하며,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희망에 대해서 설명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답변할 수 있도록 항상 준비해 두시오”(1베드 3, 15)라는 말씀처럼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달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따라서 신자들은 누구나 예수님에 대해서 확신에 찬 태도로 이야기 하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 되며, 우리가 믿는 바를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분명히 설명할 수 있을 만큼 교리도 알고 있어야 한다.

2) 복음적 삶을 증거함

복음은 다른 무엇에 앞서 삶의 증거로써 선포되어야 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군가의 말을 전해 듣고서 감명을 받기 보다는 자기가 직접 보고 체험함으로써 감명을 받는 경우가 많다. 복음적 삶 또한 마찬가지다.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듣고 스스로가 그 기쁜 소식대로 살 때 자신이 복음화 될 수 있고, 우리 주변의 이웃들-그리스도에 대해서 전혀 들어보지 못한 사람, 영세는 했으나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 고통 중에 어떤 절대자를 찾는 사람, 타종교를 가진 사람 등-은 우리의 삶을 보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게 돼, 그들을 신앙에로 모아들일 수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복음의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스스로가 복음적 삶을 살아야 한다. 즉,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삶을 각자의 생활로써 구현할 때 비로소 그리스도를 모르는 이들은 그리스도를 체험할 수 있고 신앙의 참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3) 믿지 않는 이들을 신자들의 공동체에 초대함

그리스도인들 대부분은 사회 안에서 믿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생활한다. 믿지 않는 이들은 그리스도인들 삶의 모습에서 부분적으로 복음을 체험할 수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믿지 않는 이들 중에 기쁜 소식을 부분적으로 체험해 보았거나, 또는 체험해 보고자 하는 사람들을 찾아서 신자들의 공동체에 초대해야 한다. 즉 신자들의 공동체인 교회와 소공동체로 그들을 초대하여 공동체의 일원이 되도록 이끌어 주고, 성사의 은총을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구원의 기쁨을 맛볼 수 있도록 인도해주어야 한다.

4) 사도직에 참여

신자들의 공동체로 초대 받은 사람들은 입교식과 세례성사를 통해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나아가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성령을 통해 복음을 맛본 사람들이 이 복음을 깊이 묵상하고 자신의 삶 안에 맑게 투영함으로써 참된 복음적 그리스도인으로 성숙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이제 복음의 선포자로서 임무를 수행하게 되며, 이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자신의 주위를 복음화 시켜야 할 책임을 맡게 되는 것이다. 이 책임을 수행하기 위한 신자들의 활동을 ‘사도직’이라 부른다.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은 그리스도의 이름과 권능으로 가르치고 거룩하게 하며 다스리는 임무를 사도직으로 부여받았다. 그리고 평신도들은 그리스도의 사제직, 예언직, 왕직에 효과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신자 전체에 맡겨진 사명과 개별적으로 주어진 역할을 교회와 세상안에서 수행해야 할 사도직을 부여받았다. 그러므로 평신도들은 복음화와 인간 성화에 힘쓰며 현세 질서에 복음 정신을 침투시켜 그 질서를 완성하도록 노력하는 실질적인 사도직을 수행해야 할 임무가 있다.

복음말씀을 들음 → 말씀을 복음적 삶으로 세상에 증거함 → 믿지 않는 이들을 공동체로 초대하여 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참여시킴 → 복음 선포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사도직에 참여

4. 복음화를 위한 노력

우리 교회 안에서 복음화를 위한 노력은 현재까지 계속되어 왔다. 우리 눈에 드러나지 않게 복음화를 위해 헌신해 온 많은 신앙인들이 있다. 즉, 사회생활에서 자신의 양심을 지키고 가정을 성화시키기 위해 노력해 온 수많은 신자들이 있고 가난하고 불우한 이웃을 위해 봉사 하거나 심지어는 일생을 바쳐가며 교회와 사회에 헌신해 온 신자들이 있다. 그리고 일생을 하느님께 봉헌하며 복음을 실천해 온 성직자, 수도자, 선교사들도 있다. 이렇게 자기 삶의 자리와 일터에서 묵묵히 복음을 실천해 온 신앙인들이야말로 우리 교회를 살아있게 하는 힘이다. 이제 이들을 좋은 표양으로 삼아 소공동체를 통해 신자들 모두가 복음을 듣고 나누며 일상생활에서 복음을 실천하여 세상을 향한 복음화에 앞장서야 한다.

복음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찬의 삶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성체성사는 그리스도의 사명이 절정에 달한 구원의 사건이며,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용해되어 변화되도록 촉구하는 새로운 만남이요 생명의 축제이다. 따라서 이 신비는 우리의 삶과 생활 안에서 드러나야 하는데, 이러한 성찬의 삶이 가장 잘 드러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소공동체이다. 이제 우리는 소공동체를 통해 이웃과의 인격적인 사귐과 나눔을 실천하며, 세상을 하느님의 나라로 향해 갈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보잘것없는 작은 사람들끼리 진실한 공동체를 이루어 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새로운 삶을 세상에 드러냄으로써 복음화의 사명을 실천하였다. 초대 그리스도 교회는 잘 정비된 조직이나 제도도 없었고 많은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교회건물도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가난하고 억눌린 이들을 형제처럼 돌보며 사귐과 섬김 그리고 나눔을 실천하셨듯이,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중심으로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모여 그들은 가진 것을 함께 나누며 이웃을 향해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였다. 따라서 공동체는 소수였지만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고 새로운 삶으로 인도하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소공동체의 원형인 것이다.

이러한 공동체의 모습은 오랜 박해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지속 되어왔고, 앞으로도 계속되어야만 한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사람이 되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때까지 복음을 전하셨듯이, 우리는 이 세상 속에 살아 있는 동안 어떠한 어려움 앞에서도 끊임없이 복음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고 실망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 사도들이 그 험난한 상황에서도 기쁘게 복음을 전하여 이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였듯이, 우리도 실망과 포기를 기쁨과 희망으로 승화시켜 새복음화의 기틀을 다져야 한다. 현대 사회 속에서 이러한 노력들은 바로 소공동체를 통한 새로운 복음화 안에서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 자기 삶의 자리와 일터에서 묵묵히 복음을 실천해 온 신앙인이야말로 우리 교회를 살아있게 하는 힘이다.
  • 소공동체를 통하여 신자들 모두가 복음을 듣고 일상생활에서 복음을 실천함으로써 교회를 살아있는 공동체로 만들어 복음화를 이루려고 노력해야 한다.
  • 성찬의 삶이 가장 잘 드러날 수 있는 곳이 소공동체이며, 이 소공동체를 통하여 교회는 교회의 본질인 참된 공동체를 구현하여 인격적인 사귐과 나눔으로 세상을 하느님의 나라로 이끌어 갈 수 있다.

5. 우리의 현실과 과제- 소공동체를 통한 복음화

현재 수원교구는 계속적으로 신자수와 본당수가 증가하고 있으며 각 본당 공동체의 규모는 친교의 공동체를 체험할 수 있는 단위를 훨씬 초과하고 있다. 단기간동안 괄목할만한 교세성장을 이루면서도 성장 자체가 본당의 비대화와 교회의 내적 공동화를 초래하여 복음 정신에 입각한 사귐과 섬김의 공동체로서의 모습에서는 오히려 멀어져 가고 있다는 우려를 부인할 수 없다.

즉 편향된 외적 성장이 지속되어온 가운데 사목자들은 신자들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매우 어려워 졌고, 신자들은 신자들대로 소속감과 유대감을 상실하여 교회 공동체는 갈수록 그 속이 비고 껍질만 두터워 지게 되었다. 따라서 본당들은 공동체 중심이기 보다는 개인적 성향에 따라 변화되는 모습이 많아졌다. 이렇게 본당의 모습이 외적으로 비대화됨에 따라 울타리 밖에 있는 양들에 대한 시선의 증대뿐만 아니라, 울타리 안에 있는 양들을 돌보는 것에도 힘이 모자라는 현상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실적 문제들을 타파하기 위해 수원교구는 오랜 준비기간을 거쳐 시노두스를 개최하였으며, 이 시노두스를 통해 ‘소공동체 활성화’와 ‘청소년 신앙생활 활성화’라는 양대 과제를 제시하였다. 이는 21세기를 살아갈 수원교구의 새로운 복음화 정책이며 시대적 요청에 대한 응답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지역사회와 세상 복음화의 실현을 위해서 모두의 힘을 집중시키고, 조직과 시간과 재정의 지원을 통해 시노두스의 결과를 구현해 나가야 한다. 물론 시노두스 결과문의 구현으로써 수원교구가 복음화의 모든 측면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신앙인들의 내적 성숙인 자신의 복음화와 세상 복음화를 위하여 요람의 구실을 하는 ‘소공동체 활성화’와 교회의 미래가 달려 있는 ‘청소년 신앙생활 활성화’를 이룸으로써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된다면, 수원교구는 앞으로 더 큰 문제들도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지체할 수 없이 뛰어야 한다. 개인의 복음화를 넘어 세상의 복음화를 위해 목표와 방법들이 정해졌다. 이를 위해 우리는 “자! 일어나 가자”(요한 14,31)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다함께 일어나 복음화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나는 너희가 내게서 평화를 얻게 하려고 이 말을 한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겠지만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 33)

소공동체란 무엇인가? - 소공동체 전담 이상룡 요한크리소스토모 신부


소공동체란 무엇인가? - 소공동체 전담 이상룡 요한크리소스토모 신부

들어가는 말

새로운 천년기를 맞이한 교회의 당면 과제는 복음화이다. 그러나 급변하는 현실 속에서 교회가 복음화 사업을 지속한다는 것이 매우 어렵게만 느껴지고 있다. 교회 외적으로는 급격한 도시화와 개인주의의 팽배, 공동체 정신의 결여, 심한 빈부의 격차, 농촌의 공동화 현상, 도시 빈민 지역의 확산, 윤리의식의 부재, 신영성주의의 확산 등이 대두되고 있다. 그리고 교회 내적으로는 소속감의 부재, 익명화, 신앙의 미성숙, 교회의 중산층화 등의 문제들이 복음선포에 걸림돌로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는 자신의 본질적인 사명인 복음선포를 위한 새로운 방법, 시대적 요청에 부응할 수 있는 새복음화의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소공동체 활성화이다. 소공동체 운동은 복음 중심적 삶을 토대로 생활의 변화와 이웃간의 친교를 통한 초대교회 공동체의 이상적 모습을 구현함으로써, 새시대 새변화의 요청에 부응하는 교회의 응답이라고 할 수 있다.

본 강의에서는 먼저 교회의 공동체성에 대하여 알아보고 ‘소공동체 활성화’가 대두되게 된 교회 내 외적인 요인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소공동체에 대한 의미와 그 필요성을 심도있게 다루어 볼 것이다.

1. 교회의 공동체성

교회는 왜 공동체이어야 하는가? 우리는 그 해답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 안에서 또 그분의 행적 안에서 찾아 볼 수 있다.

1) 공동체의 원형인 삼위일체 하느님

“하느님은 최고의 선(善)이시며, 이 최고의 선이란 바로 사랑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사랑은 흘러넘쳐야 하기 때문에 자신 안에 폐쇄적일 수 없고 흘러 넘쳐야 하기에 상대방을 필요로 하게 된다”(빅토르의 리처드).

그러므로 한분이신 하느님(성부)은 사랑의 원리와 관계성 안에서 두 위격, 즉 성자, 성령과 일치를 이루시고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신다. 인간은 사랑 안에서 하나이신 삼위일체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피조물이다. 따라서 인간은 하느님을 닮은 존재로서 사랑의 관계 안에서 하느님과 일치하게 되고, 또 다른 사람들과 공동체적 친교 안에서 사랑을 나누지 않으면 안되는 존재로 창조되었다.

2) 인류 창조와 공동체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창세 1, 26-27)라고 말씀하시면서 삼위일체의 어떤 한 위격이 아니라 세 위격의 이름으로, 그 모습을 닮은 사람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아담을 먼저 지으신 후 그가 깊이 잠든 사이 그의 일을 거들 짝(이브)를 만들어 내셨다(창세 3, 18-21). 이것은 하느님께서 인류 창조시에도 공동체의 최소단위인 한쌍의 부부를 내시어 서로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안배하셨음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3) 이스라엘 민족과 공동체

하느님께서는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어떤 한 개인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민족 공동체를 선택하셨다. 또한 에집트 종살이에 시달리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시나이 산에서 새로운 계약을 맺으셨으며, 외세의 끊임없는 침략과 유배생활 가운데서도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 하셨다.

4) 성가정

예수님께서는 다른 어떤 신비로운 방법이 아닌 지극히 인간적이고 평범한 방법으로 이 세상 구원의 첫 발을 내 딛으셨다. 성모 마리아, 성 요셉, 예수님께서 이루신 성가정은 공동체의 가장 기초 단위이고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가정공동체의 모범이 되었다.

5) 예수님과 제자들이 이룬 소공동체

예수께서는 공생활 이후, 항상 제자들과 함께 소공동체를 이루어 생활하심으로써 가장 완벽한 소공동체의 모범을 보여주셨다. 왜냐하면 그 소공동체는 식사, 잠자리, 재산공유, 함께 기도 함 등의 완전한 의미의 생활 공동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랑의 계명이 새롭게 규정되고(마태 25, 40), 공동체를 통한 기도, 기원의 효력과 당신의 존재성의 확실한 근거의 말씀(마태 18, 19-20)은 모든 이들을 공동체의 삶에로 강력하게 초대하는 것이라 하겠다.

6) 초대교회 공동체 - 소공동체의 이상

“믿는 사람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그들의 모든 것을 공동으로 내어놓고 재산과 물건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한 마음이 되어 날마다 열심히 성전에 모였으며 집집마다 돌아가며 같이 빵을 나누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으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이것을 보고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우러러 보게 되었다. 주께서는 구원받을 사람을 날마다 늘려 주셔서 신도의 모임이 커갔다”(사도 2, 43-47).

이 말씀 안에는 교회 공동체가 갖추어야 할 모든 요소들이 완벽하게 포함되어 있다. 하느님 백성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참된 공동체적 삶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1) 공동체의 사전적 의미

공동체(Community)란 자연적으로 생성된 인간의 모임의 단위를 가리키는 말로, 생활과 운명을 같이하는 소규모의 조직체를 의미한다. 그러기에 사회(Society)라는 말과는 구분해서 쓰인다. 공동체의 개념으로 묶어지는 것은 가족, 종족, 민족 등이 있으며,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러한 공동체에 귀속된다. 개인은 반드시 공동체에 속해서만이 충분히 발전할 수 있고, 자신을 완성할 수 있다. 따라서 개인은 공동체 안에서 공공(公共)의 복지를 유지해야 하며 공동체를 긍정해야 할 의무가 있다.

2) 공동체의 교회적 의미

성서를 통해서 교회의 관점으로 보는 공동체의 의미는 혈연, 지연, 정신적 차원의 자연적으로 귀속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교회에서의 공동체는 보편주의 안에서 모든 인간이 동일 사명과 성총을 부여받은 주님의 자녀들 및 그리스도의 형제들의 공동체, 즉 그리스도 안에서 결합된 ‘몸의 지체로서의 공동체(바오로적인 그리스도 신비체사상)’를 의미한다. 따라서 교회 안에서 (인류)공동체는 하느님의 의지에 의해서 태어나고 질서 잡혀지고 지배되며, 그 목표를 향하여 이끌림을 받는 ‘인류적 가족’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2. 교회 공동체의 내․외적 상황들

1) 교회 외적 상황들

① 전통적 가치관의 붕괴 : 신중심의 전통적인 가치관을 거부하고, 인간이성과 주관을 가치판단의 척도로 삼으려 함(예: 니체“신은 죽었다”,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등).
② 개인주의적 상황들의 심각성 : 핵가족 제도로 변화, 무분별한 산아제한, 분배정의의 혼란, 적자생존의 원칙, 혈연, 지연 중심주의, 집단이기주의.
③ 영적인 만족 보다 (가상)현실적 만족에 치우침 : 황금만능주의, 세속주의, 전생 및 윤회설, 향락주의.
④ 불안으로부터의 도피 : 심령술, 최면, 마인드 컨트롤, 기, 단학, 풍수지리, 신비주의

2) 교회 내부적 상황들

① 교세 성장의 둔화
영세자 비율이 87년을 고비로 뒷걸음질치기 시작하여 93년에는 절반수준으로 떨어졌다. 수원교구도 2003년도까지의 5년 영세자 비율을 볼때, 점차적으로 하락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② 영성적 활기의 부족
냉담율, 주일미사 및 평일미사 참례 비율, 판공성사, 고해성사 참여율, 영성체자 비율, 교무금 책정, 본당 단체 활동 등등 점차적으로 소원해지는 모습이 발견됨.
③ 교회의 세속화
④ 신앙 이기주의
교회 공동체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지체들의 합이라는 사실이 점점더 빛을 잃고 있다. 신앙 공동체가 운명적 공동체의 성격이 있음을, 그래서 회개를 통한 공동체정신의 회복 없이는 개인과 신앙 공동체의 성장을 기대할 수 없음을 더욱 더 깊이 깨달아야 한다.
⑤ 본당의 대형화와 그에 따른 익명화
수원교구는 새영세자를 통해서 본당의 교세가 확장되는 것 보다는 신도시 개발에 따른 이주 신자들의 증가로 도시 또는 그 근교 본당들이 대형화 되고 있다. 본당이 대형화 되면 될 수록 위의 ①-④의 상황들은 더 심각하게 대두될 수 있으며, 참된 공동체의 모습을 실현하기 어렵게 된다. 또한 공동체 소속감의 부재를 불러 일으켜 익명화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
⑥ 교회의 중산층화 및 권위주의
⑦ 가톨릭적 미신
기도 묵상, 전례상의 필요성에서 아니라 마음의 위로 내지 자신의 소원성취를 위해서 성물, 성상 등을 올바르지 않게 사용하는 경우가 늘어난다. 고상, 묵주, 성수 등을 목에 걸고 다니거나, 차에 감고 다니거나, 심지어 병이 낫는다고 마시는 행위는 부적신앙이나 하느님을 자동판매기 내지 장사꾼으로 전락시키는 과오에 떨어질 수 있다.

3. 소공동체의 개념 이해 및 특성

1) 소공동체의 개념

소공동체는 삶의 터전이 같은 신자들이 복음 안에서 함께 살아가며 신앙의 빛을 서로에게 비추고 각자의 신앙을 정화하고 북돋우며, 복음의 빛을 지역 사회에 비추고 활동함으로서 세상을 쇄신하는 복음화 운동의 주체이다. 소공동체는 크게 두 가지 개념으로 정리할 수 있다.

① 작은 교회이다.
초대 교회의 모습은 자주 신자들의 “집에서 모이는 교회”(로마 16, 5 ; 1고린 16, 19)였고, 예수님께서는 “단 두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 계신다”(마태 18, 20)라고 하셨다. 따라서 단 두세 사람이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집에 모이는” 공동체는 ‘교회’, 즉 ‘작은 교회’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소공동체는 10-15가구로 구성된 작은 교회이다.

② 함께하는 교회이다.
교회는 성직자나 소수의 평신도가 움직이는 교회가 아니라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이가 참여하는 교회이다. 소공동체 구성원의 자격은 연령, 성별, 직업에 관계없이 함께 복음을 나누고 함께 활동하고 함께 복음을 선포할 뜻이 있는 이들이면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한편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는 평신도 사도직을 강조하였다. 즉 교회에 맡겨진 복음화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평신도 고유의 역할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임을 지적하면서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는 함께하는 교회를 이루어나가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2) 소공동체의 요소 및 특성

① 구성원들의 집으로 돌아가면서 모인다.
소공동체는 신자들의 삶의 현장에서 돌아가면서 모이는 것이 특징이다. 매번 구성원의 집으로 돌아가면서 모인다. 모임은 일주일에 한 번 모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② 복음 나누기를 한다.
모임은 항상 복음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소공동체 모임 안에 항상 부활하신 주님을 초대하고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나눔으로서 말씀을 통해서 주님의 현존을 깨닫고 부활하신 주님을 믿으며 그분께로부터 힘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말씀을 중심으로 모일 때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게 되고 신앙이 심화, 쇄신되며 자신의 복음화 뿐 만이 아니라 세상의 복음화에도 기여하게 된다. 복음 나누기 방법에는 복음나누기 7단계, 공동응답, 복음 그림나누기, 아모스 방법 등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들이 있다.

③ 활동을 한다.
“행동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야고 2, 26)이므로 복음 나누기를 통해서 나눈 신앙은 활동으로 증거 되어야 한다. 즉 자신들 안에 살아 계시는 그리스도를 증거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소공동체를 통하여 성장하는 신앙인들은 개인적인 신앙 차원을 넘어, 이웃과 교회 공동체,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복음을 선포하는 보다 구체적인 신앙활동을 수행해야 한다. 즉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를 중심으로 봉사활동, 선교활동, 성화활동을 함으로써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④ 보편교회와 일치한다.
소공동체는 보편교회와 일치하여야 한다. 아무리 좋은 모임이라도 보편교회와 일치하지 않는다면 교회가 지향하는 소공동체라고 볼 수 없다. 본당과 일치하고 교구와 일치하며 보편교회와 일치하여야 한다. 즉 동일한 전례 및 성찬 전례에 참여하고 동일한 복음을 읽으며 동일한 성사에 참여하여 하느님 백성 전체 안에서 서로 연대를 이루어야 한다.

4. 소공동체의 필요성

소공동체의 필요성을 찾는다면 한 마디로 ‘공동체란 바로 교회이며 볼 수 있는 구원의 성사가 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소공동체는 ‘교회의 교회 됨’을 지향한다. 즉, 소공동체는 단순히 제도적 차원의 행정 구역 단위가 아니라, 그 자체가 곧 교회요, 보다 큰 교회가 설 마당이 된다. 따라서 소공동체는 하나의 작은 교회(로마 16, 5; 1고린 16, 19; 골로 4, 16 참조)이면서 보다 큰 교회인 본당 공동체에 참여하게 된다.

1) 소공동체는 교회의 원형이다.

초대교회는 소공동체를 통해서 신자들이 예수님을 중심으로 섬김과 나눔, 그리고 친교가 이루어졌다. 소공동체는 초대교회의 모습으로 교회 모습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나타낸다.
현재의 본당은 공동체를 이루고 있지만 대형화, 익명화로 인하여 교회 본연의 복음화 사명을 유연하게 수행하기가 어렵기에, 초대교회 공동체 안에서 현대의 이상적인 공동체 상을 찾아야 한다.

2) 현대 사회에 가장 적합한 복음화의 방법은 소공동체이다.

대형화, 익명화, 개인주의화된 사회에서 힘 있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공동체는 소공동체이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단순히 비 그리스도인을 교회로 데려와 세례를 받게 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복음의 빛으로 재복음화, 새복음화, 사회복음화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기에 세상 전체를 복음화 시키는 데는 소공동체가 가장 복음의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적합한 방법이다.

3) 평신도 양성의 장으로서 소공동체는 필요하다.

현대사회의 특징은 평신도들의 활동이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평신도들이 영적으로 성숙하여 자신이 가진 재능과 능력을 그리스도의 정신 안에서, 그리고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드러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소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인 성숙을 기하고, 가진 것(영적으로 성숙하여 자신이 가진 재능과 능력)을 다 내어 놓을 수 있는 좋은 장이 된다.

나오는 말

교회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대적 요청에 따라 복음적 중심을 잃지 않은 채, 자신을 변화시켜 나아가야 한다. 소공동체 운동은 현시대의 요청에 가장 적합한 교회적 변화라고 할 수 있겠다. 소공동체는 둘이나 셋이 모인 공동체 안에 현존하시며, 말씀 안에 살아계신 하느님을 서로 이웃해 있는 사람들과 함께 체험하며 그 체험을 나누고, 나눈 것을 함께 실천하는 ‘하나의 교회’라는 것을 명심하자.

“소공동체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공번되며,
사도적인 교회가, 가장 지역적으로 육화된 것이다.”
- 동아프리카 주교회의 선언 -

소공동체 봉사자의 자세 - 소공동체 전담 이상룡 요한크리소스토모 신부


소공동체 봉사자의 자세 - 소공동체 전담 이상룡 요한크리소스토모 신부

수원교구에서는 3년여에 걸쳐 시노두스를 개최하였고 그 결과물인 ‘소공동체 활성화’라는 거대한 과제를 실천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소공동체의 올바른 정착 및 발전은 교회 구성원인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모두의 능동적인 참여와 개인과 공동체의 신앙 성숙, 소공동체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있어야 가능하다. 특히 소공동체 봉사자들의 열의와 의지 없이는 소공동체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소공동체 활성화’ 사목 3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봉사자에 대한 집중적인 교육을 수행하여 왔다. 이는 봉사자들이 소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소공동체 운영을 돕기 때문이며, 이들의 적극적인 참여 없이는 소공동체가 올바로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장에서는 소공동체와 가장 면밀한 관계를 이루고 있는 소공동체 봉사자들이 소공동체 운영에 있어서 갖추어야 할 소양과 자세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이에 앞서 사전적 의미의 ‘봉사’ 개념과 비교하여 그리스도교적 의미의 ‘봉사’ 개념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참된 봉사자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짚어 볼 수 있겠다.

1. ‘봉사’란 무엇인가

1) 사전적 의미의 봉사

봉사란 자발적인 의도에서 개인적으로나 단체적으로 다른 사람을 돕거나 사회에 참여하는 무보수의 계획적이고 지속적인 활동을 말한다. 봉사는 자원봉사(自願奉仕)라고도 하는데, ‘스스로 원해서 받들고 섬긴다’라는 뜻을 갖는다. 따라서 봉사활동은 자발성, 공익성, 무상성, 계획성 및 지속성을 특징으로 하는 일련의 활동이라 하겠다.

① 자발성

봉사활동은 자발적으로 하는 활동이다. 가난하고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구제와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려는 동기에서 스스로 하는 활동이다. 아무리 옳고 가치 있는 일이라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시켜서 강제로 하는 일이라든지 자신의 사회적 지위나 역할에 따른 당연한 임무 수행은 봉사활동이라 할 수 없다.

② 공익성

봉사활동은 타인이나 사회를 위한 활동이다. 즉, 남을 위한 활동, 지역사회를 위한 활동, 국가의 발전을 위한 활동, 더 나아가 전 인류의 번영을 위한 활동이다. 그것은 자기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활동에서부터 국제 난민을 돕는 활동에 이르기까지 무한대의 영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공익성을 추구하는 활동이다.

③ 무상성

봉사활동은 보수나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남을 돕는 활동이다. 오직 진실로 남을 돕는다는 정신적인 만족과 보람을 기대하고 하는 활동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교통비나 식사 등과 같이 봉사활동에 꼭 필요한 경비나 물질이 지급되는 경우도 있으나 그런 것을 기대하고 하는 활동은 엄밀한 의미에서의 봉사활동이라고 할 수 없다.

④ 계획성 및 지속성

봉사 활동은 사전 계획에 의하여 일정 기간 지속적으로 하는 활동이다. 이 점에서 우연적이거나 일시적인 선행과는 구분된다. 선행이란 선한 동기에서 남을 도와주는 행동, 곧 대가나 이익을 바라지 않고 선행 그 자체를 보람 있는 것으로 여겨 남을 도와주는 착한 행동이다. 이렇게 볼 때 봉사활동도 선행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으나 봉사활동은 선행 가운데에서도 특히 계획에 의하여 일정 기간 지속되는 활동인 것이다.

바람직한 봉사 활동은 계획적이고 지속적인 활동을 통하여 봉사 대상자를 더 잘 이해하게 되고 봉사에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에 능숙해 져야 한다. 이러한 자세가 내면화 될 때 더 좋은 봉사활동을 펼칠 수 있고, 봉사하는 생활 습관을 기를 수 있다. 나아가 계획적이고 지속적인 봉사활동을 펼치기 위해서는 개인 수준의 활동보다는 단체나 조직을 통한 활동이 효과적이다.

2) 그리스도교적 의미의 봉사

흔히 세속의 지식인들은 ‘봉사’라는 개념을 아주 거창하게 말하곤 한다. 때론 그들에게 있어서 봉사는 자신의 지위와 권위를 상승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되기도 한다. 비단 세속사회뿐만 아니라 교회 내에서도 봉사자라는 허울 아래 많은 것을 바라고 많은 것을 찾아가려는 사람 또한 적지 않다. 이렇게 현대 사회에서 ‘봉사’라는 말은 자신을 좋은 사람 또는 희생하는 사람으로 포장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써 남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시간에는 ‘봉사’라는 뜻을 ‘서비스’라고 이해하고자 한다. 그럼 서비스가 무엇인가? 사전적인 의미로서 서비스(Service)란 ‘생산된 재화를 운반‧배급하거나 생산‧소비에 필요한 노무를 제공하는 것’을 의미하고, 이 의미와 더불어 기업에서 사용되는 뜻으로는 ‘고객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공급자와 고객간 상호관계에 의한 활동들’을 의미한다. 또한 서비스는 ‘개인적으로 남을 위하여 돕거나 시중을 드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서비스라는 말은 라틴어의 '세르부스'(Servus)에서 그 어원을 갖는데 세르부스는 '종, 노예'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낮고 미천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교황님의 모토(moto)인 ‘세르부스 세르비오룸 데이’(Servus Serviorum Dei, 주님의 종들의 종)를 보면 서비스라는 말을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의 종들의 종’이란 말에서 주님의 종들은 바로 하느님의 백성, 즉 우리를 의미하며, 종들의 종은 바로 우리들의 종이 되시겠다는 교황님의 의지가 담겨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봉사’라는 개념을 가장 쉽게 설명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런데 우리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 봉사자가 되고자 했을까? 가장 낮은 사람, 즉 종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마도 타인에 의해서 또는 본당 신부님이 시키니까 마지못해 봉사직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일 것이다.

다른 사람의 종이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제 스스로 종이 되어야 한다. 교회의 종, 그리고 더 나아가 세상의 종이 되어야만 한다.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바로 우리들의 종이 되신 것처럼 우리도 결국에는 그분의 종, 세상의 종이 되어야 하는 것이며 이것이 곧 우리 봉사자들의 몫이라 하겠다.

우리 대다수는 스스로 봉사자가 되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 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고,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 하신 것’(필립 2, 7-8)처럼 ‘봉사자’라는 사명이 비록 우리 스스로가 원해서 주어진 몫은 아닐지라도 이제는 예수님이 몸소 보여주신 모범을 기꺼이 따라야 한다.

그렇다면 ‘봉사자’라는 개념에 대해 정리해 보자. 봉사라는 원의를 상기에서는 종이라고 언급하였다. 종은 다른 사람의 명령에 따라서 움직이는 수동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 봉사자들은 이런 수동적인 종의 의미에서 탈피하여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하느님의 백성을 위해 봉사하는 종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본다면 봉사자(종)는 스스로 사랑을 실천하며 움직이는 ‘자원봉사자’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자원봉사자(Volunteer)란 라틴어 Voluntas(볼룬따스)에서 기원한 것으로 자유의지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자원봉사의 근원은 자유의지만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랑 또는 자선(Caritas)에도 있다. 이 자선이라는 말은 희랍어로는 카리스, 즉 ‘그리스도인의 사랑’이라는 뜻을 지니며, 또 유대에서는 이 말이 ‘이타주의 정신’을 나타낸다. 따라서 자원봉사라는 말의 어원적 뜻은 ‘자유의지로서 실천하는 사랑활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그리스도인의 봉사 자세

1) 봉사의 기본자세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을 극진히 섬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기 때문에 그분이 보여준 모범과 가르침에 따라 남을 섬겨야 한다. 자비와 연민에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종’이라 스스로 칭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벗’이라는 사실 안에서, 참된 종의 모습으로 남을 섬겨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벗으로서 그분과 함께 하고 그분을 따른다는 것은 명예로움인 동시에 엄중한 의무와 책임이 뒤 따르는 직위, 즉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의 봉사자로서 사는 것을 의미한다(사도 6, 4; 루가 1, 2). 따라서 봉사자는 기쁜 소식을 전하고 그 기쁜 소식이 가르치는 대로 주님과 모든 이를 기꺼이 섬겨야 한다.

하느님 백성의 종으로서 그리스도인 봉사자들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자세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작은 일에 충실해야 한다. 성서를 통해 주님은 “네가 작은 일에 충실하였으니...”(루가 19, 17) 큰일을 맡기신다고 하셨다. 따라서 그리스도인 봉사자들은 작은 일에도 소홀하지 않고 성실하게 임하여야 한다.

둘째, 보답을 생각 않는 성실함이어야 한다. 보답을 생각하고 하는 일이라면 그것은 직업이지 선행이 아니다. 하느님께 대한 성실함은 보답을 생각 않는 것이다. 은총이나 은혜를 기대하고 하는 일이라면 우리는 고용인에 불과하다. 예수님은 우리를 벗이라고 부르셨고, 우리는 그분의 벗으로서 보답을 기대하지 않고 성실하게 일해야 한다.

셋째, 항구해야 한다. 만일 단 한번만 혹은 단 하루만 하는 일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하느님의 일은 단 한번에, 단 하루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끊임없이 계속해서 끝까지 항구하게 자신이 맡은 일에 충실해야 한다.

2) 부르심에 대한 응답

그리스도인의 봉사는 자발성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 즉, 소명에 대한 응답의 형식을 띠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능력과 형편에 따라 다양한 직무로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 사랑으로 빚은 우리에게 하느님 나라의 건설에 이바지하는데 알맞은 능력을 주시고, 그 능력을 통해서 창조하신 이 세상을 당신의 뜻에 맞게 끌어 나가기를 바라신다. 즉 당신이 창조하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봉사직에로, 예수님을 통해서 세우신 교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봉사직에로 끊임없이 우리를 부르시고 계신 것이다.

따라서 봉사하고 있다는 것은 단순히 자발성에 기인하거나 임명된 의무 수행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위한 조력자로 이웃사랑을 통한 하느님 흠숭의 완성자로 불리움 받고 선택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① 성서에 나타나는 부르심의 예

[“내가 이제 너를 파라오에게 보낼 터이니 너는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에집트에서 건져 내어라.” 모세가 하느님께 아뢰었다. “제가 무엇인데 감히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에집트에서 건져 내겠습니까?” 하느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네 힘이 되어 주겠다. 이것이 바로 내가 너를 보냈다는 증거가 되리라. 너는 나의 백성을 에집트에서 이끌어 낸 다음 이 산에서 하느님을 예배하리라”](출애 3, 10-12 : 모세를 부르시는 하느님).

[“내가 너를 점지해 주기 전에 나는 너를 뽑아 세웠다. 네가 세상에 떨어지기 전에 나는 너를 만방에 내 말을 전할 나의 예언자로 삼았다.” “아! 야훼 나의 주님, 보십시오. 저는 아이라서 말을 잘 못합니다.” “아이라는 소리를 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야하고 무슨 말을 시키든지 하여야 한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늘 옆에 있어 위험할 때면 건져 주리라. 이는 내 말이라 어이없다”] (예레 1,4-8 : 예레미야를 부르시는 하느님).

② 부르심을 받은 우리의 모습

우리들의 대부분은 처음 부르심을 받았을 때 모세나 예레미야의 경우와 같이 주저하고 곧바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생업으로, 가사로, 취미나 문화활동으로 모두 바빠 시간이 없을 뿐 아니라 담당할 일의 양이나 대인관계 등, 부담스럽고 엄두가 나지 않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직책을 맡고 보니 걱정이 태산 같다. 그러나 봉사직으로 부르심에는 얼마나 큰 의미가 담겨 있는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순명’이 가져다주는 엄청난 기적의 결실을 우리는 믿어야 되지 않겠는가?

우리의 부족함을 솔직히 인정하면서 우리의 한계와 약점을 하느님 앞에 다 드러내고 “자! 이래도 쓰시렵니까?”하고 절규할 때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응답해주신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의 곁에 있다. 걱정하지 말라. 내가 너의 하느님이다. 내가 너의 힘이 되어 준다. 내가 도와준다. 정의의 오른팔로 너를 붙들어 준다”(이사 41, 10).

3) 계획성 및 지속성

위에서 봉사는 계획에 의하여 일정 기간 지속적으로 하는 활동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봉사자들은 사전에 할 일을 찾아 계획하고 이를 꾸준히 추진해 나가야 질서 있고 능률적인 봉사활동을 전개해 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충분한 사전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또는 본당의 지시사항에만 따른다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보람도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의 봉사직은 특별한 사정(이사 등)이 생기지 않는 한 일정기간(2-3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이는 봉사가 일회적으로 이루어지기 보다는 대인관계 속에서 서로의 앎을 통해 서서히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 때 활동 안에서 생기는 대인관계의 부조화 등 여러 가지 장애에 부딪칠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선임 봉사자들의 자문과 개인적인 기도와 인내로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활동을 계속해야 한다.

3. 소공동체 봉사자의 자세

제1차 수원교구 시노두스 최종문헌에서 소공동체는 ‘작은 교회이요, 함께 하는 교회’라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작은 교회, 함께하는 교회의 봉사자로서 봉사를 할 때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 가장 먼저 환하게 웃는 모습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옛말처럼 먼저 환한 웃음과 미소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기쁨을 우리 소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우리 본당 공동체에, 더 나아가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이웃들에게 전해야 한다. 예수님의 웃음과 함께라면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며 봉사할 수 있을 것이다.

1) 소공동체 봉사자가 가져야 할 자세

① 소공동체 봉사자는 소공동체 안의 목자이다.

소공동체 봉사자는 본당의 사목자인 신부님처럼, 작은 교회의 또 다른 목자가 되어야 한다. 사목이란 말은 목동이 양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교회에 속한 신자들을 구원의 길로 이끄는 일이 바로 목자의 일이다. 따라서 소공동체 봉사자들은 우리 소공동체 구성원들을 구원의 길로 이끌어야 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최고의 목자이신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야 한다. 작은 교회인 소공동체의 또 다른 목자로서 봉사자는 언제나 예수님을 기억하고 특히 힘들 때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참된 봉사직을 수행할 능력과 어려움을 극복할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바로 주님 안에서, 그분의 복음말씀 안에서 그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늘 복음을 읽고, 쓰고, 묵상하고, 복음 안에서 살며 이웃과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서로 나누자. 반장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항상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충만해 있어야 한다.

“영원한 생명은 곧 참되시고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 아버지를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한 17, 3).

② 소공동체 봉사자는 소공동체의 어머니이다.

소공동체 봉사자는 그 구역, 반의 성모님이자 어머니이다. 소공동체 봉사자가 어머니의 심정으로 반원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고 사랑으로 관심을 가지면 그 반은 반드시 일치를 이루고 하느님의 공동체로 성장한다.

예수님의 잉태 순간부터 성모님은 죽음을 건 순명으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셨고 강한 여인으로서 정의가 도래하는 세상을 꿈꾼 여인이었다. 또한 예수님과 늘 일치하는 삶을 사셨다. 이는 성서에 잘 드러나고 있는데, 성모님은 예수님께서 살아 계실 당시 늘 예수님 주변에 계셨으며(가나의 혼인잔치, 아들을 만나러 오신 성모님) 돌아가실 때에는 십자가의 길에 함께 계셨고, 성령이 내려오실 때에는 교회와 함께 계셨다. 이러한 성모님처럼, 어머니처럼 반원들의 희노애락을 같이 해주는 봉사자가 있는 한 그 소공동체는 활성화되고 작은 교회로서의 역할을 다하게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권위를 내세울 수도 있었으나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는 마치 자기 자녀를 돌보는 어머니처럼 여러분을 부드럽게 대했습니다”(1데살 2, 7).

“이렇게 여러분을 극진히 생각하는 마음에서 하느님의 복음을 나누어 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바칠 생각이었습니다. 우리는 그토록 여러분을 사랑했습니다”(1데살 2, 8).

③ 소공동체 봉사자는 소공동체 구성원들 안의 샘물이다.

봉사자는 소공동체 구성원들과 함께 하며, 그들의 장점, 은총, 달란트를 발견하고 그것을 키우도록 돕는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성령께서 머무시는 궁전임을 잊지 않고, 반원들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또한 각자의 모습을 통해서 무한히 샘솟는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깨닫게 해 주어야 한다.

또한 봉사자는 소공동체 모임을 통해서 반원들에게 신앙에 도움이 되는 교리 상식이나 주일의 가르침을 함께 읽음으로써 소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신앙적으로 성장해 나가도록 해야 한다. 또한 반원들에게 성서공부, 신자재교육에 관한 정보를 늘 제공하고 되도록 함께 성서를 읽는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반에 예비신자가 있다면 함께 교리를 배우고 가르치고 보살피며 견진 대상자들을 본당 견진반에 등록시키고 첫영성체 할 어린이들을 파악하여 교육을 받게 해야 한다. 사정에 따라 피정을 할 수도 있고 또한 소공동체에 대한 교육을 실시할 수도 있다. 교육적 열의는 누구나 소공동체의 봉사자로서 일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추게 만들어 자연스럽게 차기 봉사자를 양성할 수 있다.

“성령께서는 각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총의 선물을 주셨는데
그것은 공동이익을 위한 것입니다”(1고전 2, 7).

④ 소공동체 봉사자는 사람들의 내면을 보아야 한다.

봉사자는 소공동체 구성원들의 외모를 보고 평가하지 않고 내면을 보고 마음을 알아주어야 한다. 구성원들의 표정을 보고 급하게 판단하지 말고, 또한 짜증을 내거나 화내지 말아야 한다. 구성원들 한사람 한사람의 표정을 보고 그 가정에 무슨 일이 있는지 또는 그 사람이 개인적으로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고통을 겪는 구성원의 이웃을 통해서 그 사람의 사정을 알아볼 수도 있다. 사정을 알아보고 그 사람의 고통을 나누기 위한 마음가짐으로 기도하고 그 구성원의 고통이 하루빨리 아물수 있도록 조용히 기도하는 봉사자이어야 한다.

또한 소공동체 봉사자는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항상 겸손한 자세를 갖는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토록 겸손하셨듯이 소공동체 구성원들에게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대하고, 그리스도의 겸손을 행하는 봉사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용모나 신장을 보지는 말라. 그는 이미 내 눈 밖에 났다. 하느님은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겉모양을 보지만 나 야훼는 속마음을 들여다 본다’ 하고 이르셨다”(1사무 16, 7).

⑤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자.

완벽 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한다. 사람을 어떤 틀에 넣으려고 해서는 안 되고 소공동체 구성원들의 상황에 따라 대화 주제나 내용이나 형식을 달리해야 한다. 죽을 먹을 사람에게 밥을 주면 배탈이 난다. 형식주의가 아니라 인간의 상황에 유동적으로 응답하면서 하느님의 성령이 이끄시도록 여유와 자연스러움을 간직한다. 공동체 한 사람 한 사람을 믿고 신뢰하되 그들은 소중한 인격체임을 기억하자. 사람들은 서로 실망을 주기 쉽다. 그러나 신뢰는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나약함을 인정하면서 끝까지 믿어주고 격려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인 신뢰는 하느님께 맡겨드리도록 한다.

소공동체 봉사자 또한 완전한 사람이 아니다. 봉사자 자신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을 수 있다. 사제나 수도자에게 상담하거나 때로는 자신의 상처를 안고,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어 자신의 상처를 통해 반원들을 깊이 만나고 이해할 수도 있다. 소공동체 봉사자는 늘 회개하고 잘못을 빨리 깨닫고 고쳐 나가도록 노력하며, 성령의 이끄심에 늘 귀를 기울인다. 성령의 불을 끄지 않도록 “오소서 성령이여!” 라는 화살기도를 늘 하도록 하자. 고통과 십자가, 상처는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과정임을 기억하고 예수님의 고난을 예수님과 함께 지고 간다는 생각을 갖자. 상처를 받더라도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함께 지는 자세를 가지면 그 상처나 고통은 주님 안에서 언젠가는 결실을 맺을 것이다.

“간수는 한밤 중이었는데도 그 두 사람을 데려다가 상처를 씻어 주고 그 자리에서 그와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다”(사도 16, 33).

“상처입은 것은 싸매 주고 아픈 것은 힘 나도록 잘 먹여 주고
기름지고 튼튼한 것은 지켜 주겠다. 이렇게 나는 목자의 구실을 다하리라”(에제 34, 16).

⑥ 소공동체 봉사자는 늘 배우고 공부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봉사자는 늘 배우는 자세를 갖는다. 섬기고, 봉사하고, 함께 하면서 마음을 열어 놓고 배우려고 하자. 가르치는 자세보다는 배우는 자세를 갖고 배우는 중에 가르침을 주기도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잘 알고 똑똑한 봉사자가 되기보다 지혜로운 소공동체 봉사자가 되도록 애쓴다.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성령의 불길을 막아 버리고 구성원들의 기를 꺾어 버리고 상처를 주기도 한다. 지혜로운 소공동체 봉사자는 성령의 이끄심에 귀를 기울이고 구성원들 한 사람 한 사람 안에서 임하시는 성령의 활동에 민감하여 그들의 말과 생각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자신의 부족을 인정하고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고 진실 되고 따뜻하고 끈기 있게 주님의 도구가 되려고 노력하면 반드시 그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늘 관찰하는 습관을 갖고 구성원들의 변화나 삶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발견된 것을 소공동체 구성원과 함께 나눔으로써 소공동체의 성장을 돕는다.

“그들이 가르치고 일러 준 말을 배우고 깊이 생각하여 한 말들을 되새겨 보게”(욥 8, 10).

⑦ 기도하는 자세

소공동체 구성원들 한 사람씩 기억하며 기도한다. 기도로 시작한 일은 반드시 열매가 있다. 소공동체 봉사자의 집안에 기도가 살아 있어야 한다. 내가 먼저 시작하면 다른 가족은 자연스럽게 기쁜 마음으로 따라온다. 구성원들의 상담을 들어주고 그것을 기도로 봉헌한다. 냉담자의 말을 듣고 적절한 대답을 못하더라도 귀담아 듣고 기도하여 주면 성령께서 위로와 힘을 주신다. 신부님의 상담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신부님께 연락해서 연결해 준다.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서 함께 해주시고 이끌어 가고 계심을 믿으며 늘 기도하자.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무슨 일이든 하실 수 있다”(마태 19, 26).

⑧ 소공동체 봉사자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소공동체에 파견된 사도이다.

소공동체 봉사자는 하느님께서 불러주신 사도이다. 교회의 제일 중요한 사명은 복음 선포에 있다. 즉 세상 끝까지, 세상이 끝날 때까지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여야 한다. 이는 봉사자의 중요한 역할이다. 구성원들과 함께 예비자를 교회에 인도하고 그들이 교리 공부에 열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주어야 하며 영세 후까지 잘 돌보아 주어야 한다. 선교 세미나 등에 참여하여 선교 방법을 공부하고 방문선교나 가두 선교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야 한다. 늘 주님이 함께 계심을 기억하고 예수님을 위해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을 하자. 하늘에 반장의 이름이 기록되는 것을 기뻐하자.

[“내가 너를 점지해 주기 전에 나는 너를 뽑아 세웠다. 네가 세상에 떨어지기 전에 나는 너를 만방에 내 말을 전할 나의 예언자로 삼았다." "아! 하느님 나의 주님, 보십시오. 저는 아이라서 말을 잘 못합니다"하고 내가 아뢰었더니, 주님께서는 나에게 이렇게 이르셨다. "아이라는 소리를 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야하고, 무슨 말을 시키든지 하여야 한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늘 옆에 있어 위험할 때면 건져 주리라.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예레 1, 4-10).
“악령들이 복종한다고 기뻐하기보다도
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루가10, 20).

⑨ 약자에 대한 관심을 갖자.

노인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고 그분들의 삶의 지혜를 배우도록 한다. 노인들을 모시는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갖는다. 그들의 어려움과 기쁨을 들어주고 함께 한다.매 순간 만나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소중하게 대화한다. 지금 만나서 대화하는 사람은 “예수님”이라고 생각하면 하늘나라가 바로 여기 있음을 체험한다. 다른 이의 무거운 짐을 대신 져 주면 주님께서 갚아 주신다. 사람에게서 칭찬이나 보상을 받기보다 주님께 희망을 두도록 하자.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하고 말할 것이다”(마태 25, 31-46).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힘차게 활동하시면서 우리가 바라거나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하게 베풀어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에페 3, 20).

⑩ 말씀에 맛들이자.

소공동체 봉사자들은 늘 성서를 가까이 두고 읽고 묵상하며 공부하여 하느님 말씀을 생활의 기반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성서는 하느님 말씀의 살아있는 책이며 하느님 나라로 가는 사랑의 지도이다. 구역장, 반장은 늘 성서 안에서 삶의 해답을 찾고 영원한 희망을 꿈꾸어야 한다. 또한 되도록 성서공부에 참여하여 성서를 더 잘 알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 특히 어느 단체나 모임보다도 소공동체 모임은 철저히 말씀 중심, 복음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더욱더 성서에 맛 들여야 나눔이 풍부해 질 수 있다.

“복음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는 길을 보여 주십니다.
인간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로마 1, 17).

2) 자발성과 적극성

봉사를 하는데 있어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발성(自發性)이다. 어느 누가 강요해서가 아니고 스스로 봉사를 하고자 하는 그 마음가짐, 그것이 없이는 진정한 봉사라고 할 수 없다. 강요가 아닌 자유의지로 선택한 일에 대해서는 흔히 우리가 겪게 되는 난관이나 어려움에 대해 의연하고 긍정적으로 대처하게 된다. 소공동체 봉사자로서 봉사하는 데에도 마찬가지이다. 스스로 원해서 하는 봉사에는 그에 따르는 기쁨과 보람도 몇 배로 증폭 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억지로 하는 봉사가 아닌 내 자유의지로 하는 봉사가 될 때 진정한 봉사의 기쁨을 누릴 수 있으며 손수 선택하신 우리를 기쁘게 기다리고 계시는 하느님을 봉사를 통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소공동체 봉사자로 뽑아 세우시고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주시며 사명을 완수할 능력을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자. 다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순명과 겸손, 열성뿐이시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부족하지만, 기쁘게 하겠습니다”라고 겸손히 대답할 때 주님은 힘을 주시고 축복해주시며, 봉사자가 열성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활동할 때 축복과도 같은 보람을 느끼게 해주신다. 봉사를 하는데 가장 중요한 자격은 학력이나, 재산, 자격증, 외모가 아니라 “스스로 하고자 하여 적극적으로 행하는 마음가짐”이다.

사실 소공동체 봉사를 하다보면 그만두고 싶고, 힘든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다. 이럴 땐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그냥 힘드니까 그냥 관두는 것이 좋을까? 물론 이것은 신앙인의 자세가 아니지만 그러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닐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답은 바로 신앙인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방법, 즉 ‘기도’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전도여행 중에 항상 기도하신 것처럼 우리도 힘들고 봉사를 하기 싫을 때, 봉사하는 일에 의욕이 떨어질 때 가장 먼저 예수님께 도움을 간구해야 한다. 그러면 “구하라, 받을 것이다”(마태 7, 7) 라는 말씀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복음 나누기 7단계 - 소공동체부 정용재 대건안드레아


복음 나누기 7단계 - 소공동체부 정용재 대건안드레아

1. 복음 나누기란

복음 나누기는 소공동체 모임의 핵심이며, 성서를 통해 영적으로 성장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즉, 우리 삶의 문제를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에 비추어 보고, 반성하며,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복음의 실천을 계획하는 것이다.

성서에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을 것이다”(마태 18, 20),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와 함께 계셨다”(요한 1, 14)라는 말씀이 있다. 이런 말씀들은 말씀 안에 살아계신 주님께서 우리 마음 안에 말씀하시고 그 말씀 안에서, 그리고 말씀의 실천을 통하여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게 해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성서는 그리스도인이 진리를 알아듣게 하고 올바른 삶을 살아가도록 해주는 거룩한 책(하느님의 말씀)이다. 디모테오 후서 3장 15-16절에서는 이것을 잘 표현하고 있다. “성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는 지혜를 그대에게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성서는 전부가 하느님의 계시로 이루어진 책으로서 진리를 가르치고 잘못을 책망하고 허물을 고쳐주고 올바르게 사는 훈련을 시키는데 유익한 책입니다.”

성서의 많은 말씀 중에서 특히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과 가르침, 활동,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을 통하여 우리를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복음을 가지고 기도하고 묵상하며 말씀을 나누는 것은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있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은 길가에서 예수님을 만나 함께 걸어가며 죽은 예언자, 즉 구원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당신에 관한 기사의 설명을 들으며 가르침을 받았지만 그때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식탁에서 빵을 나눌 때 비로소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는데 예수님의 모습은 이미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그들은 “길에서 그 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서를 설명해 주실 때에 우리가 얼마나 뜨거운 감동을 느꼈던가!”(루가 24, 13-35)하고 나누었다.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성서말씀을 듣고 그 말씀 안에 살아계신 주님의 현존을 경험하여 뜨거운 감동을 느꼈으며 성체를 나눔으로써 말씀이 완성되는 것을 체험했다.

이처럼 복음을 통해 예수님의 현존을 체험할 수 있도록 쉽게 유도하는 방법이 바로 복음 나누기이다. 또한 복음 나누기는 성서 공부와는 다르다. 성서 공부는 말 그대로 성서 내용의 객관적인 사실을 연구하고 언어, 연대, 의미를 공부하는 학문적인 것이다. 그러나 복음 나누기는 ‘그분을 만나는 것’, 즉 말씀의 조각(단어, 구절)을 통해 그리스도의 현존을 강조하고 그 말씀을 듣고 나눔으로써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을 가능하게 하여 그리스도인들을 예수님과 일치시킨다.

- 복음 나누기는 소공동체 모임의 핵심이다.
- 복음 나누기는 복음을 통해 예수님의 현존을 체험할 수 있도록 쉽게 유도하는 방법이다.
- 복음 나누기는 성서 내용의 객관적인 사실을 연구하고 언어, 연대, 의미를 공부하는 학문적인 공부가 아니라 나와 예수님이 인격적으로 만나서 대화하는 것이다.
- 복음 나누기는 말씀을 통하여 말씀 안에서 실천을 통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다.

2. 복음 나누기 종류

복음 나누기의 종류는 가장 기본이 되는 ‘복음 나누기 7단계’와, 개인을 넘어서서 이웃과 지역, 사회로 복음의 정신을 실현해 나가는 ‘공동응답’, 그리고 사회, 정치, 경제의 정의가 그리스도의 뜻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방법을 모색하고 실천하는 ‘아모스 방법’, 누구나 쉽게 복음의 말씀을 알아듣고 문맹자라도 이미지를 통하여 말씀에 접근하도록 하는 ‘복음그림 나누기’ 방법 등이 있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의 방법들이 있으며, 지금도 계속 다양한 복음 나누기의 방법이 연구되어지고 있다. 수원 교구에서는 현재 복음 나누기 7단계 외에 공동응답과 그림으로 복음 나누기 방법을 권장하고 있다.

소공동체 모임에서는 복음 나누기의 다양한 방법들 가운데 각각의 소공동체에 알맞은 방법들을 사용할 수 있다. 그 방법들은 겸손하게 하느님과 살아가는 일(복음 나누기 7단계)과 다정하게 이웃을 사랑하는 일(공동응답), 정의를 실천하는 일(아모스 방법)등이 있다. 그 가운데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복음 나누기 7단계로서 이 방법이 숙달 된다면 어떤 내용의 복음 나누기 방법도 수월하게 할 수 있다.

복음 나누기는 훌륭한 성서 지도자나 능력 있는 리더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복음 나누기 7단계 및 여러 방법은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그 체험을 나누며, 체험한 사랑을 행동으로 드러내도록 하는 방법이다. 따라서 기도나 나눔이 철학적이고 이성적이며 학문적인 것이 아니라 그저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소리를 잘 듣고 그대로 나누면 된다. 이때 요구되는 것은 주님께 대한 사랑과 집중력, 그리고 신뢰이다.

- 복음 나누기의 종류는 다양하다. (7단계, 공동응답, 아모스나누기, 복음 그림 나누기 등등)
- 복음 나누기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지도자를 요구하지 않는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 복음 나누기에 필요한 것은 주님께 대한 사랑과 집중력, 그리고 신뢰이다.

3. 복음 나누기 7 단계

1) 복음 나누기 7단계의 목표

복음 나누기 7단계의 목표는 다음과 같다.
①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을 체험한다.
② 소공동체 구성원들이 개인적으로 말씀을 통해서 하느님과 만나도록 돕는다.
③ 나눔을 통해 서로의 믿음을 심화시켜 주도록 격려한다.
④ 소공동체 구성원들 간에 개인적인 유대를 깊게 한다.
⑤ 모임 안에 신뢰감을 키운다.
⑥ 공동체 활동을 계획하도록 영성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2) 복음 나누기 7단계 시작 전

① 성호경
소공동체 모임의 시작을 여는 기도로 성호경을 긋는다. 성호경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내 자신이 바로 하느님의 자녀임을 고백하는 가장 짧은 기도라 할 수 있다. 이는 소공동체 모임 자체가 성삼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모임임을 나타내며, 소공동체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의 자녀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② 시작성가
마음을 다해 부르는 성가는 하느님을 찬미하는 가장 아름다운 행위이며 우리가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다. 소공동체 모임에서 부르는 성가는 전례시기의 의미와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도록 가급적 전례시기에 맞는 성가를 선택하여 부르는 것이 좋다. 그러나 여러 곡을 선정하여 너무 오랫동안 부르면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싫증을 느낄 수 있으므로 소공동체 구성원들과의 협의를 통해 적당하게 부르는 것이 좋다.

③ 출석확인 및 인사 나눔
출석 확인은 소공동체원 각자의 이름과 세례명을 부른다. 호명에 대한 응답 후 모두는 “환영합니다”또는 “반갑습니다”라고 답례해 주는 것이 좋다. 또한 인사 나눔은 새로 참석한 구성원, 예비신자, 오랫동안 쉬었던 신자, 다른 지역의 신자가 참석했을 때에 간단하게 자기소개와 더불어 인사를 나누게 한다.

☞ 성호경부터 인사 나눔까지는 10분이 넘어가지 않도록 한다.

- 성호경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대한 찬미와 내 자신에 대한 신앙고백이 담긴 가장 짧은 기도행위이다.
- 시작성가는 너무 길게 또는 너무 짧게 하지 않고 적당히 부르는 것이 좋다.
- 출석확인은 성명 본명을 함께 부르고, 다함께 “환영합니다”, “반갑습니다”로 답례한다.
- 위 세 가지가 10분을 넘지 않도록 유의한다.

3) 복음 나누기 7단계 단계별 내용

① 1 단계 : 초대 기도를 바친 후 함께 소공동체 기도를 바친다.

“한 두 분이 기도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십시오.”
“다 함께 소공동체 기도를 바칩시다.”

초대기도는 자발적으로 나서는 사람이 있을 때까지 기다린다. 초대기도는 예수님 생전에 사람들이 집으로 주님을 초대했듯이 우리도 따뜻하게 주님을 우리 집으로, 우리 마음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초대기도는 짧게 하는 것이 좋다. 우리는 이웃을 초대할 때 누구나 “꼭 오세요”, “기다리고 있을께요”라든지 또 손님이 집에 왔을 때 “어서 오세요”, “찾아오시느라 힘드셨죠?”, “추운데 어서 들어오세요”라는 말을 한다. 이 말들은 심오하게 생각하고, 그 의미가 무엇일까 생각한 뒤에 하는 말이 아니다. 주님을 초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마치 이웃이 우리 집을 방문할 때 “어서 오십시요”라고 인사하듯이 짧은 말로 모든 사람이 돌아가면서 주님께 초대기도를 바친다. 초대기도는 살아있는 삶의 언어로 바친다. 이 기도는 예수님의 현존을 느끼는데 중점을 둔다. 즉 예수님께서 우리 곁에 계시고 우리의 초대에 응하셔서 우리와 함께 자리하심을 체험하는 것에 중심을 두는 것이다.

주님을 초대할 때는 되도록 소공동체 모임 초기 단계에서는 각 구성원들이 서로 돌아가며 하는 것이 좋다. 시간이 지난 뒤에 어느 정도 스스럼없이 모두가 초대기도를 할 수 있다면 한 두 사람이 예수님을 초대하는 기도를 바치도록 한다.

개별적인 초대의 기도 후에는 별도로 ‘아멘’이라고 마치지 않아도 좋다. 왜냐하면 ‘아멘’이라는 마침기도를 바치게 될 경우에 간혹 복음 나누기의 흐름자체가 깨어질 수 있기 때문이며, 또한 바로 이어지는 소공동체 기도문의 내용 속에도 초대의 의미를 담고 있고 이 기도로써 마침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공동체 모임 구성원들의 협의를 통해서 한 사람이 종합적으로 ‘아멘’이라고 마침할 수도 있다.

☞ 초대의 기도를 바친 후에는 소공동체지나 모임 리플랫을 이용하여 ‘소공동체 기도문’을 바친다.

- 초대기도는 되도록 짧게 한다. 예수님이 너무 오래 기다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 초대의 기도는 예수님이 우리 곁에 계신다는 현존을 느끼는데 중점을 둔다.
- 초대의 기도가 너무 형식적이지 않도록 한다.
- 매번 기도하는 사람만 하지 않도록 유의한다.

② 2 단계 : 성서 본문을 2번 읽는다.

“ ...복음 ...장을 펴주십시오.”
“어느 분이 ...장 ...절에서 ...절까지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다른 분이 본문을 다시 한번 읽어 주십시오.”

진행자는 그 모임에 해당하는 성서 본문을 발표한다. 이때 진행자는 “○○복음을 찾아 주십시요”라고 한 뒤 참석자들이 모두 찾았는지를 돌아 본 후 다 찾았으면 “어느 분이 ○○장 ○○절부터 ○○절까지 읽어 주십시요”라고 요청한다.

한 번에 복음과 장, 절을 다 알려주지 않는 것은 한꺼번에 알려주게 되면 혹시라도 잘 알아듣지 못하거나 빨리 찾지 못했을 때 “몇 장인가요?”, “몇 절인지 듣지 못 했어요”라는 질문으로 1단계에서 이루어진 기도 분위기가 깨어지면서 어수선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복음을 봉독할 때는 진행자 스스로가 읽지 않는 것이 좋다. 진행자의 역할은 단지 소공동체 모임의 활성화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행자는 초대의 기도, 복음 봉독과 같이 다른 구성원들이 할 수 있는 역할들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성서를 봉독하는 사람은 주님께서 자신의 입을 빌려 말씀을 하고 계심을 깨닫고 또렷한 음성과 정확한 발음으로 뜻과 의미가 잘 전달 될 수 있도록 봉독한다. 또한 듣는 사람은 지금 주님께서 그 자리에서 말씀하심을 믿고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쳐” 복음 말씀을 들어야 한다.

복음을 봉독하고 난 후에는 미사나 말씀의 전례에서처럼 “주님의 말씀입니다”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복음 나누기는 공식적인 전례행위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며, 또한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복음 나누기 안에서 주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는 과정에 맥이 끊겨버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입니다”라고 말하지 않음으로써 구성원들이 조용히 기도하는 분위기를 깨트리지 않고, 그 안에서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게 된다.

- 복음을 알려줄 때는 모든 사람이 잘 찾을 수 있도록 장과 절을 구분하여 천천히 진행한다.
- 진행자가 복음을 봉독하지 않도록 유의한다.
- 성서를 봉독하는 사람들은 내 스스로가 복음을 봉독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내 입을 통해서 선포하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 기도의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서 매 복음을 봉독하고 난 후에 ‘주님의 말씀입니다’라는 선포 말씀을 생략하는 것이 좋다.

③ 3 단계 : 성서 본문 중에 마음에 와 닿는 단어나 구절을 묵상한다.

“각자 마음에 와 닿는 단어나 짧은 구절을 세 번씩 읽어주십시오.”
“어느 분이 성서본문을 다시 한번 읽어주십시오.”

성서 본문에 나오는 단어나 짧은 구절 중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을 각자 돌아가면서 천천히, 세 번 크게 외친다. 이때는 또렷하고 큰 목소리로 외치며 한 번씩 외칠 때마다 잠시 침묵을 지킨다. 똑같은 구절을 세 번 반복하는 것은 성서 본문 안의 상황에 잠기도록 하는 것이고 매 구절마다 침묵을 지키는 것은 모든 참석자들이 그 말씀을 마음속으로 반복할 기회를 주어 마음 안에 말씀이 메아리치게 만들기 위함이다.

마음에 와 닿은 구절이란 내가 좋아하는 구절이 아니라, 말 그대로 주님께서 각자에게 전달하시는 말씀을 말한다.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은 자신의 처지와 상황에 따라 각각 다르기 때문에, 아무리 짧은 구절이라도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와서 박힐 수 있다. 그리고 그 말씀을 통하여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로하시고 훈계하시며 새로운 삶을 계획하게하시고 스스로를 반성하게 하시어 우리가 삶의 의미를 재확인하고 나 뿐만 아니라 이웃까지도 더욱 사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신다.

만일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이 없다면 본문에 나오는 어떤 단어라도 읽으면 된다. 왜냐하면 모임 안에서 다른 이가 외치는 구절로 인해, 또는 내가 외치는 말씀으로 인해 어떤 감동이나 영향을 받을 수도 있고 서로가 서로를 말씀 안에 잠길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기 때문이다.

참석자들이 외치는 말씀은 모두 보석과 같다. 그래서 참석자들은 말씀을 외침으로써 모두에게 자기가 캐낸 보석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보석과도 말씀을 외치다 보면 마음 안에서 예수님과의 깊은 일치를 경험할 수 있다.
모든 참석자가 돌아가며 자신에게 와 닿는 말씀을 외친 후에는 다시 한 번 성서의 본문을 읽는다.

- 세 번씩 외칠 때 중간에는 반드시 침묵을 지킨다. ‘“예수님”(침묵)... “예수님”(침묵)... “예수님”(침묵)... ’
- 기도하면서 외치는 것이 중요하다.
- 내가 좋아하는 구절을 찾지 않도록 유의한다.
-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 없으면 성서본문의 어떤 단어라도 택해서 외치고 묵상한다.

④ 4 단계 : 주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을 듣는다.

“3분 동안 침묵하며 주님께서 각자 마음 안에 들려주시는 말씀을 들읍시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다. 진행자는 이때 몇 분 침묵할 것인지 분명하게 말해주어 분심이 들지 않도록 한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외적 침묵뿐만이 아니라 내적 침묵도 따라야 하고 집중력도 있어야 한다.

침묵하는 동안 주님의 현존 앞에 조용히 앉아 주님을 바라보면서 그 분이 개인에게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기다린다. 물론 이때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을 수 있고 또 내면의 시끄러움 때문에 듣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정해진 시간동안 침묵 안에서 그분을 만나도록 노력하고 그 시간을 온전히 주님께 봉헌한다.

묵상할 때에는 내가 외친 구절에 대해 어떻게 나눌까 하고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내게 해주시는 말씀을 듣도록 노력해야 한다. 만약 묵상이 어렵다면 눈을 감고 바로 내 앞에 주님께서 앉아계신다고 상상한다. 그리고 앞에 앉아계신 주님께 내가 외친 구절에 대한 질문을 드리고, 주님께서 어떤 대답을 하시는지 상상해 본다. 이때에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는 마리아를 떠올리며 주님의 말씀을 듣도록 한다. 이러한 묵상들은 지속적으로 복음 나누기를 하면서 점차적으로 성장될 수 있다.

- 묵상하는 사람들이 분심이 들지 않도록 침묵시간을 분명히 알려준다.
- 주님과 함께 앉아서 마음으로 대화하는 시간임을 명심한다.
- 들리지 않으면 들으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안된다고 딴 생각으로 보내지
않는다.

⑤ 5 단계 : 각자의 마음속에 들려주신 말씀을 나눈다.

“순서 없이 자유롭게 각자의 마음속에 들려주신 말씀을 나눕시다.”
* 나누기가 끝난 후 해당되는 ‘주일의 가르치심’을 읽는다.

여기서 하는 나눔은 4단계에서 주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이나 자신이 그 시간에 느낀 점, 체험한 내용을 나누는 것이다. 한 사람이 너무 길게 발표하지 않도록 한다. 이때 나눔은 고백성사와는 다르다. 또한 나눔 중에 본인이 거북하다고 느끼는 것은 나누지 않아도 된다.

나눔에 있어서 주의할 사항은,

ⓐ 나눔을 하면서 성서 본문에 대한 설명이나 설교 및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조심한다. 그러나 만일 어떤 참석자가 설교나 성서를 가르치려고 든다면 반대하지 말고 받아들인다. 만약에 모임에서 직접적으로 반대하거나 거부하는 표현을 한다면 설교 및 설명을 하는 장본인이 무안해하고, 소공동체 모임에 나오는 것을 꺼려할 수 있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받아들이되, 소공동체 모임 전후에 반장이나 구역장은 그 사람에게 조용히 귀뜸해 줄 필요가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구성원들에게 복음 나누기 7단계에 대한 충분한 교육이 시행되지 않은 경우에 발생하므로 별도로 복음 나누기 7단계에 대한 교육을 한다면 이러한 일은 줄어들 것이다.

ⓑ 나누기를 시작할 때는 언제나 “저는”이라고 시작한다. “우리는”이라고 시작한다면 설교나 훈계, 토론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나”가 아니라 “우리는”으로 시작하다 보면 남에 대한 비난과 책임전가 혹은 비평이 될 수 있다. 이는 공동체의 영적인 분위기와 친교를 깨뜨리는 일로써 삼가 하여야 할 나눔 태도이다. 개인적인 나눔은 구성원 간에 신뢰감과 친밀함을 조성하게 된다. 서로 말씀을 나누다보면 각자가 겪는 생활과 신앙의 갈등의 어려움 등을 알게 되고 이를 통해 각자가 가지는 어려움들이 남의 것만이 아닌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것임을 알게 되어 서로 간에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한다.

ⓒ 나누기 중간에 절대 끼어들거나 또는 토를 달거나 하는 행위는 삼가야 한다. 발표가 끝날 때에는 “이상입니다”, “들어주셔서 감사 합니다” 등 적당한 언어로 끝내고 들은 참석자는 “하느님 감사합니다” 등으로 화답할 수 있다. 쉽게 나누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강제로 나누게 하기 보다는 나눔의 어려움을 공감하게 하여 주고 다음 기회에 준비토록 한다.

ⓓ 만일 이해하기 어려운 성서 구절 때문에 난관에 부딪힌다면, 그 자리에서 성서를 해석하려 들지 말고 모임 후에 알려준다거나 다음 모임 때에 그 뜻을 알려 주면 된다. 우리가 명확하게 알아야 할 것은 이 모임은 성서 공부나 성서 가르침이 아니라 복음 나누기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소공동체 모임에서 서로 간에 나누었던 내용을 소공동체 모임 밖에서는 발설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모임에서의 나누는 내용들이 주로 개인적인 문제나 갈등들이 많기 때문에 이런 내용들을 모임 밖에서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면 개인적으로 상처를 입거나, 가족간 그리고 대인관계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소공동체 모임 안에서 복음을 나누었던 내용들은 다른 곳에서 얘기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5 단계에서의 하느님 말씀을 서로 나누는데 있어 한 사람이 꼭 한 가지씩만 나눔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공동체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어 모두가 발표하고 난 후 추가하여 나눌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 제약이 따름으로 너무 많은 나누지 않도록 조심한다. 또한 묵상 중(4단계)에 내가 택한 성서 구절(3단계)보다 다른 사람이 외친 성서 구절이 더 마음에 와 닿게 되었다면 내가 택한 성서구절 대신에 다른 사람이 외친 성서구절로 묵상하여 나눔을 해도 된다. 그리고 특별히 나눌 것이 없지만 성서 본문 전체 내용에서 묵상되어지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나누어도 된다.

☞ 5 단계에서 서로가 하느님 말씀을 나눈 후 소공동체지에 나오는 ‘주일의 가르치심’을 읽는다.

- 나눔을 할 때 몇 사람만 집중적으로 나누지 않도록 유의한다.
- 강제로 나눔을 하게 하지 말고, 어렵다면 다음 기회에 준비토록 한다.
- 짧게라도 어떤 느낌으로 대화했는지를 언급한다.
- 나누기를 할 때 “저는” 또는 “나는”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 다른 사람의 나눔 중간에 끼어들지 않아야 하며, 성서를 잘 안다고 해서 해설하지 않는다.
- 나눔의 내용은 소공동체 모임 밖에서, 혹은 다른 이들에게 밝히지 않는다.

⑥ 6 단계 :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나눈다.

“지난주에 공동체(각자)가 정했던 실천 사항을 보고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우리 공동체(각자)에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나누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을 정합시다.”
* ‘5분 신앙상식’을 공부하고, 공지사항, 건의사항, 차기장소 결정을 한다.

6단계에서는 소공동체가가 일상적인 삶에서 당면한 과제와 일상생활 속에서 복음적 삶을 살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 논의한다. 활동의 주제는 공동체의 삶에 관한 것이나 개인의 생활에 관한 것 등 어떤 것이라도 좋다. 공동체 활동은 소공동체 구성원들이 모여서 함께 실천할 수 있는 본당 내 외적인 활동들과 기도들을 의미하는 것이고 개인의 생활에 관련된 실천은 개인적으로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실천할 수 있는 활동 및 영적 성장을 위한 기도들을 의미한다.

이런 활동을 정할 때는 첫 번째로는 지난주에 공동체가 혹은 개인이 결정한 활동이 어떤 결실을 맺었는지 각자 한사람씩 나눈다. 만일 활동하지 못했다면 지난주에 결정했던 활동사항들을 계속적으로 더 실행해 나갈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활동을 정하여 실천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두 번째로 이번 주에 할 일을 공동으로 정하고 구체적으로 누가, 언제, 어떻게 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그리고 소공동체에서 정한 활동시간에 참석하지 못할 경우에는 함께 모여서 활동하는 그 시간에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활동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기도하도록 한다.

※ 소공동체 모임에서 할 수 있는 활동들의 예

◉ 개인 차원
ⓐ 성체조배
ⓑ 매일 묵주의 기도 바치기
ⓒ 구역 신자 이름(본명) 외우기
ⓓ 미사 시작 20분 전에 와서 묵상하기
ⓔ 특정한 이웃을 위해 매일 주모송 바치기 등

◉ 공동체 차원
ⓐ 선교활동
㉠ 이웃에게 신앙 권면
㉡ 예비신자 돌보기 (교리시간 동행, 대부모 서기, 교리 시간 중 예비신자 자녀 돌봄, 세례식 때 구성원이 참석하여 축하하기)
㉢ 유아세례 권면 및 대부모 서주기
㉣ 예비신자 가정 방문
㉤ 냉담자 파악 및 방문
㉥ 전입 신자 방문
㉦ 가두선교 참여하기
ⓑ 전례활동
㉠ 주일 전례 때에 독서 및 신자들의 기도, 성가 봉사
㉡ 전례시기에 따라 신앙에 도움을 주는 장식물 만들기(대림초, 성탄트리, 부활계란, 가시나무 십자가...)
㉢ 반 별 십자가의 길, 피정, 성지순례
㉣ 성가 배우기
㉤ 공동으로 성서 읽기
㉥ 원하는 가정에 돌아가면서 기도해 주기
㉦ 봉성체가 있을 경우 함께 참여하기
ⓒ 봉사활동
㉠ 구역 내 환자 방문 및 도움이 필요할 경우 도와주기
㉡ 병원에 입원한 신자 및 예비신자 방문
㉢ 구역 내 독거 노인 및 새싹가정을 방문하여 노력 봉사하기
㉣ 연도 및 상가(喪家) 돕기
㉤ 혼인 및 회갑 및 기타 노력 봉사가 필요한 가정에 가서 봉사하기
㉥ 장애인 가정 돕기 및 장애인들과 함께 하는 활동에 봉사자로 참여하기
㉦ 본당 청소에 참여하기
㉧ 재소자 방문하기
㉨ 외국인 노동자에게 관심 갖기
㉩ 복지 시설, 단체를 방문하여 지속적으로 봉사자 활동하기
ⓓ 친교활동
㉠ 반 모임 시 친교를 위한 놀이(윷놀이, 간단한 다과회....)
㉡ 선교 가능한 이웃을 초대하여 함께 차 마시기
㉢ 신앙과 관련되는 음악회, 미술전시회, 박물관, 기타 기관 함께 방문하기
㉣ 본당의 친교 행사에 참여하기(성가경연대회, 성극 대회, 부활그림 그리기 대회, 본당 체육대회....)
ⓔ 교육활동
㉠ 주일학교 교육 협조하기
㉡ 성서공부하기
㉢ 신자 재교육에 적극 참여하기
㉣ 예비신자 교리공부 도와주기
ⓕ 대사회적 활동
㉠ 동네 골목 청소하기
㉡ 환경보호에 앞장서기(물 아껴쓰기, 일회용품 사용 자제하기, 쓰레기 분리 철저하게 하기, 재활용품 사용하기)
㉢ 사회 도덕성 회복을 위한 운동에 참여하기(공공장소 깨끗이 사용하기, 공공 물건 아껴 쓰기)
㉣ 올바른 문화 정착하기 (사치품 안 쓰기, 과도한 혼수품 안 하기, 폭력, 선정 영상물 모니터링 하여 항의하기, 지역 내 교육환경에 대하여 관심 갖기)
㉤ 생명을 살리는 모든 운동에 직접 참여하거나 서명운동에 참여하기
㉥ 농촌지역 신자들과 연결하여 무공해 농산물 구매하기

이 외에도 소공동체의 특성상, 본당 특성상 꼭 필요한 활동이 무엇인지 정하여 실천한다. 소공동체 활동은 교회의 왕직, 예언직, 사제직이 온전히 실천되어야 하는 장이다. 소공동체 안에서 말씀을 듣고 함께 기도해야 할 뿐 만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을 증거 해야 하고 우리의 믿음이 실천으로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활동이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나 마찬가지다. 소공동체 활동은 소공동체 구성원들 간에 신뢰심을 더해 주고, 구성원들이 서로 일치하여 활동을 실천해 감으로써 공동체가 더욱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처럼 같이 땀을 흘리며 서로가 이웃과 지역 사회의 공동선을 위한 활동을 할 때 서로는 참되게 일치할 수 있고 공동체는 활성화되고 성장할 수 있다. 그렇게 할 때 기도도, 복음 나누기도 살아있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소공동체가 너무 활동 중심의 모임이 되어서도 안 된다. 교회의 세 가지 직무(예언직, 사제직, 왕직)처럼 말씀선포와 기도, 그리고 사랑의 봉사 활동이 균형있게 어우러져야 진정한 공동체로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활동사항을 정한 후에 시간이 허락한다면 신자 재교육 차원에서 소공동체지의 ‘5분 신앙상식’을 공부한다. 이는 공동체가 교리적으로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또한 신앙상식을 공부한 후 본당 또는 구역의 공지사항을 알리고 차기 모임 장소와 차기 진행자를 선정한다. 차기 진행자를 선정하는 이유는 복음 나누기 진행자를 모임 때 마다 돌아가며 함으로써 한 사람이 집중적으로 복음 나누기를 진행하여 나머지 구성원들이 능동적이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돌아가면서 복음 나누기 진행하다보면 새로운 지도력(봉사자)을 공동체 안에서 발견할 수 있고 구성원 모두가 복음 나누기를 진행해 봄으로써 공동체가 성장할 수 있게 하며, 자발적인 공동체가 되는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소공동체 모임은 단순한 기도 모임차원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활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 활동은 공동체의 성화와 일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말씀은 그리스도의 삶을 증거하는 것이다.
- 반드시 공동체가 실천 가능한 활동을 정하고 실천한다.
- 구체적인 활동을 정할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안배한다.
- 활동사항을 실천하지 못했을 때는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차기에 실천할 수 있도록 검토한다.
- 사정상 공동체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활동시간에 맞추어 공동체를 위해 기도한다.
- 활동사항에 대해 서로 나눌때 각자의 느낌을 나누는 것도 중요하다.

⑦ 7 단계 : 자유롭게 기도한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대로 자유롭게 기도합시다.”

진행자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기도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기도는 모임 중에 체험한 것이나 감사할 사항, 또는 일상생활에 있었던 어려움들을 포함시킬 수 있다. 공동체를 위한 기도나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것, 이웃의 문제, 하느님께 대한 감사, 찬미 등 어느 주제로든지 기도할 수 있다. 또한 성서 본문을 그대로 인용하거나 응용하여 자신의 기도로 사용할 수 있다.

자유로이 바치는 기도는 하느님께 우리의 삶을 봉헌하게 한다. 또한 자발적인 기도는 자유기도를 하기 어려워하는 신자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으므로 기도 생활에 성장을 가져오게 한다.

7단계의 마침기도는 여러 사람이 돌아가면서 기도하면 진행자가 정리하여 마무리 한다. 진행자가 마무리를 하게 되면 같이 모인 공동체의 구성원은 ‘아멘’이라고 응답한다.

-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기도하도록 안배한다.
- 공동체를 위한 기도를 포함하면 더욱 좋다.
- 자발적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스스로 연습한다.

4) 복음 나누기 7단계 후

① 소공동체가를 함께 부른다. 소공동체가는 힘 있게, 그리고 활기찬 템포로 부르는 것이 좋다.
② 소공동체의 활성화를 위해서 세 개의 기도문 중 하나를 선택하여 함께 기도를 바친다. 혹 특별한 지향을 위해 모임 끝에 기도를 할 수는 있으나 너무 길게 하지 않도록 한다.
③ 성호경으로 모임을 끝마친다.

- 모임시간이 길지 않았는지 점검한다.
- 모두가 다 함께 참여하였는지 확인한다 .

4. 소공동체 모임 후

소공동체 모임은 되도록 한 시간 정도로 끝내는 것이 좋다. 만일 소공동체 구성원들의 숫자가 많다 하여도 한 시간 반은 넘기지 않는다. 그 이상의 시간이 넘어가면 기도 분위기가 산만해져서 알차고 정겨운 소공동체 모임을 가지기 어렵다. 또한 시간을 많이 가지면 오히려 이야기의 초점이 다른 데로 흐를 수 있으므로 정해진 시간 내에 끝내는 것이 좋다.

소공동체 모임 후에는 간단하게 차 한 잔 정도를 마시고 헤어지는 것은 괜찮다. 복음 나누기 시간에 나누지 못했던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할 수 있지만 이때도 남의 흉이나 참석하지 못한 구성원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말아야 한다. 소공동체 모임 후에 꼭 지켜야 할 일은 부담이 가는 식사 준비나 특별한 상차림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혹시 소공동체 모임에 본당의 신부님, 수녀님이 참석하였다고 하여 특별한 다과를 준비하고 식사를 차린다면 다음 모임 시에 본당신부님이나 수녀님이 오는 것에 대해 부담을 가질 수 있으므로 이때도 특별한 상차림이나 식사 준비는 하지 않도록 한다.

- 소공동체 모임 후에 별도의 음식을 차리지 않도록 한다. 꼭 하고 싶으면, 차 한 잔 정도가 적당하다.
- 모임 후 일치시간이 있다면 너무 길게 하지 않는다(개인 가정에 피해가 갈 수 있다).
- 너무 길게 또는 너무 짧게 모임이 진행되었는지 점검한다.

5. 복음 나누기 7단계 평가

일년에 두세 번 정도 복음 나누기를 잘하고 있는지 소공동체 구성원들이 함께 모여 평가를 하도록 한다. 복음 나누기 7단계에 대한 자체적인 평가는 더욱 활기차고 성숙된 공동체로 만들어 준다.

단 계 평 가
1단계
주님 초대
짧게 기도하였는가?
한 사람이 계속 기도하지 않았는가?
형식적인 기도가 되지 않았는가?
주님께서 함께 계시다는 체험을 하게 했는가?
2단계
성서 읽음
모두가 해당되는 성서 내용을 다 찾고 나서 시작 했는가?
돌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외쳤는가?
독서자는 큰소리로 또박또박 읽고 있는가?
듣는 사람은 정성스럽게 집중하여 듣고 있는가?
3단계
마음에 와 닿은 구절
모든 사람이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을 참석자가 모두 들을 수 있도록 소리 내어 외쳤는가?
개인 구절을 외칠 때 적당한 침묵은 지켰는가?
다른 사람이 외칠 때 잘 들었는가?
아니면 자신의 구절을 생각하느라 초조해하지는 않았는가?
4단계
침묵, 말씀 들음
침묵시간은 적당 했는가?
실제로 침묵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가?
외적 침묵뿐만이 아니라 내적침묵을 지키려고 노력했는가?
5단계
나눔
한 사람이 독점하지 않았는가?
다른 사람의 나눔에 훈계를 한다거나 비판을 하지는 않았는가?
모두가 나누었는가?
나누는 시간은 적당했는가?
6단계
활동 정함
활동은 정했는가?
활동에 모두가 참여하였는가?
소공동체 상황과 활동능력에 맞는 활동을 정했는가?
활동 결정에 모두가 참여했는가?
주님과 함께 활동하였는가?
활동의 과정은 정당했는가?
활동의 결과는 어떠했는가?
7단계
자유기도
스스럼없이 기도 하는가?
혼자서 기도를 독차지 하지는 않는가?
너무 자주 염경기도로 대체하지는 않는가?
소공동체
모임 후
음식을 차리는 문제로 부담을 주지는 않았는가?
모임이 끝난 후 너무 잦은 식사시간을 갖지는 않았는가?
복음 나누기 시간보다 더 길게 시간을 할애하지는 않았는가?
나누는 대화의 주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었는가?

[자료] "EP-1234"에 대한 논평 - 정월기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장)

한국의 소공동체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정월기 신부님의 EP-1234에 대한 논평자료입니다. (출저: 미래사목 연구소 홈페이지)

"EP-1234"에 대한 논평 - 정월기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장), PDF 파일로 다운받기

[사례] ‘자발성’은 소공동체 유지 발전의 원동력 -- 장애인 소공동체 ‘밀밭모임’

‘자발성’은 소공동체 유지 발전의 원동력

장애인 소공동체 ‘밀밭모임’. 장애의 고통 속에서도 진실된 만남과 나눔이 오늘의 공동체를 만들었다. 밀밭모임은 소공동체를 통한 통합사목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김대근(바르나바.34.서울 삼성산본당)씨가 어렵게 입을 뗐지만 말소리는 쉽게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한참을 입 안에서만 맴돈다. 모든 사람들의 눈과 귀가 김씨의 입에 쏠렸다. 몇 번이고 응축시켰을 말을 어렵게 내어놓았지만 그의 어머니 오영해(아가다.55)씨의 입을 다시 한번 빌어서야 의미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남양성모성지를 다녀왔어요.…예수님상을 바라보면서…‘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마태 11, 29)는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모습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얼마나 암송했던지 또박또박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 풀어내는 김씨의 모습은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뇌성마비로 온몸이 뒤틀려 앉기도 힘든 김씨가 어머니의 품에 안겨 발표를 하는 동안 모두들 답답해하기 보다 한결 진지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도미영(스테파니아.33.서울 흑석동본당)씨. 한쪽 편 팔다리를 쓰기 힘든 모습이었지만 그의 입을 통해 전해져오는 심오하기까지 한 성경 지식과 묵상은 거의 충격이었다.

“당신을 배신한 모자란 제자들을 주축으로 교회를 세우려하신 예수님은 어쩌면 우습기도 해요.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신 이는 누굴까 묵상했어요.” ‘장애는 조금 불편할 뿐이다’는 말조차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많이 적어 왔는데…미치겠네.” 한 바탕 웃음을 일으켜놓은 그의 말이 이어진다. “제가 고통 속에 있을 때 예수님도 나와 함께 고통 받으셨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예수님의 고통에 동참해야지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살아있는 성인은 바로 자신의 고통을 받아들이고 그를 통해 성인을 인정하고 성인의 길을 따르는 사람이 아닐까 해요.”

‘밀밭모임’이 시작된 것은 지난 1986년. 서춘배 신부(의정부교구 구리본당 주임)가 신학생 시절부터 만나오던 장애인들과 함께 한달에 한번 정기적인 만남의 장을 마련하면서부터다. 소외와 외로움 속에서 홀로 몸부림쳐야 하는 장애인들이 하나 둘 모이면서 자리를 잡기 시작한 밀밭모임은 그 이름도 장애인들이 스스로 지었다. 가난한 사람들을 복음화하기 위해 가난한 이들 가운데서 가난하게 살아가는 프라도 사제회의 정신을 따르자는 뜻에서 모임 이름을 밀밭(프라도)이라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밀밭모임은 지금껏 한번도 거르지 않고 회원들 집을 옮겨 다니며 월례 모임을 열고 있다. 알음알음 모임 얘기를 전해 듣고 한 두 사람씩 함께하다 보니 소속 본당도 제각각이다. 장애인들이 주축이 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가족과 봉사자들도 회원이 돼 그 어떤 공동체보다 끈끈한 정으로 다져진 모습이다.

지난 1997년부터 아들과 모임에 함께해오고 있는 오영해(아가타)씨는 “밀밭모임은 아들은 물론 우리 가족에게 희망의 끈이자 살아가는 힘”이라면서 “어떤 모임 보다 깊이 있고 꾸밈없는 나눔이 있기에 회원들은 물론 가족들도 하느님 사랑을 느끼며 변화되어 올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김학목(바오로.53.서울 후암동본당) 회장은 “고해성사하듯 넋두리를 늘어놓듯 솔직하고 진실된 만남과 나눔이 오늘을 있게 한 원동력이 된 것 같다”면서 “사제의 변함없는 자세가 공동체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데 무엇보다 필요한 것임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밀밭모임에 함께 해오고 있는 서춘배 신부는 “오히려 고통 속에서 깊이 있는 체험과 사색을 할 수 있는 이들이 복음에 비춰 자신들의 삶을 나누고 또 변화시켜 나감으로써 오늘까지 소공동체를 이어올 수 있었다”면서 “장애인과 가족, 봉사자들까지 자연스럽게 복음화됨으로써 소공동체가 목표로 한 통합적인 사목이 가능하게 되는 것 같다”고 밝혔다.

우리 정서 현실에 맞는 소공동체 정착돼야

소공동체는 신자들의 ‘자발성’을 자양분으로 해 그것을 먹고 자라는 교회의 세포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소공동체 안에서 자발성이 사라질 때 신앙은 빛을 잃고 본래의 정신은 사그라질 수 밖에 없다.

이런면에서 장애인 소공동체 ‘밀밭모임’은 신자들의 자발성을 어떻게 키우고 발현하게 할 수 있는가 하는 점에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소공동체사목전국협의회 기획연구위원장 곽승룡 신부(대전교구)는 소공동체 사목이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는 현실과 관련해 “룸코 방식의 운영은 룸코에서 보존되어야 한다”는 말로 문제의식과 함께 해법을 보여준다. 지난 1990년대부터 소공동체 사목의 진원지인 남아프리카공화국 룸코연구소를 통해 도입돼 한국 교회에 뿌려진 소공동체 모델을 넘어서야 한다는 게 그간의 소공동체 경험에서 걸러낸 결실이다.

곽신부는 “소공동체 성공의 관건이 되는 신자들의 자발성은 염두에 두지 않고 성과에만 매달려 서둘렀던 면이 적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우리의 정서와 현실에 맞는 토착화된 우리식의 소공동체 지침서와 교본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그는 우선 개인이나 단체 차원에서 개별적으로 이뤄지는 교육이 아닌 통합적이면서 전체 공동체를 아우를 수 있는 교육의 필요성을 제안한다. 나아가 성직자와 수도자를 비롯한 교회 내 각 구성원과 사목 현장 및 연구소 등의 협력을 바탕으로 본당공동체를 교회다운 교회의 모습으로 살려나감으로써 소공동체가 연착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떤 정책이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일방적이기 보다 쌍방향적이고 순환적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 교회에서 숱하게 부침하는 사목적 사안에서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선순환(善循環)을 일으킬 수 있는 핵심고리는 무엇인가.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사제, 특히 고위 성직자들의 시각 변화라 할 수 있다. 소공동체가 몇 몇 사목자나 지도자들에 의해 주입되는 영양제나 주사액에 그치지 않고 늘상 맛보고 건강을 유지시켜줄 수 있는 식탁의 음식이 되기 위해서는 교회 지도층을 구성하고 있는 사제부터 바뀌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소공동체의 전개 과정에서 보여지듯 소공동체 비전과 교회의 사목 정책간에는 엇박자가 적지 않았다. 이는 한국 교회가 지닌 비전과 사목의 충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런 현실이 해소되지 않으면 신자들의 신앙생활에서 교회의 역할은 더욱 축소되고 이로 인해 ‘신앙 따로, 삶 따로’식의 경향이 더욱 고착되는 악순환 구조가 강화될 것임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소공동체는 쇄신을 지향하는 한국 교회의 비전에 직결된다. 이미 소공동체라는 주사위는 한국 교회와 신자들 앞에 던져져 있다.

[사례] 대전교구: 산성동본당 소공동체 운동 개괄

출처: 대전 교구청 2006/08/28

1992년 8월 12일 신설된 저희 대전교구 산성동 본당은 대전 동물원과 뿌리공원 근방 산언덕에 나무숲을 병풍처럼 등지고 성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금년 성삼일 전날까지만 해도 본당 설립 13년이 넘도록 저희 산성동본당은 성전건립공사를 마무리 짓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13년이 넘는 기나긴 성전건립 기간을 보내면서 본당 공동체에는 상처와 갈등이 이어졌고 신자들은 누적된 피로에 시달렸습니다.

이에 2004 2월 12일 본당 제3대 주임으로 부임한 윤병권 요셉 신부님은 눈에 보이는 성전 완공보다 신자 각자의 마음의 성전을 굳건히 다져야 할 필요성과 시급성을 인식, 성전건립을 잠정 중단하고 동년 3월 소공동체 준비 위원회를 조직하여 동년 6월 20일 본당 관할 지역을 7개 지역 54개 소공동체로 나누어 소공동체 봉사자 파견 예식을 거행하고 소공동체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이와 함께 본당 사목회 조직도 개편하여 남, 여 부회장이 각각 남성, 여성 소공동체를 총괄하도록 하였으며, 2004년 12월부터는 구역장들에게 구역 소공동체들의 총책을 맡기고 사목 위원과 같은 지위를 부여하여 매 분기마다 사목회에 참석하여 개별 소공동체의 활동사항 보고와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 남, 여 소공동체 봉사자 월례 모임을 각각 실시하여 이를 통해 소공동체 기초교육과 소공동체를 운영의 애로사항과 개선점을 함께 모색 하는 장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현재 저희 산성동본당은 기도 중심의 가정 공동체, 말씀 중심의 소공동체, 전례 중심의 본당 공동체라는 3가지 사목 목표를 설정하고 사목회 조직, 교육 프로그램, 본당 연중 계획도 모두 소공동체를 중심으로 계획, 실행하고 있습니다.

저희 산성동 본당은 주 1회 소공동체 모임을 보장하기 위하여 금요일을 소공동체 모임의 날로 정하여 사목회 분과 모임 및 제 단체 모임, 레지오 마리애 등을 모두 금요일을 피해 일정을 잡도록 하고 있습니다.

소공동체 교육 프로그램도 본당 자체로 운영 하고 있습니다. 즉 전국 소공동체 봉사자 교육 수료자들을 중심으로 소공동체 교육 팀을 구성하여 상설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상하반기 2회에 걸쳐 특강을 마련하여 전 신자를 대상으로 소공동체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매년 연말에는 소공동체 봉사자의 날 행사를 마련하여 소공동체 봉사자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격려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또 남녀 부회장과 남녀 각기 3인, 총 8인의 소공동체 위원회를 조직, 소공동체에 관련된 일들을 기획, 홍보할 수 있는 조직을 마련하고 있으며, 금년부터는 사목회에 홍보분과를 신설, 홍보분과위원장을 소공동체 위원회 당연직으로 임명 산성동 성당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 하였으며, 본당 소공동체 활동을 중점적으로 홍보하고 소공동체 교육에 활용토록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교구에서 제작 배포되는 소공동회보를 사용했으나 본당 실정과 동떨어진 감이 있어 소공동체 위원회에서 소공동체 회보-함께 사는 공동체-를 매월 발행하여 소공동체 모임후 각자가 소공동체에서 자기모습을 스스로 점검할 수 있는 점검표를 제공하고 있으며, 신앙생활 점검표를 두어 각자 자기의 신앙생활을 점검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 모범 소공동체의 소공동체 일지를 게재하여 타 소공동체의 참고자료로 활용토록 하고 있으며, 소공동체 위원회에서 준비 중인 소공동체 수첩에 게재할 내용을 미리 게재하고 있습니다.

금년 6월 12일에 개설된 예비신자 교리에서도 소공동체와 함께하는 예비신자 교리서인 함께하는 여정을 채택 선교분과 소속 교리교사 봉사단을 육성 총 7개 교리 반을 개설, 소공동체식 교리 교육을 실시하여 예비신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으며, 오는 9월 영세식을 앞두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에게도 기존 주일학교 프로그램의 한계를 극복하고 바른 신앙 교육을 위해 소공동체식 교육 프로그램인 PESS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교리교육의 질을 한층 업그레이드하고 있습니다.

또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청년 소공동체 모임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청년들이 성경과 보다 가깝고 친근해 지기 위해 청년 성경 모임을 개설하여 운영 중입니다.

현재 저희 본당은 소공동체 운동을 도입한지 2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지만 대전교구 소공동체 시범본당에서 대전교구 소공동체 모범 본당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습니다.

소공동체 운동이 도입 된 이후 저희 산성동본당은 참으로 놀라운 변화가 일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3일 본당의 날 행사로 배론 성지 순례가 있었는데 600여명이 신자가 성지순례에 참여하였습니다. 주일미사 참례자가 총 750 여명인데 600 여명이 성지순례를 했다는 것은 참으로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소공동체 운동을 시작하기 전 550명가량이던 주일 미사 참례자가 지금은 800 여명을 넘고 있는데 이는 유입 신자의 증가보다 그동안 신앙생활에 미온적이던 신자들이 돌아오고, 적극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가 늘었다는 것입니다.

소공동체 모임 시작 이후 장기간 성전건립을 하며 커져가던 신자들의 피로도 회복되고 있는 모습이 확연히 보이고 있습니다. 성전 건립 초기 200 여 세대에 불과하던 성전건립기금 신립가구가 이번 성전 마무리 공사에는 400세대가 넘었다는 것이 그 명백한 증거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응집력을 토대로 드디어 금년 성목요일 말끔히 단장된 새성당에서 감격의 첫 미사를 봉헌할 수 있었으며 이제 고대하던 봉헌식만 남겨두고 있습니다.

이렇게 저희 산성동 본당은 소공동체가 도입된 후 신자들의 신앙생활은 적극적으로 변해가고 있으며 모든 소공동체 활동의 자율성과 평신도 중심이념이 확고히 지켜지고 있습니다. 사제에의 의존도를 최소화할수록 소공동체는 더욱 활성화 될 수 있다는 본당 윤병권 요셉 주임 신부님의 이념이 적중하고 있다하겠습니다.

현재 저희 본당 소공동체는 10개 구역 59개 소공동체가 거의 매주 부활하신 주님을 모시고소공동체모임을 갖으며 주님 안에서 형제적 사랑과 친교, 나눔 그리고 적극적인 교회 안팎의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례] 인도 고아 교구 ․ 망갈로 교구 소공동체 방문 보고

인도 고아 교구 ․ 망갈로 교구 소공동체 방문 보고

류현수 신부
최민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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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EP-1234 프로그램 그림자료

차동엽 신부님의 "성공하는 교회에는 비밀이 있다"는 책자에서 소개된 EP-1234 프로그램의 원리를 한눈에 쉽게 볼 수 있는 그림 자료를 첨부합니다. 아래의 그림을 마우스로 클릭하면 프린트 가능한 PDF 문서가 열립니다.

EP-1234 프로그램에 대한 세부적인 해설과 설명은 아래의 링크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자료] 긍정적인 말, 그리고 훌륭한 결과 - 대화의 기술


지난 소공동체 봉사자 워크샵에서 나온 의견 중 대화(나눔)을 하는데 있어 지적된 문제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대화(나눔)에 하는데 필요한 중요한 지침을 모았습니다. 이 자료는 35년간 샌스프란시스코 대학 교수로 재직한 Hal Urban 씨가 저술한 "POSITIVE WORDS, POWERFUL RESULTS" 라는 책에서 정리 요약한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내에서 대화(나눔)을 할때 좋은 지침으로 활용되기를 바랍니다. - 워크샵 준비팀

Dirty Thirty words- people do not like to hear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단어 30개
1 Bragging 자랑하기
2 Swearing and other gross-out language 맹세하기 또는 혐오감을 일으키는 언어
3 Gossip 험담
4 Angry words 화를 표현하는 말
5 Lies 거짓말
6 Mean-spirited and hurtful words 불친절하거나 상처를 주는 말
7 Judging others 남을 판단하기
8 Playing “poor me”-the self pity game 자기에게 동정을 일으키는 말
9 Making discouraging remarks 좌절시키는 말
10 Embarrassing and humiliating people 사람을 당황하게하거나 모욕을 주는 말
11 Excessive fault finding and criticism 지나치게 비판하는 말
12 Complaining,moaning, whining 불평하기
13 Rude and inconsiderate language 무례하거나 배려가 없는 말
14 Teasing 놀리기
15 Manipulation 남을 조정할려는 말
16 Trying to impress others with phony and insincere comments 진실되지 못한 말로 남을 인상을 주려고 하기
17 Ethnic and racial slurs 인종차별적인 모욕을 주는 말
18 Sexist comments 성차별적인 말
19 Age-related put-downs 나이와 관련된 상대를내리깍는말
20 Being negative-always pointing out what’s wrong 부정적인 말- 항상 잘못된것을 지적한다
21 Threats 위협
22 Arguing 논쟁
23 Interrupting-not letting the other person finish 상대가 말을 끝나기 전에 끼어들기
24 Playing “trump”- always topping someone else’s story 항상 다른이의 이야기를 누르기
25 Being a know-it-all 모든것을 안다고 하는말
26 False flattery 거짓되게 아부하는말
27 Yelling 소리치기
28 Talking down to people-being condescending 상관이 명령하듯 말하기
29 Exaggerating 과장하기
30 Blaming and accusing others 남을 비난하기
The Flagrant four 두드러지게 나쁜 4단어
1 Swearing and gross-out language 맹세하기 또는 혐오감을 일으키는 언어
2 Complaining, moaning, whining 불평하기,칭얼대기, 탄식하기
3 Mean-spirited and hurtful words 불친절하거나 상처를 주는말
4 Rude and inconsiderate language 무례하거나 배려없는 언어
The best choices for using words to affirm life in others and in ourselves 타인이나 본인의 삶을 긍정적으로 만드는 최고의 단어들
1 Give encouragement 용기를 북돋아주기
2 Express thanks 감사표시
3 Acknowledge others 다른사람 인정하기
4 Extend greetings 인사하기
5 Give a compliment 칭찬하기
6 Congratulate someone 축하하기
7 Teach, give instructions 가르치기
8 Offer words of comfort 위로하기
9 Inspire others 다른이에게 감동주기
10 Celibrate and cheer 축하하기
11 Inquire,express interest 물어보기 관심표현하기
12 Mend relationship 잘못된 관계를 고치기
13 Make others laugh 다른이를 웃기기
14 Show faith and trust 신앙과 신뢰표현하기
15 Share good news 좋은소식 나누기
16 Praise,honor,build up 칭송, 영예롭게하고, 쌓아올리기
17 Express caring 보살핌을 표현하기
18 Show understanding and empathy 이해하고 있음 표현하기
19 Give approval 승인하기
20 Extend an invitation 초대하기
21 Show courtesy and respect 존중하기
22 Give advise and council 조언하기
23 Apologize 사과하기
24 Forgive 용서하기
25 Offer to help 도움제공하기
26 Tell the truth 진실을 말하기
27 Point out the good 좋은점 지적하기
28 Use the term of affection 호의,애정의 말을 사용하기
29 Provide valuable information 값진 정보제공
30 Communicate love 사랑을 전달하기

[자료] 복음나누기와 소공동체 운영원리 - 차동엽 신부

복음나누기와 소공동체 운영원리 - 미래사목연구소 소장 차동엽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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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차 -

I. 소공동체의 원리와 기능, 활성화 방안
1. 소공동체의 이해
2. 소공동체의 수렴 및 파견 기능
3. 소공동체는 전략이 아니라 생존이다
4. 소공동체의 통합적인 기능
5. 소공동체의 조직화

II. 현대 신자교육법과 단계적 성장 교육
1. 현대 신자교육법
2. 단계적 성장 교육의 실례

III. 소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통합적 운영원리 EP-1234

[자료] 신년좌담 - 2020, 한국 사회와 교회는?

[신년좌담] 2020, 한국 사회와 교회는? (출처: 가톨릭 신문)

전원 신부, 차동엽 신부, 박영대 소장
“급변하는 시대…각종 사회문제 더욱 심화”

전 “신유목사회를 살며 정보 욕구에 따른 유동성 자율성 확대 예상”
차 “상상 그 이상의 변화 찾아올 것…이해와 수용하는 교회상 필요”
박 “저출산 고령화 개인주의 자연 재해 종교 갈등 더욱 심화될 것”

미래 교회 사목 현장엔
여성 총회장 대거 등장

교구간 ‘벽’ 허물고
원활한 소통 이뤄야

최근 들어 사회와 교회 공히 향후 10여년간을 전망하는 기점으로 2020년을 거듭 논의하고 있다. 2020년에는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화될 것인지에 대한 전망을 바탕으로 미래에 대한 효과적 대응 방안을 모색하려는 성찰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 역시 최근 수년 동안 2020년을 미래 사목을 가늠하는 한 시점으로 삼아 사회 및 교회 환경을 분석하고 이러한 사목 및 복음화 환경이 어떤 변화를 거쳐나갈 것인지를 전망하면서 사목적 대안을 성찰하고 있다.

2020년이 갖는 의미와 중요성을 염두에 두면서 2020년의 사목적 전망과 대안을 주제로교회내의 사목 및 신학 연구소 책임자들의 좌담을 마련했다. 좌담은 주어진 질문을 바탕으로 서면으로 이뤄졌다.

▲ 2020년이라는 시점은 향후 우리 사회, 교회의 변화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하나의 기점이 될 것입니다. 한국 사회가 2020년에는 어떻게 변화될 것인지요.

전원 신부(이하 전) : 저희 통합사목연구소에서 지난 11월 ‘2020년 한국사회와 가톨릭교회’에 대한 연구발표회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2020년 시점에 대한 한국사회를 특징짓는 개념이나 현상을 한마디로 정리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IT혁명이 10년 후에도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계속하리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IT 혁명으로 얻어진 이런 사회를 ‘신유목사회’라고 부르는 것에 동의합니다. 유목민들이 양떼들과 함께 초원과 물을 찾아 끊임없이 움직이듯이, 10년 후에도 사람들은 자신들이 얻은 정보로 자신들의 욕구와 가치에 따라 현실적 공간 뿐 아니라 사이버 공간 안에서도 끊임없이 움직이는 유동성의 시대가 심화되리라 생각됩니다.

이런 신유목사회에서는 집단이나 조직보다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정보의 힘이 확대되면서 자율성과 자유가 지금보다 더 확대될 것입니다. 기성 종교나 제도의 통제기능은 약화되고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와 경험에 따른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서 더욱 다원주의가 사회, 문화 전반에 확산되고 심화될 것입니다.

또 육체 노동이 아닌 지식과 정보가 경제 기반이 되면서 여성의 사회진출은 남성을 앞지르게 될 것이고, 자신의 가치와 필요에 따라 사이버 공간 안에서 감성적 연대를 하는 다중(multitude)이 여론을 결집하면서 신유목사회의 실질적 세력이 될 것입니다. 이밖에도 2020년에는 국가적 경계가 약해지고 국제화시대가 가속화될 것이며, 노령화에 따른 새로운 산업과 문화가 등장할 것입니다.

◇차동엽 신부(이하 차) : 우리 사회의 변화 추이에 있어서 이번 대선은 큰 변수가 될 것입니다. 이른바 ‘성공시대’의 무드가 다시 회귀할 것입니다. 대개 성공시대의 뒤에는 행복시대가 이어집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행복에 대한 염원이, 좌절된 성공시대를 이어서 왔지만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됨으로써 성공시대가 다시 힘을 얻을 것입니다.

하지만 임기가 끝나는 시점이면 성공시대의 무드는 다시금 행복과 평화에 대한 갈증에 길을 내어줄 것입니다. 그래서 2020년에는 사람들의 가치관에 있어서 더욱 ‘행복’에 대한 뚜렷한 가치관이 드러날 것입니다.

물론 그 사이에 엄청난 기술적 변화들, 물론 지금도 기술의 발전은 눈부시지만, 그때가 되면 기술 변화, 주로 지식 융합으로 발생할 사회적 변화는 지금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변화들 속에서 사람들의 박탈감과 소외감은 증가할 것입니다. 기계에 대한 예속화가 진행될 것입니다.

그 가운데 시간에 대한 관념이 변화할 것입니다. 옛날 10년이 지금은 1년이듯, 지금 1년의 변화는 앞으로 한 달에 이뤄집니다. 교회는 사회의 시간 관념의 변화에 대해서 적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녀 역할과 가족의 형태에 있어서도 변종과 변이가 발생합니다. 어쩌면 이에 대해서 윤리적 차원에서, 교회의 된다 안된다 하는 규정보다는 이해와 수용이 요구되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광범위한 다원주의 속에서도 향후 교회는 오히려 복음주의적인 입장이 더욱 강화되는 때가 올 것입니다. 다원주의 신앙의 허구성은 검증을 통해서 노출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템플스테이는 영적인 충만함을 체험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허망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세계적인 판도의 변화도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2020년, 중국은 선교 대상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인도와 함께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해야 할 종교시장으로 대두돼 있을 것입니다. 물론 한국은 그 복음화를 위한 한 축을 담당하게 될 것입니다.

박영대 소장(이하 박) : 국가 기관은 대체로 2020년을 목표로 중장기 계획을 세웁니다. 서울대교구 2020복음화운동, 청주교구 비전 2050도 2020년을 겨냥합니다. 하지만 대희년이 그랬듯이 2020년도 상징일 뿐입니다. 하지만 상징은 사람 마음을 모으고 현실을 드러내는 데 좋을 때가 있기도 합니다.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세계와 우리 사회의 핵심 요소는 세계화입니다. 시장과 물신을 숭배하는 신자유주의가 주도하는 세계화는 우리 삶을 더욱 강하게 옥죄고, 실업, 비정규직, 양극화 문제는 더욱 심화되며, 이로 인한 사회 갈등도 심해질 것입니다. 가정은 더 해체되고, 저출산 고령화는 더 심해질 것이며, 이주 노동자도 더 늘어나 더욱 다문화 다인종 사회가 될 것입니다. 농업과 농촌은 거의 무너질 것이고, 남북 교류는 경제 교류 협력을 중심으로 더 확대되어 군사 긴장은 사라질 것입니다. 세계, 아시아, 한반도에서 중국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정보화는 사회 전반, 특히 문화를 크게 바꾸어놓을 것입니다. 정보 기술의 발전과 퍼스널 미디어의 확산은 개인화와 세대 사이 정보 격차를 더욱 심화시킬 것입니다. 생태 위기로 말미암은 자연재해도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민사회운동도 꾸준히 펼쳐질 것이고, 시민사회 영역과 종교 영역 사이의 갈등도 더욱 심해질 것이며,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종교 사이 경쟁도 심해질 것입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개신교 보수층이 뉴라이트운동을 통해 개신교 장로 대통령 만들기에 적극 나선 게 그 시작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도 희망은 근본 대안을 모색하고자 하는 대안운동도 작은 규모로 꾸준히 펼쳐질 것이라는 점입니다.

▲ 위와 같이 한국 사회의 변화를 전망하신 것과 연관 지어 주시면서, 한국교회의 변화는 어떤 양상으로 나타날 것으로 보시는지요?

전 : 이미 지난해(2007) 저희 통합사목연구소에서 이 문제에 대하여 두 차례에 걸쳐 발표회를 가졌는데 사회현상과 교회가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신자들의 개인 신앙심은 높아진데 비해 교회생활 투신도와 공동체 소속감은 오히려 약화되어 가고, 탈 제도적 성향이 강한 다원주의적 종교관이 교회 안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통계학적 추세에서도 나타났습니다. 연구소 조사를 보면, 2020년에 영세자수는 인구대비 13% 정도인데, 냉담자는 신자수의 거의 43%에 육박합니다. 주일미사 참례자 수가 2020년에는 21%정도로 감소하고, 영세 견진 고해성사 및 혼배성사 역시 급격히 감소하는 추세를 보여줍니다.

반대로 미사 참석과 고해 성사자 수는 줄어도 영성체자 수는 늘어가는 현상을 보이는데 이는 서구교회처럼 성사를 보지 않고도 영성체는 하는 사람들이 늘어남을 말해줍니다. 즉 교회생활 역시 교회 가르침이나 권위의 통제보다, 개인의 교회에 대한 이해와 가치에 따라 신앙생활을 하는 ‘신유목사회’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한편 2020년이 되면 여성신자가 줄고 남성신자는 늘어나 성비가 거의 같게 나타납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높아지면서, 여성들이 신앙보다는 사회활동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며, 반대로 사회 안에서 여성에게 잠식당한 남성의 활동이 교회 안으로 유입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밖에도 교회의 노령화현상이 사회 노령화에 비해 훨씬 더 크게 나타납니다. 2020년에는 40대 이상의 신자비율이 총신자의 70%에 이르고 있고 60대 이상도 24%에 이르는 노령화된 교회의 모습이 추세조사에서 나타나 있습니다.

박 : 한국 교회의 양 지표(量 指標)는 지금 변화 방향과 속도를 유지할 것입니다. 신자 수는 늘지만 신앙 몰입도는 더욱 약해질 것입니다. 냉담 신자가 늘고 단체와 반모임 참여도는 줄 것입니다. 교회 안에도 양극화가 심해져 열심 신자와 소극 신자로 양극화될 것입니다.

세계화의 최대 희생양 가운데 하나인 농업, 농촌의 붕괴는 농촌 교구들을 침체시킬 것입니다. 신자의 수도권 집중이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이고, 교구 사이 불균형은 더 심화될 것입니다. 중산층화도 더 심화되고, 교회 주요 봉사직은 활동할 시간 경제상 여유가 있는 이들이 담당할 것입니다.
이는 사회 소외층이 다시 교회 안에서도 소외되는 현상을 부추길 것입니다.

각 사목 영역에서의 부정적 현상은 더 심화될 것입니다. 특히 청소년 청년 신자의 몰입도는 더 낮아질 것이고, 이는 교회 안 사목 악순환을 부추길 것입니다. 현재 지역 중심의 반모임 중심으로 추진하고 있는 소공동체 사목은 우리 교회의 공동체성을 되살리는 데 실패할 것입니다. 반모임 중심에서 벗어나 다양한 소공동체 운동을 추진해야 합니다.

차 : 신바람, 은총, 복음신앙이 아니면 현대 세계에서 복음 선포의 가능성을 발견하기가 어렵습니다. 노동자, 워커(worker)의 시대를 넘어서서 지금 이 시대만 해도 플레이어(player)시대의 절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신앙도 ‘재미’가 없으면 도태됩니다. 지금도 그러한데 2020년에는 얼마나 더 그렇겠습니까. 재미있고, 신나고, 행복을 주는 신앙을 계발하지 않으면 종교의 가능성은 어두울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을 윤리적, 율법주의적으로만 제시한다면 복음화의 가능성은 어두어집니다. 교회가 진정한 행복, 위로, 안식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여성이 사회에서 자기 위상을 찾듯이 교회는 미래사목에서 여성의 지위를 선도적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예컨대, 여성 총회장들이 대거 나타날 때가 올 것입니다.

최근 서울대교구에서 상담심리센터를 개설했는데, 매우 바람직한 일입니다. 2020년이라는 시점은 수많은 영적 상담이 요청되는 시기가 될 것입니다. 심리학에 바탕을 둔 상담은 한계가 있습니다. 종교만이 할 수 있는, 철학과 영성에 바탕을 둔 상담과 치유라는 측면에서 볼 때, 가톨릭교회의 가능성은 무한합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성공’시대는 필히 ‘행복’시대의 요청으로 이어질 것이고 행복을 위해서는 반드시 ‘참 소중한 나’와 ‘참 소중한 당신’에 대한 인식이 필요합니다. 나와 당신에 대한 무조건적 수용의 요청은 삶의 ‘의미의 구현’과 박애와 사회복지의 중요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져올 것입니다. 교회는 여기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행복, 수용, 자아실현, 사회복지, 자원봉사운동, 등이 2020년에는 크게 붐을 이룰 것입니다.

▲그러면 이같은 변화들을 사목적 관점에서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지요?

박 : 세계화는 물신(物神) 숭배를 부추깁니다. 물신은 교회도 유혹하고 있습니다. 성장과 성공 지상주의가 그것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세상 가치로 본다면 실패자, 십자가 처형을 당한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이들의 공동체입니다. 달라야 하는데,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휩쓸리고 있습니다. 물신의 유혹은 더욱 거세질 것이니 정신 차리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 성장주의, 성공주의를 확인하는 건 가슴 아픈 일입니다. 서울대교구가 20% 신자 비율을 목표로 내거는 일은 그 의도가 그렇지 않을지라도 신자들이 과정보다 목표에 목매게 할 수 있습니다.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축복해야 할 대상은 성장과 성공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열매를 이웃, 특별히 가난한 이웃과 나누려는 마음과 실천입니다. 교회 몫은 당연히 성장과 성공의 그늘에서 신음하는 우리 시대의 보잘것없는 이, 예수와 벗이 되는 일입니다. 성장과 성공의 큰 길에서 팡파르를 울리는 일은 교회가 아니더라도 할 사람이 많습니다.

전 : 사회와 교회의 미래에 대한 밝은 면보다는 어두운 면을 짚어보는 것은 이에 대하여 교회가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가하는 문제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사목적 관점에서 보면 한국사회의 빠른 변화에 비해 교회는 이에 대한 대처나 적응이 느린 편이었고 교회 내부에서조차 방관자적 입장에서 세상의 시류와 함께 떠내려가고 있는 모습을 저희들이 조사한 통계적 지표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사제 또는 신자 개인의 신앙생활은 그전과 다를 바 없다고 말씀드릴 수 있지만, 시대의 징표를 읽어내며 사목적 비전을 창출하고 복음적 가치를 사회 안에 실현하는 적극성은 미미해 보입니다. 사목에 대한 기획과 연구, 교육과 실천으로 이어지는 교회의 핵심활동이 활발해져야 할 것입니다.

차 : 이제까지 교회는 사회의 윤리, 문화적 변화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이제는 수세적인 입장에서 자기 방어만 할 것이 아니라, 대안을 제시하기 위한 노력과 역할이 필요합니다.

잘 아시는 마더 데레사 수녀의 진정한 가치는 앞으로 더 크게 부각될 것입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역시 앞으로 전세계 가톨릭 신자 들뿐만 아니라 비신자들에게도 그 생애와 정신, 삶이 보편적인 모범으로 평가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2020년 전에 제3차 바티칸공의회가 필요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핵심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생명에 대한 입장의 정리입니다. 2차 바티칸공의회가 모더니즘을 분석한 것은 지금까지도 유효합니다. 하지만 생명에 대한 수많은 입장의 차이들이 현재 세계 안에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입장을 다시 한 번 확인해야 합니다. 두 번째가 전례개혁입니다. 미사와 관련된 문화를 다시 성찰해야 합니다. 이 시대의 시간 감각은 미사가 제정될 당시의 시간 감각과 매우 차이가 큽니다. 이 시대에 걸맞는 미사 감각이 요망됩니다.

▲이런 전망과 평가를 바탕으로 한국교회가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사목적 과제는 무엇인지요?

박 : 무엇보다 사목 패러다임을 바꿔야 합니다.

첫째, 양(梁) 지향에서 질(質) 지향의 사목으로 바꿔야 합니다. 이를 위해 현재 제시된 여러 교구의 양 중심 비전은 질 중심 비전으로 바꾸거나 보완되어야 합니다.

둘째, 사목이 다원화되어야 합니다. 신자의 다양한 조건과 처지에서 사목 패러다임을 다시 짜야 합니다. 미사 참례와 고해성사를 기준으로 냉담 신자와 수계 신자로 구분하는 건 너무 이분법입니다. 통계상 3년 동안 고해성사를 보지 않은 걸 냉담 기준으로 삼는 것도 별 근거 없습니다. 신자의 서로 다른 처지에 맞게 하느님 나라를 살도록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사제 수도자 평신도 지도자 양성 때 다원화를 체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셋째, 사목이 통합되어야 합니다. 사목 영역 사이, 교구 사이 단절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사목영역별, 교구별 연구기관 설립은 기본이고, 이들의 연구 성과를 통합할 수 있는 기관과 활동이 필요합니다. 한국사목연구소를 다시 열고 오히려 강화시켜야 합니다. 사목 영역별 통합사목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가정입니다. 다원화되는 가정을 어떻게 도울 것인지 각 사목 영역별로 고민하고 통합해서 실천해야 합니다.
교회 안팎을 잇는 가톨릭사회운동, 대안 공동체운동의 활성화도 필요합니다. 이 운동은 교회 쇄신과 질 성숙에 필요합니다. 또한 이들 운동을 통해 양성되는 평신도 지도자는 교회 쇄신과 사회 복음화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 됩니다.

끝으로 사제 임기를 조건부 연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자가 끊임없이 이동하는 시대에 사제가 5년 동안 신자를 익히고 사목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5년 임기를 기본으로 하되, 사제와 신자의 뜻을 물어서 연임이 가능하도록 해 지속성 있는 양성과 사목이 가능하도록 뒷받침해야 합니다. 10년 이상을 한 지역에서 사목해야 합니다.

차 : 교구간의 벽을 헐어야 합니다. 교회는 첨단 컨셉을 수용하는데 미숙합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교구간의 높은 장벽입니다. 교구간 원할한 소통은 한국 교회 전체 발전의 필수적인 선결 과제입니다.

두 번째는 사목정보의 소통입니다. 각 본당에 보면, 숨어있는 예언자들, ‘남은 자들’이 많습니다. 훌륭한 사목자들이 많이 계십니다. 열정적으로 창조적으로 사목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문제는 이분들의 노력과 시도에 대한 원할한 정보의 교류가 없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아시아 교회를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에 있어 규제나 제약이 아니라 ‘교통정리’가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식민주의’ 양상을 띠지 않도록 효율적인 교통정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 통합적인 기구를 설치할 것이 요구됩니다.

전 : 2020에 대한 관심은 2004년도 서울대교구장님의 사목교서에서 2020년에 인구대비 신자비율 20% 달성이라는 선교목표의 설정에서부터입니다. 목표는 가능할 수 있지만 문제는 교회 내적 모습이 허약하다는 것입니다.

즉 ‘복음화하는 교회’보다 ‘복음화되는 교회’에 더 초점을 맞추어야 할 때입니다. 핵심은 교회의 전반적 쇄신에 있습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중장기적 과제는 교구 직제 정비, 교육체계, 그리고 소공동체 중심의 신앙 활동을 주축으로 하는 종합적인 계획 수립입니다.

교구는 기구를 축소하여 기획과 연구 중심으로 전환하고, 사목실행 부서는 과감하게 현장중심, 평신도 중심으로 ,축을 옮겨가야 합니다. 현장 중심의 대리구제를 도입하고 본당의 조직을 소공동체 중심으로 바꾸어 운영하는 수원교구의 경우, 대리구별 사제들의 친교는 물론 공동사목활동이 활발해졌고, 본당에서는 냉담자가 줄고 미사 참례율이 높아지는 가시적 변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사제와 평신도들의 지속적인 교육 체계와 프로그램의 개발이 시급합니다. 사제들의 평생교육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제들이 의무적으로 취득해야 할 연차별 학점제의 운영이라든가 사제학교의 개설 등 사제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합니다. 또한 평신도 지도자의 양성은 필수적입니다. 신학대학, 교리신학원 등과 연계된 평신도들의 지속적인 양성을 위한 교육체계를 갖추고, 디지털 신학대학 등을 비롯한 신자들이 쉽게 교육받을 수 있는 사이버 시스템을 마련해야 합니다.

지구 또는 지역마다 직업, 환경, 문화, 취미에 따른 특화된 본당이 설립되어 ‘신유목민’ 시대에 걸맞게 신축성 있는 교회 운영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본당의 운영과 소공동체는 여전히 중요합니다.

소공동체는, 이웃을 잃고 참된 만남을 이루지 못하고 차가운 사이버 공간을 떠돌고 있는 현대 유목민들에게 교회가 반드시 마련해야 할 영적쉼터입니다. 신유목민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소공동체로 이루어진 교회상을 실현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과제이지만, 여전히 우리 교회가 포기할 수 없는 사목적 비전임이 틀림없습니다.

정리 박영호 기자

[자료] 신바람 신앙을 꿈꾸며 - 미래사목연구소

평화신문 2006. 06. 18발행 [876호]

"신바람 신앙을 꿈꾸며"

잃어버린 '은총' 되찾기

 오늘날 선교현실을 극단적으로 표현해 본다면, 40대 이상 연령층에서는 '선전', 40대 미만 연령층에서는 '부진'으로 결론 내려진다. 최근 2005년 인구조사 결과가 발표돼 지난 10년간 의외로 불교와 개신교 측보다 가톨릭 신자증가율이 높게 나타난 것이 고무적으로 느껴지지만, 40대 미만 연령층에서는 가톨릭의 부진이 어제 오늘 관찰된 바가 아니다.

 우리는 한시도 자만하지 말고 언제나 겸허하게 부족함을 메우려는 노력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왜 가톨릭 교회는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없는 것일까? 필자는 그것을 가톨릭의 의무신앙 또는 율법신앙 분위기 때문이라고 본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오늘날까지 가톨릭 신앙은 '의무' 신앙이었다. 이 '의무' 신앙은 앨빈 토플러가 말하는 '제2의 물결' 곧 산업혁명 시대, 나아가 모더니즘 시대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 시대의 중심 덕목이 의무(duty)였기 때문이다. 대부분 직장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작업자(worker)로 규정하던 이 시대 사회에서는 의무에 충실한 사람이 성공하고 존경받을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제3의 물결 곧 정보혁명의 시대, 나아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사람들이 선호하는 중심 덕목은 이제 의무가 아니라 재미(entertainment, joy)다. 사람들은 이제 스스로를 '일을 즐기는 자'(player)로 여긴다. 의무 때문에 일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고자' 또는 '즐기면서' 일하는 것이다. 이 성향은 특히 본격적 포스트모더니즘 세대라 할 수 있는 40대 미만에게서 강하다.

 요컨대, 오늘날 가톨릭교회가 40대 미만 젊은층에게 버림받는 이유가 바로 '의무' 신앙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가톨릭', '성당' 하면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부담', '엄격함', '딱딱함' 등일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가톨릭교회가 미래에 살아남고자 한다면 이런 이미지를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이제는 '성당' 하면 생각나는 단어가 '신바람 나는', '즐거운', '웃음이 가득한'이라는 이미지가 돼야 한다. 종래의 '의무' 신앙이 '신바람' 신앙으로 틀바꿈, 탈바꿈을 해야 한다.

 21세기 종교가 이미 시장논리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인할래야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피터 버거가 말하는 '종교시장'의 치열한 경쟁에서 가톨릭교회가 살아남으려면 신자를 '소비자'로 대접하려는 자세가 요구된다. 소비자 구미는 까다롭고 냉정하다. 이것은 종교를 선택하는 데에도 마찬가지이다. 만족과 감동이 없는 종교에 그들은 남아 있지 않는다. 과감히 버린다.

 우리는 이 사실을 40대 미만 사람들에게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동안 가톨릭교회는 신 고객(=예비신자)에게 6개월~1년의 딱딱한 강의식 교리, 의무 중심, 형식과 행위 중심의 교육으로 일관해 왔다. 그런데 다른 종교들은 젊은층을 대상으로 해서 행복클리닉, 평화프로그램, 행복한 가정, 치유, 상담프로그램 등으로 21세기 소비자 욕구와 취향을 정확히 인식하고 준비해 왔다. 가톨릭교회도 변해야 한다. 젊은 세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신앙 아이템을 개발해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신바람을 일으키려면 신자들 '속'을 알아야 한다. 어디를 건드려야 신바람이 날지를 알아야 한다. 신자들이 어디를 아파하고 어디를 가려워하는지 잘 알아야 한다.

 이런 이유로 필자는 신학교에서 신학생들에게 꼭 당부하는 말이 있다.

 "강론을 준비할 때 소재를 구하려고 책을 뒤지지 마라. 대신에 꼭 읽어야 할 것이 있다. 읽어야 할 것은 신자들이다. 신자들 마음을 읽어야 한다. 그들이 무엇 때문에 아파하는지, 무엇이 그들을 힘들게 하는지, 무엇이 그들을 좌절시키는지, 그들에게 정녕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등을 읽어라. 그리고 그 답을 그날 복음에서 찾아주려고 노력하라."

 요즘 신자들이 마음으로 원하는 것들은 과연 무엇일까. 지역마다 다를 것이다. 본당마다 차이가 있을 것이다. 또 사람마다 제 각각일 것이다. 이것들을 알아낼 수 있다면, 아마도 그 속에 신바람의 비밀이 있지 않을까 한다.

 아무리 고민해 봐도 신바람 신앙을 불러일으키는 길은 '은총'을 재발굴하고 중재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은총은 하느님에게서 '거저' '공짜'로 주어진 영적 선물을 말한다. 이 은총이라는 개념은 그리스도교 고유의 것이다. 물론 그 약속을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모체격인 유다교의 경전 구약성경에서 발견한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오너라. 여기에 물이 있다. 너희 먹을 것 없는 자들아 오너라. 돈 없이 양식을 사서 먹어라. 값없이 물과 젖을 사서 마셔라"(공동번역 이사 55, 1)

 그렇다. '돈없이', '값없이' 누리는 구원의 선물,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이 관점에서 신앙을 새롭게 조명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여기에 물이 있다」이다. 이 책에서는 '의무'라는 단어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의무라는 단어를 '은총'이라는 단어로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속임수가 아니다. 신앙생활의 맛을 좀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의무를 뒤집으면 거기서 은총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맙게도 이 책을 많은 독자들이 사랑해 줬다. 나아가 전국의 많은 본당에서 예비신자 교리를 위한 교재로 사용해 주고 있다.

 이후 필자는 교회생활에서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던 은총을 다시 찾아 나섰다. 그 결과 우리가 매일 무덤덤하게 대하는 미사에서, 성경에서, 기도에서, 성사(聖事)에서, 십계명(十誡命)에서 빛나는 '은총'의 보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밭에 뭍힌 보물」이다. 읽어본 이들은 신앙의 재미와 신바람을 느끼게 해줘서 고맙다고들 한다.

 곳곳에서 희망을 본다. '은총'이라는 명약이 듣는다는 확신을 얻는다. 필자는 신부님들께서 강론시간에 '의무'라는 용어 대신에 '은총'으로 신자들을 위로해 주었으면 한다. 의무를 얘기하지 않아도 교무금이 늘고, 교회 헌신이 좋아진다는 기적을 체험하셨으면 한다. '은총'에 눈을 뜨도록 조금만 도와주면, 의무를 얘기하지 않아도 신자들이 알아서 바르게 살고, 사회에서도 빛과 소금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깨달음을 얻으셨으면 한다. 충정이다.

 희망은 있다. 이제껏 놓쳐왔던 '은총'에 눈뜨는 신자가 하나 둘 늘어간다면 교회 밖 사람들이 이를 보고 하나씩 둘씩 다시 돌아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세월이 흐른 뒤에 이러한 일이 이루어지리라.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은 모든 산들 위에 굳게 세워지고 언덕들보다 높이 솟아오르리라. 모든 민족들이 그리로 밀려들고 수많은 백성들이 모여 오면서 말하리라. '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되리라.' 이는 시온에서 가르침이 나오고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말씀이 나오기 때문이다"(이사 2, 2-3).

[자료] 잠언에 있는 말에 대한 말씀

말과 관련된 잠언의 말씀만을 모았습니다. 공동체에서 대화(나눔)을 하는데 좋은 지침으로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 워크샵 준비팀

4,24 남 속이는 말은 입에 담지도 말고 남 해치는 소리는 입술에 올리지도 말아라.
10,11 착한 사람의 입은 생명의 샘이 되지만 나쁜 사람의 입은 독을 머금는다.
10,18 거짓말하는 입에는 미움이 숨어 있다. 험담을 일삼는 사람은 바보다.
12,18 함부로 뱉는 말은 비수가 되지만, 슬기로운 사람의 혀는 남의 아픔을 낫게 한다.
13,3 입에 재갈을 물리면 목숨을 지키지만, 입을 함부로 놀리면 목숨을 잃는다.
16,28 변덕스런 사람은 말썽을 일으키고 ,고자질하는 사람은 이간을 붙인다.
17,20 마음이 비뚤어진 사람은 잘될리 없고,거짓말 잘하는 사람은 재난에 빠진다.
18,6 미련한 자의 입술은 싸움을 일으키고 ,그 입은 매를 청한다.
18,7 미련한 자는 그 입으로 망하고, 그 입술에 스스로 옭아 매인다.
10,11 착한 사람의 입은 생명의 샘이 되지만, 나쁜 사람의 입은 독을 머금는다.
13,3 입에 재갈을 물리면 목숨을 지키지만, 입을 함부로 놀리면 목숨을 잃는다.
15,7 슬기로운 사람의 입술은 삶의 슬기를 깨우치고, 미련한 사람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
16,24 다정스러운 말은 꿀송이 같아, 입에는 달고 몸에는 생기를 준다.
25,11 경우에 닿는 말은, 은쟁반에 담긴 황금사과다.

"Kind words can be short and easy to speak, but their echoes are truely endless."
"친절한 말은 짧고 말하기 쉽다,그러나 그 말의 메아리는 끝없이 퍼저나간다"

- 마더 테레사 수녀님

‘실천적 관점에서 본 한국 천주교 소공동체’에 대한 논찬 - 윤민구 신부(수원 교구)

‘실천적 관점에서 본 한국 천주교 소공동체’에 대한 논찬

윤민구 신부(수원 교구)

참고로 이글은 "실천적 관점에서 본 한국 천주교 소공동체" 곽승룡 신부님에 대한 글에 대한 논평입니다.

발제자는 “한국 천주교회의 사목은 대부분 가정과 공동체보다 개인과 단체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전제하고 가정과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 “말씀과 영성을 중심으로 모이고 기도하고 선포하는 사목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로 발제자는 하느님을 믿는 이들의 공동체가 지닌 사명인 복음화를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복음화는 결국 삼위일체적인 친교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하면서 이를 위해 탈조직적인 친교를 소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야 할 것이라 하였다.

또한 발제자는 삶을 중심으로 모이는 본당의 구역․반과 직장 공동체 그리고 신심과 사도직 운동을 중심으로 하는 단체가 통합적 공동체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하면서 교회 내의 단체나 운동과 소공동체가 서로 연계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이미 각 교구에서 본당 사목 구조를 소공동체 사목 형태로 조정하였다는 것을 밝히고 이런 방향에 동의를 표하였으며 아직 조정되지 않은 교구에서도 소공동체 사목 형태로 조정될 것을 희망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본당 사목 구조 안에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이 각기 자신의 전문성을 살리면서 소공동체를 이루어 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소공동체 봉사자 선발과 양성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면서 한국에서도 평신도에게 독서직, 시종직, 종신 부제직을 수여할 것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 3-5년의 양성 기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봉사자들만 교육할 것이 아니라 신자들이 소공동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신앙 공교육을 주장하였다. 그래서 성서와 신앙 진리 공부 그리고 기도 등을 삼 단계로 나누어 공교육하자는 의견도 제기하였다.
한편 발제자는 신심이나 활동 단체들의 특성을 살려 선교 학교, 신앙 복음화 학교와 공동체 학교 그리고 기도 영성 학교를 만들자는 주장도 하였다. 이어서 공동체 사목을 위해 본당 내에서 단체와 사목 협의회 및 소공동체가 네트워크를 이루어야 할 뿐 아니라 전국적인 네트워크도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전국적이거나 교구 단위의 소공동체 연구소를 개설할 것을 주장하였다.

필자는 발제자의 이와 같은 주장에 상당 부분 동의한다. 특히 봉사자나 신자들을 상대로 하는 교육, 본당 사목 구조 조정, 평신도에게 독서직, 시종직, 종신 부제직 등의 직분 수여, 소공동체 사목을 위한 전국적 네트워크 형성 및 소공동체 연구소 설립 등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믿는다.

그런데 발제자는 소공동체를 다루면서 매우 중요한 점을 간과한 것 같다. 그것은 소공동체의 내적인 문제로서 어떻게 보면 가장 본질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필자의 의견을 말하고 발제자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려 한다.

먼저 한국 천주교회에서 소공동체 운동을 왜 해야 하는지 그리고 소공동체 운동을 통하여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짚어 보아야 할 것이다. 각 나라는 소공동체 운동을 해야 하는 자기 나름의 이유와 목적을 갖고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남미나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의 다른 나라에서 소공동체 운동을 해야 할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중 공통적인 것을 살펴 보면 다음의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① 오늘날 사회-심리적으로 공동체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대중 속에서 익명의 존재로서의 삶을 극복하려 한다.

② 영성적으로 볼 때 얀세니즘(Jansenism) 등의 영향으로 개인주의화되었던 신앙관을 수정하여 구체적 삶 안에서 형제적 사랑을 실천하여 복음의 증거자가 되고 교회의 생명력에 참여하는 것을 당연히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생겼다.

③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평신도 사도직의 중요성이 증대되었고, 따라서 신앙 안에 성숙한 삶들을 조직화할 필요가 생겼다.

④ 서품된 사제들의 부족을 들 수가 있는데 특히 전교 지방은 더욱 강하다.

그런데 이와 같은 소공동체 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 중에서 ①,②는 우리나라에서도 그대로 통용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본당의 대형화로 인해 신자 상호간 교류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또한 타인이나 사회 복음화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기복적인 신앙을 가진 신자들이 많고 또 개인 구원에만 몰두하는 신자들도 많다. 그러나 ③,④의 경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다를 것이다. 우리나라는 평신도 사도직 활동이 그 어느 나라 보다 활발하며 서품된 사제가 부족하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소공동체 운동을 해야 하는 독특한 이유와 소공동체 운동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이원화된 교회론의 극복일 것이다. 이원화된 교회론이란 마치 학교에 스승이 있고, 제자가 있듯이 교회 안에서도 성화시키는 자가 있고, 성화되는 자가 있으며, 다스리는 자가 있고, 다스림을 받는 백성이 있다는 식으로 성직자와 평신도를 엄격히 구별해서 생각해 왔던 과거의 교회론을 말하는 것이다.

본당은 이미 공동체이다. 교회법에서는 “본당은 그 사목이 교구장의 권위 아래 고유한 목자로서의 본당 주임에게 맡겨진 개별 교회 내에 고정적으로 설정된 일정한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공동체이다”(제515조)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미 공동체인 본당 안에 다시 소공동체를 두어야 하는 이유는 본당이 비대하다는 외적인 요인 때문만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기존의 본당 공동체가 수직적이고 중앙 집권적이며, 가부장적이고 획일적이며, 평신도 위주의 공동체이기 보다 성직자 중심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소공동체를 통하여 수평적이고 평신도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공동체를 만들어 평신도들이 수동적이고 피동적인 신앙 생활에서 벗어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교회 삶을 통하여 성령께로부터 받은 자신의 카리스마를 공동체를 위하여 발휘하고(1고린 12,9 참조) 교회 안에서 사귐과 나눔과 섬김을 실현하는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냉담자 증가와 미사 참례율 저하 등 한국 천주교회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필자의 소견으로는 한국 천주교회에서 소공동체 운동을 전개하면서 숲은 보되 나무는 보지 않는 우를 범하는 것 같다. 개별 소공동체가 별로 건실하지 못하고 왕성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을 잘 살릴 생각을 하기 전에 이미 본당 사목 구조 조정을 실시하였고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구성하려 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멀리서 보는 숲은 잘 자라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각 나무는 병들어 있는 형상이 되기 쉽다. 개별 소공동체가 건강해야 전체가 잘 되는 것이다.

지금 대부분의 교구나 본당에서는 본당 내에 구역과 반을 거주지 중심으로 나누어 놓고 그 반이 소공동체로 바뀌어갈 것을 기대하며 물도 주고 거름도 주는 등 온 정성을 쏟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렇게 거주지 중심으로 소공동체를 만들고 그것에 정성을 기울임으로써 그 씨가 잘 자랄 수 있는지 처음부터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런 소공동체는 원초적으로 몇 가지 중대한 문제점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① 모일 수 있는 시간보다는 사는 곳을 먼저 고려하였기 때문에 우선 모일 수 있는 공통의 시간조차 찾아내기 힘들다.

② 신자들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인다고 해도 결국 흥미를 잃게 되기 쉽다.

③ 자발성이 결여되기 쉽다. 그래서 구성원들이 소극적이다.

이 밖에도 많은 문제점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데도 소공동체를 그냥 이런 식으로 지속하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첫째로 소공동체를 조직으로 보려는 경향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일사불란한 피라미드식의 조직을 생각하다 보니 이렇게 되는 것 같다. 또한 앞에서 잠시 언급하였듯이 본당 자체도 공동체로 보지 않고 구역으로 보려는 한국 천주교회의 성직자들이 구역 중심의 사고에 익숙한 탓일 것이다. 즉, 전통적으로 해 오던 성직자 중심적 구조를 갖고 획일화하거나 중앙 집권화하려는 성향 때문에 소공동체를 수직적 하부 구조로 보고 이를 통해 신자들을 움직이려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둘째로 성직자들의 조급함 때문일 것이다. 소공동체는 생명이 있는 영적 유기체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생명을 키우는 데는 기다림이 필요한 법이다. 동물을 보아도, 식물을 보아도 한 번에 자라거나 번식하지 않는다. 소공동체도 생명이 있는 것이라면 하나씩 하나씩 키워가며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성장하고 번식할 것이다.

그러나 그 동안 대부분의 교구나 본당에서는 하루아침에 본당 신자 모두를 구역 즉 주소지 중심으로 나누어 구역 또는 반을 만들고 구역장과 반장을 임명하고는 구역장이나 반장을 중심으로 소공동체를 만들라고 신자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조급함은 오히려 많은 부작용을 낳고 소공동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갖는 데 일조하였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 한 번에 본당의 모두 신자들이 소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여 그렇게 한 것인지 반성해야 할 것이다. 모든 신자들을 대상으로 단번에 소공동체를 이루려고 쏟은 시간과 정성을 소공동체를 서서히 하나씩 둘씩 만들어가는 데 쏟았으면 상당한 효과를 낼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에서 잠시 공동체가 무엇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공동체는 일반적으로 상호 인격적인 수락에 근거하여 정신적이고 인격적인 그리고 때로는 신앙적인 유대를 이루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공동체 안에서는 구성원들이 연대 의식을 갖고 동질성, 개방성, 친교, 사랑을 느끼며 연합하고 다른 구성원을 위하는 마음이 깊이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공동체의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신앙과 거주지가 같은 것 외에는 특별한 공통점이 없는 사람들을 본당에서 일방적으로 묶어 소공동체를 이루라고 하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공동체를 이루기는커녕 구성원이 모두 함께 모이기조차 불가능한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요새는 가정에서조차 모든 구성원이 한 자리에 함께 모이기가 무척 어려운 법인데 일방적으로 정해진 소공동체 구성원들이 함께 모이기가 어렵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소공동체 구성원 중 한 가정의 한 명씩 대표들만 모여 반 모임을 하는 데도 모이기가 어렵다. 또 어렵게 한 자리에 모인다 해도 공동체 의식을 갖고 마음을 열고 생활을 나눈다는 것은 더욱 더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필자는 소공동체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구성원의 자발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발성이 결여된 채 타의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공동체가 되기는 매우 어렵다. 그냥 어떤 모임일 수는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복음화를 위하여 그리고 발제자의 말대로 참된 “교회 살기 운동”을 위해서는 소공동체가 중요하고 긴요하다는 것을 알고 자발적으로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소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이 때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구역(거주지)이 아니라 모일 수 있는 시간이다. 우선 함께 모일 수 없다면 소공동체를 이루어 나가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비슷한 환경이나 신앙 안에서 같은 뜻을 지니고 있는지 그리고 마음을 열고 서로의 감정을 나눌 수 있는지 등을 고려하여 소공동체를 이루어 정기적으로 모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먼저 생각하고 난 다음에 거주지를 고려하여도 늦지 않을 것이다. 만일 어느 본당이 구성원이 너무 많으면 구역을 넓게 넓게 나누어 그 안에서 앞에서 말한 점들을 고려하여 소공동체를 구성하도록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소공동체에 참여 못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의문을 가질 것이다.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이 이루는 소공동체가 점차 발전하고 확대하여 나가면서 참여 못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면 될 것이다. 구역․반으로 나누어 소공동체를 이루면 모든 신자가 모두 소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다는 생각은 허구이다. 어차피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이 생긴다. 그리고 그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이 될 수 있다.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목적 배려는 소공동체 운동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활동 단체나 신심 단체 그리고 신심 운동들과의 구별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단체는 공동체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소공동체 운동이 지향하는 것과는 다른 공동체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활동․신심 단체와 운동 등을 소공동체와 동일시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까지는 본당 사목이 단체 중심으로 이루어졌지만 소공동체가 자발적으로 구성되어 그 삶과 활동이 왕성해지면 자연스레 단체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다. 본연의 모습이란 그 단체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이 본당 공동체를 위해 제대로 발휘된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되기 위해 우선 먼저 해야 할 것은 여러 운동들이 post movement를 최소한으로 줄여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Legio Mariae는 단원의 정예화를 통해 양적 보다 질적 성장을 꾀해 강한 성모님의 군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세례 받은 후 얼마 안 되어 신앙 생활을 제대로 해나가지 못하고 냉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그들이 공동체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예비자일 때부터 소공동체에 속해 있으면 이런 점은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각 본당의 현실은 거주지 중심으로 반을 구성하였기 때문에 이웃에 사는 사람이 전교한 경우가 아니면 예비 신자나 새 영세자가 자신을 성당으로 안내한 사람과 같은 반에서 모임을 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소공동체를 구성하게 하면 자연스럽게 그 공동체에 들어와 처음부터 공동체 신앙 생활에 익숙하게 되므로 냉담자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교적을 관리할 때 모든 가족을 함께 관리하게 되면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한 소공동체에 속하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소공동체 모임에는 가족 중 대표 한두 사람이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교적을 개별적으로 관리하도록 한다면 가족 구성원이 서로 다른 공동체에 속해서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도 열리는 것이 된다. 따라서 마땅히 교적을 개별적으로 관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거주지 중심으로 소공동체를 구성하고 교적을 관리하게 되면 가족 구성원이 모두 하나의 소공동체에 속해야 된다는 문제점 뿐 아니라 성당에도 나오지 않는 냉담자나 영세는 하였지만 교회를 떠난 사람들까지도 함께 소공동체를 구성해야 한다는 문제점도 생기게 된다. 그러나 공동체의 특성상 이런 교회 소공동체는 존재하기 어려운 것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이런 모든 점에 대한 각별한 연구나 검토 없는 본당 사목 구조 조정이나 전국 네트워크 형성은 소공동체에 많은 것을 무리하게 강요할 수도 있어 자칫 소공동체의 자발성을 더욱 손상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소공동체는 아래에서부터 자발적으로 하나하나 만들어 가는 것이지 위에서 한꺼번에 만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전국적인 네트워크가 형성된다면 우선 소공동체 모임에서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교재를 개발하는 것이 시급할 것이다.

이와 같은 필자의 의견을 개진하면서 발제자의 고견을 듣고자 몇 가지를 질문하려 한다.

첫째, 소공동체를 나타내는 용어들은 상당히 다양하다. 세계 주교 시노두스(Synodus)의 주제 발표나 분임 토의에서 사용되었던 용어를 보면 다음과 같다. “소공동체”, “기초 공동체”, “교회 기초 공동체”, “원초적 공동체”, “그룹”, “자생 그룹”, “교회 그룹”, “소그룹”, “기초적 소그룹”, “크리스챤 기초 공동체”, “교회 소공동체”, “크리스챤 소공동체” 등이다. 그런데 그 용어들이 그냥 생겨난 것은 아닌 것 같고 소공동체 운동의 배경이나 이유 그리고 목표와 관계되어 그 나름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 용어의 차이점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발제자는 “한국 천주교회 소공동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는데 어떤 의미에서 이런 용어를 선택한 것인지 설명하여 주기 바란다.

둘째, 이것은 첫째 질문과도 통하는데 한국 천주교회에서 소공동체 운동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소공동체 운동을 전개함으로써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 것인지에 대해 설명해 주기 바란다.

셋째, 소공동체 운동에 대한 한국 천주교회 나름의 이유와 목표가 있다면 한국 천주교회형 소공동체 모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그것에 이르기 위해 지녀야 할 원리는 무엇이며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프로그램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좋은 의견 있으면 알려 주기 바란다.

넷째, 거주지 중심으로 신자들을 구역과 반으로 나누고 그 테두리 안에서 소공동체를 이루라고 신자들에게 요구하는 현재의 소공동체 구성 원리에 대한 발제자의 의견은 무엇인지 밝혀 주기 바란다.

다섯째, 소공동체 봉사자의 양성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본당에서 보면 신자들이 봉사자가 되는 것조차 꺼려하는 실정이다. 상명하달식으로 주어지는 일은 많고 신자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가 부족하니까 중간에서 봉사자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봉사자들을 잘 교육시킬 수 있는 교육 방안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알려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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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 Schuster, "Pastoral Theology", in: Sacramentum Mundi Vol. 2, pp. 365-368 참조.
2)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교회 법전을 번역하면서 본당(paroecia)을 “본당 사목구(本堂 司牧區)”라는 말로 의역하여 본당을 “지역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사목 지침서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본당 사목구는 교구 내에 상설적으로 설정되어 있는 일정한 신자들의 공동체로서 교구장의 권위 아래 본당 사목구 주임 사제가 고유한 목자로서 사목하는 지역을 말한다”(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 제 158조). 그러나 이것은 잘못이고 소공동체 운동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으므로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가정 사목과 소공동체 사목의 관계 - 이민희 다니엘 수녀

가정 사목과 소공동체 사목의 관계

서울 대교구 사목국 가정 사목부 담당 수녀(이민희 다니엘 수녀)

전문가들은 가정 사목과 소공동체 사목을 ‘부분적 사목’이나 ‘특수 사목’ 영역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총체적 사목을 위한 접근 방식이면서 사목 원리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덧붙여 가정 사목을 사목 원리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몇 개의 새로운 가정 사목 프로그램을 개발하거나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하고 있는 모든 사목 프로그램(피정, 성지 순례, 캠프, 교육 강좌, 신심 행사, 전례 등)을 가정 사목의 관점에서 재구성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본당의 모든 사목 프로그램에 가족 구성원 모두가 따로따로 참여하던 방식에서 이제는 전체 가족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모든 상황을 고려해 볼 때 가정 사목의 원리가 관여되지 않으면 소공동체 사목 역시 성숙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현재 대부분의 소공동체 모임에서는 남성과 여성이 따로 모인다. 이를 개선하여 가족 모임의 성격으로 전환시키려는 노력이 무엇보다도 요청된다. 소공동체 모임에서도 가족 해체를 기정사실화해서 따로 모임을 갖지 말고 각종 교육 프로그램(부부간 대화 촉진, 부모와 자녀간 대화 촉진 등)을 통해 가족간 화해와 이해를 도모함으로써 가족 단위로 참여하는 명실상부한 소공동체를 이루어 나가야 할 것이다. 수년간 ‘따로따로’ 모임에 길들여진 구성원들이 가족 전체 모임을 한다는 것이 처음에는 힘겨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자주 하려고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이 방법이 숙달되어 소기의 목적 달성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교구 안에서 가정 사목과 소공동체 사목은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다. 10여 년 동안 소공동체라는 수로를 만들어 여러 가지 필요한 영적 양식을 공급한 한국 교회는 이제 시대가 요청하듯 가정을 살려내는 재료를 공급해야만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교회의 현주소를 진단해 볼 때 그 어느 때보다도 소공동체 사목과 가정 사목의 연대가 강력히 요구되는 시기이다.

그동안 서울 대교구 가정 사목부는 여러 가지 예방 차원의 교육과 치료 차원의 교육을 실시하여 왔다(혼인 전 교리, 선택, 가정 성화를 위한 세미나, 생명 파트 부분인 자연 출산 조절법과 낙태 후유증을 위한 치유 프로그램 등). 그러나 교육 시간의 부족으로 인해 양질의 교육이 되지 않고 형식적인 교육으로 그치는 경우도 많이 있어 안타까운 실정이다. 이러한 부족함을 보완하는 방법으로 소공동체 가족 모임 안에서 먼저 양성되어진 부모 교사들이 그들의 자녀들에게 필요한 교육을 직접 시행하는 방법도 시도할만하다. 이렇게 될 때에 가정 안에서 부모로부터 자연스럽게 교육을 받는 가장 이상적인 교육 방법을 시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치료 차원의 가정 교육을 위한 상담 학교 개설은 이 부족함을 보완하는 대안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 상담 학교는 오전반, 오후반으로 2005년 2월에 실시할 예정이며, 10월부터 현재까지 가정 사목 봉사자 30여 명과 함께 교육 과정을 실시해 보면서 피드백을 받고 있다. 오전반, 오후반으로 두 번 실시하게 된 것은 부부가 함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함이다. 아버지 학교와 어머니 학교를 통하여 통례적으로 인식되었던 피해자, 가해자 모두가 피해자라는 전제하에, 부모이면 누구나 동등한 교육의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데에 교육 목표를 둔 것이다. 자녀 양육의 의무가 부여되기 전에 우선 스스로 자신의 삶 안에서 풍요로운 부모의 역할을 할 수 있기 위한 자기 돌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본다. 어린 시절의 상처를 치유 받고 자유로워진 몸과 마음으로 자녀나 이웃과 함께 할 수 있는 소양을 부모이면 누구나 다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권리이자 의무일 것이다.

또 한 가지 프로그램은 부부 워크숍이다. 이 워크숍 프로그램에는 섬세한 멘트까지 다 명시되어 있어 약간의 오리엔테이션만 받으면 손쉽게 실행할 수 있다. 본당을 위한 서비스 차원에서 본 프로그램을 개발하였다. 다년간 소공동체 모임을 통하여 자질을 함양해 온 구역․반장들이 소정의 교육 과정을 통하여 소공동체 모임을 통한 트레이너 역할과 상담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프로젝트는 치료 차원의 교육을 강화하는 사목이 될 것이다. 이처럼 가정 사목은 소공동체의 채널을 이용하게 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서로 협력하여 이 시스템을 잘 구축할 것인가는 계속적인 연구 과제로 남아 있다. 좋으신 주님의 손길을 간구하는 마음이다.

제랄드 폴리 신부는 그의 저서 『가정 중심의 교회』에서 본당의 사목이 가정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 것인가를 고려하여, “모든 프로그램은 가족 유대를 강화할 것인지, 가정을 붕괴할 것인지를 점검”하고 실천되어야 하며 교회 공동체 안에서 가정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하고 소명의 확신과 소명을 실시할 수 있는 힘이 되어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하며 ‘가정’을 ‘본당 공동체’를 이루는 ‘구성 단위’로서가 아니라 ‘사목의 핵심으로서의 사목’ 이 이루어져야 하는 곳으로 여겨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교회안팎에서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가 해체되어가는 가정을 다시 세우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시도하고 있다. 지금은 우리 모두가 서로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전문가와 실행부가 협력하여 시대가 요청하는 뜻을 잘 반영하고 경청하며 응답할 때 주님께서 우리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축복을 담아 주시리라 믿는다.

개봉 천주교 성당 웹에 게시된 '소공동체' 기초 자료

소공동체는

소공동체는 매주(격주 또는 매월) 모여 복음을 중심으로 하여 초대교회의 모습을 본받아 영세자들이 하나가 되어 복음을 나누고 활동하는 모임입니다. 이는 본당신자로서의 소속감을 심어주고 나아가서는 복음화를 이루기 위함에 그 목적이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모습을 본받은 교회의 삶을 지향합니다.

소공동체는 삶의 모든 문제를 복음과 관련시킵니다. 소공동체는 항상 두 가지 요소를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와 타인에 대한 관심입니다. 기도는 소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삶의 중심이 됩니다.

구성원들은 다만 행동을 위주로 하는 모임이 아닙니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주님께 귀를 기울이고 그분의 계획을 찾으며 그분께 말씀드립니다. 그들은 자기네끼리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그들 가운데 하느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소공동체는 그분과 하나되는 일이 어떤 무엇보다도 우선합니다.

기도생활의 삶은 다른 각도로 그들의 활동을 비추어 줍니다. 하느님이 그러하시듯 구성원은 불의에 대해 큰 관심을 갖게 되며, 그들의 구체적 행동 하나 하나는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묵상만 하는 모임이 아닙니다. 이러한 이유로 소공동체는 하느님 말씀을 묵상하며 또한 그들이 처해 있는 상황을 분석합니다. 그들은 많은 시간을 기도에 바치면서도 구체적인 행동을 취합니다.

소공동체의 의미

소공동체라는 명칭은 일반적으로 복음나누기와 구체적 활동을 하는 공동체에 적용되는 것입니다. 공동체란 세상을 복음화해야 할 교회의 본질을 말하는 것으로 그 구성원이 서로 인격적인 사귐과 나눔을 실행하며 생활 전반에 걸쳐 긴밀한 유대관계 속에 사는 것을 말합니다.

소공동체의 필요성

본당에서 목격하는 냉담자의 증가 현상은 자기의 탓도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에 공동체에 소속감이 없는 채로 교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해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냉담자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공동체 모임을 필요로 합니다. 소공동체 구성원들은 복음나누기, 기도, 신앙체험 등 적극적인 삶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소공동체를 통해서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을 체험하고 신앙을 나누기 때문에 우선 신앙이 쇄신될 수 있으며 개인 성화를 위해서도 공동체 생활을 필요한 것입니다.

소공동체의 활동효과

우선 신앙이 쇄신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개인적으로 신앙생활을 해 왔다면 이제는 소공동체를 통해서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을 체험하고 신앙을 나누기 때문에 신앙이 새롭게 쇄신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신앙이 가르치는 주님의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지만 우리는 좀처럼 그 기회를 찾지 못해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소공동체 모임에서는 이웃을 위한 사도직 활동을 기본적으로 수행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사랑을 나누는 체험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소공동체의 요소

소공동체의 특징은 아래의 4가지 요소를 갖추어야 합니다. 4요소중 어느 것이라도 빠지면 그 성격이 달라집니다. 예를 들면 활동을 한다가 빠진 경우 이 모임은 소공동체가 아닌 기도 모임이 되는 것입니다.

1. 교우들이 모이는 곳이다.

지역공동체인 경우에는 집에서 모임을 갖지만 지역 특성에 맞추어 성당내에서 모임을 갖기도 합니다.

2. 복음나누기를 한다.

모임의 기초는 복음나누기입니다. 복음나누기는 부활하신 주님을 초대하여 그분의 말씀을 듣고 인격적으로 그분을 만나는 것입니다. 공동체들이 언제나 복음나누기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 서로를 더 가깝게 하여 주기 때문입니다.

3. 활동을 한다

공동체는 기도모임 뿐만 아니라 함께 활동을 해야 합니다. 이 활동은 복음화의 국면을 말하는 것입니다. 소공동체는 이 활동을 통하여 하느님을 새롭게 만나는 체험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4. 보편교회와 일치를 한다

소공동체는 본당과 일치하며 본당은 교구와 일치하고 교구는 보편교회 전체인 교황님과 일치함으로서 신앙의 일치를 이루어야 합니다. 보편교회와 일치하는 않는 경우 커다란 오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일치는 사제와 성사와 주일미사를 통하여 이루어지므로 함께 주일미사에 참례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소공동체(반/세대주) 모임 진행순서

1. 시작성가

기도 분위기를 이루기 위해 성가를 한 두곡 부른다.

2. 출석확인 및 인사 나눔

3. 복음 나누기 7단계

제1단계 : 주님을 초대한다. (초대한다)
☞ "기도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십시오."
또는 " 두세 분이 기도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십시오."

제2단계 : 성서 본문을 읽는다. (읽는다)
☞ "...복음 ...장을 펴 주십시오."(모두 폈으면)
☞ "어느 분이 ...절부터 ...절까지 읽어 주십시오."
☞ "다른 분이 본문을 다시 한 번 읽어 주십시오."
(다른 번역본이 있으면 그것을 읽을 수도 있다.)

제3단계 : 성서 본문을 바라본다. (바라본다)
☞ "마음에 와닿는 단어나 짧은 구절을 선택하여 큰 소리로, 기도하듯이 세 번씩 읽어 주십시오. 읽는 사이에는 잠시 침묵을 지켜 주십시오."
☞ "어느 분이 본문을 다시 한번 읽어 주십시오"
(전체 본문을 다시 읽는다.)

제4단계 : 침묵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다. (듣는다)
☞ "(3)분 동안 침묵하며,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도록 합시다."

제5단계 : 마음 안에 들려온 말씀을 나눈다. (나눈다)
☞ "당신에게 개인적으로 와닿은 말씀은 무엇입니까?"
또는 "어떤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까?, 성서 구절이 나 개인에게 준 의미에 대해 소박하게 나눠 주십시오."
('영적체험'이나 '생활말씀'에 대한 체험을 나눌 수도 있다. 어떤 참석자가 성서에 관한 '나눔'이아니라 '설명'을 할지라도, 그 설명에 관하여 '토론'하지 않는다.)
[생활말씀을 정한다]

제6단계 : 모임에서 해야 할 활동에 대해 토의한다. (활동한다)
☞ "지난 번 모임에서 결정한 활동에 관하여 보고해 주십시오."
☞ "우리가 이번 주(달)에 해야 할 활동은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 무엇을 할 것입니까?, 누가 할 것입니까?, 언제 할 것입니까?
[생활말씀을 정한다]
※ 성서 본문에서 한귀절을 선택하여 쪽지에 적어서 각자 자기 집의 벽에 붙여 놓고 실천할 수 있도 록 한다. (다음 모임에서 생활말씀에 대해 나눈다)

제7단계 : 자발적으로 함께 기도한다. (기도한다)
☞ "마음에 우러나는 대로 자유롭게 기도합시다."
(혹은 모두 알고 있는 기도나 성가로 마칠 수 있다.)

4. <길잡이>글을 같이 읽고 나눈다 (주제글이나 성서묵상, 생활체험글 등)

5. 알림 및 건의사항
본당, 지역/구역소식, 다음 모임장소, 날짜 결정 등

6. 마침성가

[ '소공동체 모임 길잡이' 에서 발췌 ]

소공동체 모임기도

하느님 아버지,
저희를 불러 모아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저희가 모였사오니
여기 모인 모든 이들과
그가정을 축복하여 주십시오.

주님,
저희는 오늘
소공동체 모임에 모여
열심히 기도하고
부지런히 공부하며
이웃 사랑을 실천하려 합니다.

주님께 청하오니
저희와 함께 계셔 주시어
엠마오 제자들에게 하신 것처럼
저희에게도 이루어 주십시오.
당신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저희의 마음이 뜨거워지고
빵을 나누듯이
나눔의 생활을 할 때마다
저희의 영적 눈이 밝아져
저희와 함께 계신 주님을
알아뵈옵게 하여 주십시오.
문을 닫아 걸고
무력함과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주님,
제희에게도 성령을 보내주시어
기쁨과 확신에 넘쳐 주님을 전파하며
주님을 위하여 고통을 받는 것도
기쁨으로 알게하여 주십시오.

그리하여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하느님께 영광과 찬미를 드리며
이웃 사랑을 실천하여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대구대교구 류승기 신부 "공동체 이끄는 주체는 신자입니다."

대구대교구 류승기 신부 "공동체 이끄는 주체는 신자입니다."

“진정한 친교의 교회로 나아가는 것이 바로 소공동체 모임입니다. 삶을 나누는 것이 친교인데 각자의 삶 속에서 친교가 잘 되면 서로의 역할 분담이 저절로 이뤄집니다. 이러할 때 진정한 공동체가 이뤄질 수 있습니다.”

대구 성 정하상본당 주임 류승기 신부는 ‘말씀의 힘’을 강조했다. 소공동체가 있게 하고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과 원천은 바로 하느님 말씀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

1년여 전 부임 후 류신부는 신자 전 가정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류신부는 소공동체 모임에 참여의사를 물었고, 원하는 대상자들을 선별해 각 팀으로 묶어 주었다. 또 왜 소공동체 모임을 해야 하는지 그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해 본당 신자들에게 교육을 실시했다. 그 이후론 공동체 운영에 일체 관여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스스로 알아서 해나가도록 배려했다.

“소공동체는 각 팀원들이 소명의식을 갖고 자체적으로 이끌어 나가야 합니다. 본당 사목자는 그 초석만 놓고 나머지는 신자들 스스로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현재 류신부는 그룹 성경공부 모임을 별도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성경말씀을 바탕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신자들에게 보다 체계적인 성경말씀을 일깨우기 위해서다. 이렇게 성경공부를 해서 신앙적으로 성숙해진 신자들은 다시 공동체로 돌아가 봉사하게 된다. 우선은 사제가 이들을 가르치지만 나중엔 성경공부를 이수한 신자들이 이 모임을 이끌게 된다.

류신부는 “소공동체 내 복음화위원회에서 각 모임들을 확인하고 교육하며 모임 활성화를 위해 앞장서고 있다”면서 “사제가 나선다고 모임이 활성화 되는게 아니고 자발적인 힘으로 서로 이끌고 나눌 때 진정한 소공동체 활성화를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향후 3~5년 정도 계속해서 이런 체제로 나간다면 소공동체 모임이 제대로 자리잡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 류신부는 어떻게 하면 소공동체 모임을 잘 할 수 있냐는 기자의 우문(愚問)에 첫째 성경공부 둘째 가르친다 셋째 기다린다는 현답(賢答)을 내놓았다.

가톨릭 신문 : 2007-03-25

봉사자의 십계명 - 독일 아헨 교구 클라우스 헴멜 주교

이 봉사자의 십계명은 수원교구 소공동체 봉사자 양성때 자주 사용되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자료 출처: 수원교구 홈페이지)

봉사자의 십계명 - 독일 아헨 교구 클라우스 헴멜 주교

① 1계명: 내가 봉사자로서 행하는 것보다, 봉사자로서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

② 2계명: 내가 하는 것보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하여 하시는 것이 더 중요하다.

③ 3계명: 나 홀로 봉사에 몰두하는 것보다, 봉사자들 안에서 일치하고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

④ 4계명: 성당 안에서의 전례 참여보다, 기도와 말씀의 봉사가 더 중요하다.

⑤ 5계명: 나 홀로 가능한한 많은 활동을 하기보다, 협조자들이 할 수 있도록 돌봐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⑥ 6계명: 바쁘게 많은 일들을 벌려놓기보다, 생명력을 발산하는 몇 가지 일에 주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⑦ 7계명: 내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혼자 하는 것보다, 협조자와의 일치 안에서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⑧ 8계명: 재능과 인간적 노력의 열매보다, 십자가가 가져다주는 열매가 더 중요하다.

⑨ 9계명: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에 특별한 관심을 갖는 것보다, 모두(공동체)에게 열려진 마음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

⑩ 10계명: 일반적인 많은 요구들을 충족시키기보다, 모든 이에게 믿음을 증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다시 말하면 활동보다 선교가 더 중요하다.

새시대 교회가 나아갈 길 - 미래사목연구소

새시대 교회가 나아갈 길 - 가톨릭신문 기획/특집 2001.12.2-2002.2.10

미래사목연구소 홈페이지 (www.fpi.or.kr) 사목자료실에서 가져온 내용입니다. 좋은 참고자료로 생각되어 올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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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차

  1. 시대와 교회
  2. 바닥부터 다시
  3. 뉴리더십(New leadership) 
  4. 인간성 구현을 지향하는 복음화
  5. 토털 서비스
  6. 생명운동 
  7. 대안영성
  8. 전신자 은사계발
  9. 여성입지의 현실화
  10. 종합을 대신하여

소공동체 리더쉽: 소공동체 활성화 사도직 - 김영수 신부

소공동체 리더쉽: 소공동체 활성화 사도직 - 김영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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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동체 리더쉽이란?

1부: 그리스도인의 사명 - 사도직: 섬기는 삶에로의 부르심과 응답
2부: 소공동체 교회 안에서 사도직 수행의 원리- 소공동체 활성화의 원리
3부: 소공동체 교회 봉사자의 사도직- 섬기는 리더쉽

소공동체 신학원리 - 심상태 몬시뇰

소공동체 신학원리

심상태 몬시뇰(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소장․수원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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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동체 신학원리 - 곽승룡 신부

소공동체 신학원리 - 곽승룡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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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소공동체 역사

1장 라틴 아메리카의 기초 교회 공동체

1. 기초 교회 공동체(B.E.C) 운동의 기원

1. 라틴 아메리카 공동체들은 1956년 브라질에서 시작되었다. 라틴 공동체 운동이 시작된 주된 원인은 억압, 가난, 사제 부족이었다. 교회에서는 자발적으로 공동체 운동이 일어났는데, 먼저 교리 운동이 시작되었고, 결과적으로 소공동체가 부상하게 되었다. 이런 현상은 브라질에서 칠레, 혼두라스, 파나마 결국 라틴 아메리카 전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라틴 아메리카 주교들의 모임도 공동체 성장에 촉진자 역할을 하였다. 1968년 Columbia의 Medellin, 1979년 Mexico의 Puebla, 1992년 Santo Domingo에서 발생한 공동체 운동의 기색은 이전의 그 어느 모임보다 더 적극적이며 교회 전승에 기초를 두었다. 라틴 아메리카 공동체들의 주요 관심사는 정의, 평화, 가난한 자들과 젊은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었다.

2. 라틴 아메리카 공동체 운동에 있어서 적지 않게 장애를 격었던 교회적인 요인은 해방신학에 대한 로마교회와 라틴 교회 사이의 긴장이었다. 이러한 긴장은 당연히 소공동체 운동에 어려운 환경을 제공하기도 했다. 메델린과 푸에블라의 선언들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일부 주교들은 대부분의 백성을 압도하는 심각한 고통에 대한 생각을 달리하고 있다. 낮은 단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많은 사목 위원회들도 소공동체 운동의 전략들에서 무엇인가를 기대하였다. 소공동체 운동은 다분히 하느님의 가난한 자들 사이에서 일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1995년 상 파울로에서 ‘이상의 효소와 에너지와 희망’이라는 주제로 소공동체 회의가 열렸다. 소공동체는 브라질의 중요한 국가적 모임으로서 언젠가 만나게 될 그들의 과정을 1997년까지 준비하도록 요청되었다.

3. 라틴 아메리카 소공동체 역시 그 기원이 가톨릭교회가 아니라 개신교라는 오해를 받으면서 개신교파가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도전도 받았다. 1970년대 군주 독재시절에 소공동체는 홀로 반체제 목소리를 위한 공개토론장을 제공하였고 교회는 큰 영향을 끼쳤다. 물론 오늘날에는 저항하고 행동하는 많은 길들이 있다. 노동당들, 노동조합, 학생운동들 등이 그것이다. 결국 소공동체가 형성되는 곳에서 예언운동이 이루어지고 현장교회가 발생한 것이다. 그곳에서 그룹들은 유기체의 필요성을 느끼고 조직이 공적으로 인정되었다. 그러나 이 같은 유기체로서 소공동체는 백성을 위한 봉사를 하고, 공동체들의 자치를 고려해야한다. 결국 라틴 아메리카의 기초 교회 공동체는 해방신학과 함께 억압의 상황에서 발생하였다. “기존 사회체제 안에서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의 문제”에서 발생한다고 구티에레즈가 말하였던 것처럼 비인간 실존으로 몰아가는 삶의 환경에서 새로운 삶의 실천을 위한 장으로서 기초공동체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4. 이와 같이 라틴 아메리카에서 기초 교회 공동체의 발생은 다분히 복합적인 것이다. 극심한 가난의 사회적 상황과 사제의 부족, 본당 구조의문제 등 종교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여 1960년대 초 브라질에서 처음 발생하였다. 그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는 바라 도 피라이(Barra do pirai)교구의 공동체복음화운동, 나탈(Natal)교구의 기초교육운동, 그리고 전국사목5개년계획(1965-1970)의 실시 등이다. 공동체 복음화 운동은 바라 도 피라이 교구의 로씨 주교에 의해 1956년 실시되었다. 이 운동의 계기는 사제의 부족현상을 타계하기 위한 노력에서 생겨났는데, 로씨주교는 사제가 자주 찾아갈 수 없는 지역의 농부, 노동자들 가운데 얼마간의 교리교사를 선발하여 공동체를 이끌어갈 지도자가 되는 훈련을 시켰다. 훈련받은 지도자들은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공동체에 사람들을 모아서 함께 기도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게 하였다. 또한 나탈(Natal)교구에서는 라디오 방송에 의해 의식화교육을 실시하였고 이런 교육에 의해 생겨난 공동체들을 기초공동체라고 부르고 이 안에서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되었다. 아울러 1962년 브라질주교회의에서는 기초교회공동체의 육성의 일환으로 3개년비상계획을 발표하였고 1965년에 기초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한 제1차 전국5개년 사목계획(1965-1970)을 수립하였으며 주교회의에 의해 그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기초공동체는 브라질을 위시(爲始)로 전(全) 남미로 확산되었다.

이에 메델린 회의에서는 기초 교회 공동체를 하나의 완전한 교회적 실재로 인정하였고 푸에블라 회의에서는 기초 교회 운동체 운동이 기본적인 복음화의 길임을 선언하였다.

위와 같은 발생과정 안에서 교회와 사회 안에서 복음화의주체로서 성장한 라틴 아메리카의 소공동체 운동은 작은 교회의 세포로서 하나의 교회를 형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2. 기초 교회 공동체 운동의 특징

5. 라틴 아메리카 기초 교회 공동체 형성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몇 명의 주교들에 의하여 시도되었던 “복음화 캠페인”, “기초교육운동”들이 새로운 교회적 공동체들을 발생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공동체들은 평신도들에 의해 스스로 브라질 전역에 확산되었으며, 이와 같은 확산 과정에 대해 주교회의가 정책적으로 지원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브라질에서 시작된 기초공동체는 스스로 라틴 아메리카에 퍼져나가는 하나의 운동 형태로 확산되었는데 여기에 대해 메델린 주교회의는 사목적, 신학적 반성과 함께 기초공동체를 하나의 완전한 교회로 인정하는 결정을 내려준 것이다. 그러므로 기초공동체는 평신도가 주축이 되어서 발생한 가운데 주교회의에서 정책적으로 인정하고 강화함으로서 “교회안의 기초공동체”로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6. 이후 메델린 주교회의의 결정은 세계가 기초공동체의 형성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고, 1974년 제3차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에 의해서 공식적인 복음화의 유효수단으로 인정됨으로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라틴 아메리카의 기초 교회 공동체는 크게 4가지로 구성되는데 그것은 성서, 공동체, 현실, 전례이다. 이 가운데 성서가 생명의 원천으로 자리하고 있다. ‘Relectura'(새로운 눈으로 읽는다 라는 뜻)라 일컬어지는 성서 읽기를 통하여, 기초 공동체에게 말씀은 그들의 삶의 터전 아에까지 직접적으로 들려오는 하느님의 촉구요 위로로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해오고 있다.

2장 아프리카의 소공동체

1. 소공동체(S.C.C) 운동의 기원

7. 아프리카에서 전개된 소공동체 운동은 일차적으로 신자들을 성숙된 그리스도인으로 교육하기 위한 사목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교회 지도층의 주도하에 전개되었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다시 말하면 라틴 아메리카가 민중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아래로부터의 공동체였다면 아프리카의 소공동체는 교회가 주축이 되어 이루어지는 위로부터의 공동체적인 모습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8. 동부 아프리카 주교회의 연합총회(AMECEA)는 그리스도인이 교회생활에 참여하는 방식으로서 기초공동체가 아프리카 지역 문화의 특이성과 다양성이라는 현실 속에서 뿌리를 내리도록 노력하였다. 1973년 동부 아프리카 주교회의 연합총회는 나이로비에서 “1980년대의 동부 아프리카교회를 위한 계획”이라는 주제를 통해서 작은 공동체로 모으는 일에 교회가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는 것을 밝혔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교회가 진정‘지역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서구교회를 옮겨 심는 다는 것도 아니며, 아프리카 문화에 적합하게 하기 위해 그리스도교의 메시지와 본질을 변형시키자는 단순한 적응도 아닌 것이다. 그리하여 아프리카 교회들은 1974년 세계주교회의를 전후로 하여 ‘기초공동체' 모델을 발견하게 되고 1976년 동부 아프리카 주교회의 연합총회의 주제를 “동부아프리카에서의 그리스도인 공동체 건설”로 정하였고 소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을 첫째 사목정책으로 삼게 되었다.

9. 소공동체 건설은 아프리카 민족의 생활 기초가 되는 진정한 인간적 가치들을 수호하는 최상의 길로 묘사되었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주교들은 소공동체가 가정 다음으로 모든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진정한 기초가 된다고 하였다. 또한 그들은 이 소공동체들은 교회 공동체와 각 신자들의 생활의 중심으로서 삶의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였다. 그리하여 1979년 동부 아프리카 주교회의 연합총회는 아프리카 교회발전에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서 소공동체를 제시하면서 소공동체 확립을 위한 현실적인 지침으로 제시하였다.
말라위의 패트릭 칼라롬베 주교는 소공동체 구성을 동부 아프리카 교회의 사목방침으로 정한 데 대한 자신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소공동체의 채택은 사목방침에 있어서 하나의 획기적인 전환이며 기본적 투신이다. 이는 사목적 제도, 정책, 실천 전반에 대한 심도 있는 개편을 위해 의도된 것이다.”

2. 소공동체 운동의 특징

10. 이런 배경 하에서 아프리카 교회의 주교들은 자신의 교구 내 신자들이 부락 중심으로 모여 소공동체를 형성하도록 독려하는 한편, 모임을 이끌어갈 구체적인 프로그램 마련에 주력하였는데 이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주도적인 공헌을 한 기관이 ‘룸코연구소’(Lumko Institute)이다. 룸코 연구소는 공동체들의 실제적인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현존을 깊이 체험하고 복음적인 삶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핵심적인 요소라고 판단하였다. 아프리카의 소공동체는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현실과 문화의 토양 위에 새로운 교회의 형태를 구축하여, 그 결과 라틴 아메리카에서 발생한 기초공동체를 그들의 새로운 교회형태로 받아들이게 된다.

11. 이에 Harry Hoeben은 아프리카의 소공동체에 대해 세 가지 관점에서 언급하고 있다. 먼저 심리적, 사회적 관점에서 볼 때 소공동체를 통해서 그들은 개인적 가치를 깨닫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곧 공동체 안에서 그들은 상호간의 가치와 동일함 그리고 공동 결속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소공동체는 아프리카의 문화적 토양 위에서 모순 없이 서로의 유대를 강화하게 되었다. 둘째로 교회적 측면에서 바라볼 때 소공동체를 통해서 모든 이들이 참관자(參觀者)가 아닌 참여자(參與者)의 입장이 되었다. 참여의 입장은 공동체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역 공동체적 차원에서 볼 때 지역공동체의 문제에 대해서 비전을 공감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소공동체는 그 특징을 가진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3장 아시아의 소공동체

1. 소공동체 운동의 기원 및 전개

12. 아시아 주교회의(FABC)에서 소공동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 제5차 인도네시아 반둥 아시아주교회의에서였다. 최종성명서에서 밝히듯이 아시아의 많은 문제와 불의와 도전에도 불구하고 희망적인 표지는 바로 “공동체에 대한 갈망”, “기초공동체의 성장”이라고 말한다. 1990년대 아시아 교회의 새로운 존재양식은 “평신도, 수도자, 성직자가 서로를 형제자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공동체들의 친교’(communion of communities)"라고 천명(闡明)하면서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으로 함께 불리었고 이 말씀은 그들이 소공동체를 이루도록 이끌어 주며 그곳에서 그들은 기도하고 복음을 다함께 나누고 한마음 한뜻으로 결합되어 서로를 도와주고 함께 일하는 가운데 자신들의 일상생활 안에서 복음을 생활화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13. 특별히 2000년 타이 샴프란에서 열린 제7차 아시아 주교회의에서는 ‘아시아 교회의 쇄신과 사랑과 봉사의 사명’이란 주제로 아시아 교회 쇄신의 전망과 의미를 제시하고 사랑과 봉사의 사명 수행에서 부딪치는 문제와 도전들에 대해서 다루는 가운데 소공동체의 육성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그래서 사랑과 봉사의 사명을 위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진정으로 공동체들의 공동체가 되고자 하는 깊은 열망을 나타내야 하며 그러한 사명을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 교회 기초 공동체, 복음에 바탕을 둔 소공동체 그리고 교회 단체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2. 소공동체 운동의 구체적 전개-AsIPA 총회

14.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FABC) 평신도 사무국 산하에 AsIPA(Asian Integral Pastoral Approach) 즉 ‘아시아사목을 위한 통합적 접근’은 아시아교회 안에서 소공동체가 정착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총 3회의 총회를 통해서 소공동체에 대한 미래의 전망을 제시하였는데 1996년에 있었던 1차 총회가 AsIPA의 소공동체 기초를 익히는데 머문데 반해서 2차 총회부터는 통합사목방법에 대해서 분명하게 밝혔다.

제2차 총회에서 이해된 소공동체는 무엇보다도 전통적으로 교회 안에서 자연스럽게 행하는 방법이며, 이 안에서 모든 이들이 새로운 교회의 구성원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이며 특별히 가정교회를 활성화 할 수 있다고 밝힌다. 나아가 그리스도인의 소공동체는 변화하는 세상의 복잡한 체제를 하느님 나라의 관점에 놓고 변모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효과적인 선포방법임을 말하고 있다. 이렇게 이해된 소공동체에 대해서 몇 가지 과제가 부여되는데, 그것은 소공동체 안에서 받아들여지는 강생하신 하느님에 대한 토착화와 소공동체의 영성, 사회복음화, 새로운 형태의 지도력은 요청되어져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15. AsIPA 제2차 총회에 이어서 제3차 총회에서도 역시 소공동체에 대한 전반적인 논의가 이루어졌다. AsIPA 3차 총회는 아시아 각 지역의 소공동체가 공동의 비전과 관심을 가지고 한 자리에 모여 토의를 하였는데 동시에 AsIPA 2차 총회에 이어진 소공동체 운동의 여정에 대한 평가도 이루어졌다. 그래서 가정, 영성, 지도력, 직무와 관련된 사목활동 나눔이 이루어졌고, 참여하는 교회, 공동책임, 교회비전의 실현과정과 결실에 대한 숙고를 통해 미래의 아시아 사목을 위한 방향성과 계획을 모색하였다.

마지막 총회에서 결의된 사항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참여적 교회건설을 위해서는 특별히 지도력의 영역에서 평신도의 능력을 계발해야할 것이며 또한 지도자와 교육팀을 지속적으로 양성함으로써 봉사하는 지도력을 증진하고 봉사하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둘째, 소공동체를 통하여 가정과 혼인을 풍요롭고 견고하게 하여 가정 안에서 교리교육의 중요성을 증진시킬 수 있다. 셋째, 본당사제에 대한 훈련과 교육을 제공하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소공동체 교육프로그램이 신학교와 수도회의 교육과정에 있어야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공동체의 성장을 위한 국가 간 네트워크, 교구 내 및 교구 간 정보교류 증진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3. 각국의 소공동체 현황

16. 이하에서는 필리핀과 인도의 소공동체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두 나라는 각국이 가지는 문화적 토양의 독특성의 바탕 하에 소공동체 운동을 이끌어 나갔는데 주교회의를 중심으로 소공동체 운동을 펼쳐나간 필리핀의 사례와 교구를 중심으로 소공동체를 이끈 인도의 현실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필리핀

450여 년의 긴 식민지 생활, 7,000여개의 섬, 100여 개의 언어, 여러 부족 등은 필리핀이 가지고 있는 열악한 환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조건에서 필리핀이 소공동체를 운영할 수 있는 조건은 바로 지연이나 혈연으로 작게 뭉쳐 사는 모습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혈연이나 지연 안에서 복음을 읽고, 생활을 나누고, 공동관심사에 관심을 보이는 삶을 살게 된다. 필리핀에서의 소공동체 운동은 위와 같이 필리핀만이 가지고 있는 가정공동체적인 조건과 결부하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라틴 아메리카의 기초 교회 공동체의 영향을 받아 1960년대 중반부터 태동하였으며 1992년 필리핀 주교회의 제2차 총회에서는 소공동체야말로 교회 쇄신을 위한 살아있는 표현이라고 하면서 이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작은 모임의 특성에 따라 BEC(기초 교회 공동체), BHC(기초 인류 공동체), BCC(그리스도교 기초 공동체) 등으로 불리운다. 더군다나 오늘날 문제시 되고 있는 훼손된 생태계의 회복을 위해 결성된 ‘기초 피조 공동체’(Basic Creature Community)는 필리핀인들의 시의 적절한 토착화된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 인도-망갈로르 교구를 중심으로

17. 인도는 소공동체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는 몇 가지 요인을 갖고 있다. 그 중 하나는 본당 관할 지역 내에 구역을 설정하고 'Gurkar'이라고 부르는 지도자가 끌어 나가고 있는 조건은 지도자를 계승시키지 않고 선출하도록 제도가 바뀌면서 소공동체를 설립하는데 더욱 큰 도움이 되는 조건이다. 1960년대에 각 구역의 소공동체 회원들을 가려내기 위해 시작한 것이 본당사목협의회의 출발점이 되었다. 결정적으로 1989년 교구 사제 사목협의회의 주제는 평신도 지도력에 관한 것으로 모든 본당은 적어도 삼년 이내에 하나의 소공동체를 시작해야 한다고 결의하였다.

그 후 사목연수원장을 비롯한 다섯 명의 사제가 Goa에서 열린 Lumko식 복음 나누기 공동 개발자 오스왈드 히르머(Oswald Hirmer)주교가 지도하는 10일간의 전국단위 Lumko 복음 나누기 훈련과정에 참가하였고 다음 해에는 망갈로르 교구 사목연수원 주최로 공동개발자 Oswald 주교가 실시하는 7일간의 Lumko 양성 과정을 개최하였으며 1998년에 소공동체 전담 사제가 임명되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인도교회 안에서 망갈로그 교구는 소공동체가 비교적 잘 운영되는 교구로 보여지고 있다. 그렇지만 평신도들의 지도력이 완전한 상태가 아니고 이미 성숙된 소공동체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점에서 미완의 과제가 남아있다.
18. 망갈로르 교구 소공동체 운동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첫째, 복음 나누기 7단계 방법을 모든 소공동체 모임의 기본으로 만들었다. 둘째, 사제들이 평신도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늘 소공동체의 모임에 참석하였다. 셋째 평신도 지도자 수는 현재 약 8000명으로 본당 사목위원 또는 본당 단체 회원으로 활약하는 사람들의 왕성한 활동이며 넷째 각 본당에는 사목협의회 산하에 소공동체위원회가 있어서 상당히 많은 본당에서 소공동체를 주요 안건으로 다루고 있다.

현재의 망갈로르 교구장 ‘알로이시오 폴 디 소자’주교는 소공동체를 활성화하기 위해서 소공동체 전담 사제를 임명하고 각 지구 소공동체 대표 사제를 임명하고 소공동체 운영 점검을 위한 본당 사목방문 등 사제들의 관심과 협력에 지대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 소공동체가 활성화되었다고 말하면서 소공동체야말로 21세기 교회의 미래상을 제시하는 방법이라고 확신하였다.

4. 한국 ‘소공동체’ 뿌리의 역사적 이해

1) 초창기 한국천주교회 신앙 교우촌

19. 조선 후기 마을문화의 핵심은 혈연과 지연중심으로 정신문화와 노동문화의 두 가지 축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마을 굿이 전자의 예이고 두레굿이 후자의 예이다. 조선 후기의 마을 공동체의 문화를 통해서 알 수 있는 민중생활의 공동체성은 보편적 평등성, 공동체적 참여정신, 두레굿의 공동체적 참여정신 그리고 축제의 문화로서의 마을의 공동체 문화의 특징을 보여졌고 특히‘대동(大同)’이라는 말속에서 쉽게 이해되어지고 있었다.
김영호 교수에 의하면 이러한 공동체적 특성은 종교성과 연관이 된다고 말한다. 즉 우리 민족은 신앙을 중심으로 공동체생활을 해왔다는 점과 조선 후기 마을 공동체의 문화적 특성은 초창기 한국천주교회 신앙 교우촌이 존속(存續)하기 위한 바탕요인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1) 교우촌의 형성

20. 대표적인 교우촌은 배티 일대의 교우촌을 꼽을 수 있다. 1830년부터 형성된 교우촌은 자연스럽게 촌락공동체를 이루었다. 그들은 가정을 통해서 신앙 교육을 시키고 대를 이어 신앙을 증거한다. 교우촌 신자들에게는 기도와 신앙공부, 친교의 나눔이 제일차적인 과업이었다. 교우촌 공동체의 모습은 자율공동체, 성사공동체, 소공동체, 가족 공동체, 운명 공동체, 초대 교회적인 이상 공동체, 수행공동체, 비밀 공동체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초대 교우 공동체는 가족과 촌락 중심의 공동체, 수행을 위주로 하는 신앙인의 모습, ‘천주 신앙’에 기초한 친교와 사랑의 공동체, 참된 고향에 가기 위한 희생과 헌신의 삶을 살았다.

(2) 교우촌 삶의 모습

21. 초대교우촌의 삶의 모습은 신앙과 생활공동체의 역할을 하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초대 공동체는 먼저 함께 기도하는 곳이었다. 선조들은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서 둘이나 셋이 모이면 절대자이신 하느님께 기도하는 습관을 드렸다. 기도는 자발적인 성격을 가졌으며 기도가 끝난 후 마을일 등 생활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둘째로 초대 공동체는 함께 공부하는 장소였다. 함께 모여 성서를 읽고, 교리를 공부할 필요에 의해교회의 올바른 지식을 익혀서 삶의 현장에서 같이 나누게 되었다. 셋째로 초대 공동체는 함께 나누는 곳이었다. 선조들은 신앙인으로서 하느님 안에서 함께 친교를 나누는 삶을 살았다. 이러한 교우촌의 삶의 모습과 연관해서 권혁주 주교는 신앙과 생활의 공동체로서 그 삶의 모습을 모델로 소공동체가 자리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22. 박해 시대에 교우촌 공동체 안에서 생기는 신자와 성직자의 친교는 인상깊다. 신자는 목숨을 걸고 신부를 영입하고 보호하며, 목자는 양떼를 위해 죽기까지 헌신하다. 교우촌 문화의 맥은 신앙의 선조들이 박해의 와중에도 신앙촌을 형성하였고 그를 통해 대를 이어 신앙을 증거하고 순교의 피를 흘렸으며 성직자들이 교우촌의 중심을 이루는 목자였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인 촌락 공동체의 전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최양업 신부님으로 그분의 서한 을 살펴본다면 교우촌의 삶과 영성을 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교우촌 공동체는 좁게는 가정공동체, 나아가 기초구역공동체인 소공동체의 전형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밥을 굶을지언정 가정 기도를 궐하지 않았던 열성이 소공동체 안에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교우촌 문화의 맥을 이음으로써, 초기 한국교회의 역동성이 소공동체 안에서 쇄신되고 새로운 복음화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4장 서유럽의 소공동체

1. 미국과 캐나다

23. 미국에서 소공동체는 영어권과 스페인어권의 많은 교파에서 발견된다. 영어 사용권의 공동체들은 가난한 사람들과의 연대라는 과제가 차분하고 효과적인 길들을 모색하는 행동들과 함께 부상하고 있으면서도 그 구성원은 대부분 중산층 사람들이다. Michael Cowan은 변화하는 사회에 헌신적인 유기체들, 공동체의 다양성과 함께 연결되어있는 작은 신앙 공동체 네트웍들의 연합체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같은 소공동체는 평범한 시민들 사이에서 변화를 위한 기초를 창조하고 있다. 그들이 어떤 민족인가? 어떤 신앙을 가졌는지? 는 크게 상관이 없다. 많은 사람들은 정치 경제적 사업에서 행해지는 길들을 바꾸고 있다고 믿고 있다.
작은 공동체들에 관한 상황은 미국 정신에 깊이 베어든 개인주의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미국에서 존경받고 있는 또 다른 기억들은 공동체의 전통인데, 뉴잉글랜드 17세기에 John Winthrop 치하 초기 청교도 정착자들 사이에서 통합된 생활 부분이었다. 캐나다의 작은 공동체들은 Ontario, Quebec, Alberta, British Columbia, Manitoba에 존재한다. 작은 공동체들은 미국과 동일한 많은 문제들을 함께 지니고 있다. 스페인계 공동체는 영어사용권 보다 구체적인 사목계획을 세우고 소공동체, 새로운 본당, 젊은이 사목, 가정사목, 스페인 문화에 기초한 지도자 양성 등 5가지를 추진하였다.

2. 유럽

24. 유럽에서 소공동체는 많은 그리스도교 교파들에서 볼 수 있다. 서유럽에서 소공동체가 존재하는 것이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동유럽에서는 또 다른 문제이다. 유럽에서 소공동체 문제는 그리스도교 역사 뿐 아니라 유럽의 역사를 통해 진행해왔는데, 그 가운데, 1,2차 세계대전, 공산주의 치하, 베를린 장벽 붕괴, 동서독 통일과 러시아와 소련 연방 국가들의 독립 등과 같은 많은 사건들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

한편 유럽을 종교 사회의 측면에서 관찰해 보면 1948년 제네바에서 세계 교회 회의 (World Council of Churches) 개최와 평신도 부처의 설립 등이 눈에 띠었고, 가톨릭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개최(1962-65)로 교회비전에 대한 삼위일체 공동체의 교회 모델을 선언하였다. 1969년-70년 유럽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작업에 대한 실현을 갈망했던 그룹들이 증가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협력과 네트워크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프랑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에서 소공동체가 지역적으로, 그리고 전국적으로 모이고 있었다. 이러한 종교 사회적 현상들로 인해 결과적으로 83년 Amsterdam, 85년 Turin, 87년 Bilbao, 91년 Paris에서 유럽평의회가 열렸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다음 유럽 평의회는 동유럽 대표들도 함께 초대하였다. 물론 이러한 작업들은 종교일치 차원의 움직임이었다.

25. 가톨릭교회에서 소공동체의 모습을 살펴보면, 더블린 대교구는 사목발전과 대교구 그룹 양성에 힘을 주는 쇄신을 위한 팀을 형성하였다. 작은 공동체를 성장시키는데 좋은 작업은 역시 성인 교육인데 이를 위한 센터를 마련하여 교육을 실시하였다. 지원은 늘 필요한 것이고 그것을 위한 시작과 도움을 위해 지역 네트워크를 이루어야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무엇이나 관계가 없지만, 그 방법과 기술을 적용하거나 그에 따른 구조들을 소개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경험을 진실 되게 나누는 것이다.

유럽 평의회는 93년 Innsbruck, 95년 Geneva에서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95년 Geneva에서 이뤄진 주제는 다음과 같다. 유럽 상황에서 교회가 존재해야 하는 새로운 길, 불의한 세상에서 신앙을 증거 하는 새로운 길, 삶에서 영적차원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작은 크리스챤 공동체는 유행하는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서 전진할 것이다. 곧 폭력에 대하여 비폭력 문화, 탐욕에 대하여 경제적인 나눔의 문화, 독단에 대하여 참여의 문화, 파괴에 대하여 환경을 소중히 하는 문화 등이다. 유럽의 작은 공동체들은 고르바쵸프의 하나의 건물 비전 곧 ‘모두를 위한 유럽의 한 가정’을 깊은 도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3. 오세아니아

26. 오세아니아에서 소공동체(Small Christian Community)의 역사는 짧게는 15년 길게는 50년을 걸어왔다. Newman Societies와 Christian Life Movement, 가톨릭의 Adelaide와 Melbourne 대교구가 이러한 길을 걸었다. Canberra에 개신교 자립의 집 교회들도 초기 70년간 역사를 지니고 있다.

많은 가톨릭 교구들 곧 Melbourne, Canberra, Brisbane, Rockhampton, Townsville, Adelaide, Perth, Bunbury도 그룹 양성을 활동적으로 촉진하는 사목 팀들을 가지고 있다. Canberra 팀은 사목 구성에 있어서 교회일치의 성격을 띠었다. Adelaide 대교구 Leonard Faulkner 대주교는 1989년 ‘Vision for the World'라는 대교구 비전을 선언하였다. 이는 소공동체들의 양성으로 소공동체를 지원하며, 세상의 일들 안에서 증거 할 리더쉽을 말하고 있다. 1994년 사목교서 “Community for the World"(세상을 향하는 공동체)는 대교구에서 소공동체의 형성을 촉진하고 있다. Queensland의 Townsville 교구의 Benjamin 주교는 교구민을 위한 ”The Townsville Experiment"라고 부르는 미래의 전망을 내어놓았다.

27. 교회들은 평신도 지도자들의 질적 향상을 위한 특별한 축복을 두드러지게 받았다. 가톨릭의 지도자들은 젊은 크리스챤 일꾼들과 40, 50, 60명의 학생들 그룹으로부터 주로 선발되었다. 첫 번째 소공동체 국가회의가 1989년 가톨릭 평신도 운동단체 Paulians의 협력으로 시드니에서 개최되었다. Leonard Faulkner 대주교의 후원으로 1994년 국가 모임이 시드니에서 열렸다. 호주의 모든 교구들과 41명의 참관자들이 대표자들로 초대되었다. 이 모임의 관심은 소공동체들 간의 연대와 네트워크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 가였다. 너무 광활한 호주이기에 지역적 문제들과 함께 연대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현안이었다. 1995년 7월29일 “Small Christian Community in Australia" 주제의 회의가 열렸는데, 이 모임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첫째 다양한 소공동체의 자발적인 주도권들을 알리고 소공동체를 대표하는 주요 백성들을 함께 모으는 일이다. 둘째 호주에서 발생하는 넓은 세상 사건들을 접하는 일이다. 셋째 특별한 일과 일반적인 인자들을 수집하는 일이다. 넷째 소공동체에 대한 어떤 것도 평가를 하고 마지막으로 관련되어 보이는 어떤 요청들도 함께 관심을 갖는다.

28. 소공동체에 대한 최종적인 반성은 생명력 있는 현안에서 나타났다. 이러한 현안들은 언젠가는 만나게 될 공동체들의 기억들을 훈련해야 할 것이다. 그 현안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어떻게 다양한 상황에서 협력하고 서로 본받을 것인가? 둘째 어떻게 통합된 현상을 발전시키도록 처리할 것인가? 셋째 어떻게 소공동체에 자극을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발견하는가? 마지막으로 우리 시대에 참 예수님을 어떻게 발견하는가? 이다.

호주에서 소공동체을 건설하는데 어려운 점은 물질주의(materialism)에 직면해 있고 가난한 자를 찾아 볼 수 없는 복지국가로서 미국이나 캐나다 그리고 유럽과 같은 것이다. 이들은 결국 문화의 다양성과 우리 모두를 깨우칠 수 있는 노력들을 통해 어려운 조건을 극복해야 한다.

제2부 소공동체 개념과 필요성

1장 소공동체 용어

1. 소공동체 관련 용어들의 의미 - BCC, BEC, SCC 등

29. 소공동체에 대한 명칭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고 본다. “크리스찬 기초 공동체”(Basic Christain Community=B.C.C),“교회적 기초 공동체”(Basic Ecclesial Community=B.E.C), “작은 크리스챤 공동체”(Small Christain Community=S.C.C) “작은 공동체”는 “소공동체”(Small Community=S.C)라고 부른다. 그러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호칭하는 소공동체 용어는 ‘Small Christian Community’에서 왔다. 소공동체가 우리나라에 사목의 용어로서 자리 잡게 된 것은 1993년에 서울 대교구가 공식적으로 이 용어를 받아들이면서부터이다. 80년대에는 기초 교회 공동체와 소공동체를 혼용하여 쓰다가 소공동체라는 용어가 현재 일반화되었는데 사실 기초 공동체나 소공동체는 용어가 주는 개념에 있어서도 거의 같은 의미와 지향을 가지고 있다.

소공동체의 ‘소(small)’는 규모면에 있어서 소수의 사람들로 구성된 교회 공동체, 즉 소수이기에 상호 친밀감을 느낄 수 있고 누구나 공동체의 주체로서 체험되게 하는 것, ‘소(small)’가 표현하는 의미처럼 작은 이들, 보잘 것 없는 이들, 가난한 이들을 놓치지 않고 공동체의 중심에 두는 것, 하느님 앞에 작은 자들, 가난한 자들임을 고백하는 아나빔(anawim)의 공동체라는 것, 그리고 가장 작은 단위 공동체 즉 가정 공동체 이웃 공동체를 세포 조직으로 하여 이를 우선적으로 튼튼하게 성장시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소공동체는 그 용어적 의미로 볼 때 가난한 이들을 복음적 실재로서 공동체에 중심에 두고 모든 이가 주체적으로 참여하여 삶의 자리를 복음화를 시켜 나가는, 하늘나라를 이루어가는 ‘가능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기초 공동체나 소공동체 모두 작고 보잘 것 없는 풀뿌리와 같은 이들을 공동체에 중심에 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각자가 가진 다양한 은사에 따라 누구나 인격적 주체이며 책임자로서 참여해야하는 복음적 성찰에서 생긴 공동체를 말한다.

현재 한국 상황에서 소공동체를 기존 교회의 단위인 본당의 작은 개념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조금 무리인 듯하다. Joseph.G. Hilly가 조사한 소공동체에 관련된 명칭이 무려 2,846개나 됨을 감안한다면 소공동체는 하나의 살아있는 현실로서 시대적, 상황적 여건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로 출현하고 명명되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명칭과 용어들이 대단히 많고 광범위하다는 사실은 그리스도교 소공동체가 사람들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한 서로 다른 것을 의미함을 가리킨다. 그래서 많은 명칭과 용어는 교회내의 새로운 것, 활기에 찬 것, 생명력 있는 것, 역동적인 어떤 것에 대한 추구와 모색을 반영하고 있는데 그 어떤 것이란 그리스도교 소공동체를 “교회가 되는 새로운 방식”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30. 문자적인 의미의 소공동체에 대한 기원을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신학적인 측면에서는 그 기원을 신약성서의 사도행전에서 기원하고 있다.(사도2,42-47; 4,32-37) 그렇기 때문에 소공동체는 교회의 새로운 체험이면서 동시에 어느 면에서는 교회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으로 여길 수 있을 것이다. 즉 그 기원을 신약성서에서 나타난 초대교회의 공동체에까지 소급할 수 있고, 친교와 선교가 강조되는 교회의 핵심그룹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면모를 갖기에 현대에 있어서 교회의 새로운 체험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공동체가 가지는 친교의 공동체성은 이미 초대교회 안에서 형성된 역사성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2. 소공동체- 교회가 되는 새로운 방식

31. 한국 가톨릭 대사전에 나와 있는 소공동체에 대한 정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소공동체란 “현대에 교회의 본질과 복음을 실현하기 위해 채택된 새로운 교회형태”를 일컫는다. 다시 말하면 “교회의 본질은 공동체이다. 공동체란 그 구성원이 서로 인격적인 사귐과 나눔을 실행하며 생활 전반에 걸쳐 긴밀한 유대 관계 속에 사는 것을 말한다. 소공동체는 바로 이러한 교회의 본질을 드러낼 수 있는 교회적 실체로서, 성령의 이끄심으로 현대 가톨릭교회에 주어진 선물이며, 부활한 그리스도의 현존에 대한 깨달음과 체험으로 이루어지고 퍼져 가는 새로운 교회형태”라고 말하고 있다.

소공동체를 보다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공동체, 교회, 기초의 구성요소로 나누어 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첫째 소공동체는 무엇보다도 공동체이다. 이것은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며 교류를 통해서 서로 돕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서로 밀접한 관계와 평등한 참여를 특징으로 한다. 둘째 소공동체는 교회적 공동체이다. 말씀을 중심으로 모여서 교회와 함께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셋째 바닥(Base)에 기반 한다. 이것은 두 가지를 의미하는데 사회 밑바닥에 있는 이들을 가리키는 것이 그 하나이며 교회의 기초이면서 지금까지 소외되어온 평신도를 중심으로 한다는 것이 그 의미이다.

2장 교회 문헌의 소공동체

1.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4. 9. 10. 11. 12항)

32.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의 모습을 신선한 공동체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교회를 온전한 진리로 인도하시고(갈라4,6;로마8,15-16.26) 친교와 봉사로 일치시켜 주시며, 교계와 은사의 여러 가지 선물로 교회를 가르치시고 이끄시며 당신의 열매로 꾸며 주신다(에페4,11-12;1고린12,4;갈라5,22참조). 복음의 힘으로 성령께서는 교회를 젊어지게 하시고 끊임없이 새롭게 하시며 자기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도록 이끌어 주신다. 성령과 신부가 주 예수님께 오소서! 하고 말씀하신다(묵시22,17 참조) 이렇게 온 교회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일치로 모인 백성으로 나타난다.”(4항)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서로 아무런 연결도 없이 개별적으로 거룩하게 하시거나 구원하시려 하지 않으시고, 오직 사람들이 백성을 이루어 진리 안에서 당신을 알고 당신을 거룩히 섬기도록 하셨다.”(9항)

33. “신자들의 보편 사제직과 직무 또는 교계 사제직은, 정도만이 아니라 본질에서 다르기는 하지만, 서로 밀접히 관련되어 있으며, 그 하나하나가 각기 특수한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유일한 사제직에 참여하고 있다. 신자들은 자신의 왕다운 사제직의 힘으로 성찬의 봉헌에 참여하며, 여러 가지 성사를 받고 기도하고 감사를 드리며 거룩한 삶을 증언하고 극기와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사제직을 수행한다.”(10항)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을 이루도록 불린다. 하느님 백성을 돋보이게 꾸며 주는 이 보편성은 바로 주님의 선물이다. 이로써 가톨릭 교회는 온 인류가 그 모든 부요와 함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그분 성령의 일치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려고 힘껏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13항)

2. 교황문헌의 소공동체

1) 현대의 복음선교

34 교황 바오로 6세는 사도적 권고 「현대의 복음선교」는 1968년에 있었던 제2차 라틴 아메리카 주교 총회가 발표한 메델린 문헌이 처음으로 기초 공동체 관해 인정한 이래 교황청에서 나온 최초의 공식적인 가르침이다. 「현대의 복음선교」에서는 오늘날 교회 안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는 기초 교회 공동체에 대해서 상당한 관심을 가졌다고 말하면서, 현재의 복음선교에서 특별히 밝히고 있는 소공동체의 필요성에 대해서 대도시화로 인하여 발생하는 ‘익명화’와 ‘집단화’를 주요인으로 꼽고 있다. 기초 교회 공동체들이 번창하고 교회와 그 사목자들이 일치하고 있지만, 몇몇 공동체에서 제도 교회를 비판하는 성향으로 잘못 전개될 우려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 기초교회공동체의 긍정적인 측면들을 인정하면서, 보편교회와의 친교를 항상 확고히 할 것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특별히 58항에서, “기초 공동체는 교회적이고 인간적인 유대를 더 강화하고자 하는 데에서 발생한 새로운 교회형태”라고 지적한다. 교황 바오로6세께서 강조하는 소공동체의 중요성은 바로 소공동체야 말로 확실한 교회의 세포라는 것이다.

2) 교리교육 일반지침서

35. 1971년 로마에서 국제 교리교육 대의원회(International Catechetical Congress)가 개최되었고 교황 바오로 6세께서 1971년 3월18일에 ‘교리교육 일반지침서’(Ad normam decreti)를 최종승인 하셨으며 4월11일 공포하셨는데, 이 문헌은 소공동체(Small Community)를 인용하면서, 소공동체가 신앙을 전하는데 매우 적당한 환경임을 역설하였다.

3) 현대의 교리교육

36.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도적 권고인 「현대의 교리교육」은 1977년에 열렸었던 주교 시노드에서 제안되었던 안건인 “공동체들의 공동체를 만듦으로서 본당을 쇄신하는 것”에 대한 결과였다. 다시 말하면 거대화되어져가는 본당을 하나의 구조로 계속 운영해나가야 한다는 것보다는 이보다 작은 공동체들로 구성해서 좀 더 본질적으로 교회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현대의 교리교육」에서 다루어진 가장 중심적인 주제인 ‘교리교육’이 오늘날 각 본당에서 효과적으로 신자들에게 전달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로서 “기초교회공동체”를 꼽고 있는 것이다.

한편 교황 요한바오로 2세께서 1980년 Brazilian Basic Ecclesial Communities의 연설문에서 소공동체는 교회이며 사목자들과 친교를 이루는 평신도 지도자(활성자)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 하였다.

4) 교회의 선교사명

37.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소공동체’를 “교회적 친교의 진정한 표현이며 복음선포의 중심”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회칙「교회의 선교사명」(Redemptoris Missio)에서 교황은 소공동체를 “그리스도교 교육과 선교추진의 좋은 중심터”로 인정하면서 다음과 같은 정의를 내리고 있다. “‘소공동체란’ 소수의 가정이나 인근 신자들이 기도와 성서 독서와 교회 공부와 인간적, 교회적 문제에 대해 토론을 하고 공동 책임을 도출해 내는 소수 신자의 집회”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공동체들은 교회의 활력의 표지이며 신자 양성의 복음화의 도구이며 ‘사랑의 문화’에 바탕을 둔 새로운 사회의 출발점인 동시에 이 안에서 각자의 구성원은 능동적인 역할을 통해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체성사 안에서 복음적인 공동체 건설에 앞장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회칙을 통해서 바라보는 점은 교회 자체가 친교인 만큼 소공동체가 교회와 일치한다면 교회생활에 크나큰 희망을 가져다 줄 것을 말하고 있다.

5) 아시아 교회

38.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권고인 「아시아 교회」는 소공동체 대해서 1998년 주교대의원회의에서 이미 언급되어진 견해를 수용하고 있다. 즉 교회는 ‘공동체들의 친교’임을 신자들이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며, 소공동체 건설은 신자들의 ‘친교’체험에 필수적이며 신앙생활을 발전시키고 활성화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시아 교회」에서는 이와 같은 견해를 적극 받아들여서 소공동체에 대해서 그 중요성을 언급한다.

3. 지역교회주교회의 문헌의 소공동체

1) 메델린 문헌

39. 라틴 아메리카에서 소공동체는 정치적, 사회적 질곡으로부터 해방과 생존을 위한 방편으로 ‘아래로부터’ 움터 싹을 틔웠다. 라틴 아메리카의 소공동체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한 메델린 문헌(1968)은 소공동체를 “교회구조의 일차적인 세포이고, 복음화의 초점이며, 현실적으로 인간다운 성장과 발전의 원초적인 요인”이라고 묘사한다.

2) 푸에블라 문헌

40. 푸에블라 문헌에서 소공동체 대해서 정의한 바를 보면 다음과 같다. 소공동체를 교회와 세상의 임무 수행을 위한 “구체적 기회 제공”과 “투신과 참여의욕 부여”로 믿음과 사랑과 희망으로서 교회의 사명 수행을 촉진하는 공동체요, “공동체를 복음화하는 동시에 공동체의 복음화의 동력”이며, “항구적인 구성체”로서 “비교적 적은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공동체로 묘사하고 있다. 푸에블라 주교회의에서는 몇 년 간의 좋은 결실을 정리하면서 라틴 아메리카에서 날로 증가 일로에 있는 ‘공동체 교회’가 교회의 기쁨이며 ‘교회의 희망’이라고 재천명한다. 이와 함께 소공동체가 교회의 모든 성원들과 교회 안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 사회적인 비중도 막중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그리스도교에게는 하나의 스캔들이요 모순”이 아닐 수 없는 “사회적인 죄악”의 상황에서 점점 많은 이들이 “복음에서 흘러나오는 힘을 받아” 가장 힘이 없었던 사람들이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3) 아시아 주교회의 -반둥, 1990년

41. 아시아의 교회는 평신도, 수도자, 그리고 성직자들이 서로를 형제 자매로서 인정하고 받아드리는 공동체의 친교가 되어야 한다.

4) 인도 주교회의 성명서

그리스도인들의 소공동체는 어떠한 형태로 구성되어 있든 간에 이러한 사명감을 조성하는 강력한 수단의 역할을 한다. 그 이유는 소공동체가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그들이 일부를 형성하고 있는 공동체의 확고부동한 복음화의 욕구를 파악하도록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소공동체는 이르테면 어떤 유기체의 활성세포와 같은 것으로 몸 전체의 안녕을 위하여 활발히 움직이고 공헌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본당에 소공동체를 세우고 커나가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바라나시 제3.2항)

3장 소공동체 4가지 요소

1. 삶의 자리

42. 소공동체는 협의적 의미로서 기본 구성단위가 가정, 구역․반이다. 교회의 선교 사명(Redemptoris Missio)에서 요한 바오로 2세께서 말씀하셨다. “기초 공동체란 소수의 가정이나 인근 신자들이 기도와 성경 독서와 교회 공부와 인간적 교회적 문제에 대한 토론을 하고 공동 책임을 도출하는 소수 신자들의 집회를 말하는 것이다.”(51항) 메델린 문헌(1968)은 소공동체를 “교회구조의 일차적인 세포이고, 복음화의 초점이며, 현실적으로 인간다운 성장과 발전의 원초적인 요인”이라고 묘사한다. 이에 대해서 J. O'Halloran 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핵이란 말은 두 가지 의미, 즉 작은 규모이면서 보다 큰 교회와 인간 공동체의 중심에 위치한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공동체를 지향하는 교회관을 전제로 한 것으로 그 중심에 있는 지역 단위 소공동체로부터 동심원적 파문이 점점 커져 가는 일련의 공동체들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교회 안에서 어떠한 공동체들도 교회의 모체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동시에 각자의 위치에서 고유한 독자성을 유지하는 핵으로서의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메델릴 문헌의 사목지침은 소공동체를 일컬어 “교회 구조의 핵심 세포요, 복음화의 원천이며 현실적으로는 인간성 구현과 발전의 기간(基幹)”이라고 역설하면서 소공동체의 역할에 대해서 높이 평가하고 있다.

2. 복음

43. 소공동체 안에서 복음은 하느님과 이웃과의 일치와 사랑과 친교를 이루는데 중심을 이룬다. 복음나누기는 부활하신 주님을 초대하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인격적으로 그분을 만나는 것이다. 이것이 일반 모임과 소공동체가 구별되는 점이다. 그리고 신자들이 모여 복음을 나누는 것은 우리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직접 외롭고 병들고 궁핍한 이웃에게 가까이 가서 만나시고 어루만지시며 치유해 주셨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소공동체’를 “교회적 친교의 진정한 표현이며 복음선포의 중심”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권고인「아시아 교회」에서는 이와 같은 견해를 적극 받아들여서 소공동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기초 교회 공동체들(Basic Ecclesial Communities)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처럼 믿고 기도하고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들로 살아가도록 신자들을 도와줍니다. 그들은 형제적 사랑과 봉사의 정신으로 복음에 따라 살도록 그 구성원들을 도와주는데 목적을 두며, 결과적으로 사랑의 문화의 새로운 표현인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확고한 출발점인 것입니다.

3. 실천(활동)

44. 소공동체 안에서 실천(활동)의 중요성은 그리스도교 윤리 실천, 이웃과의 일치와 친교를 촉구한다. 소공동체는 그 지역 안에 우리의 손길이 필요한 곳을 찾아 활동한다. 이런 사도직 활동을 통해 공동체는 세상과 만나게 되고 세상을 하느님 사랑의 힘으로 변화시킬 수 있게 된다. 곧 우리의 삶이 복음화 될 때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의 빛을 우리의 이웃에게 자연스럽게 드러내며 복음이 선포된다. 사실 삶의 현장과 복음이 결합 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장소가 소공동체이다. 그것은 삶의 현장 곧 우리가 사는 세상, 가정이나 많은 시간을 보내는 회사에서 모임을 갖기 때문이다.

푸에블라 문헌은 소공동체를 교회와 세상의 임무 수행을 위한 “구체적 기회 제공”과 “투신과 참여의욕 부여”로 믿음과 사랑과 희망으로서 교회의 사명 수행을 촉진하는 공동체요, “공동체를 복음화하는 동시에 공동체의 복음화의 동력”이며, “항구적인 구성체”로서 “비교적 적은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공동체로 묘사하고 있다.

4. 보편 교회와의 일치- 본당과 일치, 교회와 일치

45. 소공동체는 마치 우리 몸의 세포처럼 소공동체와 소공동체가 상호 유대를 맺고 본당 사제들과는 물론 교구장과도 일치하여 신앙인들 전체가 하나인 교회로 나아감을 뜻한다. 위로는 하느님과 일치하고 아래로는 세상에서 소외된 불우한 이웃과 일치하여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다. 이렇게 소공동체들이 일치할 때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서 교회는 세상의 일치를 위한 표지요 도구가 된다.

교황 바오로 6세는 사도적 권고 「현대의 복음선교」는 기초 교회 공동체들이 번창하고 교회와 그 사목자들이 서로 일치하고 있지만, 몇몇 공동체에서 제도 교회를 비판하는 성향으로 잘못 전개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기초교회공동체의 긍정적인 측면들을 인정하면서, 보편교회와의 친교를 항상 확고히 할 것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특별히 58항에서, “기초 공동체는 교회적이고 인간적인 유대를 더 강화하고자 하는 데에서 발생한 새로운 교회형태”라고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기초 공동체들이 오로지 자기들 나름대로 하느님 공경과 믿음에 관한 깊은 연구, 형제적 사랑의 실천, 기도 생활, 사목자들과의 일치 등 종교적, 영성적 문제에 관하여 적은 사회단체나 마을 같은 단위에 확대해 나갈 수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공동체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묵상하는 것과 성사배령, 사랑의 일치를 위하여 연령, 교양, 직분 혹은 사회 환경이 비슷한 사람들의 모임인 부부, 청소년, 직장인의 단체를 집합시키려고 한다. 또한 정의를 위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며 인간발전을 위해서 뭉쳐진 사람들을 결속시킬 뿐만 아니라 사제가 부족하여 정상적인 본당 생활 운영이 잘 안되는 경우 신자들을 결합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모든 것은 교회가 인준한 공동체 안에서 더욱 특수한 교회나 본당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현대의 복음선교」에서 말하는 교회의 공동체적 지향은 교회의 공동체가 바로 “복음 선교의 못자리”가 되어야 하고, 보다 큰 공동체, 특히 지역교회의 도움이 되어야 함과 동시에 이것은 바로 “보편교회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소공동체 모임은 가정, 직장, 상가에서 모인다.
복음 읽기, 쓰기, 나누기, 기도를 한다.
선교, 봉사, 병자. 쉬는 양 방문등 활동한다.
소공동체들과 본당과 연대한다.

4장 소공동체의 필요성

1. 삼위일체 하느님의 공동체 - 삼위일체 신비, 친교

46. 차동엽 신부는 소공동체의 필요성을 먼저 공동체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적 원리라는 관점에서 성서신학적 관점을 말하고 있다. 주님과 영이 공동체의 머리이며,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예수 공동체의 기초라고 말한다. 그런데 예수의 공동체는 결코 자체 목적이나 자기존립을 위한 제도가 아니고, 본질적으로 사람들, 세상을 위하여 존재한다. 교회는 궁극적으로 위타(爲他) 공동체이기 때문에 변화된 사회 속에서 유동성과 다원성이 증가하는 것에 대응하기 위해 종래의 속지 공동체를 직장, 범주 공동체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 소공동체는 구원공동체의 고유성에 입각하여 형성된 공동체로서 구조가 독립성, 개방성, 인간성, 소규모성, 범주 공동체 및 직장 공동체 등의 특성을 지녀야 ‘세상과 내일을 위한 공동체 구조가’가 될 수 있다고 클로스터만은 말한다. 이러한 성서신학적 관점의 본질은 삼위일체 신비 안에서 드러나는 친교이다. 따라서 소공동체의 필요성은 삼위일체 신비를 이해하고 실현하는데서 드러난다.

47. 삼위일체 안에 세 위격들은 한 하느님이지만, 각자는 완전한 위격이다. 이렇듯 삼위일체 하느님 백성으로서 교회도 역시 다양한 인간들이 완전한 인격으로서 있으며 각자는 손상되지 않으면서 하나로 통합되어있어야 한다. 삼위일체 세 위격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서로 상대방 안에 계시면서 각자의 뜻이 아니라 상대의 뜻에 따라 움직이시기 때문 탈자아적 사랑의 친교를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듯이 교회의 하느님 백성 역시 서로 상호 친교의 본성을 살아야 한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 교회는 제2차바티칸 공의회에서 교회를 친교의 공동체로 강조하고 있지만 아직도 한국 가톨릭 교회가 친교의 교회론을 실현하고 증거 하는데 적지 않은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교회 안에는 자유와 권위 사이의 충돌은 존재하지 않는다. 교회 안에는 친교와 일치는 존재하지만 획일성과 전체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보편성을 의미하는 가톨릭은 하느님 백성 곧 여러 신자들이 친교와 일치의 삶을 살아간다는 다양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48. 삼위일체의 모습으로서 교회를 생각할 때 교회의 모습은 먼저 삼위의 위격들이 서로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다양성 안에 하나로 친교와 일치를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 교회 또한 다수의 교회들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삼위일체 모습을 닮아야 한다. 삼위일체 안에서 세 위격들이 동등하듯이, 교회 속에서 하나의 주교는 모든 나머지 주교들에 대하여 절대적인 권위를 휘두를 수 없다. 그러나 삼위일체 안의 성부는 신성의 원천과 기원으로 탁월성을 나타내고 있듯이, 교회 안에서 교황은 ‘동등한 자들 가운데 첫 번째’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삼위일체 모습으로서 교회에 대한 관념을 드러내었고 친교의 교회론을 이해하도록 선언하였다. 공의회는 삼위일체적 본성의 표현이다. 삼위일체의 모습에 따른 다양성 속에서 친교와 일치는 공의회 속에서 모인 주교들이 성령의 인도 아래 공통된 정신에 도달함으로 행동 속에서 보여 질 수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교회를 하느님 백성과 그리스도의 몸인 신비체로 말하고 있다. 하느님 백성은 다양한 사람들이 하느님을 중심으로 모인 친교 공동체로서 교회이다.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교회는 신자들의 친교와 일치와 참여가 특징으로 드러난다. “사막을 여행하던 혈육의 이스라엘을 이미 하느님 교회라 불렀던 것처럼 현세를 여행하며 미래의 나라를 찾고 있는 새 이스라엘도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부른다.”

2. 공동체가 너무 크고 단조롭다.

49. 차동엽 신부는 현대 사회 구조가 공동체를 요구하는 사회학적 요청을 소공동체의 필요성이라고 말한다. 그는 그라이나커 이론을 원용하면서 사회의 유동성과 역동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속지적 원칙을 기능적인 원칙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사회학적 연구를 통하여 현대 도시 사회의 복잡 다양한 구조와 다원적인 생활양식에 부합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교회가 종래의 거대하고 단색적인 존재방식에서 지역적 특색과 다양한 직능을 반영한 ‘공동체 교회’로 탈바꿈해야한다고 주장한다. 현재의 복음선교에서 특별히 밝히고 있는 소공동체의 필요성도 대도시화로 인하여 발생하는 ‘익명화’와 ‘집단화’를 주요인으로 꼽고 있다.

서울교구 등 몇 교구가 한국에서 소공동체를 시작한지 벌써 10여 년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적지 않은 수도자와 사제 그리고 평신도들에게 소공동체에 대한 이해와 공감대가 더욱 요청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현 사회와 교회 그리고 가정 상황이 소공동체 사목과 모임을 위해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는 것도 사실이다. 곧 맞벌이 부부가 증가하고, 남성 신자들의 참여의 부족이 급격히 발생하였다. 더욱이 본당 주임신부의 열성으로 소공동체 모임이 빈번해지다보면 기존의 신심 사도직 단체(레지오 등)들과 마찰과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것도 본당 공동체의 현실로 나타난다.

50. 그러면 왜 소공동체가 필요한가? “지금도 문제없이 교회 안에서 신자들이 신앙생활 잘 하하고 있는데! 왜 소공동체를 해서 본당에서 더 어려움을 일으켜야 하나?” 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유는 분명하다. 소공동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지금 교회와 신앙생활의 본질을 살아가자는 운동 곧 교회다운 교회 살기 운동, 새로운 교회로 있는 존재방식이다. 현재 한국천주교회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대형교회가 만들어진다. 그 맘모스 교회에서는 교회 형제 자매들이 서로 서로를 알지 못하고, 안다 해도 신자 단체 곧 레지오, 성가대, 안나회, 자모회... 구성원들끼리만 알고 친목을 나눈다. 영세 입교한 새 신자들에게 교회와 소공동체의 따듯한 환영이 필요하다. 한국천주교회의 고질적인 냉담율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주일미사 참례자수는 신자수의 30%, 수계생활자는 40%정도에 멈추어있다. 하느님 백성의 나머지 50-60% 잃은 양, 쉬는 양들은 어디에 있고 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가?
51. 차동엽 신부는 신앙 및 인격의 정체성 형성과 유지에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심리학적 요청을 소공동체의 필요성으로 말하고 있다. 교회는 공동체를 위한 친교 마당을 제공하면서도 사회를 위한 인격적인 대화의 장을 제공해야 한다고 디터 에마이스의 말을 인용하여 말한다. 그는 이런 요청을 실현하기 위해 교회 학습 공동체와 공동생활 공동체들에서 가능하다고 본다. 곧 익명성에서 탈피하여 만남의 기회를 제공하여 소그룹으로 만나 새로운 신앙 안에서 자기가 누구인지를 인식시켜줄 수 있다면 시간적을 제한된 만남이라도 괜찮다. 제도교회의 결함을 보완하기 위한 소그룹을 조직해야 한다. 협조자들의 양성이 매우 중요하다. 결국 신앙인으로서 사회인으로서 위기와 복잡다단한 병적 증세를 극복하며, 건강하게 ‘자아 정체성’을 유지하기나 보존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인격적 친교의 마당인 소그룹 조직, 곧 소공동체가 절실히 요청된다는 것이 집단 심리학의 결론이다.

52. 우리가 삶과 복음을 온전히 융합하여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그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교회는 머지않아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곧 우리의 주변은 날로 비인간화 되어가고 물질주의로 더욱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만연 해 가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교회가 이런 현실을 복음화 하는 데 소홀히 한다면 신자들의 냉담율이 날로 증가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아직도 우리는 삶의 가운데 복음을 심는 데 소극적이고 미혼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우리의 과제가 있다고 하겠다. 이것이 소공동체를 해야 하는 이유이다. 소공동체 모임은 우리의 삶을 복음화 할 수 있도록 한다. 신앙과 삶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소공동체가 모이기만 한다고 복음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소공동체 모임의 기초는 복음나누기이다.

3. 위임과 책임을 나누는 교회의 주체, 평신도의 위상

53. 공의회는 교회헌장에서 교회 안에 직분상의 교계제도를 언급하기에 앞서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표제를 채택하여 모든 믿는 이들의 ‘일반적 사제직’이 ‘특수 사제직’에 우선함을 천명하고 있으며(제2장), 고유한 ‘평신도’부분의 장을 할애하여 평신도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사제직, 예언직, 왕직에 자신의 고유한 방법으로 참여할 뿐 아니라 그러한 삼중직무를 가진다고 밝힌다(제4장).

또한 공의회는 평신도 교령을 통해서 다음과 같이 역설하면서 평신도의 사명에 대해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평신도 사도직은 그리스도 신자로 불렸다는 사실에서 유래하는 것이므로 교회 안에서 고유하고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분이다. 교회 헌장은 그러한 평신도 사도직이 교회의 구원사명 자체의 한 부분임을 설명하면서 이 사명에 주께서 친히 성세와 견진성사를 통하여 모든 사람을 부르신다.”고 밝히고 있다.

「평신도 그리스도인」에서는 “친교의 신비인 교회의 신비 안에서 평신도의 신원이 드러나며, 평신도들의 근본 존엄성이 밝혀진다.”고 전제한 후 평신도의 신원을 설명하고자 한다. 그래서 본 문헌에서는 평신도들이 교회에 속해 있을 뿐 아니라 그들 자신이 바로 교회임을 더욱 분명히 의식하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따라서 평신도들은 다른 신분의 구성원들과 함께 교회의 친교와 구원사명에 대한 참여의 목적이며 주체들이며 그들 나름대로 사제이시고 예언자시며 왕이신 그리스도의 삼중사명에 참여하는 것이다.

54.「평신도 교령」에서 역설하였던 것처럼 「평신도 그리스도인」에서도 평신도의 사명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몸을 건설하기 위하여 그리고 세계 안에서 그 구원사명을 위하여 직무와 은사를 부여하신다. 성령께서는 세례 받은 모든 사람들에게 교계제도와 은사의 여러 가지 은혜를 아낌없이 베풀어 주시며 각기 개별적으로 능동적인 공동책임을 지도록 그들을 부르신다.” 그렇기 때문에 “평신도들은 세례를 받은 신분과 그 고요한 소명으로 말미암아 각자의 능력대로 그리스도의 사제적, 예언자적, 왕적 생명에 참여”하는 것으로서 세례를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각기 받은 소명의식에 의해 차별을 받지 않고 각자가 받은 고유한 소명을 수행해야만 하는 공동체성안에 있는 존재임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그리스도인은 교회의 직무와 친교와 구원활동에 참여하도록 부름 받은 존재라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55. 레오나르도 보프는 소공동체에서 평신도의 역할에 대해 “기초 공동체는 본질적으로 평신도 운동이다. 평신도는 소공동체 안에서 복음의 목적을 수행하고 교회의 향방과 현안의 결정 과정에서까지도 매체와 수단의 역할을 한다”라고 말하였다.

최덕기 주교는 본당의 소공동체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모든 평신도가 교회 생활에 협조자로서가 아니라 교회의 주체로서 참여할 수 있게 해 주기에 교회의 주체 확립이란 차원에서 본당의 소공동체화가 요청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교회의 현재와 미래를 위하여 진지하게 고려되어야 할 우선 과제 중 하나가 평신도들이 교회의 주인으로서 교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사목적 제도가 마련되어야 하는데 교회의 기초공동체를 통하여 이것이 가능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됨으로써 평신도들은 소공동체 안에서 신앙과 삶을 연계하는 방법을 얻을 수 있을 것이며 이로 인해서 교회와 사회를 개선하고 변화시킬 힘을 얻을 것이다.
56.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평신도의 특성을 세속성에 두고 평신도의 사명을 ‘세상을 성화하는 것’이라고 할 때 각기 공동체에서 평신도 사도직이 구체적으로 이행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 공동체는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소공동체가 결성이 되어 자신들의 삶을 말씀 안에서 정화하고 결심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성직자나 수도자로만 중심이 되어 움직이는 그 공동체는 자생력이 없어지게 된다. 실제적으로 그들의 역할은 공동체 안에서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러야만 한다. 이러한 면에서 공동체에서 평신도들이 차지하는 위치는 더욱 부각되어야 하며 더 나아가 공동체를 이끌어나갈 평신도지도자를 양성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게 된다. 더 나아가 교회를 이루는 구성원들 즉 평신도들의 역할이 새롭게 재고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럴 때 현재의 소공동체 운동이 생활 안에서의 공동체로 정착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것이다.

4. 인간 속성이 공동체를 원하고 있다.

57. 차동엽 신부는 파울 베스의 이론을 원용하면서 서구 정신사에서는 ‘관계’보다 ‘하나됨’에 뚜렷한 우선권을 두고 왔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곧 인간존재 이해를 ‘고립된 존재’로 파악하고 인간 ‘상호관계’를 소흘히 취급한 정신사조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베스는 ‘관계적인’ 존재 이해 및 인격 이해라는 전형적인 그리스도교적인 패러다임을 새롭게 정립하고 있다. 그는 상호 인간적 관계성과 신앙적 관계성, 말하자면 수평적인 것과 수직적인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드러나고 있으며 이는 삼위일체 신앙에서 그 바탕을 이루고 있다고 역설한다. 결론적으로 베스는 ‘상호간의 신앙적, 인격적 사랑’을 교회의 내적 본질이라고 본다. 신적인 사랑이 형제자매적인 나눔을 통해서 실현되도록 하는 장이 바로 공동체라는 것이다.

58. 교회가 삼위일체 하느님의 모습을 닮았다는 것은 삼위일체 신비의 원리 곧 다양성(위격들)과 일치성(본성)의 신비를 재생산하고 있다는 뜻이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학적 영성적 원리는 나눔과 섬김의 자기비움(kenosis, self-emptying)으로 드러난다. 삼위일체 신비의 영성은 하느님의 자기비움, 성자의 자기 비움, 성령의 자기비움으로 들어난다. 자기비움은 또 따른 표현으로 ‘사랑의 역동성’(dynamical Agape)이다. 하느님은 세상 창조부터 줄곧 인간을 향한 당신 사랑을 드러내셨으며, 결정적으로 하느님의 자기비움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벗어나 ‘탈자아’ 곧 사람이 되신 강생사건으로 드러난다. 성자의 자기비움은 죄인들이 받는 세례를 스스로 받으시고 결정적으로 세상의 죄를 위해 수난하시고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심으로 드러난다.

59. 성령의 자기비움이야 말로 교회론의 원천으로 삼위일체의 신학적 원리와 관련되어 있음을 우리는 구세사 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성령은 세상 창조 때부터 종말에 이르기 까지 성부와 성자의 뜻에 따라 하나가 되는 통합의 원리로서 결코 성부와 성자를 앞서 나가지 않으며 오히려 성자를 구약에서부터 준비하고 신약에서 아버지의 뜻에 따라 성자와 동행하면서 하느님 구원을 역사(役事)하였으며 성자께서 하느님 오른편에 앉으시며 이제는 성부와 성자의 사랑을 인간들과 함께 하면서 임마누엘의 하느님을 체험하도록 온전히 사람들에게 내어주신다. 성령의 자기비움은 항구하게 하느님의 사랑의 역동성을 삼위 안에서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실현하게 통합하는 삶으로 자신을 조용히 드러내지 않고 내어 주셨다. 이와 같이 삼위일체의 하느님은 성부, 성자, 성령 사이에서 자기비움의 삶이 실현되는 사랑의 역동성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 사랑의 역동성은 삼위일체 하느님의 자기비움의 영성으로 모아지는데, 삼위는 먼저 상대에게 스스로 내어주시는 삶(self-giving)으로 나고, 결국 자신을 상대에게 내어줌은 상대의 입장에서 스스로 받음(self-receiving)과 관련되어 풍요로움으로 드러난다.

결론적으로 공동체는 삼위일체 신앙에 바탕을 두고 있는 그리스도인 서로간의 사랑이, ‘의식’과 ‘구조’의 필수적인 일치 안에서 자기실현을 하는 구체적인 장소이다. 하느님과 이웃과 더불어 사랑과 인격의 친교를 나누는 것이 신앙과 본질의 요청이라는 새로이 각성된 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그에 걸맞는 새로운 구조 안에서 서로가 서로의 이름을 알고 개인적으로 사귀며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작은 규모의 공동체 건설에 힘써야 한다.

제3부 소공동체 신학과 영성

1장 소공동체 신학

1. 초대 교회 공동체

1) 신약성서의 공동체

60. 누가 크리스찬 소공동체의 창설자인가? 물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어떤 점에서 미래 공동체의 모습은 설계사가 새롭게 설계하고 아름답고, 실용적이며 다 기능적으로 단장해서 개점한 백화점과 같은 느낌일 수 있겠으나 지금까지는 구닥다리 복음과 같은 느낌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새 공동체든 옛 공동체든 성서에서 제시하고 있는 것은 순례하는 공동체 안에서 그 기원을 지니고 있다. 그 순례하는 공동체는 예수님과 함께 팔레스타인의 먼지 길들을 밟아왔으며, 성령강림 사건이 있은 다음 예루살렘에 첫 크리스챤들이 모여들었다.(사도2,42-47;4,32-37) 그리고 바오로 사도의 전교활동으로 다른 넓은 세계로 퍼져나갔다.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예루살렘, 안티오키아. 에페소, 필립비, 고린토 등에 포진되어 있었다. 많은 성서학자들이 동의하지는 않지만, Raymond Brown은 신약성서 시대 교회는 자체로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사목서간(디도, 디모데오)에 따른 바오로계 공동체는 잘 조직화된 교회의 모습이었으나, 불안전한 시대였기 때문에 직무의 권위가 중요했으며, 장로의 역할이 강조되었다. 골로사이 사람들과 에페소 사람들에서 발견되는 교회의 모습은 사랑에 기초된 그리스도의 몸으로 드러난다.

61. 루가 복음과 사도행전에서 ‘교회와 영’으로서 공동체 형태를 찾아볼 수 있는데, 이러한 교회는 영의 현존과 활동이 강조된다. 베드로1서에서 발견되는 교회의 모습은 하느님 백성으로 나타난다. 이 형태의 공동체 모습은 강한 소속감을 느끼는 인격체들을 형성하고 있다. 요한복음의 전승에서 발견되는 공동체 모습은 예수님 안에 인격적인 친밀함이 드러나고 있는 제자들 공동체로서의 백성을 보여주고 있다. 요한은 그의 서간에서 파라클리토 영에 의해 인도된 인격체들의 공동체를 보여주고 있다. 유대인들이 개종한 마태오 공동체는 예수님 안에서 드러나는 권위를 강조하고 있다.

지금까지 신약성서에서 나타나고 있는 교회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신약성서에 나타나는 교회 모습은 두 가지 특징 곧 공동체와 하느님 백성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권위 또한 전혀 지배적인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봉사하는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 형제자매 공동체의 원리는 권위와 힘의 오만을 금하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실천하며 서로 도와주는 데 있다.

62. 바오로 사도가 제시하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1고린12,37)과 공동체로 분명하게 나타난다. 바오로사도가 이해한 공동체는 그리스도 안에 함께 존재한다. 바오로가 제시하는 공동체들 곧 초기 크리스챤 그룹들에서 중요하게 나타나는 것은 백성이고, 조직과 건물은 두 번째이다. 신앙인들은 가정에서 만났으며 교회가 없었다. 베드로 사도가 문을 두드리며 들어오고 요한과 마르코의 집에서 함께 모였으며(사도12, 12), 바오로 사도는 프리스카와 아퀼라의 집에서 만난 교회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기도 한다.(로마16,5. 11-15) 이렇게 초기 크리스챤들은 가정에서 만났는데 이는 그들이 친밀한 그룹 곧 친교를 경험한 것을 말한다. 그러나 공동체들의 친교를 중요하게 경험하는 해가면서 소공동체들을 이루어 가는데 역시 걱정거리도 존재하였다.

2) 예수 그리스도와 제자들의 공동체, 초대 교회 공동체의 정신

63. 예수 그리스도께서 원하셨고 만드신 공동체는 먼저 회개에로 초대된 공동체로 나타난다.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께서 갈릴래아에 오셔서 하느님의 복음을 전파하시며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 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마르1,14-20) 예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당신 곧 하느님께서 원하신 공동체의 모델로 선포하시고, 이를 실현하시기 위해 제자들을 부르신다. “예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 가시다가 호수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는 어부 시몬과 그의 동신 안드레아를 보시고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하고 말씀하셨다.”(마르1,16-17) 예수께서는 당신이 원하신 공동체를 전하고 만들어 가기 위해 제자 공동체를 구성하신다.

64. 하느님 나라로서의 공동체는 자비와 용서가 주어지는 하느님 은혜의 나라이며, 또한 밭에 뭍힌 보물을 찾아나서는 적극적인 나라이다. 곧 하느님의 나라로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공동체는 한 마리 잃은 양을 찾아 나서고, 잃었던 은전을 찾는 기쁨의 나라이며 동시에 회개하여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는 작은 아들을 집 앞에서 늘 기다리시는 열린 나라이다. 한편 예수께서는 세리와 죄인들 그리고 제자들과 늘 어울려서 함께 음식을 먹는다. “내가 바라는 것은 동물을 잡아 나에게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다. 나는 선한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태9,10-13) 이와 같이 예수께서 원하시는 공동체는 그 원형이 하느님 나라의 실현으로서 그 나라는 자비와 용서가 드러나는 공동체이다.(루가15,11-32)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자비와 용서의 공동체 모습은 결정적으로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는 식사와 회개한 사람들에게 베푸는 잔치 그리고 죄와 마귀와 병에 걸려 고통에 빠져있는 자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들에게 베푸시는 치유와 이적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
65. 예수님이 원하신 하느님 나라로서의 공동체는 최후의 만찬의 성체성사와 세족례에서 그 정신이 드러난다. 성체성사와 세족례야 말로 히브리인들의 파스카 축제 즉 출애굽 기념제의 의미를 훨씬 뛰어넘는 새로운 파스카 정신을 담고 있다. 세족례의 정신이야 말로 새 파스카이며 그리스도 새 모습이고 새로움의 잔치이다. 우리는 오늘 새로운 이 파스카 잔치 안에 앉아 참여하고 있다. 우리는 단순히 구약의 파스카 잔치에 참여하기 위해 앉아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늘 유대인들이 형식적으로 마음에도 없이 매년 기념하던 이집트로부터 해방된 옛 파스카 잔치에 앉아 있는 것만이 아니라 바로 오늘 주님께서 벌이시는 마지막 최후의 만찬 새 파스카 잔치에 앉아 있다.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요한13,4-5;14-15) “네가 너희를 사랑한 것 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13,34-35) 결국 예수께서 원하신 공동체는 역사의 예수님 삶과 성체성사 안에서 온전히 드러나고 있는 사랑(agape)의 공동체이다. 마지막으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공동체의 모습은 선교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28,19-20)

66. 로핑크는 초대교회에서 지향해야 하는 교회 공동체의 성격을 공동유대, 화합된 사회로 바라보았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는 공동체가 추구하는 목적에서 어느 누구도 거부되어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 공동체에서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노예이든 자유인이든”(1고린12,12) 서로 함께 지내야할 타당성의 제시된다는 점이다. 한 분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형제 자매적 유대 안에서는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통치권으로 드러나는 권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마르10,42-45) 하느님 백성 안에서 존재하는 권위는 오로지 예수의 권위뿐이다. 하느님에 의하여 선사된 공동유대의 새로움에 드러나는 원초교회의 가장 아름다운 표현은 ‘아가페’, 곧 사랑이다.

67.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서로 도와 주며 빵을 나누어 먹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사도들이 계속해서 놀라운 일과 기적을 많이 나타내 보이자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그들의 모든 것을 공동 소유로 내어 놓고 재산과 물건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한 마음이 되어 날마다 열심히 성전에 모였으며 집집마다 돌아가며 같이 빵을 나누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함께 먹으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이것을 보고 모든 사람이 그들을 우러러 보게 되었다. 주께서는 구원받을 사람을 날마다 늘려주셔서 신도의 모임이 커갔다.”(사도2,42-47) 초대 교회는 말씀을 증거(martyria)하는 공동체(필립1,28), 전례거행과, 기도를 하는 공동체(liturgia)(신명10,12), 친교와 일치가 드러나는 공동체(koinonia)(로마12,15), 봉사, 나눔이 이루어지는 공동체(diakonia)(마태9,13)로 나타난다.

68. “그러면 형제 여러분,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이 함께 모일 때에는 찬송하는 사람도 있고 가르치는 사람도 있고 하느님의 계시를 말하는 사람도 있고 이상한 언어로 말하는 사람도 있고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도 있을 터이지만 모든 것은 교회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이상한 언어를 말할 때에는 둘이나 많아야 셋이 차례로 말해야 하고 한 사람은 그것을 해석해 주어야 합니다.”(1고린 14,26-27) “서로 격려해서 사랑과 좋은 일을 하도록 마음을 씁시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처럼 같이 모이는 일을 폐지하지 말고 서로 격려해서 자주 모입시다. 더구나 그 날이 가까이 오는 것을 아는 이상 더욱 열심히 모이도록 합시다.(히브 10,24-25)”

2.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상- 삼위일체 하느님의 공동체, 친교교회-

69. 이제 역사적 변천과정에서 교회이해의 획기적인 전환이 이루어지게 된다. 다시 말하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를 일컬어 “그리스도의 몸”이며, 특별히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친교에 바탕을 두고 하나로 일치한 백성이 된다.”고 정의하였다. 그리고 “공동체는 친교를” 의미하므로 ‘친교’라는 중심개념을 통하여 교회공동체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평신도 그리스도인」에서도 밝힌 것처럼 친교의 교회론은 공의회의 중심개념이고 기본개념이라고 밝히고 있다.

공의회는 「교회헌장」에서 교회의 신비적인 요인을 부각시켰다. 다시 말하면 교회를 우선적으로 “신비”, “일치의 성사”, 즉 하느님과 인간, 또는 인간사이의 일치를 위한 성사로 서술하였다. 언어의 표현은 달리 하고 있지만 한스 큉은 교회를 일컬어 ‘하느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피조물’로 묘사하였으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삼위일체 안에서의 친교가 사랑이라고 말하면서 교회의 탄생의 기원을 말씀하고 계신다. 이런 면에서 보았을 때 교회가 가지는 신비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의 친교의 안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하겠다. 왜냐하면 “친교의 영성은 무엇보다도 우리 안에 머무르시는 삼위일체의 신비에 대한 마음의 관상”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70. 교회를 가장 단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개념이 친교라고 한다면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과 인간의 가장 친밀한 친교를 나타낸다. 그리고 하느님과 인간과의 가장 완전한 친교는 그리스도의 강생이며, 교회는 이 그리스도의 신비를 연장 내지는 모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는 성령에 의하여 생활하는 그리스도의 신비체이다. 교회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일치에 바탕을 두고 모인 백성”으로서 삼위일체인 하느님의 친교 안에 사람들을 인도하여, 그들을 성화하여 구원에로 인도하는 것을 그 사명으로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친교의 신비로서의 교회론을 표명함에 있어서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의 교회를 구분하면서 성삼의 교회론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교회는 성서의 삼위일체 신비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출발하는 친교 교회론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삼위일체 신비는 친교 공동체 영성이며 이를 기초로 친교 교회론이 실천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교회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일치로 모인 백성”으로 나타난다. 교회는 높은 곳으로부터 우리 모두를 받아주시는 하느님의 부름을 받은 자들이 모여 있는 공동체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하나의 인격으로 부르지 않으시고 다양한 인격과 각자에게 필요한 구체적인 목적으로 초대하셨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친교신비이다. 친교 교회론은 삼위일체와 자비의 신비 안에서 나눔과 섬김을 통한 화해를 살아가는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에 대해 성서에서 출발하는 친교 교회론으로서 세 가지 모습과 형태를 말하고 있다. 친교 교회는 하느님 나라로서 선포되고, 그리스도 몸 신비체 그리고 성령의 궁전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결국 종말론적인 삶을 향하여 가는 화해의 신비를 실현하는 것이다.
71.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론은 삼위일체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는 친교의 교회론으로서 삼위의 탈자아적 사랑의 친교가 구체적으로 한국 가톨릭 교회의 조직과 운영 그리고 교회 평신도 봉사직에도 그 원리가 적용되어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 몸의 신비체 곧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모두가 살아 숨쉬는 연대와 협력의 유기체적 공동체이다. 이는 사람 몸의 지체는 여럿이지만 모든 지체가 한 몸을 이루는 다양성 안에서 일치와 친교를 의미하는 연대성과 통합성을 강조한 것이다. 200주년 사목 의안도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기초로 하여 교회구조와 운영에 있어서 보조원리를 구체화 하고 있다. 교회의 구조와 운영에서 보조원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교계 제도 안에서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 하는 적용의 문제는 성서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한 신학적인 보완이 필요한데 이는 바로 삼위일체의 친교의 신비로부터 적용되어야 한다.

3. 하느님 나라로서의 친교교회

72. 거룩한 교회의 신비는 그 창립에서 드러난다. 주 예수님께서는 “때가 다 되어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하시며 오래 전부터 성서에서 약속된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는 기쁜 소식을 선포하심으로써 당신 교회를 시작하셨던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물론 교회와 하느님 나라를 동일시하는 교회 정체성 문제는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교회 사이에 큰 물음이었다. 이러한 질문은 역시 지나간 과거의 좋지 않은 점을 서로 극복할 수 있도록 열려있고 바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하느님 나라로서 친교교회론의 방향을 세상과 형제 그리스도교를 향해 여전히 열어 놓고 있다.
하느님 나라의 친교교회는 두 가지에서 특징을 두고 있다. 첫 째 하느님 나라로서의 친교교회는 공동체적 인격의 나라이며, 둘째로 하느님 안에 모두가 하나 되는 공동체적 친교성이 들어난다. 하느님 안에 하나 되는 공동체적 친교성은 예수님에 의해 설교되고 교회 공동체가 살아온 나라인데 이는 개인이 하느님 안에 불리고 그분과 하나 될 수 있는 것보다 더 높은 교회의 영적현실로 드러나야 한다. 하느님 나라는 자비의 하느님으로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계시이며, 죄에서 용서받은 인간 존재의 충만을 드러낸다. 하느님 나라의 영원성에 우리가 참여하도록 열린 친교 나라의 모습으로 교회는 쇄신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제자들로부터 시작되는 교회는 말씀이 선포되고 성체성사를 거행하며 하느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공동체이다. 교회 안에서 모든 것은 아버지의 신비로부터 오는 성사성에서 진행된다.

73. 하느님 나라는 아들과 함께 하는 아버지만으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시작되고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이미’와 그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에게 열려 있는 교회의 모습이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의 영광의 나라와 함께 죄인들에게도 항상 열려있다.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를 정의하지 않았으며 오직 선포하고 소개하였다. 하느님의 나라는 어느 누구와 무엇에 대항하여 설교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와 그 무엇을 위하여 선포된다. 하느님 나라는 바로 인간, 인류를 위한 것이다. 하느님 나라는 늘 예수님의 인격 안에 남아 있다. 하느님 나라의 계시는 늘 누군가에게 집중되어있다. 그리스도는 주님 하느님의 총체적인 선물 안에서 하느님 나라이다. 하느님 나라와 그리스도 사이의 내적 연관을 강조하면서 하느님 나라에 대한 전망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통한 해방으로 나타난다.

해방은 신약성서에서 새로운 인간으로서 최고의 인간성과 연관되어 나타난다. 이는 종말론적 새로움이며 복음적 인간성의 역동성으로 드러난다. 이렇게 하느님의 해방은 인간의 해방에 기초한다. 이 해방은 주님의 초대이며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도록 초대하는 구체적인 응답의 가능성이며 근본적인 선물이다. 하느님의 해방에서 인간 해방이 나오는데 이는 인격화된 해방의 유토피아적인 전망에서 나타난다. 이 유토피아에서 하느님 나라는 모든 억압으로부터 근본적인 해방이 시작되고 진실한 인간존재가 발견된다.

74. 하느님의 나라는 회심에로 모든 이가 초대되는 곳이다. 회심은 마음의 근본적인 돌이킴이며 하느님의 선물이다. 회심은 하느님 자비의 신비에로 들어가는 인간의 선택이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의 하느님 존재와 인간의 인간존재 사이의 친교로 요약된다. 이 하느님의 나라로서의 교회가 바로 친교의 교회로 증거 되어야 한다. 하느님 백성 공동체에서 쇄신을 위해 교회는 친교의 여정을 걸어가야 한다. 하느님의 나라는 인간의 마음으로 기도드리는 교회의 모습이며 인간에게 봉사하고, 사랑의 부드러움으로 세상과 인간에게 가까이 있는 친교 교회의 모습으로 증거 되어야 한다.

4. 그리스도 신비체; 그리스도의 몸, 성체성사의 친교교회

75. 그리스도의 신비체가 교회의 신비로 드러난 것은 바오로 서간의 신학을 뛰어넘어 정착된 주제이다. 그리스도 신비체가 표현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출발하는 해방 곧 교회의 구원론과 직결되어 나타난다.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에는 매우 밀접한 유대가 존재한다. “우리도 여럿이 그리스도 안에 한 몸을 이루면서 저마다가 서로 지체들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노(Augustino) 역시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 보편교회가 있다.”고 말하였다. 교회는 강생의 확장이며, 강생이 영원히 지속되는 거룩한 장소이다. 그리스 신학자 크리스토스 안드로트소스(Christos androtsos)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의 중심이며 기구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예언자직, 사제직, 그리고 왕직의 연속과 성장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교회와 그 설립자는 분리되지 않고 서로 결합되어 있다...... 교회는 우리와 함께하시는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당신 몸, 구원의 보편적 성사 곧 교회를 세우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 안으로 모두 참여할 수 있도록 초대하는 성체성사를 영원히 지속하셨다. 그리스도 신비체는 교회 여정에서 성령께서 이루시는 방법으로 실현하고 계시하는 친교교회이다. 그리스도 신비체는 주님의 몸과 거룩한 백성들 사이의 연대 관계를 실현한다.

76. 교회는 하느님 백성이 모여 함께 사는 친교 공동체이며 그리스도의 몸 신비체이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그리스도의 몸과 우리의 몸 사이의 신비롭고 실제적인 친교를 예고하신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 교회를 몸에 비유하는 것은 교회가 그리스도와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를 잘 보여 준다. 교회는 단순히 그리스도 주변에 모인 것이 아니라, 그분의 몸 안에서, 그분 안에 하나가 되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세 가지 측면, 곧 그리스도와 결합하여 이루는 모든 지체간의 일치, 그 몸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는 특히 강조되어야 한다.
77.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친교와 일치성은 무엇보다도 전례를 통해서 성취된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서 땅에서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태어난다. 그리스도 신비체는 그리스도와 관련되는 그 무엇이거나 성찬례가 아니라 모든 것을 통해 성체성사로 나타나는 그리스도 자체이다. 교회의 유기체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내적 삶과 생명의 열매이다. 성찬례에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하느님 백성은 성체성사를 통해 주님의 몸을 받는다. 성체성사는 주님의 백성을 그리스도와 친교를 맺게 하는 동시에 그들 서로 서로를 하나가 되도록 하신다. 성체성사는 교회의 일치와 친교를 창조한다.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과 사귐이 아닙니까? 빵이 하나이니, 우리는 여럿이지만 한 몸입니다.” 성체성사는 교회의 친교를 창조한다. 교회는 성체성사가 거행되는 어느 곳에서든지 그 자체의 충만성 속에서 존재하는 성찬례의 공동체이며 거룩한 전례의 유기체이다. 세례와 성찬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모시는 성체성사는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몸의 인격체로 변화하게 하는데 이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본질적으로 하나가 되는 친교 공동체의 실현으로 나타난다.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는 세례와 성찬례를 통해 새로운 삶의 원천과 진실된 충만성이 드러나는 친교 공동체 구성원이 된다. 사도신경에서 모든 성인의 통공(communio sanctorum)은 성인들의 친교와 거룩한 것들의 공유 곧 거룩한 전례에 함께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78. 그리스도 신비체는 교회를 영적 현실로 인도한다. 우리는 여기서 교회가 내적 형태의 특별한 삶을 증거 하는 것을 발견한다. 만일 성령께서 창조되지 않은 영으로서 나타난다면 그리스도 신비체 안에서 성령 또한 그리스도와 충만히 함께 하신다. 삼위일체의 역동성이 구원의 신비 안에서 친교적으로 드러나는데, 이는 위격적 확인과 충만히 연관된 현존 그리고 다른 위격들을 향한 선물의 국면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끊임없이 새로워지도록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당신 성령을 주셨으며, 머리와 지체들 안에 현존하시는 한 분이신 똑같은 성령께서는 온 몸에 생명을 주시고 온 몸을 일치시키시고 움직이신다. 그래서 거룩한 교부들은 성령의 임무를 생명의 원리인 영혼이 인체 안에서 하는 일과 비교할 수 있었다.” 따라서 신비체로서 교회는 성령 안에서 같은 성자 그리스도에 의해서 살아 숨쉬게 하는 가시적인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표현하고 있다. 이점에서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시고 충만을 향하여 완성을 이루는 것을 증거 하여야 한다. 이렇게 교회는 그리스도를 널리 알리고 확장하는 것이다.

79. 성체성사로서 교회는 안정된 체계와 조직 안에서 진리개념을 담아 낸 정확한 구조가 아니라, 공동체 곧 하느님 백성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주는 생명의 유기체이며 신비체를 살아간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성사적인 몸으로 살아가기에 그리스도의 몸인 것이다. “동시에 성체성사의 빵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는 신자들의 일치가 표현되고 실현된다.” 성체성사의 친교 교회관은 공동체의 일에 모두가 참여하고, 모두가 받아들여지는 진정한 만남으로 드러난다. 나눔과 섬김, 사랑의 성체성사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서로가 하나인 친교로서 드러낸다. 성체성사로서 친교 교회는 무엇보다 먼저 모든 존재 안에서 그리스도 신비가 시작되고 그리스도와 성령이 충만하게 드러난다. 성체성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사랑 안에서 살아 숨쉬는 충만한 연대와 협력 관계로서 드러난다. 성체성사 안에서 교회는 친교의 본질을 살아간다.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친교가 교회 안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성체성사 안에서 만나는 친교는 항상 하나 된 몸, 사귐, 참여의 충만 또는 전반적인 연대와 관계성으로 나타난다. 하느님 백성은 성체성사를 통하여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을 보증해야 한다. 교회의 구조와 제도와 운영도 역시 성체성사의 진실성 기준으로부터 탄생하는 것이다. 교회의 직무는 친교의 현실, 성사적 표현에 따라 구성될 것이며, 이러한 시각에서 사도적 계승이 이해되어야 한다. 역사라는 시-공간과 교회가 상호 인격적으로 연결되어 만나는 역동성은 전승(傳承)을 탄생하도록 한다. 그것은 폐쇄가 아닌 여정이며, 조화이지만, 과다하게 닫힌 모든 조직화는 거절하게 될 것이다.

5. 성령의 궁전-성령강림의 친교교회

80. 성서에서는 성령이 충만한 위격의 요소로 나타나지 않으며, 분명하게 영이 위격이라고 선언되지 않는다.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시나고가에서 희년의 해방 선포자로서의 구체적인 성령의 위격성을 즉각적으로 부르는데 이는 파라클리투스(Paraclitus)이다. 성령은 위격적 소리인데, 주님의 메시지를 충만하게 들을 수 있도록 해주신다. 파라클리투스는 말씀을 선언하고 모든 이가 그것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성령은 위격적인 친교의 원천이다. 교회가 말씀을 선포할 때 우리는 복음화 사명 또는 주어진 임무수행에 즉시 임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한다. 그러나 선포에 대한 우리의 자세는 먼저 온 마음과 온 정신으로 말씀을 듣는 데 있다. 그럴 때 성령께서 그 말씀을 알아듣도록 도와주신다. 성령은 영성적인 특성만 취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를 통해서 움직이시며 즉각적으로 구체화하신다. 성령은 신앙을 일어나게 하시는 믿음의 영이시다. 성령은 믿도록 하는 용기가 아니라 믿음으로 드러난 용기이다. 성령으로 선포한다는 것은 기나긴 세기 동안 구원의 메시지를 영향력 있게 통교하는 것이다.

81. 성령에 관한 언급은 건물 곧 움직일 수 없는 성전의 이미지로부터 인격을 형성하는 역동적인 친교로 그 자리를 옮기고 있다. 교회는 매우 견고하고 밀도 있는 외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다. 모든 것을 고정하고, 분류하며 구분하는 이성과 반대로 성령은 생명의 힘이고 근본적인 운동이다. 성령은 근본적으로 ‘누구를 위한 존재’이며, ‘무엇을 존재하도록 두는 최종 선물’이다. 성령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께 참여할 수 있는데, 성령은 신적인 삶에서 성령강림 아니 세상 끝 날까지 모든 이에게 자신을 반영하는 친교적 투명성으로 계시기 때문이다. 성령은 참여성, 투명성, 현존성이 체험되는 위격이시다. 삼위일체 신비 안에서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친교로 살게 하는 ‘끈’이고 ‘그물’이다. 친교 존재이신 성령은 신적인 삶을 매우 깊이 있게 하는 ‘함께’로서 표현되는 ‘우리’이시다. 성령은 이렇게 우리를 하느님 삶으로 안내하는 사랑의 사랑이시다. 교회가 배워야할 성령의 모습은 바로 인간을 위한 나눔과 섬김 곧 자기비움(kenosis)의 사랑인데, 인간이 듣고, 수락하며, 응답하는 능력에 따라 성령이 행동하시기 때문이다. 취소되고 변함이 없는 선물로서 성령은 모든 이가 총체적으로 친교하도록 도우신다. 이 모든 것이 성령의 사랑, 자기비움(kenosis)이다.

82. 성령은 근본적으로 실천적 어려움을 뛰고 있는 모순, 다양성과 일치성 사이의 조화, 곧 다양성 안에 일치의 현존을 구하신다. 성령은 다양성과 일치성을 조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 현실의 이중 운동의 표현을 존중하면서 다양성을 통하여 일치성(친교)을 완성하신다. 한 위격으로서 성령은 믿음과 교회적 사랑의 초월적 일치 안에서 모든 이가 많은 한계를 뛰어넘어 해방과 화홰와 친교를 살도록 도우시는 초대이며 보편적인 매력이시다.

그리스도교 전승에서 교회는 하느님의 가족이 살아가는 하느님의 집, 건물로 표현되었다. 오늘날 교회는 건물로서의 의미보다는 인격화의 깊은 요청이 드러나는 자각을 통해 친교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성령은 두 위격 안에 한 위격, 많은 위격 안에 한 위격으로 알려졌다. 많은 위격들과 함께 성령의 일치와 친교로부터 출발하면서 교회와 하느님의 강생 사이에서 다른 점을 보다 명백하게 할 수 있다. 교회는 그렇게 참 ‘우리’가 된다. 그곳에서 위격들의 다양성들이 획일성(uniformity)으로 사라지지 않으며 무질서하게 해체되지 않는다. 성령강림과, 보편적 예언직 그리고 교회적 ‘우리’ 사이에서 우리는 교회의 친교성을 포함하는 예언적 순환을 발견할 것이다.

83. 교회는 “세상이 생길 때부터 이미 예표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와 구약에서 오묘하게 준비되었으며, 마지막 시대에 세워져 성령강림으로 드러났으며, 세말에 영광스러이 완성될 것”이다. 가톨릭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이전에는 성령의 언급이 없이 그리스도의 몸으로 고백되곤 한다. 그러나 구세사 안에서 성자는 성령과 함께 창조부터 종말에 이르기 까지 하느님의 구원경륜을 이루신다. 교회가 존재하는 곳에 그리스도가 계시는 것처럼 교회가 있는 곳에 성령도 계시며 성령이 계신 곳에 교회가 존재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에 또한 성령의 궁전이며, 성령께서 거주하시는 장소이다.

성령은 자유의 영이다. 성령은 우리를 하나로 친교를 맺게 할 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 하느님 백성의 무한한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보증하신다. 오순절에 성령은 불혀들이 갈라지며 나타나 각자에게 내려앉았다. 성령의 은사는 교회에 주어진 공동체의 선익을 위한 것이다. 교회 안에서 삶은 하느님 백성의 다양성을 제거하거나 모두를 서로 획일화 한 상태에서 엄격하고 규격화된 형태로 놓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84. 삼위일체의 모습, 그리스도의 몸, 성령 충만인 교회는 쇄신의 근본 뿌리이며, 교회는 가시적이며 동시에 비가적이며, 신적이며 동시에 인간적이다. 교회는 지상에서 예배하는 전례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가시적이고, 거룩한 성인들과 천사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비가시적이다. 교회가 인간적이란 의미는 교회의 지상적 구성원들이 죄인들이기 때문이며,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에 교회는 신적인 것이다. 이 두 가지 가시적 교회와 비가시적 교회는 둘이 아니라 하나이다. 어떻게 둘이 하나가 되는가? 바로 성령 때문이다.

3장 소공동체 영성과 성사(전례)

소공동체 영성의 출발점은 성경이며, 그 영성의 체험은 성사와 전례 안에서 이루어지며 궁극적으로 소공동체 안에서 삶으로 증거 된다. 성경 전체가 하느님 백성에게 다가오는 신비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구원경륜으로 나타나는데, 이 삼위일체 신비가 소공동체 안에서 증거 되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의 영적 자산인 성사 안에서 그 영적 신비가 체험되어야 한다. 소공동체와 영성 그리고 성사는 서로 깊은 관련이 있는데 그 핵심요소들은 먼저 삼위일체 신비, 그리스도 안에서 생활, 믿음과 삶의 일치, 하느님 말씀-기도-성체성사-회심-화해, 새사람(갈라3,28), 문화 인식의 성숙, 인내의 영, 하느님에 대한 인식과 하느님께 속한 갈망, 이웃사랑과 미소 등이다. 이러한 영성적 요소들은 성경과 교회의 가르침 그리고 성사 안에서 찾아 소공동체 안에서 증거 되어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삼위일체와 성체성사로부터 흘러나오는 영성 곧 친교와 비움과 나눔 그리고 다양성과 단일성의 조화로서 참여를 살펴보고, 성사도 실천적인 측면에서 소공동체와의 관계를 찾아본 다음 간략하게 7성사의 본질을 진술하고자 한다.

1. 소공동체 영성-삼위일체 신비, 성체성사

1) 친교의 영성-이웃사랑

85. ‘친교’를 한마디로 무엇이라고 단정하기에는 그 의미가 풍부하고 복잡하다. 이 말은 라틴어 ‘꼼무니오’(Communio)에서 나왔고, ‘꼼무니오’의 뿌리는 희랍어 ‘코이노니아’(κοινω νια)이다. 어원적으로 보면 이 단어는 라틴어로 군대의 야영지나 요새와 같은 군사시설 을 뜻하는 말인 ‘Cummoenus'나 아니면 공동의 관계, 의무, 사업을 뜻하는 말인 ’Communus'에서 나온 것이다. 어느 쪽이든 간에 중요한 것은 이 두 가지 어원 모두가 여러 사람들이 하나이며 같은 일을 위해서 나름대로 적당히 공헌함을 뜻한다는 점이다.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이해되어진‘코이노니아’(κοινωνια: 친교, 상통, 공동유대)의 의미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초대 교회 안에서의 친교의 개념과는 달리 구약에서는 그 의미가 같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구약시대에서는 친교를 의미하는‘코이노니아’의 직접적인 사용 예는 찾아보기 어렵고 다만 인간과 인간 사이의 친교를 의미하는 경우에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Balthasar은 “초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어둡고 낯선 세상 한가운데서 자신들이 이루는 작은 무리가 바로 부활한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여지고 선사된 하느님의 사랑에 의해 형성되고 또 그 사랑으로부터 생명력을 취하는 ‘사랑의 친교 공동체’(κοινωνια, Communio)라는 자기 이해가 넓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고 한다. 그에 의하면 초대 교회 공동체는 하나의 게토화된 공동체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상 속에 자신들이 파견되었다는 확고한 의지인 “파견 사명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86. 이러한 성서적이고 교부적인 교회개념을 근거로 하여 이미 일찍부터 교회 안에 성사적으로 정향된 교회론적 교회의 자기 이해가 자리 잡게 되고 궁극에 가서는 결국 “교회는 Communio이다”는 등식의 숙고된 확신에까지 이르게 된다.

“서로가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나갔음을 감안한다면 교회가 가지는 상호협동의 대명사인 Communio와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할 개념이 하나가 있다. Lohfink에 의하면 그 단어는 ‘알렐론’(ἀλλήλων) 즉 “서로”라는 상호대명사이다.그에 의하면 이 조그만 낱말이야말로 초대그리스도교 공동체 신학의 중요한 대목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중에서도 “서로 건설하라”(1데살 5,11)라는 개념을 통해서 공동체의 특성을 설명해 나간다.

건설을 의미하는 희랍어인 ‘오이코도메’(οίκοδομή)는 사도 바울로가 지역교회 공동체를 강조하듯이 신약성서 안에 중요한 의미가 숨어 있다. 구약성서에서도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유배생활 이후에 새로운 공동체로 건설하실 분으로 생각한다면(예레 31,27-28), 바로 ‘건설’이란 일으켜 세우고 살아나게 한다는 의미로 보아야 할 것이다.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의 최대한의 과업은 바로 마지막 때에 변함없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최종적으로 달성될 하느님 백성의 집결 내지는 건설이었고 바로 그 교회는 경건한 개인적인 차원에서 벗어나서 모두가 서로에게 책임이 있는 공동체의 모습을 지향했던 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ἀλλήλων이라는 단어를 통해서 바라볼 때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서로 서로 충고하고, 서로서로 협력하는 공동체의식을 가졌으며 이것이 바로 그 공동체에 서 보여진 친교(Communio)이고, 친교(Communio)의 교회이었음을 알 수 있다.

87. 친교(communio)의 공동체 개념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성서적 코이노니아(koinonia) 개념을 받아들여 교회를 표현한 새로운 개념이다.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세상 한가운데서 자신들의 무리가 부활한 그리스도와 함께 하고 하느님으로부터 선사된 사랑에 의해 형성된 “사랑의 친교 공동체”로 이해했다. 친교 공동체의 원천은 삼위일체 하느님의 세 위격 사이에 존재하는 내재적인 친교에서 연원된다. 자신을 완전히 내어주는 절대 사랑은 교회 공동체의 심장이며 예형이요 모형이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친교적 일치는 구원에로 불림 받은 하느님과 인간의 친교, 인간과 인간의 친교를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교회는 형식적 권위에 의해 유지되는 제도적이고 규범적 실재가 아니라 구성원간의 온전한 신뢰와 사랑, 인격적 만남으로 삼위일체의 삶을 구현하는 친교의 공동체임을 드러낸다.

88. 친교의 공동체의 삶은 하느님 안에 세 위격의 “관계”에 바탕을 두는 대화(Dialog), 상호협력(Co-operation), 연대성(Solidarity)의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여기에서 대화는 하느님과 인간, 공동체 구성원간의 개방과 인격적 만남과 일치에로 이끌어 준다. 이는 곧 기도이고 복음과 삶에 대한 나눔이며 하느님 현존을 드러내는 신앙 공동체의 구성 양식이다. 대화는 상호 깊은 유대와 협력의 기반을 마련한다. 대화를 통하여 여러 지체들이 상호 협력하고 실천적 삶을 이루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형성한다. 연대성은 하느님과 신앙 공동체, 그리고 신앙 공동체 상호간의 일치와 친교를 말한다. 교회는 공동체들의 친교 (Communion of Communities)를 통하여 지역 교회 더 나아가 보편 교회를 구성한다. 교회의 친교를 통한 사랑의 공동체는 교회를 넘어 이웃과 세상을 사랑의 공동체로 변화시킨다.

2) 비움의 영성-나눔

89. 삼위일체 신비와 성체성사에서 드러나는 비움의 영성은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 곧 구원계획 안에서 출발한다. 하느님은 구약에서 인간을 부르시고, 찾으시며, 구해주시고, 당신께 돌아올 것을 촉구하시지만 인간은 자신의 길을 찾아 하느님 당신으로부터 멀어지는 삶을 택한다. 그래서 하느님은 이제 인간을 찾고, 구하고, 보다보다 못해 결국 하느님이 진실로 사랑하는 인간이 되신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육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바로 자기비움의 영성이 실현된 것이다. 하느님의 자기비움이 바로 인간을 지극히 사랑한 나머지 상대방으로 태어나는, 아니 사랑하는 상대방이 되는 사랑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은 이렇듯 자기 중심의 사랑이 아니라 인간을 억지로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자기화 시키는 사랑이 아니라 자기의 입장을 포기하고 상대방 인간의 입장이 되어주는, 너로 되어주는 사랑, 육화, 사람이 되는 사랑으로 구세사가 전개된다.

90. 신약의 자기비움의 영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인 그리스도의 탄생으로부터 시작하여, 그리스도의 세례, 공생활, 수난, 죽음, 부활의 파스카 사건에 이르기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삶과 가르침 전체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리스도의 세례와 거룩한 변모에서 들은 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태17,5)의 의미 안에 자기비움의 십자가상 죽음을 드러내고 있다. 하느님의 사랑스런 아들의 의미는 인간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시는 자기비움의 뜻을 지니기에 하느님은 아들 예수님이 사랑스럽다는 의미이다. 그리스도의 자기비움의 영성은 탄생과 수난 곧 성탄과 부활 영성 원리로서 드러난다. 그리스도의 탄생에서 자기비움의 모습은 영광의 왕으로 태어나신 아기 예수는 동방박사들로부터 경배를 받으시지만 한편으로 어느 곳에서도 편히 태어날 수 없어 마굿간은 바로 성탄의 자기비움의 영성으로 나타난다. 기쁨의 탄생 그러나 십자가상에서 세상의 죄로 돌아 가셔야하는 자기희생의 비움 영성이 바로 베들레헴 마굿간으로 드러나고 있다. 따라서 세상의 왕으로서 기쁨과 충만의 왕 탄생과 세상의 죄를 위해 스스로 십자가에 돌아가실 자기 희생과 비움의 영성이 바로 마굿간이다.

91. 그리스도의 파스카 사건 수난, 죽음, 부활에서도 그리스도의 자기비움의 영성이 잘 드러난다. 그리스도 파스카 사건은 바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죄와 죽음과 고통 그리고 세상의 악으로부터 해방하신 사건이다. 그리스도의 모든 해방이 충만의 영성이라면 이 충만은 바로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상의 죽음이라는 철저한 자기비움으로 드러난다. 따라서 비움과 충만은 늘 동전의 양면으로서 하나의 파스카 사건이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은 그리스도 탄생의 베들레헴 마굿간의 비움의 영성과 신학적 맥을 함께 하며,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왕으로 태어나신 시쁨과 충만의 영성과 연관된다. 이렇듯 그리스도의 신약에서 영성은 비움과 충만의 조화로 드러난다. 역사적 예수의 삶 역시 구약의 하느님의 삶과 같이 나타난다. 이는 인간을 그 중심에 두고 드러나는 비움의 영성으로 나타난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찾아 나서시고 결국 인간이 되신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인간을 찾아 나서신다. 특별히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실존들, 병든 자, 가난한 자들을 예수님은 찾아 나서신다.

91. 예수 그리스도의 비움은 일관성 있게 그리스도의 삶과 관련된 겸손의 영성을 말하고 있다. 특히 비움 영성의 핵심은 세족례, 사랑의 새 계명, 성체성사, 궁극적으로 십자가상의 죽음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비움의 영성의 성서 말씀을 다음과 같이 모을 수 있다.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인자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을 대신해서 속전으로 목숨을 내주러 왔습니다.”(마태20,27-28)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모든 이 가운데 말째가 되어 모든 이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마르9,35) “복되도다, 영으로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니”(마태5,3) “진실히 말하거니와, 밀 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있을 뿐이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요한12,24)

3) 다양성과 단일성의 조화

92. 삼위일체 신비의 영성은 다양성과 단일성의 조화 원리로 드러난다. 다양성이 인정되면서 서로 서로 일치하여 자율적인 참여가 이루어지는 영성으로 드러난다. 다양성과 단일성이 조화를 이루는 영성의 원리는 삼위일체 신비 가운데 특별히 성령의 역할로 드러난다. 성령이야 말로 서로 다른 다양성과 단일성을 하나로 통합된 조화의 원리이다. 이러한 조화의 원리는 교회와 소공동체 안에서 교계의 원리와 협의회의 원리 그리고 보조성의 원리가 다양하게 통합되어 나타나도록 한다. 물론 이 원리는 사제와 수도자와 평신도가 소공동체 안에서 사목적 협력을 위한 친교와 조화를 이루도록 한다.

92. 지금까지 살펴본 소공동체 신학과 영성은 소공동체가 한 시대의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로부터 늘 새롭게 태어나는 교회 살기라는 것을 드러내는 충분한 신학적 근거를 갖고 있다. 한편 소공동체의 영성, 친교와 나눔과 조화는 소공동체 안에서 하느님 백성의 자율적인 참여와 역할 위임이 이루어지는 원천이 되고 있다.

2. 소공동체와 성사(전례)- 하느님이 은총을 주시는 방식

93. 소공동체를 비판하고 있는 부분 가운데 왜! 하필이면 오직 말씀뿐인 개신교를 따라가겠다는 것이냐는 것이다. 개신교를 따라가자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신 예수님을 따라 가자는 것이다. 제2차바티칸 공의회는 “성서와 성전에 의지하여 이 순례하는 교회가 구원에 필요하다고 가르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한분만이 중개자요 구원의 길이시며, 당신 모인 교회 안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신앙과 세례의 필요성을 분명한 말씀으로 강조하시면서, 동시에 교회의 필요성도 확인하셨다. 교회의 모임에 완전히 합체된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성령을 모시고, 교회 안에 세워진 완전한 질서와 구원의 모든 수단을 받아들이며, 교회의 가시적 구조 안에서 교황과 주교들을 통하여 다스리시는 그리스도와 결합된다. 곧 신앙 고백과 성사, 교회 통치와 친교의 유대로 결합된다.”

94. 따라서 소공동체는 가톨릭의 균형 잡힌 기둥인 성서와 성전 안에서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한다. 이제는 소공동체 안에서 생명수를 지닌 말씀과 성사에서 넘치게 흘러나오는 신앙의 보물을 찾아야 한다. 말씀과 성사가 성직자나 수도자의 영역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 전체의 영적 양식이 되어야 한다. 소공동체에서 성사와 말씀이 풍요롭게 증거 되고 실천될 때 비로소 하느님 나라로서 공동체가 실현될 것이다. 성사와 말씀을 온 하느님 백성이 증거하고 참여하며 나눌 때 소공동체는 진정한 교회의 모습을 드러내는 지상의 하느님 나라로서 드러날 것이다.

95. 7성사의 본질이 소공동체 안에서 말씀과 함께 전례 안에서 온전히 실현되고 적용되어야 한다. 한국천주교회는 지금까지 성사와 하느님 백성의 신앙이 공동체 안에서 온전히 생활로 만나지 못하고 분산되어 성사 집전자와 받는 자와 분리되어 단지 하느님 은총을 주고받는 형식적인 모습으로 남게 되었다. 이제는 공동체 안에서 성사와 그 은혜의 풍요로움을 하느님 백성 전체가 받고 나누고 확인해주어야 한다. 곧 소공동체에서 그 구성원들이 그 공동체 성원 모두에게 서로 성사의 은혜를 친교적으로 확인하고 나누어야 한다. 소공동체 전체 하느님 백성들이 유아세례, 첫영성체, 견진성사, 혼인성사, 병자성사, 신품성사, 고해성사, 성체성사 등 교회의 풍요로운 은혜 선물들을 확인하고 나누어야 한다. 그럴 때 소공동체는 말씀과 성사의 은혜 공동체로 살아 숨 쉴 것이다.

1) 성사, 소공동체 영적 양식

96. 예수님은 우리를 고아처럼 내버려두시지 않고 (요한 14:18) 성령을 보내시어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요한 15:26). 예수님은 성사를 세우시어 우리를 치유하시고 먹여주시며 북돋아 주신다. 일곱 가지 성사 곧 성세, 성체, 고해, 견진, 신품, 혼인, 병자 성사는 단순한 상징이 아니다. 성사는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실제로 부여하는 표징이다.

실제로 은총을 부여하지 않은 구약 시대의 의식에서도 성사가 예표되었다. (예를 들어 할례는 성세의, 파스카 만찬은 성체의 예표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은총의 상징들을 폐지하지 않으시고 초자연화 하셨으며 은총으로 에너지화 하셨다. 상징들을 그 이상의 것으로 승화시키신 것이다. 하느님은 당신의 사랑과 권능을 나타내실 때 물질을 사용하셨다. 물질은 종래 악이 아니다. 우주를 창조하실 때 모든 창조물은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았다” (창세기 1:31). 하느님은 물질을 기뻐하시어 자신의 육화를 통해 그 품위를 더해주셨다 (요한 1:14).
97. 예수님은 진흙, 물, 빵, 기름, 포도주 등 하찮은 것들을 통해 사람들을 치유하시고 먹여 주시고 북돋아 주셨다. 그런 것 없이도 곧장 기적을 행하실수 있었지만 물질을 사용해 은총을 부여하는 방식을 택하셨다. 예수님은 어머니 성모 마리아의 청으로 첫 기적을 행하실 때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셨고 (요한 2:1-11), 소경의 눈에 진흙을 발라 치유해 주셨으며 (요한 9:1-7), 빵 몇 조각과 물고기 몇 마리로 수천명을 먹이셨고 (요한 6:5-13), 빵과 포도주를 그분 자신의 몸과 피로 변화 시키셨다 (마태오 26:26-28). 그분은 지금도 성사를 통해 우리를 치유하시고 먹여 주시고 북돋아 주신다.

2) 성세성사(교리서 1213-1284)

98. 우리는 원죄로 인해, 영혼 안에 은총이 없어 도저히 하느님과 친교를 맺을수 없는 상태로 태어난다. 예수님은 우리를 당신의 아버지와 화합시키시려고 사람이 되셨다.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새로 태어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수 없다고 말씀 하셨는데 (요한 3:5) 이것이 곧 성세 성사이다. 우리는 성세 성사를 통해 육적 수준 아닌 영적 수준으로 다시 태어난다. 우리는 씻김으로 다시 태어나며 (디도 3:5),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그분의 부활에 참여한다 (로마 6:3-7). 우리는 성세 성사로 죄를 용서받고 성령과 은총을 받는다 (사도행전 2:38, 22:16). 베드로 사도는 “세례를 받으면 구원된다”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1베드로 3:21). 성세 성사는 교회의 입문 성사이다.

3) 고해성사(교리서 1422-1498)

99. 우리는 천국을 향한 여정에서 종종 걸려 넘어져 죄를 짓는다. 그러나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를 다시 일으키시어 은총에 찬 당신과의 친교를 회복해 주시려 하신다. 그분은 고해 성사를 통해 그렇게 하신다. (고해 성사는 화해의 성사라고도 하고 참회의 성사라고도 하는데 각각 이 성사의 다른 단면들을 표현한다.)

예수님은 우리를 하느님 아버지와 화해시키는 능력과 권한을 사도들에게 주셨다. 그들은 죄를 용서해 주시는 예수님 자신의 권한을 받았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숨을 내쉬시며 “성령을 받아라.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라고 말씀 하셨다. 바오로 사도는 말했다. “이것은 모두 다 하느님께로부터 왔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내세워 우리를 당신과 화해하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로서 그분을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간곡히 부탁합니다” (2고린토 5:18-20). 우리는 하느님을 대리하는 사제에게 고백함으로써 죄를 용서받고 장래의 유혹에 저항할수 있는 은총을 받는다.

4) 성체 성사(교리서 1322-1419)

100. 성세 성사로 그리스도의 가족의 일원이 되면, 그분은 성체 성사로 당신 자신의 몸과 피를 우리에게 먹여주시어 굶주리지 않도록 배려하신다. 구약 시대 유다인들은 광야로 떠나기 전 하느님의 분부로 새끼 양을 제물로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뿌렸고 이에 죽음의 천사가 그들의 집을 그냥 지나갔다. 그런 다음 그들은 양고기를 먹어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확인했다.
이 양은 예수님을 예표했다. 그분은 진정한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며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다 (요한 1:29).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과 새로운 계약을 맺어 (루가 22:20) 영원한 죽음에서 해방된다. 구약 시대 사람들은 파스카 양을 먹었지만 우리는 이제 성체이신 하느님의 양을 먹어야 한다. 예수님은 말씀 하셨다. “만일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너희 안에 생명을 간직하지 못할 것이다” (요한 6:53).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에서 빵과 포도주를 들어 축복하시고 “받아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 이것은 너희들을 위하여 흘릴 나의 피다” (마르코 14:22-24) 라고 말씀 하셨다. 예수 님은 이같이 성체 성사를 세우셨으며 가톨릭 신자들은 미사 때 이 제물을 먹는다.

가톨릭 교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희생 제사가 “단 한번”의 일로서 다시는 반복될 수 없다고 가르친다 (히브리 9:28). 그리스도는 미사 때 “다시 한 번” 돌아가시는 것이 아니다. 다만 갈바리의 그 희생이 제대 위에서 현재화한다. 그래서 미사는 “제2의” 희생 제사가 아니라 십자가상 단 한 번의 그 희생 제사에의 참여이다.

바오로 사도는 빵과 포도주가 실제 예수님의 살과 피가 되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의 기적이라고 상기시킨다. “주님의 몸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단죄하는 것입니다” (1고린토 11:27-29). 빵과 포도주가 축성된 후 제대 위에 빵이나 포도주는 남아있지 않다. 예수님 자신이 빵과 포도주의 모습으로 거기 계실 뿐이다.

5) 견진 성사(교리서 1285-1321)

101. 하느님은 또 다른 방법 곧 견진 성사를 통해 우리의 영혼에 힘을 더해 주신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 부활 이전부터 은총을 받았다. 그러나 성령 강림절 날 성령께서 오시어 그들에게 힘을 더해 주시고 장차 어려운 일을 해낼수 있도록 새로운 은총을 주셨다. 그러자 그들은 겁 없이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께서 맡기신 사명을 수행했다. 그후 그들은 다른 이들에게 손을 얹어 힘을 더해주었다 (사도행전 8:14-17). 우리도 견진 성사를 통해 인생살이의 영적 도전들에 대처하는 힘을 받는다.

6) 혼인 성사(교리서 1601-1666)

102.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도 생활 또는 독신 생활보다는 결혼 생활로 부르심을 받았다. 하느님은 혼인 성사를 통해 부부에게 특별한 은총을 주시어 인생살이의 어려움에 대처하고 특히 자녀를 그리스도의 제자로 키우도록 도와주신다. 결혼의 당사자는 신랑 신부만이 아니다. 남녀가 혼인 성사를 받을 때 하느님이 그들과 함께 계셔 결혼 계약의 증인이 되시며 축복해 주신다. 가톨릭 신자의 경우, 하느님은 신부나 부제를 통해 그같이 하시며 이때 신부나 부제는 교회의 증인으로 주례를 한다. 성사적 결혼은 영구히 지속되며 부부중 한 쪽이 죽기 전에는 해소되지 않는다 (마르코 10:1-12, 로마 7:2-3, 1고린토 7:10-11). 이 거룩한 결합은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처럼 불가분의 관계이며 그 살아 있는 상징이다 (에페소 5:21-33).

7) 신품 성사(교리서 1536-1600)

103.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특별 부르심을 받는 사람들도 있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은 사제들의 나라 (출애굽기 19:6)이었지만 주님께서 일정한 사람들에게 특별히 사제직을 맡기셨다 (출애굽기 19:22). 신약 시대에도 교회는 사제들의 나라이지만 (1베드로 2:9), 예수께서 특정한 사람들을 사제직에 따로 부르신다 (로마 15:15-16). 이 성사를 신품 성사라 부른다. 이 성사로 사제들이 교회에 봉사하도록 서품을 받아 (2디모테오 1:6-7) 목자, 교사, 영적 아버지로서 하느님의 백성을 치유하고 먹여주며 북돋아 준다. 그중 제일 중요한 직분은 설교와 성사 집행이다.

8) 병자 성사(교리서 1499-1532)

104. 사제들은 우리가 육체적으로 아플 때 병자 성사를 통해 돌보아준다. 성경은 이렇게 지시하고 있다. “여러분 가운데 고난을 당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기도를 해야 합니다. ... 여러분 가운데 앓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교회의 원로들(신부들)을 청하십시오. 원로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고 그를 위하여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믿고 구하는 기도는 앓는 사람을 낫게 할 것이며 주님께서 그를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또 그가 지은 죄가 있으면 그 죄도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야고보 5:13-15). 병자 성사는 병을 잘 견뎌내고 영혼을 정화시키고 하느님을 만날 준비를 시키는 성사이다.

소공동체 탐방 - 포항 죽도 성당 사례

한국 소공동체의 성공한사례중 흥미로운 글를 올립니다.

포항 죽도본당 소공동체 탐방

구역중심 레지오 재편이 성공열쇠

포항 죽도본당 소공동체 모임은 2000년 2월 박성대 주임신부가 부임하면서 본격적인 제 궤도를 찾기 시작했다. 역시 사목자의 관심과 추진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박신부가 부임할 당시 죽도본당은 레지오 마리애와 소공동체 운동이 크게 두 축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 말이 두 축이지 막강한 레지오 군단의 기세(?)에 눌린 소공동체 모임은 항상 두번째였을 뿐이었고 겉돌기 일쑤였다.

모든 본당 행사가 레지오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레지오 주회와 소공동체 모임이 겹치면 당연히 레지오가 우선이었고, 심지어 미사에는 참례하지 않으면서 레지오에는 열심인 신자들도 눈에 띄었다.

더구나 레지오에 가입하지 않은 신자나 전입자들의 경우에는 주일미사에만 왔다 갔다하는 ’나홀로 신자’가 많았다. 이들은 당연히 본당 행사나 공동체에서 소외되기 마련이었고, 냉담의 길로 가는 길목에 서있는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박신부의 고민은 시작됐다. 레지오도 살리고 소동체도 살리는, 나아가 ’나홀로 신자’들도 끌어안을 수 있는 묘안이 필요했던 것이다. 즉 두 마리, 세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하는 고민이었다.

실마리는 교육에서 찾기 시작했다.

"본당이 대형화 되면서 공동체 의식이 희박해졌다. 하느님이 외톨박이가 아니었듯이 우리도 혼자여서는 안된다. 함께 할 줄 모르는 신앙은 신앙이 아니다. 소공동체 모임을 통해 ’나홀로 신앙’을 탈피해야한다. …"

"레지오를 위한 레지오가 되어서는 안된다. 레지오도 여러 신심단체와 마찬가지로 교회를 위해 있을 뿐이므로 ’소공동체 활성화’라는 본당 사목방침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레지오 중심적인 사고는 버려야한다. 본당의 축은 소공동체라야 하지 레지오가 될수 없다. 단 레지오가 앞장서서 소공동체 정착을 이끌어야 한다. 소공동체가 잘되어도 레지오 탓이고, 못되어도 레지오 탓이다. …"

마침내 지난해 말 기존의 여성 레지오를 해체하고 구역중심으로 재편했다. 신자들의 저항이 만만찮았다. "그럴수 있냐"며 울면서 원망하는 신자도 있었고, "시어머니와 함께 어떻게 레지오를 해요"라며 난감해하는 신자도 있었다. 심지어 동료 사제들 조차 "극약 처방"이라며 우려했다.

그러나 박성대 신부는 굽히지 않았다. "시어머니와 함께 기도할 수 없는 레지오는 필요없다"며 1~2개 반을 묶어 레지오를 새로 구성하도록 강력하게 밀고 나갔다.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현재 죽도본당의 소공동체 운동 현황은 어떨까? 물론 정착 단계로 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소공동체를 해야한다는 분위기가 성숙되고 신자들의 의식변화가 뚜렷해진 것 만은 사실이다.

21개 구역에 71개 반으로 외형적인 성장도 대단하다. 한때 103개 반까지 있었으나 본당이 분가되면서 줄어든 것이다. 매주 화요일 반모임 참석률도 50%대에 육박하고 있다. 당연히 본당의 모든 행사는 구역 중심으로 치러지고 있다.

전례봉사에서부터 각종 교육이나 체육대회에 이르기까지, 무료급식소 ’요안나의 집’ 급식이나 노인대학 점심 봉사도 구역중심이다. 초상이 나도 구역내에서 일손을 돕고 성지순례를 가도 구역단위로 함께 한다.

간간히 동네 청소도 나서고, 전입신자 방문도 반에서 할 일이다. 선교활동도 레지오 중심에서 구역 중심으로 바뀌었다. 이제는 지역 내 가난하고 소외 받은 이웃들을 돌보는 ’재가복지활동’도 준비중이다. 소공동체를 통해 명실공히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교회의 모습을 구현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소공동체 모임이 활기를 띠게 되기까지는 주임신부의 의지와 교육 그리고 추진력이 크게 작용했지만 몸소 뛰어다닌 부지런함도 큰 힘이 됐다. 지난해까지는 매주 반미사를 드려오다 올해부터는 2명의 보좌신부와 수녀들이 흩어져 반모임에 꼬박 꼬박 참석, 반원들의 열의를 북돋우고 있다.

또한 반모임 일지를 일일이 읽어보고 결재를 하고 있다. 일지를 통해 신자들의 건의사항을 직접 챙기고, 도움이 될 말들을 적어 돌려주고 있다.

실제 반모임을 하는데 있어 제일 어려워하는 부분인 ’복음나누기’. 여기에 맛들이게 하는 방법도 독특했다. 사순절과 대림절 9일기도를 반별로 하도록 한 것. 따라서 9일동안 집중적으로 복음나누기를 하다보니 실력(?)도 쑥쑥 자라고 맛도 들이게 됐다. 우려했던 고부간의 갈등이 오히려 풀어지고 응어리졌던 이웃간의 오해도 해소되는 생각지 못한 현상도 목격하게 됐다. 무엇보다 신앙생활의 기쁨을 찾는 신자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레지오는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타격이 없을 수는 없었다. 약 800명이나 되던 단원들이 구역중심으로 재편되고 나서는 600여명으로 줄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구역중심의 레지오가 되다보니 20~30%나 되는 본당 관할 지역 밖의 신자들이 자연스럽게 자기 지역 본당으로 교적을 옮겨가게 된 원인도 있다. 실제 레지오 단원의 감소는 크지 않았다는 말이다.

박성대 신부는 "조만간 남성 레지오도 구역중심으로 재편, 소공동체를 완전 정착시키겠다"고 밝혔다.

사진말 - 죽도본당 주임 박성대 신부는 소공동체 정착에는 사목자의 관심, 레지오 단원의 인식전환, 신자들의 의식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은 ’우방 2구역 5반’ 반모임. 참석률이 70%에 이르고 남성 신자들이 많이 참석하고 있다.

<신정식> tomas [at] catholictimes [dot] org

소공동체 활동과 관련된 출판물

소공동체 활동과 관련된 출판물 목록입니다.

천주교 서울 대교구 사목국에서 편찬한 '소공체 모임을 위한 길잡이' 자료실 입니다.
http://www.samok.or.kr/book/book02.asp

아래의 링크는 천주교 수원교구 홈페이지에서 발췌한 것으로, 소공동체 활동과 관련된 다양한 지침서, 교육자료 목록입니다.
http://www.casuwon.or.kr/sm_church/sm_data1.asp

아래의 링크는 차동엽 신부님이 쓴 '공동체 사목의 기초'라는 책입니다.
http://www.pauline.or.kr/book/detail?isbn=9788932105000

아래의 링크는 서울 대교구에서 발간한 소공동체 관련 서적 목록입니다.
http://www.samok.or.kr/book/list.asp

아래의 링크는 국회 도서관에 제출된 논문입니다.
한국천주교회 소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방안 모색 :신자들의 영성적 욕구를 중심으로 /손옥희

소공동체: ‘복음 나누기 7단계’ 심화 - 서춘배 신부

‘복음 나누기 7단계’ 심화

서춘배 신부(의정부교구 구리성당 주임신부)

I. ‘복음 나누기 7단계’ 순서
(*길잡이 11월호 9쪽 내용 삽입-수정사항 검토; 찾아바꾸기 성서->성경)

II. ‘복음 나누기 7단계’ 각 단계별 이해

소공동체를 구성하는 4가지 요소(삶의 현장에서 모인다. 말씀 나누기를 한다. 활동을 한다. 보편교회와 일치를 이룬다.) 가운데 복음(말씀과 같은 의미로 쓰인다.) 나누기는 그 중심에 있다. 복음 나누기 7단계는 복음 나누기의 원조처럼 여겨진다. 그만큼 그 밑바탕에 탄탄한 신학적인 내용과 약한 이들을 위한 배려가 담겨있다.

7단계가 어렵고 우리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적인 견해도 있다. 이는 말씀에 대한 부담이나 이해 부족일지도 모른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너희가 어린아이처럼 되지 않는다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마태 18,3) 어린아이처럼 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7단계에서 요구되는 것은 성서에 대한 지적인 이해가 아니라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성이다.

1단계: 주님을 초대한다.

짧고 단순하고 어린아이처럼 꾸밈없이 부활하신 주님을 공동체에 초대한다. 마치 이웃집 아무개를 생일잔치에 초대하듯이....... 육신을 지닌 인격적인 주님이다. 거창한 기도가 아닌 소박한 기도로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기도다. 결코 형식적인 기도가 아닌 따뜻한 기도는 주님의 현존을 느끼도록 해준다.

2-3단계: 성서본문을 읽는다. 성서본문 중 단어나 구절을 선택해서 묵상한다.

말씀이 선포되는 단계다. 진행자는 각 단계 지시문대로 그대로 할 것이다. 나를 통해 주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것이다. 이미 알고 있는 말씀이 아니고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말씀인양 선포한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자 제자들이 곁으로 다가왔다. 예수께서는 비로소 입을 열어 이렇게 가르치셨다.”(마태 5,1-2)

짧은 단어나 구절을 선택할 때 어떤 구절을 선택할 지 어려움을 느낀다. 중요한 단어나 뭔가 의미 있는 단어를 찾고 싶어 한다. 마음에 와 닿는 단어라는 말도 어쩔 수 없이 머리로 생각하게 된다. 이제 이런 발상의 전환을 가져보자. 내가 외치는 단어는 나와는 관계없이 여기 있는 동료, 회중을 위해 외치는 것이다. 성경은 모두 하느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 어떤 말씀도 상관없다. 내 입을 통해 하느님의 말씀이 선포된다. 동시에 동료들을 통해 나 역시 선포되는 말씀에 온전히 귀 기울일 것이다. 내가 주인공이 아니다. 내가 선택한 말씀을 가지고 요리할 생각을 말라. 여기서도 철저히 수동성이 요구된다. 내 생각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말씀 그 자체에 온몸과 마음을 기울이는 것이다.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요한 1,14) 말씀을 통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하게 된다. 여기서 말씀은 그리스도의 현존을 드러내는 성사적인 표지가 된다. 성체성사뿐만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서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마신다.(성 예로니모) 복음나누기를 하는 목적은 성서구절을 이해하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아듣기 위한 것이 아니다. 말씀을 통해서 ‘군중 속에서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댄 여인’(마태 9,20)처럼 그분을 느끼기 위한 것이다. 말씀이신 그분을 듣고 사랑하고 만져보고 그분과 사귀는 것이다.(1요한 1:1)

짧은 구절이나 단어를 외칠 때 정문일침으로 짧은 단어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더 힘 있고 날카롭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영혼과 정신을 갈라놓고 관절과 골수를 쪼개어 그 마음속에 품은 생각과 속셈을 드러냅니다.”(히브 4:12) 살아있는 말씀이 나를 꿰뚫어 버리는 것이다. 말씀을 선택한다는 표현을 썼지만 실은 그냥 나에게 와 닿은 말씀이다. 내가 말씀을 읽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나를 읽어버리는 것이다. 소나 양이 되새김하는 동물이라면 우리 역시 말씀을 되새김하는 존재다. ‘생활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마음에 와 닿는 말씀을 잘 보이는 곳에 붙여 놓는다.)

역시 지시문 그대로 큰소리로 기도하듯이 성서본문을 읽는다. 무엇보다도 읽는 사이에 침묵을 지켜야 된다. 마치 깊은 산사의 새벽 범종이 울려 펴진다는 느낌을 갖고 외치는 것이다. 장중한 말씀이 온 회중에 울려 퍼져야한다. 이 단계는 감탄하며 그 말씀을 바라보는 단계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생각을 다하여 말씀이신 주님을 바라본다.’(루가 10,27 참조)

4단계: 침묵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다.

이 단계는 관상의 단계다. 내 마음을 울린 단어나 구절을 반복해서 속으로 외치거나 좋으신 주님의 현존에 머무는 것이다. “차라리 내 마음 차분히 가라앉혀, 젖 떨어진 어린 아기, 어미 품에 안긴 듯이 내 마음 평온합니다.”(시편 131,2) 젖 떨어진 어린아이 심정으로 그 분 품에 안기는 것이다.

5단계: 마음 안에 들려 온 말씀을 나눈다.

설교나 설명이 아니고 나의 구체적인 신앙고백이나 삶의 나눔이다. “당신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이요 나의 길에 빛이옵니다.”(시편 119,105) 말씀은 내 삶을 비추어 주는 거울이 된다. 말씀은 우리 삶을 자연스럽게 비추어 주면서 실타래처럼 풀려나오게 하는 기능을 가진다. 이는 구체적인 내용이 되겠지만 오히려 설득력과 호소력을 지닌다. 참석자들은 이런 나눔을 통해 서로 믿음이 심화되고 격려 받으며 개인적으로 가까워지고 따뜻한 분위기를 체험한다. 나눌 내용이 마땅치 않으면 ‘그냥 이 말씀이 와 닿았다,’ 또는 ‘이 말씀이 와 닿았는데 그 이유는 말 못하겠다.’ 정말 단순하고 소박하게 내 것을 나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면서 참석자에게 자랑하거나 한 수 가르치려 해서는 안 된다. 그럴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런 속마음까지 나누면 그것은 훌륭한 나눔이 된다. 남을 가르치려면 얼마나 어려운가! 모두 멋지게 한 수 가르치려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 아닌가! 어린아이처럼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원칙은 늘 유효하다.

6단계: 실천사항을 나눈다.

1단계부터 5단계까지는 20-30분이면 족하다.(참석인원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10명 정도) 이 단계는 우리 이 복음나누기 자리가 단순한 기도회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5단계까지는 기도 분위기가 유지되어야 하지만 6단계는 구체적인 활동 계획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토의된다. 우리 삶의 복음화가 이루어지는 소위 열매가 맺히는 단계다. 무엇보다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나)를 보시고 우리가 무엇을 행하길 원하실까? 그 하느님의 뜻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를 따져 보고 누가 언제 어떻게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다음 모임에 실천사항 유무와 그 결과가 분명히 보고 되어야 한다. 제대로 실천했는지, 못했다면 그 원인은 무엇인지 그리고 다시 실천 약속을 행하고 삶의 현장에 나가는 것이다. 실천 가능한 것들을 정하고 무리한 약속은 하지 않도록 한다. 특히 참석자들의 공동 관심사를 함께 실천에 옮겼다면 그 공동체는 점점 튼튼하게 될 것이다. 공동 관심사를 정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먼저 개인 실천 약속으로 가정에서 자신들이 해야 되고 하고 싶은 것들을 약속하게 하고 꼭 실천하여 자신감을 갖도록 해야 한다. 가정이야말로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우리 삶의 영역이 아닌가! 작은 결실에 대해서도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찬미 드리도록 하자. 이런 구체적인 실천은 공동체를 고무시키고 생활한 믿음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 우리는 나약하지만 세상 끝까지 함께 하시겠다는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으로 활동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회의 기술도 필요하다.

7단계: 자발적으로 함께 기도한다.

지금까지의 모든 나눔과 활동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순간이다. 모임 중에 인간적인 아픔이나 한계 등으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면 그것들 역시 하느님 안에서 빛을 받을 수 있게 된다. 1단계가 초대하는 기도라면 여기 7단계에서는 주님께 감사와 찬미, 용서와 은혜를 청하는 기도 등 모든 기도를 할 수 있다. 모임에서 나온 이야기 중에서 기도해야 될 사람이나 사연이 있으면 그것을 바친다. 따끈따끈하고 살아있는 기도가 될 것이다. 어려움을 당한 형제가 있으면 그를 위해서 구체적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복음 나누기 7단계에는 한마디로 많은 것이 들어있다. 부활하신 주님이 초대되고 그분의 말씀이 선포되고 회중은 그 말씀을 반복 경청하면서 묵상하고 관상에 이르게 된다. 말씀이신 그분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말씀에 비추어 자연스럽게 삶과 신앙이 나누어지고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진다. 생활한 신앙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공동체나 개인적으로 주어진 일(활동)을 찾아내 할 수 있는 것을 행하게 되면서 삶과 신앙의 일치가 도모된다. 즉 우리의 사명인 참된 복음화가 이루어진다.

소공동체를 어떻게 만들것인가 -- 광영동 성당 사례를 중심으로

천주교 광영동 성당 박보영유스티노

소공동체 만들려면

1)기본적인 사항

소공동체적인 사고로 전환 ⇒사제, 수도자, 전신자, 교구, 제 단체

(1) 수평적, 민주적 의사결정, 자율성 강조, 가족의 개념도입, 실천중심, 공동체 의식
(2) 이웃 신자들이 그들의 집에서 매주 한번씩 만난다. 복음 나누기를 한다. 이웃들 안에서 환자를 돕는다. 주일 예절을 진행한다. 그들 스스로 모금한다. 사람들의 부당한 대우에 대항해서 함께 일한다. 소공동체는 그들의 대표를 사목협의회에 보낸다. 예비자들에게 책임감을 갖는다. 소공동체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

2)형태 (1) 반조직(소공동체):5-6가구 (2)구역조직:5-7소공동체 (3)인적조직: 사도 총무 큰 사도 소공동체위원회 위원장 부위원장, 총무

3)내용 (1)아더 페레이라 신부님 강연 내용을 중심으로 (2003.8.31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목국 초청 강의)

왜 잘못을 소공동체에서 찾는가?
소공동체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소공동체의 중요한 네 가지 성장 과정
우리가 함께 모이는데 방해되는 것이 무엇인가?
누가 교회의 주인인가?
소공동체를 만든 후 좋은 점
소공동체는 참여하는 교회로 가는 지름길
무슨 일에 참여할 것인가
복음나누기 7단계가 우수한 이유
소공동체 - 가정 중심인가 본당 중심인가?
소공동체 성장을 위한 단계

(2) 초대 교회의 모습: 예수님의 말씀(복음), 사도행전의 내용과 같이 이웃과 함께하는 공동체, 세상을 변화시키는 모습

(3) 작은 교회의 모습: 초대교회가 그렇듯이 교회 건물 없이 돌아가며 주님을 모시고 빵을 나누며 이웃과 함께 한다

(4) 소공동체의 4가지특징

동네 사람들이 한 집에서 모인다.
복음 나누기를 한다.
신앙심으로 함께 활동 한다
전체교회와 일치한다

소공동체 만들기 4단계

1) 1단계: 계획 준비

(1) 계획수립 전신자의 의견을 수렴하여 계획을 수립한다.
(2) 계획에 대한 전신자, 사목회 동의를 얻어 발표한다.
(3) 연수실시-
①내용: 계획, 소공동체사상, 모임기법, 소공동체 및 교회의 비젼
②대상: 전신자, 사도 총무 큰사도 사목회 임원등: 전신자 및 모임별
③시기: 사전 혹은 연중 필요시기
(4) 조직: 반(소공동체), 구역, 인적조직(요원)
(5) 반(소공동체)가족 모두의 참여로 반(소공동체)이름을 정하고 사도총무를 선출한다.

2) 2단계: 모임 운영

(1) 모임 횟수: 월1회→ 월2회→주1회
(2) 모임에서 프로그램 운영하기: 복음나누기7단계, 진행은 처음에는 사도가 하다가 후에는 주최하는 가정의 주인이 한다. 반드시 장소는 가정에서 순번제로 한다.
(3) 6단계 활동한다는 소공동체 가족의 협의로 결정하고 공동 참여한다.

3) 3단계: 평가 개선

(1) 연1회 평가회를 갖고 개선점을 찾는다.
(2) 평가내용

① 우리는 이웃으로서 집에서 만난다.
이 공동체는 어떻게 해서 세워졌는가?
우리는 소공동체가 무언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우리는 소공동체에서 어떤 기쁨을 느끼는가?
우리 소공동체는 우리 개인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우리 소공동체에는 어떤 어려움이 있는가?
우리에게는 어떤 형태의 도움이 필요한가?

② 우리는 성서를 사용한다.
우리는 어떤 복음 나누기 방법을 사용하는가?
우리는 복음 나누기에 대하여 어떻게 느끼는가?
모일 때마다 진행자가 바뀌는가?
복음은 우리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③ 우리는 함께 일한다.
우리 소공동체는 어떤 활동을 하는가?
우리는 활동 보고를 하는가?
우리는 소공동체의 활동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는가?
활동은 어떻게 분담되는가?
우리는 다른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기울이는가?
우리는 아직 교회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가?
우리는 사회적이고 공적인 문제에도 참여하는가?
모두 함께 모여서 활동한 적이 있는가?

④ 우리는 전체 교회와 일치되어 있다.
우리 공동체는 전체로서의 본당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가?
우리는 본당의 일부로서 받아들여진다고 느끼는가?
사제들이나 사목자들은 우리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그들은 우리를 교육하고 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가?

⑤ 지도자들
우리 공동체에는 얼마나 많은 공동체들이 있는가?
우리 지도자들은 자원했나, 지명했나, 아니면 선출되었나?
그들은 어떤 교육을 받았는가?
그들은 지속적인 교육을 받는가?
지도자들의 임기는 얼마나 되는가?
지도자들은 어떤 방법으로 자신들의 지도력을 다른 사람들에게 분담하는가?

(3) 소공동체 활동 내용 공유-매월 1회 갖는 소공동체위원회 및 사도, 총무, 구역장 회의에서 체험사례발표-소식지를 통해서 내용공유 및 개선점 찾기

4) 4단계: 발전, 활성화

소공동체모임으로 이루어지는 활동들(발전과 활성화에 기여)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 될 수 있다

(1) 소공동체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활동들

① 매주 1회 소공동체 모임 정착
② 각소공동체 1개의 복지시설(봉사단체)을 선정하여 꾸준한 봉사
③ 연중 소공동체 교육 실시
④ 소공동체 미사 실시
⑤ 교중 미사 전례- 소공동체에서 담당(안내, 독서, 봉헌, 신자들의 기도, 기타)
⑥ 쉬는 교우들을 위한 기도
⑦ 남성의 소공동체 참여 유도
⑧ 의사결정 기구 운영
⑨ 본당의 날 행사 주간 설정 운영
⑩ 구역별 대항 연중 경기 진행
⑪ 중고등부 간식 마련 제공(구역)
⑫ 입교식에서 세례식까지의 4단계-소공동체 참여

환영식→받아들이는 예식→세례자 선발예식→ 세례식

⑬ 소식지「광영가족」(주보) 적극 활용
⑭ 구역별 소공동체 지도자들과의 만남
⑮ 성서와 함께 하는 신앙인의 생활
⑯ 축제 분위기 속에 사목협의회 회장단 선출 및 사목협의회 조직

(2) 가정공동체의 성화

① 가정기도 활성화
② 가족이 함께 쓰는 성서
③ 가정교리를 통한 가정의 복음화를 위한 노력
④ 혼인 갱신 식
⑤ 기타 가정공동체의 활성화를 위한 프로그램 실시

(3) '광영동생활공동체'(되살이)를 통한 농∙생∙환 운동

①'되살이'를 통한 우리 농산물 살리기 운동 지속적으로 전개
② 무 농약 쌀 사먹기 운동(무 농약 쌀 1말이 땅 7평을 살림)
③ 되살이 회원들의 생산지 현장 방문
④ 생명의 밥상 차리기
⑤ 환경바자회 실시
⑥ 인스탄트 음식, 외국산 과일 안 먹기 운동
⑦ 탄산음료 안마시기 운동
⑧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및 철저한 분리수거 운동 전개
⑨ 일회용품 사용하지 않기 운동 전개
⑩ 플라스틱 제품은 가급적 사용하지 않기 운동 전개

6. 소공동체 활동을 통한 변화의 모습들

우리 천주교 신자들은 차갑고, 자존심 강하고, 개인적이고 이기적이라는 평을 주위에서 자주 듣고 있다. 특히 이곳의 특수사정이지만 신자들이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이기(90%타향임) 때문에 신자들이 이기적이고 부정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제는 여러 측면에서 볼 때 신자들의 사고 전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다음에서 변화하는 모습들을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1) 소공동체 식구의 80% 찬성으로 성당 버스 구입

지역적인 특수성을 고려하여 성당버스를 구입하자는 의견이 많아 소공동체의 의견수렴 결과 소공동체 가족의 80% 찬성으로 버스구입을 결정하였다. 각 가정의 약정금액을 받아 100일 만에 버스를 구입하여 2003년 6월 22일 본당 버스 축성식과 큰 잔치를 열었다. 이는 소공동체를 통하여 의사결정을 하였고 자율적인 약정으로 신자들 모두가 함께 참여하여 이루어 놓은 놀라운 작품인 것이다.

2) 적극적인 각종행사 참여

지금까지 우리 교회의 모든 전례, 행사, 모임 등은 사제나 수도자의 지시에 따라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신자들이 대부분이고 심지어는 우리본당의 주인은 사제라는 생각에 스스로 방관자 역할을 하던 신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소공동체 사목이 실시 된지 1년 반 정도 지난 지금에는 점차 바뀌어가고 있다. 그 현상은 함께하는 연도, 성당청소, 성탄과 부활 때의 발표회, 체육대회 등 본당에서 실시하는 행사에 적극 참여하는 신자 수가 늘어나고 있으며 돈독한 이웃과의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3) 가정의 변화

교회의 최소단위인 가정의 기본 구성원 즉 부부가 성서와 소공동체 활동을 중심으로 변화되고 있다. 기도와 화목을 실천하고 봉사를 생활화 하려는 부부들이 늘어나고 있다.

4) 교회의 탈바꿈 현상

한마디로 잠자는 교회에서 깨어나는 교회로, 나홀로 교회에서 우리의 교회로, 집으로 돌아가는 교회에서 머무르는 교회로 탈바꿈하는 현상이 나타 나고 있다.

소공동체 식구들과 함께 복음나누기의 “활동한다”를 실천함으로서 나만 생각하던 삶에서 이웃에게 베푸는 삶의 양식으로 변화 모습이라든지, 교회 안에 웃음이 많아졌고 신자들끼리 서로 인사하며 작은 대화를 나누는 모습 이라든지, 성서를 가까이하고, 소공동체에서 이웃을 가까이 하고, 되살이 를 통해서 좋은 것을 먹도록 제공받으니 “살맛나네.”라는 표현을 하는 신자들이 늘어가고 있는 것은 교회의 작은 탈바꿈 현상이라고 본다.

생소하다고하는 생각하던 소공동체 모임에 적극 참여하고 이웃들과 어려움 을 함께 나누는 모습, 기도의 자연스러움, 소공동체 모임에서 기도의 생활 화, 강론의 받아들임, 쉬는 교우의 줄어 듬 등이 교회의 탈바꿈 현상 또는 소공동체 사목이 생활화 되어가는 변화의 모습들이라 판단하고 있다.

문제점 및 과제

1) 소공동체 사목을 통해서 새로운 교회 상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이전의 교회관(신심단체 중심의 교회, 반 중심의 교회)에 익숙한 신자들에게 약간의 부적응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를 위해서 앞으로도 우리 공동체를 성령의 이끄심에 맡겨 드리며 지속적이고 계획적인 신자 재교육을 통해서 해결할 과제라고 본다.

2) 소공동체 모임이 부부중심, 성인중심으로 이루어지다보니 참여의 폭이 줄어든다.

3) 계속적인 신자들의 교육이 중요한 과제이다.

4) 복음나누기 7단계에서 6단계 “활동한다.” 적극적으로 참여 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이 과제이다

나가는 말

소공동체 모임을 통하여 삶의 윤기를 발할 수 있으며 천주교 신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도록 내 자신이 변화되었음을 스스로 느낄 수 있다.

고백성사를 보아야 할 정도의 어렵고 힘든 이야기들을 나누며 해결하는 모습은 소공동체 활동 없이는 상상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공동체 중심의 사목으로 가는 길은 전통적인 교회의식에 젖어 있는 천주교 신자들에게는 다소 어려움이 있으리라 판단되지만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의 끊임없는 노력여하에 따라 변화정도는 다르리라고 판단된다.

소공동체 활동은 전신자의 합의로 시작하여 만들어 가는 우리의 과업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교회 형태에서 탈바꿈하는 사목 프로그램이며 계속적인 노력으로 우리 모두가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실천하면서 수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소공동체를 위하여 : 제1강 하느님의 공동체 계획

앞으로 수차례에걸처 소공동체 활성회에대한 우수한 글/ 좋은강의를 서울교구 자료실에서
이곳으로 옯겨 보겠습니다. '"공동체를통한 복음화"에 대한 개념확립에 도움이 되도록 하느님께 기도합니다.(권혁윤 세례자오한)

1부. 공동체라는 개념

1. 공동체라는 말의 의미

1) 우리말

공동체라는 단어는 혈연 또는 지역, 나아가 정신적으로 연대를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혈연은 가족관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가족 공동체이며 지역은 일정한 지역 안에 사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는 공동체이다.

본당은 일정한 본당의 지역 안에 거주하는 신자들의 집단을 본당 공동체라 한다. 같은 신앙을 통하여 모인 공동체를 신앙공동체라 한다.

2) 한자말

공(共)은 한가지 공의 의미뿐만 아니라 법될, 공경할, 무리 공의 의미를 가진다. 하느님을 법으로 공경하는 무리의 하나된 모습이라는 뜻이다.

동(同)은 같을 동의 의미뿐만 아니라 한가지, 무리 동의 의미도 있다. 모여서 화합하는 무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체(體)는 몸이라는 의미와 함께 지체를 뜻한다. 따라서 공동체(共同體)란 의미는 우리가 하느님을 마땅히 공경하여야 할 지체로서 한 무리를 이룬다는 의미이다.

3) 서양말

영어로 공동체는 Community이며 이 Community는 Communion(친교, 사귐, 영성체)과 Unity(일치)라는 의미의 합성어이다. 친교와 사귐을 통하여 일치를 이루는 모습을 공동체라 하며 우리가 미사 중에 영성체로 예수님과 일치를 이루는 것을 바로 Communion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하느님과의 사귐의 극치를 말하고 있다.

2. 심리학적인 면

공동체라는 의미는 심리적으로 다음의 4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대화, 사귐, 목표, 활동이다. 공연장이나 야구장, 극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공동체라고 하지 않는다. 공연이나 야구, 영화를 보러 온 것이지 대화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공연이나 영화를 보고 나면 모두 뿔뿔이 흩어진다. 사귐은 반드시 대화를 필요로 하고 또한 대화가 깊어져서 사귐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모인 이들이 아무런 목적 없이 있거나 그 목적이 다르면 공동체를 이룰 수 없다. 목표를 가졌으면 반드시 그 목표에 도달하려는 수단이나 도구가 같아야 하는데 그것을 활동이라 한다. 활동을 함께 해야 공동체로 느끼게 된다.

요사이 우리의 본당들은 규모가 커지면서 대중화되어 가고 있다. 이처럼 본당의 모습이 공동체이어야 하는데 대중화되어 간다는 것은 공동체로서 본당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당신은 본당에서 이웃과 대화를 합니까? 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또는 본당의 사목 목표를 아십니까? 라는 질문에 대하여 대화를 하지 않거나 사목 목표를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공동체로서 함께 알아야 하고 함께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본당에 적을 두고 있는 신자로서 아무런 소속감도 없이 본당 신자들과 사귐이 없거나 함께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는 활동이 없다면 결코 그 집단은 공동체가 아니다. 단지 대중화에 빠져 있을 따름이다.

3. 신학적인 측면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에 딸린 지체는 많지만 그 모두가 한 몸을 이루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그러합니다. 유대인이든 그리스도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우리는 모두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같은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 (1고린 12,12-13)

몸은 여러 지체로 구성되어 있고 이러한 지체가 한 몸을 이루듯 한 공동체도 여러 사람들을 구성원으로 해서 이루어진다. 여러 지체들은 모두 똑 같은 지체가 아니라 다양한 지체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것을 바로 공동체라 하는 것이다. 본당이라는 개념은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한 분의 하느님을 섬기고 하느님을 모두가 아버지라고 신앙을 고백하는 행위를 통하여 삶을 드러내는 사람들의 모임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며, 우리 각자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이며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들이다.

2부 하느님의 공동체 계획

“하느님은 세상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시고 모든 피조물을 인간이 다스리게 하심으로써 공동체 계획을 완성하신다.”

“하느님은 구원시초부터 우리를 개인적으로 부르시지 않고 공동체의 지체로 뽑으셨다.” (사목헌장 32항)

1) 공동체이신 하느님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 (창세 1,26)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인간은 창조하시고 이 인간의 모습을 당신을 닮게 만드셨다고 표현하신다. 당신의 모습을 복수로 표현하는 것은 바로 삼위일체를 염두에 두고 있다.

“이제 이 사람이 우리들처럼 선악을 알게 되었구나.” (창세 3,22)

아담이 범죄한 후 동산에서 몸을 숨기고 있을 때 동산을 거닐다 숨어 있는 아담을 향하여 말씀하시는 대목에서 역시 당신을 복수로 표현하고 있다. 완전한 삼위일체의 모습을 구약에서 이미 다 표현하였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창조와 구원과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을 삼위일체의 온전한 공동체임을 드러내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겠다.

2) 사랑의 공동체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을 따라 창조되었고 창조주를 알아 사랑할 수 있으며 창조주로부터 세상 만물의 주인공으로 설정되어 만물을 다스리고 이용하며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외롭게 창조하지 않으시고 태초부터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었다.” (사목헌장 12항)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하면서 깊은 본성으로부터 공동체로 창조하셨다. 인간의 창조는 플라스틱 용기를 만들 때 뜨거운 사출기(밀어내는 기구)를 통하여 플라스틱 용기를 만드는 것처럼 하느님에게서 뜨거운 사랑이 분출하여 나오는 것을 연상하여 보라. 하느님은 당신의 모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강조하신다.

부부가 서로에게 헌신하는 삶을 살면 어딘지 모르게 닮은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부자지간에도 외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눈에 나타나지 않는 마음씀이 닮는다고 한다. 그것은 같이 생활하고 함께 이해하는 과정을 통하여 자신도 모르게 서로 닮아 가는 것처럼 하느님은 공동체적인 삼위일체를 통하여 자신의 모습을 닮은 인간도 공동체로 창조하셨다. 아담과 하와의 창조를 통하여 부부가 되게 하시고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만들어 주셨다. 새 가정은 세상 안에서 조화를 이루며 살게 하셨다. 아담에게 필요한 짝 하와를 창조하실 때에 잠자는 아담의 옆구리에서 갈비뼈 하나를 뽑아 만드셨다는 표현은 바로 서로에게 긴밀한 관계를 형상화하는 것이다.

하느님은 당신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아담과 하와도 사랑하며 살게 하시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 당연하도록 하셨다. 하와의 창조에 아담이 얼마나 기뻤는지를 보여주는 표현은 다음과 같다.

“드디어 나타났구나.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다”

이렇게 애타게 고대하던 바를 얻은 모습의 표현은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는 중요한 구성원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하느님은 이 사랑의 공동체를 축복하셨다.

3) 공동체의 분열

사람이 낙원에 머물 때는 하느님과 사람이 공동체로 살았다. 하느님과 더불어 낙원에 머물며 행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에 빠져 선악을 아는 열매를 따먹고 나서는 알몸이라는 것이 부끄럽게 여겨져 동산을 거니시는 하느님의 눈길을 피해 몸을 숨겼다.

“카인은 아우 아벨을 ‘들로 가자’고 꾀어 들에 데리고 나가서 달려들어 아우 아벨을 쳐죽였다.” (창세 4,8)
카인이 아벨을 살해하게 되었다. 죄가 들어와 두 형제를 갈라놓았다. 죄는 부끄러운 것이며 자연히 숨기고 감추게 된다. 이렇게 죄책감이 드러나는 결점을 감추게 하며 숨기게 한다. 이것은 분열과 단절의 시발점이 되었고 아담은 죄로 말미암아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또한 그 결과에 대한 책임으로 낙원에서 추방당하여 더 이상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죄로 인하여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진 사람은 죄로 인한 이기심으로 싸우게 되고 다투게 된다. 결국 죄는 모든 단절의 원인이며 또한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요인이다.

“인간은 마귀의 유혹을 받아 역사의 시초부터 제 자유를 남용하였고 하느님께 대립하고 하느님을 떠나서 제 목적을 달성하려 하였다. 그들은 하느님을 알았지만 하느님께 마땅한 영광을 드리지 않았고 그들의 어리석은 마음은 흐려져 창조주보다는 오히려 피조물을 섬겼다.” (사목헌장 13항)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육체에서 나를 구해 줄 것입니까? 고맙게도 하느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해 주십니다. 나는 과연 이성으로는 하느님의 법을 따르지만 육체로는 죄의 법을 따르는 인간입니다.” (로마 7,24-25)

4) 예수님은 화해자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받드는 자는 모두 하느님의 자녀이며 하느님의 아들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길을 제시하신 분이시다. 죄로 말미암아 분열되고 이기심으로 인하여 화해하지 못하는 우리를 위해 대신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셨다. 희생제물이란 바로 화해를 위해 대신 속죄의 제물이 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며 제자들에게 성령을 파견하셨다. 이 성령께서 우리들에게 예수님이 죄로 분열된 하느님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오신 화해자임을 드러내셨고 예수님의 부활, 승천후에 이 모든 사실을 알게 해주시려고 오셨다. 부활을 믿는 이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한 화해의 삶을 가르쳐 주신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 (마태 12,50)

“여러분은 자신이 하느님의 성전이며 하느님의 성령께서 자기 안에 살아 계시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1고린 3,16)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이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성령이 계시는 성전이라는 것을 모르십니까?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1고린 6,19)

성령께서 우리 안에 살아 계시며 우리가 하느님의 성전이 되고 교회를 전파하게 하신다. 또한 교회가 믿는 이들의 공동체임을 드러내게 하시며 이끌어 주신다.

공동체라는 의미를 살펴보면서 하느님께서 삼위일체이신 공동체이시고, 우리가 각자 개별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구원도 공동체를 통하여 완성하신다는 것을 성서의 가르침을 통하여 알게되었다.
공동체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는 우리들의 모습을 잘 인식하고 우리가 세상 안에서 먼저 하느님의 사랑이 충만한 소공동체를 건설함으로써 죄로 말미암아 분열된 공동체를 재건하여야겠다.

이용호 신부

소공동체를 위하여 : 제2강 기초공동체는 왜 필요한가요?

소공동체를 위하여 : 제2강 기초공동체는 왜 필요한가요?

이용호 신부

·이 글은 대구 복자성당에서 있었던 최병화(요셉) 님의 대림절 특강을 이용호 신부가 정리한 내용임을 밝혀 드립니다.

기초공동체라는 용어는 ‘교회의 기초공동체’, ‘그리스도인의 기초공동체’, ‘소공동체’, ‘반신회’, ‘반모임’이라는 용어들과 함께 혼용되어 왔다. 그러나 기초공동체는 일정한 지역 안에서 이루어지는 본당의 기초가 되는 소규모 단위의 공동체를 의미하는 말이다.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 그 본질은 기초공동체에 두고 있다.

1부 기초공동체를 이루어야 하는 근거

1) 교황 바울로 6세의 사도적 권고

교황 바울로 6세의 ‘현대 복음선포’의 사도적 권고 58항에서 ‘교회의 기초공동체’라는 말이 많이 인용되고 있다.

교황님은 1974년 이 권고문에서 “복음화하면서 복음화되는 것”을 역설하셨다.

‘복음화하면서’라는 뜻은 복음의 정신대로 제대로 사는 것, 즉 교회 공동체가 사귐과 나눔과 봉사를 하는 공동체가 된다는 뜻이다. 기초공동체가 생기게 되는 필요성, 요인은 교회가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면서 생기게 되었고 대도시 본당에서는 인격적인 교류가 잘 안되어서 잘 되도록 하기 위해서 생겼다. 교황님은 기초공동체가 정치나 이데올로기에 편향하거나 신심이나 돈에 연류되어서는 안되며 책임의식이나 전체주의 의식으로 퇴색되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이 말씀의 요지는 기초공동체는 자신의 근본 소명에 충실하면서 복음화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복음화는 복음의 선포자로서의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2) 교황 요한 바울로 2세의 교회

선교사명 51항

“교회의 기초공동체는 복음화의 힘이다.”

기초공동체는 본당공동체의 분권적(일부분)이며 항상 본당에 소속되어 각자의 소속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러므로 기초공동체는 이웃과 함께 누룩이 되어야 한다. 즉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돌봄으로써 이웃 안에서 누룩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은 대화하기 편한 2%의 ‘살찐 양들’(친한 사람들)만 돌보고, 아흔 아홉 마리의 소외된 양들은 돌보지 않고 있다. 바로 이 소외된 이들을 찾으려는 구조가 바로 기초공동체이다. 예수님도 소외된 이들을 우선적으로 찾지 않으셨는가?

기초공동체란 밖으로는 이렇게 소외된 사람을 찾는 것이며 안으로는 공동체를 체험하는 것이다. 즉 위로받고 위로하는 것을 통하여 공동체를 체험하는 것이다. 흔히 반공동체가 잘 안 된다고 하는데 그것은 공동체의 맛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5대 독자 외아들에게서 손자를 본 할머니가 며느리 자랑을 안 하겠는가? 시키지 않아도 며느리 자랑을 하듯, 능동적으로 기초공동체에 참여하기 마련이다.

또한 기초공동체는 역할을 수행함에 있어서도 능동적이어야 한다. 역할이 분담되어야 하는데 예를 들면 반장, 부반장, 회계, 총무봉사자, 말씀봉사자(전례), 어린이를 돌보는 봉사자 등으로 역할을 분담해서 능동적인 참여가 되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능동적인 자세와 참여야말로 기초공동체를 이루는 지름길이라 하겠다.

3) 아시아 주교회의

“말씀이 현존하셔서 기초공동체를 만드셨다.”

2001년 교구장 사목교서 실천사항 중 사랑에 바탕을 두고 신자들이 자율적으로 행하는 것과 요한 바울로 2세의 능동적인 자세로 기초공동체에 참여하라는 말씀은 그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기초공동체는 복음화의 과정이며 복음 선포인 것이다.

반둥에서 열렸던 아시아 주교회의 폐막 성명 중 기초공동체에 대한 선언문에서는 “말씀이 현존하셔서 기초공동체를 만드셨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1976년부터 교황, 주교님들의 이런 기초공동체에 대한 가르침은 강화되어 왔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이 “처음 듣는 것”이라고 한다. 사실 반장을 하라고 하면 성당에 그만 다니고 싶다고 할만큼 그 직책을 어려워 한다. 기초공동체의 모임이 반상회 정도의 개념에 머물러 있어서 여전히 기초공동체에 대한 의식이 없는 것이 현실정이다.

4) 성경의 근거

마태복음 10장은 열두 사도를 파견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왜 하필이면 열두 제자만 파견했을까? 이것은 제자가 없어서라기 보다는 기초공동체의 모습을 제시하신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함께 생활하면서 복음을 선포하는 모습인 것이다.

사도행전 2, 4장에서는 초기교회의 신자들이 기초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모든 것을 공동 소유로 하고 공동으로 기도와 예배를 드리는 공동체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도 초대교회의 아름다운 나눔과 섬김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2부 기초공동체의 구성

1) 지역 우선

일정한 지역 안에 사는 10가구 정도의 20-30명을 단위로 구성한다. 너무 숫자가 많거나 적으면 공동체 형성에 어려움이 따른다.

2) 가족단위의 다양한 구성원을 형성한다

노인, 외짝교우, 소년소녀 가장, 신자가정 등 다양한 계층으로 구성된다. 신분이나 직업도 다양하다. 쌀가게, 회사원, 기능공, 공무원, 회사중역 등등.

3) 자율성을 가진다

기초공동체 안에서 평신도가 자율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 무슨 교회의 법도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산다는 것이 아니다. 자율적으로 한다는 것은 공동체가 할 일을 스스로 계획하고 실천하는 일이다.

물론 지도 신부의 지도를 따른다. 하지만 의존하거나 수동적인 지시만 받아서 하는 것을 탈피한다는 뜻이다.

4) 복음나누기를 한다

이 부분은 참으로 중요한 부분이나 꼭 복음나누기 7단계를 고집하지 않는다.

물론 충분히 습득하여 공동체 전체가 잘 운용할 수 있으면 이 방법은 좋은 결실을 거둘 수 있다. 아직도 공동체 전체가 7단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우선적으로 하면 되겠다. 복음나누기 시간이 성경공부를 하는 것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이 시간에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삶에 관련된 생각이나 느낌, 즉 생활을 나누는 것이다.

모임의 시기 역시 매일 하든, 주 1회를 하든, 월 2회를 하든 그 공동체의 사정에 따라서 선택할 수 있지만, 최소한 기초공동체가 잘 되려면 주 1회는 모임을 가져야 가능해진다. 목표를 주 1회로 세웠다면 요일도 그 공동체의 여건에 따라서 결정할 일이다.

5) 모임장소

“그들의 집에서 모이는 교회 여러분에게 문안해 주십시오.”(로마 16, 5)라는 성서의 말씀에도 각 가정에서 기도하고 예배를 드렸던 모습이 소개되고 있다. 기초공동체도 그 구성원들이 서로의 가정에서 모임을 갖도록 한다.

3부 기초공동체의 성격

1) 신앙공동체이다

기초공동체는 신앙공동체이기 때문에 항상 말씀이 중심이 된다. 물론 모임에서 우리가 읽었던 성경말씀을 때로는 잘 모르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신약에 ‘성령께서 오셨다’는 표현을 읽고 ‘구약에는 성령께서 안 계셨나?’, ‘나도 잘 모르겠어’, ‘그러면 신부님께 여쭈어 보자’ 등등, 다음 모임에 한사람이 신부님의 말씀을 듣고 온다든지 성경주해서를 찾아 본다든지 해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신앙을 생활 안에서 실천하면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체험을 나누는 신앙공동체가 바로 기초공동체이다.

서울 어느 본당의 경우 가두선교를 나갔는데 노력에 비해서 성과가 적어서 평가회의 때 무조건 나가지 말고 이웃에 있는 친분 있는 사람들부터 해 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실제로 이웃에서부터 시작해서 대단히 큰 성과를 얻었는데, 지난 번에는 20여 명에 지나지 않던 예비신자를 약 100여 명 이상이나 성당으로 초대할 수 있었다.

또 어떤 본당에서는 예비신자를 처음 6개월간 소속 기초공동체에 나가게 하고, 6개월 후부터 교리를 시작해서 3개월 교리하고, 그 뒤 3개월 동안은 또다시 소속 기초공동체에 나가게 해서 1년 정도 교리기간을 가졌다고 한다. 신앙공동체 안에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이다.

2) 예배와 기도의 공동체이다

가족적인 소규모의 구성원들이 모여서 본당의 전례를 담당하기로 지향을 가지고 함께 기도를 한다. 여덟 살 된 꼬마 아이가 놀이터에서 머리를 다쳤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함께 모여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주선하고 9일기도를 바치기로 했다. 2-3일 지나는 동안에 다행히 아이가 나아서 9일기도가 끝나는 날 파티를 했다. 그런 일을 통해서 사귐의 신비를 체험했다면 고독한 그 가족들은 공동체와 친밀한 관계를 갖게 된다.

1996년 대우 연구소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현대인 7,493명(약 3,190세대) 중 대도시 인구 47%가 하루에 한번도 이웃에 사는 사람과 말을 건넨 적이 없다는 응답을 했다. 현대는 그런 사람이 더 늘어가는 추세이다. 서로 함께 기도하고 예배하는 기초공동체의 활동이 어느 시대보다 급박하게 요구되고 있는 실정이다.

3) 성사(혼인, 신품, 세례, 견진)를 준비시킨다

혼인할 자녀들이 어디에서 결혼과 함께 신앙생활을 배우겠는가? 풍부한 결혼생활의 체험들을 기초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알려주게 되고 생활을 통해서 지켜봄으로서 알게 된다. 신품성사를 받게 되는 자녀가 있다면 처음 그 자녀는 바로 공동체 안에서 자라서 신학교에 입학하게 되는 것이고, 성직자가 되는 과정을 통해서 그 지역 공동체의 자녀들이 자연스럽게 성소를 배우고 익히게 된다. 신학생이 양성되는 첫 단계가 여기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성소의 중요성을 알리고 신학생을 보고 접촉하게 하는 과정을 통해서 아이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성소를 키워가게 된다. 그 외에 세례나 견진성사도 공동체 안에서 교리를 담당하는 봉사자들을 통하여 교육을 받아 성사를 준비하게 된다.

4) 사랑과 봉사를 실천한다

이웃, 형제, 자매를 위해서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과 봉사하는 모범이 바로 복음화의 지름길이다. 이웃에 사는 반원 집을 방문했는데 어린아이가 혼자 집을 보고 있었다. 집안을 청소하고 아이 간식을 챙겨주고 돌아왔다. 일을 나가는 그 자매가 저녁에 찾아와서 인사를 하면서 하는 말이 “저 모임에 잘 나갈게요.”라고 했다.

이웃의 소중함을 알면 공동체는 더욱 활성화된다. 이웃을 방문했는데 감기 몸살로 며칠째 앓아 누워서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있었다. 콩나물을 사다가 국을 끓여 먹였더니 다음날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났다. 작은 구원을 체험한 그 자매는 꼬박꼬박 공동체에 참석하였다. 이러한 사례는 서로 돕고 서로에게 체험이 되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초상이 난 이웃집에는 자녀들이 신자가 아니어서 서먹했지만, 열심히 봉사하며 거들었더니 장례 후에 그 자녀 9명이 교리반에 입교를 해서 세례를 받았고, 그 구역에서는 경로당을 빌려 축하파티를 열었다고 한다. 적극적으로 봉사함이란 이웃이 남이 아니라 하느님이 보내신 분이라고 생각하고 섬기는 자세이며, 그것이야말로 참으로 아름다운 공동체의 모습이다.

끝으로 다시 한번 왜 기초공동체가 필요한가?

하느님의 백성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고 공동체의 지체이므로, 우리 모두는 공동체가 되고 싶어하는 갈망을 지니고 살고 있다. 구약에서 이 갈망을 다 채워주지 못하였으므로, 이 갈망을 채워 줄 대안이 바로 예수님이 제자들을 통하여 보여 주셨던 기초공동체이다. 서로 사랑하고 봉사하는 삶을 통해서 우리 자신이 복음화 되고 이웃에게 복음을 선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기초공동체 안에서 사랑을 통하여 자유와 해방을 알리는 구원을 체험하게 된다. 이런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능동적인 참여를 하자.

소공동체를 위하여 : 제3강 기초공동체와 하느님 백성

소공동체를 위하여 : 제3강 기초공동체와 하느님 백성

이용호 신부

이 글은 지난해 대구복자성당에서 있었던 최병화(요셉)님의 대림절특강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참고문헌>

·베드로 전서 2, 9-10
“여러분은 선택된 민족이고 왕의 사제들이며 거룩한 겨레이고 하느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두운 데서 여러분을 불러 내어 그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해 주신 하느님의 놀라운 능력을 널리 찬양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하느님의 백성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하느님의 백성이며 전에는 하느님의 자비를 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분의 자비를 받게 되었습니다.”

·교회헌장 2장 전체

기초공동체의 구성원은 하느님 백성이다. 이번 강의에서는 하느님 백성에 대하여 공부해 보자. 베드로 전서 2,9-10에서 전에는 하느님의 백성이 아니었고 또한 자비도 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하느님의 백성이고 자비를 받는 자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으며, 교회헌장 2장 전체에서도 하느님의 백성에 관하여 다루고 있다.

1. 하느님의 백성은 소명과 사명을 가진 백성이다.

소명과 사명에 대해서는 자주 들은 것 같지만, 이번 기회에 정확한 말뜻을 정리해 보자. 먼저 소명이란 군대에서 소집영장이 오면 입대하는 것과 같다. 소집을 입대라고 말하기보다는 ‘응소’라고 하는 것이 더 명확한 표현이다. 입대하여 군인이 되면, 무엇보다 군인의 사명은 국토방위에 대한 사명을 지닌다. 나라를 지키는 일에는 참 다양한 일거리가 있다. 소총수가 있고, 대포를 조작하는 이가 있고, 비행기를 조종하는 일이 있고, 밥을 하는 일도 있고, 운전을 하는 일도 있다. 그래서 그것을 세분화하여 주특기라고 한다. 600은 운전, 713은 공병 중에서도 보급, 즉 페인트, 시멘트, 목재 이런 것들을 보급하는 일을 한다.

하느님께서도 우리에게 소집영장을 주셨다. 초청장을 주시는데, 이것을 하느님의 부르심이라고 한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일, 이것이 우리의 소명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의 백성으로 불림을 받아 하느님의 백성이 된다. 하느님 백성의 사명은 복음선포이다. 군인의 사명이 국토방위이듯 하느님 백성의 사명은 복음선포인 것이다. 복음선포에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봉사할 수 있다. 주특기에 따라서 군복무를 하듯 복음선포에도 그 사람의 재능에 따라 다양하다. 글 쓰는 이는 작품을 통해서, 음성이 좋은 사람은 성가대에서 봉사하는 것처럼 사명을 수행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마태복음 25장 14절에서 30절에는 달란트 비유가 나온다. 이 달란트는 재능이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다. 어떤 분은 “저는 아무 재능도 없고 밥밖에 못합니다.”라고 하는데, 음식을 잘하는 것도 큰 재능이다. 남자들이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다 보면, 그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또 어떤 분이 재능이 없다고 완강하게 반장자리를 사양하시기에,

“발은 튼튼합니까?” “예, 발은 튼튼해요.” “그러면 발로 뛰어 다니며 본당소식만 전하세요.” 라고 한 적이 있다.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그것을 유용하게 사용하지 않고 땅속에 묻어 두었다. 주인이 돌아와서 금화 하나마저 빼앗아 버렸다. 재능의 적고 많음은 중요하지 않다. 있는 재능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나쁘다. 예전에 헛간에 두던 대형저울은 추수가 끝나면 쌀가마니의 무게를 재는데 사용했다. 그러나 금은방에 있는 작은 저울은 그 필요에 따라서 늘 사용한다. 큰 저울이 일년에 한두 번 사용하는 것에 비해, 금은방에 있는 작은 저울은 늘 그 자리에서 자주 유용하게 사용된다. 사용 용도가 따로 있기 마련이다. 처음부터 반장이나 구역장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하다 보면 노하우도 생기기 마련인 것을, 처음부터 겁먹지 말자.

2. 하느님의 백성은 하느님과 사귀는 백성이다.

서두에 베드로 전서의 말씀처럼 거룩한 겨레, 하느님의 소유가 된 백성은 하느님을 체험하는 백성이다. 하느님을 체험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존 포엘(John Poel)은 “체험을 통해서 하느님을 만나지 못하는 이에게는 신학도 하느님을 만나게 해줄 수 없다.”고 말한다. 친구들 가운데 유명한 친구가 있다면 “아, 그 친구, 초등학교 동창이야.”라며 자랑할 것이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친구가 되겠다고 하셨다. 요한 15, 14-15에서 “내가 명하는 것을 지키면 너희는 나의 벗이 된다. 이제 나는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고 벗이라고 부르겠다.”하신다. 하느님과 사귐이 모든 이와의 사귐에 바탕이 된다. 이 바탕 위에서 우리는 주위의 형제와 자매, 나아가 전 피조물과도 친구가 된다.

3. 하느님의 백성은 순례하는 백성이다.

우리가 늘 같은 장소에 같은 성당에 나가고 있어도 지금도 변함없이 우리 모두는 순례하고 있다. 시간이라는 기차를 타고 순례를 하고 있는 것이다. 10년 전의 컴퓨터를 생각해 보면, 무게도 모양도 크고 투박했는데, 요즘은 모양이 작아도 성능은 몇 배나 더 나아졌다. 하느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는 교회를 통하여, 교회는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백성을 이끌어 주신다. 이렇게 하느님은 각 시대에 알맞은 방법을 통하여 공동체를 만드시고 주관하신다. 우주 만물을 하느님 안에 일치시키고 새 하늘 새 땅을 창조해 가신다.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여 에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시고 시나이 반도를 거쳐 선택된 백성을 순례의 길로 부르셨다.

순례의 길, 즉 떠나는 삶은 짐이 가벼워야 한다. 6·25나 1·4후퇴 때를 생각하면 처음에는 가재도구를 비롯하여 온갖 것을 다 들고 나왔다가 얼마 후에 하나씩 버리기 시작하여, 나중에는 아이들마저 버리고 가는 사람이 생겼다. 순례의 길을 떠날 때는 짐을 가볍게 해야 한다. 이것은 순례의 길이 바로 가난(청빈)의 길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에서 피정 지도를 하고 우연하게 코트를 한 벌 선물로 받았는데, 그것을 들고 다니느라 고생만 하다가 결국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주고 말았다. 생각해 보면 부피가 큰 옷에 너무 욕심을 부려 고생만 하고, 결국에는 다른 사람에게 주게 되고 말았다. 정말 마음이 가난해야 한다. 가난의 두 종류에는 다음의 경우가 있다.

가. 물질적 가난

이 가난은 하느님께서도 배격하시는 가난이다. 하느님은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신다. 소수의 사람들이 자원이나 재원, 재물을 독점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이 많다. 이것은 정말 나눔으로써 극복해야 할 문제다.

나. 복음적 가난

이 가난은 물질을 귀하게 여기지만 결코 집착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물질이냐 가난이냐, 이 둘이 갈등을 빚으면 먼저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볼쇼이 아이스 발레’ 표를 선물 받았다. 곧이어 전통 악극 ‘불효자는 웁니다’라는 표도 받았는데, 공교롭게도 두 공연이 같은 날에 열리는 것이었다. 그러면 어느 쪽을 가겠는가? 아마도 더 좋아하는 쪽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추운 날 9일기도 참석에 대한 게으름이 생길 때 어떻게 할까, 망설여지겠지만 잘 극복하고 참여하게 될 것이다. 갈등을 뿌리치고 하느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는 것처럼 눈앞에 이득이 생기는 물질이나 재화가 아니고 가난함을 택하는 것이 복음적 가난이다.

다. 헌신적 가난

자신의 삶 전체를 내어놓는 가난함을 택하는 것이다. 수도자들이 청빈을 택하여 자신의 소유물을 갖지 않고 서원을 한 삶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헌신적 가난이다.

순례의 길을 사는 우리에게 헌신적인 가난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복음적 가난을 살려고는 노력해야 한다. 창세기 12장 1절과 4절에서 하느님은 아브람에게 “네 고향과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아브람은 야훼께서 분부하신 대로 길을 떠났다.”라는 표현은 짐을 가볍게 한 순례자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4. 하느님 백성은 공동체인 백성이다.

하느님의 백성은 한 인격과 같은 백성이다. 어떤 이는 눈의 역할, 어떤 이는 발의 역할, 어떤 이는 손의 역할을 통하여 여러 사람이 마치 한 사람의 모습으로, 한 인격으로 나타난다. 1984년 여의도 광장에서 한국 선교 200주년 행사와 그 후 열린 시성식에서도 공동체의 아름다운 모습을 잘 보여 주었다. 이렇게 선교 200주년을 맞이하면서 한국주교회의에서는 이 사업을 성공리에 잘 마치기 위해서 오랫동안 준비를 해 왔다. 1984년이 ‘전국 일치의 해’였고, 1983년은 ‘교구 공동체의 해’, 1982년 ‘본당 공동체의 해’, 1981년은 ‘이웃 전교의 해’, 1980년은 ‘가정 공동체의 해’로 정해서 진행되었다. 본당과 가정 사이에 꼭 기억해야 할 과제로 이웃을 넣은 것은 참으로 깊은 배려가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백성인 공동체에 속해 있으며, 하느님의 백성은 처음부터 공동체로 불림을 받았다.

소공동체를 위하여 : 제4강 기초공동체의 구성단위인 가정

소공동체를 위하여 - 제4강 기초공동체의 구성단위인 가정

이용호신부

이 글은 지난해 대구복자성당에서 있었던 최병화(요셉)님의 대림절특강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어린 왕자」를 쓴 생떽쥐베리는 비행기 조종사로 2차 대전에 참전하여 아프리카 사막을 가로질러 우편물을 배달하는 일을 했다. 어느 날 사막 한가운데에서 비행기 고장으로 불시착을 하게 되었다. 물 한 모금 빵 한 조각 없는 상황에서 며칠을 생존해 있었다. 드디어 구조대가 도착해 그를 구했다. 구조대는 그를 구조한 다음, 어떻게 그렇게 버틸 수 있는 힘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견딜 수 있는 힘은 물도 아니고 빵도 아닌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소.”

기초공동체의 구성단위인 가정 공동체는 모든 공동체의 기본이요 기초이다. 우리가 말하는 가정공동체는 신앙공동체이기 때문에 예배의 공동체요, 전례의 공동체이며, 사랑과 봉사의 공동체이다.1. 가정공동체는 말씀을 중심으로 기도하는 공동체이다.

요한 바울로 2세 교황님은 “가정은 기도생활을 통하여 하느님과 대화 할 소명을 갖고 있다.”고 하셨다. 가정기도의 특성은 함께 드린다는 데 있다.

부부, 엄마와 딸, 아버지와 아들 등등 가족 구성원 전체가 다 함께 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늘 가족들이 함께 함으로써 힘을 얻게 되는 것이 가정공동체이다. 두세 사람이 마음을 모아 기도하면 하느님께서 무슨 일이든지 다 들어주신다고 하셨다.(마태 18, 19-20 참조) 또 다른 복음의 병행 구절에서는 단 두세 사람이라도 함께 기도하면 그리스도께서는 함께 있겠다고 하셨다. 가정기도는 그 특성상 함께 기도하는 것이다. 교황님은 부모가 자녀에게 기도를 가르칠 의무가 있다고 하셨다. 아침, 저녁 식사 전후에 그리고 삼종기도를 습관화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가정은 신앙의 교육장이기 때문이다. 교회헌장 11항에는 가정을 일러 “말과 모범으로 신앙을 가르치는 첫 교육장이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교육이라는 말의 의미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교(敎) : 본받을 효(孝)와 아들 자(子 ), 칠 복( )으로 구성되어 있다.
효(孝)는 교육내용이고 아들은 교육대상이며, 칠 (복)자는 교육방법이다. 칠 (복)자는 자극을 주어서 부모를 본받게 하려는 것이다. 무엇을 본받는가? 그것은 바로 아이들이 말도 못하고 글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미 부모로부터 부모의 모습을 보고 본받기 시작하는 것이다. 갓 돌을 지난 어린 아이가 성호를 흉내내며 따라한다. 그런데 아이에게는 TV를 못 보게 하면서 집안에서 어른들이 고스톱을 친다면 교육이 될 리 없다.

한국일보 창사 특집으로 갤럽과 함께 ‘한국인의 의식 구조’라는 설문조사를 했는데, 여기서 어머니의 63%가 아이의 손목을 잡고 새치기를 해 본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아이가 어머니로부터 무엇을 본받겠는가?

육(育) : 해산할 때 돌아 나올 돌( )과 고기 육(肉)으로 구성되어 있다.
돌( )자는 교육의 내용을 알려주는 것이다. 아이가 말과 글을 익히기 전에 이미 부모의 것을 배우고 취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아버지의 뼈와 어머니의 살을 빌려 태어난 모습은 기가 막히게 닮아 있다. 뼈는 가문을 나타낸다.

낙지가 멸치 집에 청혼했다가 퇴짜를 맞았다고 한다. 멸치가 말하기를 우리 집은 그래도 뼈대가 있는 집안이라고 했다나... 育(육)의 의미가 뭔가? 그것은 바로 뱃속에서 기른다는 것을 의미하며, 나아가 모태에서부터 교육이 시작된다는 것을 뜻한다. 태교는 예전부터 강조되어 온 것이다. 교류분석이론에서도 이 태교가 입증되고 있다고 한다. 부모가 콩이면 자녀도 콩이고 부모가 팥이면 자녀도 팥이다.

교회에서도 이런 가정에서의 신앙 교육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이미 공의회 문헌에서도 ‘말과 모범’으로 자녀를 가르치는 첫 교육장이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바울로 6세 교황은 1976년 일반 신자의 알현 장소에서 호소하신 말씀 중에 이런 말씀이 있다.

“어머니들이여! 자녀들에게 그리스도와 기도를 가르치십니까? 어릴 적부터 고해성사와 영성체를 알도록 하십니까? 병이 났을 때 그리스도의 고통과 성모님과 성인들의 도움을 청합니까? 아버지들이여! 자녀들과 가정에서 기도를 하십니까?...아버지, 어머니 당신들의 생각과 행동의 정직한 모범이 기도와 합쳐지기만 한다면 그것은 바로 교훈과 예배가 됩니다.”

말과 모범으로 그리고 공동기도와 합쳐지면 그것이 곧 예배요, 가치 있는 교훈이라고 강조하셨다. 신앙이 가정을 이끌어가는 데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신앙공동체인 가정은 복음적 식별을 통해서 그 진로를 명확히 한다. 그것은 이 가정이 참된 가정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또 우리가 참된 가정이라는 기준은 복음의 기준에 맞추어 그 기준에서 벗어났을 때는 회심을 통하여 가정 성화를 이루어야 한다. 현 교황님은 “그리스도인이 성화하기 위해서는 회심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유혹이라는 허상을 쫓아 가다보니 결국은 방향을 잃게 되는데, 그 방향을 바로 찾는 것이 바로 복음적 식별이다.

바울로 6세 교황님은 현대 복음선교에서 “교회는 회심하는 만큼이 교회의 모습이다.”라고 하시며 회심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모든 가정은 기초공동체를 이루는 근본이다. 따라서 모든 가정은 기초공동체에 적극 참여하여 신앙을 쇄신해야 한다. 혼자서 쇄신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함께 해야 한다.

2. 가정은 예배의 공동체이다.

예배의 공동체인 가정은 항상 내일의 삶을 봉헌하고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며 화해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 죄는 하느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을 뿐만 아니라, 변함없이 사랑하겠다는 부부의 계약에도 예외없이 침투하여 신뢰를 파괴시킨다.

부부 사이의 화해는 빨리 할수록 좋다. 서로의 자존심 때문에 미루다 보면 서먹하고 가정은 급속도로 냉각된다. 이런 가정 분위기 안에서는 하느님께 찬미와 봉헌을 드릴 수가 없다. 또한 가족들이 함께 전례에 참여할 수 없다. 가정은 전례에 참여하여 사귐을 나누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것이기 때문에 감사의 표현을 신앙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생일날 단순히 음식을 나누는 것보다는 성가를 부르고 생일과 관련된 성서말씀을 낭독하여 그 기쁨을 크게 나누어야 한다. 이와 같이 우리 일상의 모든 일이 전례와 신앙으로 연결되어 있다.

3. 가정은 사랑과 봉사의 공동체이다.

가족들이 서로 사랑하는 모습은 언제나 그 집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랑은 하느님 사랑에서 나오기 때문에, 흘러 넘쳐서 주위에 있는 이들과도 친교를 이루게 되고 하느님의 사랑도 드러내게 된다. 우리 가정의 사랑이 바로 하느님의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가정의 사랑은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웃을 방문하고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것은 사랑을 전달하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바로 가정은 사랑과 봉사의 공동체인 것이다.

수도자의 청빈서원은 공동체를 위하여 자신의 소유를 포기하고 나눔을 실천하는 삶이다. 우리 가정에서도 내 것이니까 내 마음대로가 아니라, 하느님이 주시지 않으면 원래부터 우리의 것이 있을 수 없듯이 모든 것을 아끼고 나눔으로써 복음을 실천하는 장소가 되도록 해야 한다. 기초공동체와 서로 협동하여 우리가 동네를 청소한다든지 약수터를 정비한다든지 하는 것은 바로 봉사하는 삶을 가정에서부터 이웃에게로 실천해 나가는 것이다.

4. 가정의 역할

가정은 가족 구성원들의 인격을 서로 성장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사목헌장 52항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부부 자신도 살아 계시는 하느님의 모상을 닮아 인간의 참된 존엄성을 향유하면서 같은 애정과 같은 생각과 서로 성화시키는 노력으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생명의 근원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며 기쁨과 희생이 수반되는 자기들의 사명을 완수함에 있어서 자신들의 충실한 사랑으로써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세상에 계시된 그 사랑의 신비를 증거하게 될 것이다.”

가장의 권위는 가정 안에서 지켜져야 한다. 어떤 결정을 할 때 가장의 권위가 있어야 하듯, 가족들은 서로에게 필요한 권위를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어느 회사에 강의하러 갔다가 젊은 과장급 간부들의 대다수가 집에 가면 권한이 하나도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녀교육이나 살림살이에 관한 권한 전부를 아내에게 빼앗겼다고 했다. 요사이 아이들은 소꿉놀이를 하는 데도 서로 엄마를 하려고 한다. 우선 가장의 권위가 바로 서야 하겠고, 가족들에게 봉사하기 위한 결정에도 권위가 있어야 하겠다.

가정이 쇄신되고 제 역할을 해야 본당공동체에도 공헌할 수 있다. 기초공동체의 기본단위인 가정공동체가 파괴되거나 해체되는 여러 경우들에서 연쇄적으로 기초공동체에 영향을 주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가정공동체가 바로 본당 기초공동체의 근본이기 때문에 가정공동체의 성장 없이는 기초공동체가 성장할 수 없다. 우리는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가정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여야 하는 소명을 받고 있다. 가정성화의 소명은 하느님과의 일치에로의 소명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한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마태 5, 48)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것은 여러분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1데살 4, 3)

마더 데레사 수녀를 일컬어 살아 있는 성인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조금도 이상한 것이 아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부르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느님을 닮아 거룩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느님은 당신과 일치하라고 우리를 부르셨다.

하느님은 우리 가정이 교회가 되기를 바라신다. 사도좌의 권고 21항에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교회의 일치의 특수한 표출이고 실현이다.”는 말씀처럼 하느님 안에 우리가 일치, 부부가 가정 안에서 일치, 그리스도가 교회와 일치해야 한다.

이제 가정공동체는 제자들이 모든 것을 내어놓고 공동체를 이룬 것처럼, 우리 가정도 그리스도의 삶으로 쇄신되어야 한다. 기초공동체의 구성단위인 가정공동체가 제 역할을 함으로써 본당의 기초공동체에 책임을 다하도록 하자.

소공동체를 위하여 : 제5강 기초공동체들의 공동체인 본당

소공동체를 위하여 - 제5강 기초공동체들의 공동체인 본당

이용호신부

·이 글은 대구 복자성당에서 있었던 최병화(요셉) 님의 대림절 특강을 이용호 신부가 정리한 내용임을 밝혀 드립니다.

“교회적 기초 공동체는 복음선교의 묘 자리가 되고, 보다 큰 공동체 특히 지역교회의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보편적 교회의 희망이 될 것입니다.”(현대복음 58장)

1. 본당이란?

‘본당’이라는 말이 성서의 어느 부분에서 나올까? 아마도 기억나지 않을 것이다. 대답은 ‘모른다’가 정답이다.

왜냐하면 성서에 본당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본당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공식 사용된 것은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에서이다. 이때 처음으로 본당이라는 제도를 만들게 됨으로써 사용하게 되었다. 주교가 관할하는 지역을 다시 세분화하여 본당이라고 하며 본당은 교구 내의 일정한 지역을 담당하는데, 이 본당의 사목 권한은 역시 교구장에게 있다. 주교는 관할 지역에서 사목권을 행사한다. 교구라는 사목 관할 지역이 넓고 크면 주교는 자신을 대신할 사제에게 관할 지역 일부를 사목하도록 파견한다.

주교가 관할하는 지역에서 타 교구 사제가 미사를 봉헌한다면 반드시 그 관할 주교의 허락을 얻어야 한다. 또한 미사 중에 나오는 경문에 “....우리 주교 (아무)와 ....” 하는 부분에서는 반드시 그 관할 주교의 이름이 들어가야 한다.

이렇듯 교회법에서는 사목 관할 주교의 권한을 정하고 있으며, 관할 주교는 사목권한을 교구사제에게 위임하여 사목권을 수행한다. 따라서 교구 안에서도 일정한 지역을 본당관할로 지정하여 본당 주임사제에게 사목을 위임함으로써 일정한 지역은 그 주임사제의 책임 아래 사목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정한 교계제도에 따른 본당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본당은 지역 중심이다. 둘째, 본당은 사제 중심이고 셋째, 본당은 성사중심이다.

本堂(본당)이라는 말에서 흔히 우리가 집 당(堂)을 사용하기 때문에 본당을 생각할 때 건물, 집이라는 개념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여기서의 본당은 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본당을 이루는 공동체 구성원 전체를 의미한다.

트리엔트 공의회가 열린 시기는 우리 역사로 환산해 본다면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임꺽정이 있었던 시대이다. 그 당시 본당의 모습은 피라미드 구조로 되어 있어 모든 일이 사제에게로 집중되어 있던 시대이다. 만일 일반 사회제도라면 벌써 많이 변하고 바뀌었을 것이다.

2. 본당의 유형

본당의 유형은 여러 형태로 발전해 왔고 앞으로도 조금씩 변해 갈 것이다. 주입식 본당과 사목회 중심의 본당 그리고 단체 중심의 본당과 기초공동체 중심의 본당 형태로 나누어서 생각해 보자.

1) 주입식 본당

주입식 본당은 먹여주며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주는 본당으로, 본당 사제는 의사결정에서부터 그 일에 대한 책임까지도 혼자서 져야 하는 형태이다. 따라서 일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는 있어도 모든 일의 처리를 혼자서 하다 보니 그 단점이 독단적이라는 것이다.

육체적으로 분주하고 피곤하며 외로워진다. 의견을 교환할 것도, 상의할 일도 없다. 이런 본당에서는 신자 역시 수동적이 되고 불평이 쌓이게 된다.

1917년 교회법에는 평신도는 구원에 필요한 은혜를 청할 권리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영적이고 구원에 필요한 도움을 받는 수혜자로 평신도를 서술하고 있다. 1983년 교회법의 교정된 교회법에는 평신도에 관한 규정이 많이 바뀌어 있다.

2) 사목회 중심의 본당

사목회 혹은 사목평의회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어떤 교구에서는 사도회라고도 한다. 이런 본당에서는 본당 사제와 함께 사목회가 본당의 일을 논의하고, 소수이긴 하지만 사목에 참여하는 형태로 나아간다. 그러나 사목회는 자문기관이지 의결기관은 아니라고 교회법은 규정하고 있다. 사목회 회원은 본당 사제가 임명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제도는 본당신부에 따라서 운영의 묘를 살리기도 한다. 일의 중요성이나 복음적 식별에서 볼 때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면, 자문기관으로 되어 있는 사목회에게 제한적이긴 하지만 의사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재량을 부여하는 것이다.

1983년 이후에 사목평의회가 출범했고, 교회법 536조 2항에 따라서 사목평의회는 건의, 투표권만을 인정하고 있지만 한국 주교들은 교회법에 따라서 교구 별로 이 제도를 허가하였다. 본당 사목회는 사제가 주재하고 투표로 결정하지 않는 건의, 투표권을 인정하고 있다. 주입식 본당보다는 원활한 참여가 있었지만 사목회 중심의 본당 역시 대다수의 신자들은 쇄신에 참여할 수 없는 형태이다.

3) 단체 중심의 본당

본당이 성장하면서 다양한 단체들이 생겨났고 이들은 서로 도와가면서 본당의 성장을 촉진하게 되었다. 단체들 중에는 신심단체(포클라레, 울뜨레아, 레지오, 기도회 등등)와 친목단체(성가대, 성모회, 연령회, 자모회 등등) 그리고 각종 활동단체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단체 중심의 본당에서는 주로 모든 것이 조직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본당 사제는 특별히 몇몇 단체에 편중한 사목을 하게 되고, 때로는 단체장의 역할에 직접 관여함으로써 활성화가 저하되기도 한다. 또한 특정 단체에 일의 편중 현상은 과부하가 걸려 갈등이 생기게 된다. 생업과 본당 일을 동시에 하는 단체장에게 본당 일이 과중해지면 어려울 수밖에 없고, 본당 사제의 기호에 따라 단체가 육성되기도 하고 사장되기도 하는 부작용이 있다.

어떤 본당 실태조사에 의하면 한 사람이 친교를 가질 수 있는 능력은 대개 150여 명을 넘어설 수가 없다고 한다. 보통 시내 본당에서 한 본당을 평균 3000명이라고 가정한다면, 3년 내지 5년의 임기 동안 본당사제는 5% 정도의 신자만을 상대로 사목을 하게 된다. 살찐 양 한 마리를 위해 아흔 아홉 마리 양을 내버리는 것은 이상적인 본당상이 아니다.

본당이란 하느님 백성으로서 교구 안에서 사제의 지도 아래 기초공동체들이 유기적이고 역동적인 사귐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사제의 지도 아래 유기적인 공동체라는 뜻은 마치 포도송이에서 포도를 따서 입에 넣는 순간 침이 고이듯, 자율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지는 상태를 말한다.

4) 기초공동체들이 중심인 본당

제5차 아시아 주교회의에서 아시아의 바람직한 본당의 모습은 공동체들의 공동체이어야 한다고 결의한 바 있다. 본당은 예배와 사랑과 봉사의 공동체이다. 기초공동체에서 힘이 모자라서 할 수 없었던 일을 본당 공동체의 차원에서 해야 한다. 즉 대축일에 공동체 전체가 지낼 전례를 준비하고 참여를 위하여 일을 분담하는 일은 소속감을 가지게 한다. 사랑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필요한 것과 어려움을 나누는 것을 배려하는 일이 사랑의 공동체이다. 사랑의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 서로에게 봉사하는 삶으로써 복음을 증거하게 된다.

본당 구조는 원칙적으로 본당의 구성원 모두에게 참여의 기회가 열려져 있어야 한다. 제단체 활동이 활성화되어 서로 돕고, 단체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기초공동체가 참여의 기회를 열어 주고 보완한다면 권한 분배와 책임의 원칙이 생기기 마련이다. 바울로 6세 교황의 말씀처럼 분권적 기초공동체가 모여 본당을 이루어야 하고, 분권적 기초공동체라면 스스로 책임감을 가질 수 있는 본당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초공동체가 활성화되려면 기초공동체에 일정한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 삼위일체를 닮은 인간은 일정한 책임감과 동시에 창조력을 발휘하고자 하는 욕구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끝으로 우리는 여러 형태의 본당을 보았다. 지금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를 고찰해야만 한다.

최근에 지구장 및 지역장 중심의 사목이 강조되지만, 지구나 지역에 힘이 실리지 않는 까닭은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결정은 당신이, 책임은 내가 진다면 누가 일을 하겠는가? 마치 전장에서 영광은 상관이, 책임은 졸병이 진다면 그 부대는 틀림없이 사기가 떨어지게 될 것이다.

기초공동체에서 반장이나 구역장을 처음에는 임명하지만 나중에는 반이나 구역에서 결정할 수 있도록 재량을 주어야 한다. 이렇게 일정한 권한과 책임이 병행되는 기초공동체의 운영의 미를 살리면 활성화는 어렵지 않다고 본다.

아직도 기초공동체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참여하지 않거나 비평만을 일삼는 것은 변화에 역행하는 것이며, 편리만을 추구하는 것에서부터 빨리 벗어나야 한다. 또한 기초공동체가 우리 본당의 기본조직이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기꺼이 참여함으로써 본당에 소속감을 가진 구성원이 되도록 노력하자.

소공동체를 위하여 : 제6강 기초공동체의 내적 활동

소공동체를 위하여 : 제6강 기초공동체의 내적 활동

이용호 신부

·이 글은 대구 복자성당에서 있었던 최병화(요셉) 님의 대림절 특강을 이용호 신부가 정리한 내용임을 밝혀 드립니다.

“내가 이 사람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은 이 사람들을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으로 하여금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이며 또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이 사람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 23)

기초공동체의 외적활동이 복음선포라면 기초공동체의 내적활동 목표는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즉 사랑을 실천하여 일치하는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우선 과제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다. 여기서 ‘하라.’는 명령어이다. 명령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랑하는 것은 계명의 차원에서 말씀하신 것이고, 이 계명을 지키는 일은 사랑을 통해서 일치를 이룸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이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은 성부께 기도하셨다. 이 일치는 기도의 차원이다. 사랑보다 더 높은 차원을 말한다. 일치를 위하여 하느님이 우리를 부르셨다. 일치는 우리가 성화를 이루는 최고 영성이며 필수과목이다. 그래서 기초공동체의 내적활동의 목표는 일치이고 우리 구역, 반 공동체도 바로 일치를 이루어야 하겠다.

1. 일치는 핏줄과 같은 사랑이다.

예수님은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 우리에게 이웃 사랑을 강조하셨다. 이 이웃 사랑은 핏줄과 같은 사랑이다. 사랑이 짝사랑이면 차라리 쉽다. 일방적으로 해 버리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것은 화살표가 일방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가고 오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만이 아니고 내가 사랑을 받는 존재가 되어야 하며, 상대방으로 하여금 나를 사랑하게 만들어야 한다.

우리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나를 사랑하게 만들지 못하면서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사랑하게 하려면 내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 주어야 한다. 어떤 꼬마가 귤과 바나나를 가지고 있었다. 그 옆에 있는 아이가 과일을 먹고 싶어하자 귤을 하나 주었다. 그런데도 옆에 있는 애는 만족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바나나를 먹고 싶은데 귤을 주니, 귤을 얻어먹고도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바나나가 아까워서 주지 못하고 약간 덜 좋아하는 귤을 양보했다 하더라도 상대방을 흡족하게 하지는 못했다. 예수님은 “남이 바라는 대로 해주어라.”하고 말씀하셨다. 서로 사랑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그것은 수난적인 사랑이다. 우리 몸에서 핏줄을 통하여 피가 돌듯이, 사랑이 끓어지면 피가 통하지 않는 동백경화나 협심증이나 심근경색에 걸려 중병을 앓다가 결국은 죽게 된다. 수난하지 않고 자신이 아끼는 최고의 것을 내어 주지 못하면, 그것은 결국 끼리끼리 노는 것이 되고 수난이 없는 사랑이 된다.

친구 중 한 명이 어떤 여인과 사랑해서 결혼하게 되었다. 결혼해서 한 집안에 살면서 며느리는 시어머니, 시누이와 갈등을 겪게 되었다. 결코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서로 양보하지 않았고 고부의 관계는 단절되고 말았다. 그 골이 깊어 결국에 이들 부부는 갈라서게 되었다. 수난적 사랑이 아니면 분열이 오고 그 분열은 단절을 가져온다.

2. 일치의 수덕은 대화이다.

대화는 일치에로 나아가는 덕목 중에 하나다. 즉 덕을 쌓듯이 대화는 성화를 이루어 준다. 그러면 대화란 무엇인가? 대화는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며 서로의 마음을 주고 받는 것이다. 한자 受(수)는 예전에는 준다는 의미와 함께 받는다는 의미로도 사용했으며, 원래는 준다는 의미는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엔 손을 사용하여 무엇을 준다는 의미로 授(수)를 사용하는데 그것은 손 手는 원래 (수)와 같은 뜻이라서 手가 앞으로 나와서 사용하여 손으로 주는 것을 받는다는 뜻으로 授를 사용하게 되었다.

마음을 주고 받는다는 의미가 될 때, 바로 마음(心)이 들어가 애(愛)가 되며 이것은 마음을 주고받는 것으로 생겨나는 것이다. 대화의 본(本)적지는 사랑이고 사랑의 원(原)적지는 하느님이시다.

로마서 5장 5절에 “우리가 받은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라는 말씀처럼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어떤 채널을 통하시든지 우리와 대화하시려고 한다. 라틴어 로고스(Logos)라는 말은 말씀, 예수 그리스도, 대화, 길이라는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다.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대화는 쌍방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미국에 전화를 할 때 중계 위성을 통하여 연결이 되듯이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중계국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하셨다. 사람 사이의 마음의 길은 대화로 연결된다.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는 길도 예수님이라는 대화를 통하여 가능해진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신다는 것은 바로 일치의 수덕이 대화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하느님을 닮은 우리는 대화를 통하여 일치를 이룬다.

물론 대화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지녔다고 하더라도 말로 다 의사소통을 하지 못한다. 말,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20-30%에 지나지 않고 다른 것, 즉 눈빛, 손짓, 억양, 크기, 길이, 웃음, 울음 등이 70%를 차지한다. 부부 사이에 대화를 할 때 “알아서 하이소.”라는 말 한마디도 억양에 따라서 다르게 느껴진다. 남편이 부인에게 “여보, 삼촌 생신인데 부조를 50만 원 정도 해도 되겠소?” 하고 물었을 때 부인이 “알아서 하이소.”라고 대답했다고 하자. 이 대답의 억양이 아주 높고 신경질적인 목소리였다면 허락의 의미가 아니라 ‘절대 그렇게 하지 말라.’는 의미가 되고 만다.

울산에서 있었던 일이다. 극빈자 할머니들에게 김장을 해서 나누어 드리는 행사가 있었는데, 김장한 것을 가져온 봉사자에게 “욕봐, 우야꼬.”하고 감사해 했다. 이 할머니가 하신 말속에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억양을 무시해버린다면 그 만큼의 감동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마음을 담아서 대화를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3. 일치는 다양성을 가진다.

일치는 다양성을 인정할 때 이루어진다. 기초공동체 안에는 직업이 서로 다르고 나이가 10대에서 80대까지 다르며 살림살이가 각기 다르다. 그러나 모두가 서로의 다른 점을 이해하고 수용해야 한다. 오순절 장애자들이 사는 곳에 가면 어떤 정박아는 밥만 먹여주는 일을 한다. 또 어떤 친구는 부지런히 변기만 가져다 준다. 다 부족한 사람들이지만 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배론에 있는 시설에도 가보면 어떤 친구는 하루 종일 신발만 가지런히 한다. 또 한 친구는 방안에 떨어지는 휴지만 하루 종일 치우는 일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성한 사람도 기초공동체 안에서 서로가 가진 능력을 발휘하고 자신의 고유성을 통하여 공동체에 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능력을 공동체에 제공하여야 한다. 그러면 그가 가진 고유성은 풍요로워진다. 들놀이를 간다고 가정해 보자. 각기 쌀, 코펠, 과일, 찌개, 음료수를 가져와 내려놓고 함께 나누어 먹는다. 어떤 이가 쌀만 가져 왔다고 과일을 먹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면 서로 공유하지 못하는 공동체가 되어, 쌀 가져 온 사람은 쌀만 먹고 과일 가져온 사람은 과일만 먹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일치한다면 기초공동체인 우리의 구역, 반 구성원들은 아주 풍요롭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공동체의 일치가 단 한번의 노력으로 이룰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서로 다양성을 존중하는 노력도 계속되어야 한다. 다양성을 다른 말로 고유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4. 일치는 용서이다.

친교를 이루며 잘 지내다가도 공동체 안에 어떤 일을 결정해야 하거나 변화가 오면 갈등이 생기게 되고, 갈등이 생기면 그 동안 친교를 이루워 왔던 일치의 모습은 큰 위기에 부딪히게 된다. 일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쪽이 죽을 수밖에 없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인류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죽어야 했던 것과 같은 이유다. 상반된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면 시간이 지날수록 둘 사이에 골이 깊고 멀어져서 하나되기가 어려워진다. 남북이 대립하는 것은 서로 용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 때문에 세계에서 그 유래를 볼 수 없는 분단국가가 되었고, 수많은 이산가족이 가지 못하고 오지 못하는 백성이 되었다.

용서는 다리와 같아서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가게 하는 수단이다. 용서 없이는 일치를 유지하고 이룰 수가 없다. 부부가 자존심 때문에 서로 버티면 버틸수록 화해가 어렵고 일치하기 힘들다. 건물을 지을 때 콘크리이트는 천천히 양생시켜야 좋지만, 용서는 빠르게 할수록 좋은 것이다. 세상에서 지옥을 사는 사람은 23시 50분을 다투어 용서하지 못해 속을 끓이고 살고, 단 10분만 용서하고 평온하게 지내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천국을 사는 사람은 23시간 50분을 서로 용서하고 모든 일에 용서를 하며 사는 사람이다. 완전하지 못한 사람들이 모여서 공동체를 이루고 살면서 어찌 순탄한 일치 상태만을 바랄 수 있겠는가?

일치에 문제가 생기면 빨리 서비스(AS)를 받으면 된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가전제품이 고장나면 빨리 고쳐야 하듯이, 일치에 문제가 생기면 빨리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 그 서비스는 바로 용서다.

5. 일치는 기도이다.

일치를 위한 마지막 방법은 기도하는 일이다. 예수님이 요한 17장에서 수난을 받으시기 전에 성부께 제자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달라는 간곡한 청을 드리신 것처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 다음에는 성부의 뜻에 맡겨드리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일치는 우리의 소명이고 은혜인 것이다. 예수님도 기도하셨듯이 우리도 항상 일치를 위하여 우리의 구역, 반이 활성화되고 서로 다양한 가운데 하나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소공동체를 위하여 : 제7강 기초공동체의 성장 단계

소공동체를 위하여 - 제7강 기초공동체의 성장 단계

이용호 신부

·이 글은 대구 복자성당에서 있었던 최병화(요셉) 님의 대림절 특강을 이용호 신부가 정리한 내용임을 밝혀 드립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께 “당신은 유다인이고 저는 사마리아 여자인데 어떻게 저더러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하고 말하였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샘물처럼 솟아올라 영원히 살게 할 것이다.”하셨다. 그 여자가 저는 “메시아가 오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이 오시면 저희에게 모든 것을 알려 주시겠지요.”하였다. 그 동네에 사는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 여자가 자기의 지난 일을 예수께서 다 알아 맞히셨다고 한 증언을 듣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 (요한 4, 9. 14. 25. 39)

예수와 사마리아 여인(요한 4, 5-42)의 이야기는 먼저 사마리아 여인이 처해 있는 상황, 즉 사마리아 여인이 서있는 우물가에서부터 시작된다. 예상치 못한 예수님의 물을 청하는 모습은 바로 만남이라는 구체적인 상황에서 시작하여 사마리아 여인에게 사도직을 수행하게 하고, 동네 사람들을 데리고 나오고 믿음의 성장이 서서히 이루어져 가는 모습으로 이끌어 간다.

예를 들어 보자. 강원도 정선이 고향인 청년이 대구에 내려와 취직을 하여 살게 되었다. 그는 무척이나 외롭고 쓸쓸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성로를 걸어가다가 우연히 고향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너무도 반가워서 차를 한 잔 하자며 자리를 같이 했다. 그러다가 고향 친구 소식을 듣게 되었고, 대구에 사는 친구들 모임을 하나 만들자고 의견을 모았다. 이들에게는 외롭다는 갈망이 있고 이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고향 친구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지게 된다.

대포(막걸리)를 잘 하는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는 천주교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천주교인들은 모이기만 하면 시끄러워 죽겠어...” “뭐가 시끄러운데?” “맨날 형제님, 자매님 이러고 인사하잖아?” 얼마 후에 이 친구가 이번에는 이렇게 말했다. “천주교인들은 꼭 1부는 안 부르고 2부에만 부른단 말씀이야...” 1부에는 불러 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던 친구가 6개월 교리반에 등록을 했다. 그리고 그 공동체 형제들이 매주 화요일 교리반이 끝날 때쯤이면 성당으로 와서 그 친구와 한 잔을 해서 어렵게 신자가 되었다. 물론 모임에도 잘 참석하고 있다.

기초공동체에서도 누구를 초대할 것이냐 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처음에는 2부에만 참석하고 나중에는 교리반에 그리고 정식으로 1부에 참여하여 기초공동체 일원으로 활동할 수 있을 때까지는 돌보아 주어야 한다.

1) 유아기

기초공동체가 태동하는 단계이다. 유아기라는 단계는 젖먹이에서 유치원에 갈 때까지를 말한다. 유아기의 특징은 주로 먹고 놀기만 하려 들고, 말썽을 피우며 물건을 깨뜨리며 부모에게 아주 의존적인 상태를 보이는 단계이다.

이런 단계에 있는 기초공동체 봉사자인 반장, 구역장은 한마디로 반을 끌어가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진행을 할 때도 너무 7단계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 시작기도가 잘 안되면 성가로 하고, 복음나누기가 잘 안되면 그냥 사는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옆집 똘이 엄마 흉도 보면서 우정을 싹튀우고, 복음을 수락하는 성숙이 이루어진 뒤에야 염불보다 젯밥에 관심이 더 많은 상태로 변화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 속에서도 위기와 갈등은 생기기 마련이다. 6개월 교리반을 수료하고 영세를 받았다고 하자. 내가 바라던 갈망이 채워지고 나면 부담스럽고 귀찮은 일이 생긴다. 즉 처음에는 공동체 모임에서 잘해 주니까 나갔는데, 나가보니 서로 약점이 있는 법이라 술 마시고 다투게까지 되었다. 그러면 이젠 나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모이면 싸움질 하는 그런 모임에 왜 가야 하나? 하는 갈등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자매님은 TV 미사 중계를 보다가 미사수건을 쓴 장면을 보고, 나도 저것을 한번 써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교리반에 나가서 영세를 받았다고 한다. 처음 미사수건을 썼을 땐 눈물이 다 났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동안은 열심히 다녔는데, 얼마 전 이사를 하고 나서부터는 잘 안 나간다고 한다. 미사수건도 자주 써 보니 아무 감동도 없단다. 또 동락회(동고동락)라는 자생 모임을 만들었는데, 동락회는 한 달에 한 번 주일에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술을 한 잔 하는 그런 모임이다. 한 1년쯤 지나면서 회원 중에 한 사람이 좀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고 제안을 했고, 그 결과 이 본당 출신 신부님을 찾아뵙고 격려하는 일을 해 보자는 데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래서 오랜 진통 끝에 보람있는 일을 하면서 회를 꾸려 가고 있다. 항상 위기가 있고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 공동체는 침체하게 된다. 즉 위기와 갈등을 통해서 성장한다는 말이다.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어떤 대학생이 취직을 위해서 원서를 구입하려고 하니 돈이 모자랐다. 그는 사람을 구한다는 쪽지를 보고 돈을 벌기 위해 식당으로 찾아갔다. 그 식당 주인은 청소와 접시 닦는 일을 도와주면 된다고 해서 일을 하기로 했다. 대학생에게는 청소하는 일이 개인의 일이자 그 식당 일이기도 했다. 청소를 해야만 원서를 살 수 있는 돈을 벌 수 있다. 개인과 식당 일은 통합적인 관계를 가진다. 개인의 일이기도 하지만 식당의 일이기도 한 까닭이다.

우리 개인이 신앙생활을 하지만 그것은 소속된 공동체와 연결되어 있다. 내 신앙생활이 기초공동체를 통하여 성숙되기 때문이다. 점진적으로 성숙하는 공동체성과 마찬가지로 그 공동체를 통하여 나의 신앙도 함께 성숙할수 있기 때문이다. 선교봉사, 나눔의 체험 등등 내 신앙생활의 쇄신이 기초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기초공동체와 통합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유아기의 지도력은 거의 반장 구역장의 역할이 약 90%이며 거의 어버이의 역할을 해야 한다. 반, 구역 봉사자인 반장 구역장은 사목자이다. 사제들처럼 수품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본당 주임사제의 임명과 공동체의 추천을 받아서 임명권이 주어졌다면, 기초공동체의 구성원을 사목 봉사하라는 공인 사목자인 것이다. 일시적으로 옆집에 아픈 사람을 돌보는 경우 임시적 사목을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공인된 사목자는 반 양 반 목자인 셈이다. 유아를 씻어주고 옷을 갈아 입히는 것이 당연하듯, 기초공동체의 태동기는 이렇게 복음화 하면서 스스로 복음화 되는 것이다.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말이다.

2) 청소년기

초, 중, 고등학생을 키우면서 부모들은 공감하시겠지만 이 때는 내부 성찰을 많이 할 때이다. 기초공동체가 원래의 목적대로 살고 있느냐? 아니냐? 잘 통합하고 있느냐? 복음에 비추어 성찰을 거듭하게 된다. 이 단계에서는 형제를 의식하고 형제애를 나누게 된다. 복음적 이상을 자각하지만 아직 실천에 이르지는 못한다. 동락회에서 좋은 일을 계획하고 나서 실천하는데 6개월이라는 조정 시간이 필요했다. 무슨 일이든지 단번에 할 수 있는 간단한 일처럼 보여도 막상 함께 실천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렇게 시간이 필요한 까닭은 통합을 이루는 데는 갈등을 극복하는 기다림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과 공동체가 통합을 이루는 과정을 보면 일정한 성장의 속도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꼭 선교를 하자고 제안하면 개 잡아먹고 놀자는 의견도 나온다.

청소년기 자녀에 대해 부모는 조언자의 역할에 머물게 된다. 무조건 야단부터 치거나 일일이 간섭하면 청소년들이 싫어하듯, 청소년기의 공동체의 형태는 일방적인 반장, 구역장의 역할보다는 상의하고 의견을 수렴하고 스스로 노력할 수 있는 개인의 능력을 존중하여 소속감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3) 성년기

이 단계에서는 구성원이 성숙한 개인이며 성숙한 공동체가 된다. 이런 모습은 일치의 공동체를 통하여 드러난다. 성년기에 이르면 별로 간섭할 필요도 없이 스스로 노력하고 자발적으로 이상을 실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지도자가 양성되어 기쁨이 충만한 구원을 체험하는 시기이며, 계획과 일의 분담과 평가가 이루어지는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갈등과 위기는 있다.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자기봉헌과 변화에 대한 창의력을 발휘하지 못할 때 여전히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단 이 시기에는 10%의 기능만으로도 충분히 공동체의 역할을 다하게 된다.

소공동체를 위하여 : 제8강 기초공동체가 성장하는 데 필요한 요인들

소공동체를 위하여 - 제8강 기초공동체가 성장하는 데 필요한 요인들

이용호신부

·이 글은 대구 복자성당에서 있었던 최병화(요셉) 님의 대림절 특강을 이용호 신부가 정리한 내용임을 밝혀 드립니다.

“이다지도 좋을까, 이렇게 즐거울까! 형제들 모두 모여 한데 사는 일!”(시편 133, 1)

1. 공동체가 성장하는 필요한 것 중에 첫 번째는 소속감이다

1950년대 제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될 때만 해도 시골에서는 잔치가 있으면 며칠 내내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함께 일을 거들고, 또 초상이 나면 마치 내 집안 일처럼 돕곤 했다. 들에서 일을 할 때도 품앗이를 통한 모내기를 했으며, 명절에는 송편과 음식을 나누어 먹고 새해가 되면 동네 어른들께 세배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래서인지 시골동네에서는 누구든지 형님, 아우, 아저씨라는 호칭으로 빈번하게 불리었다. 마을 일 또한 함께 모여 공동으로 의논하고 결정했으며, 장마에 둑이라도 무너지면 언제 어떻게 부역을 할 것인지를 논의하곤 했다.

기초공동체의 모습은 바로 이런 취락구조와 형태를 같이 한다. 기초공동체 역시 함께 모여서 의논하고 말씀의 전례를 나누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임을 얼마나 잘하느냐 보다는 실제 활동무대가 취락구조의 경우처럼, 함께 나누고 의논하고 결정하는 소속감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취락공동체는 태어나면서부터 시작하여 성장하고, 나아가 명절에는 음식을 나누며 품앗이 과정을 통하여 모두가 마을 일을 공유하고 있다. 기초공동체도 이와 같이 이루어져야 한다. 기초공동체는 취락공동체와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복음을 나누고 참여하며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모여서 이루는 공동체로서, 어쩌면 인간 취락공동체 보다도 더 뛰어난 기능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호주의 원주민들이 유일하게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자동차인데, 이렇게 구입한 자동차는 형제들을 찾아가는 일에만 사용한다고 한다. 이들은 유대의식이 강해서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육감으로 서로의 안부를 잘 맞춘다고 한다. 캐나다 인디언 아이들에게 질문을 해서 대답을 잘하는 아이에게 선물을 주겠다고 하면, 아이들은 하나, 둘, 셋하고는 한꺼번에 손을 쳐든다. 1등으로 손을 들면 그 아이가 왕따 당하기 때문이라는데, 혼자만 1등 할 수 없다는 그들의 교육 때문이란다.

우리는 무한경쟁시대라고 해서 초등학교 때부터 1등 하는 법을 먼저 가르친다. 1등을 하면 부모의 칭찬과 더불어 먹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을 차지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한다. 이런 행동이 공동체 의식을 몰아내는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이렇게 자라서 성인이 되면, 내 것밖에 모르고 철 대문도 모자라 개조심 간판까지 붙여 놓아야 속이 편하다고 한다. 집안에서까지 이기심을 키우는 잘못된 교육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므로 취락공동체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이 많다.

초대교회, 특히 사도행전 2장에서는 우리 구역 반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소속감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이든 함께 나누고 함께 일할 때 우리 모두는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

마틴 루터 킹은 흑인들의 인종차별 정책에 반대해서 “내 백성이 수모를 당하고 있다.”라는 소속감을 피력했고, 마더 데레사 수녀도 굶주린 이들을 가리켜 “내 백성이 굶주리고 있다.”고 표현했다. 예레미아 예언서의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다.”라는 표현 역시 하느님과 백성이 하나인 공동체를 이루고 있음을 보여 준다. 할머니가 손자를 보고 “아이고, 내 새끼”라고 표현하는 것은 바로 할머니 안에 손자가 있고 손자 안에 할머니가 있다는 소속감의 표현이다.

저녁 시장에 나가서 맛있는 찬거리를 보면 누가 먼저 생각나는가, 그것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보면서, 50년 동안 헤어져 한번도 만난 적 없이 또 편지 한번 전화 한번 못했는데도 어떻게 북에 간 아들을 남한의 어머니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을까, 그것은 아들과 어머니 안에 새겨진 소속감 때문이다. 내 백성이라는 말 속에도 이런 소속감이 있다. 내 공동체를 사랑해야 공동체에 소속될 수 있다.

취락공동체가 가지는 같은 마을이라는 것 이상으로 마음속에 남아 있는 정과 사랑은 일치를 이루는 원동력이 된다. 이렇게 같은 마을, 같은 인류, 같은 피조물이라는 차원에까지 소급될 수 있다면 인류는 한가족으로 성장할 수 있다. 때때로 취락공동체에서 가뭄으로 인해 아랫마을과 윗마을의 불화가 생길 수 있다. 서로 물을 먼저 대겠다고 다투기 때문에 싸움으로 비화되는 경우라 하겠다. 집단이기주의를 고집하는 한 이런 모습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제 열린 공동체로 나아가야 할 때다.

2. 목표를 세워야 한다

공동체는 그 공동체가 이루어야 할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사도 바울로는 목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달음질을 하되 목표없이 달리지 않고 권투를 하되 허공을 치지 않습니다.”(1고린 9,26)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리스도와 고난을 같이 나누고 그리스도와 같이 죽는 것입니다. 목표를 향하여 달려갈 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나를 부르셔서 높은 곳에 살게 하십니다. 그것이 나의 목표이며 내가 바라는 상입니다.”(필립 3,10.14)

목표는 기대를 나타낸다. 셋방살이하는 부부가 내 집을 갖고 싶은 기대감을 가질 때 내 집 마련을 위한 목표를 세우게 된다. 어떤 학생이 의사가 되고 싶다는 기대감을 가질 때 의과대학에 들어갈 목표를 세우게 된다. 기초공동체 역시 구성원들이 모이면 서로 이 모임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대화하여 기대를 다 표출해서 목표를 정해야 한다. 기대를 다 표출해 보면 참으로 다양한 바람이 있을 것이다. 기초공동체 모임을 통해서 신앙이 성장하기를, 또 어떤 이는 성서공부를, 또 다른 이들은 봉사하는 일을 배우는 것에 대하여, 또 어떤 이는 본당신부의 권유로 마지 못해 나오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기대치를 수렴하는 목표를 정해서 따라가야 한다. 목표가 없으면 기대에 어긋나서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겠다는 반발이 생기게 된다. 내 집을 마련하겠다는 의욕이 있을 때 비로소 지출을 억제하고 노력하게 된다.

장개석과 모택동은 서로의 사상은 달랐지만 일본이라는 공동의 적을 두고는 합심했다. 목표를 이루려고 하면 긴박감이 생긴다. 이 긴박감은 서로를 더욱 단결하게 하는 힘이 된다. IMF때 금을 내놓은 것은 공동의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의지의 결집현상이다. 어려움이 생기면 그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목표를 향하여 뛰게 된다. 그러나 목표가 분명하지 않으면 눈이 내부 안으로 쏠리고 불평불만을 털어놓게 된다.

반장들의 사례발표를 들을 때도 한결같이 무언가 노력하는 공동체는 계속해서 발전하지만, 아무 것도 시도해 보려고 하지 않는 그야말로 목표가 없는 공동체는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준다. 나무 작대기에 홍당무를 달아서 당나귀 앞에 갖다 놓으면, 곧장 그것을 먹으려고 앞으로 나아가지만, 아무리 나아가도 먹지 못한다면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다. 반대로 창고 안에 홍당무를 가득히 넣어두고 당나귀를 들여보내면, 당나귀는 그 안에 있는 홍당무를 마음대로 먹겠지만 얼마 후 배가 부르면 더 이상 먹지 않게 된다. 목표라는 것은 지향 활동을 자극하는 것이 되어야 하고,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는 선에서 목표가 수립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목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반 공동체는 복음 7단계만을 강조하여, 마치도 공동체 모임이 7단계로만 고정되어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반 공동체가 함께 해야 할 일, 즉 새로 도전해야 할 목표를 세워야 한다. 기초공동체인 반 공동체가 자신들의 기대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갈망을 표출한 다음 목표를 세우고,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하느님 나라를 실현해 갈 때 공동체는 성장하게 된다.

3. 공동체를 위한 내가 되자

우리가 건설하고자 하는 공동체의 모습은 나를 위한 공동체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나로 바뀌어야 한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죽음과 부활의 빠스카 운동이 있어야 한다. 공동체란 한 지붕 밑에 모여 함께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중심의 세계라는 어둠에서 타인 중심의 빛으로 바뀌어야 한다.

“무슨 일에나 이기적인 야심이나 허영을 버리고 다만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필립 2,3)라는 말씀처럼 이기심을 버리고 살아야 한다. 사람이 죽고나서도 30분이 지나야 이기심이 죽는다는 말이 있다. 정말 죽어서도 맨 마지막까지 남아 떠나지 못한다는 이기심을 버리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공동체를 위하여 죽음에서 부활에 이르기 위해 자신의 편안함을 버리는 결단이 필요했던 것처럼, 정말 송두리째 끊어 버려야 한다.

형제애는 희생을 요구하고, 정화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회심을 요구한다. 또한 사랑을 배우는 데는 평생이 걸린다. 좌절하지 않도록 성령께 간구하여 공동체를 위한 내가 되도록 기도하자. 공동체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소속감 안에서 목표를 세우고, 공동체를 위한 내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소공동체를 통한 본당 쇄신과 변화 - 전원 신부

소공동체를 통한 본당 쇄신과 변화 - 전원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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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 교회의 정체성과 사명

II. 본당 쇄신을 위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론적 기초
1. 하느님 백성 교회론
2.‘친교’(Communio)의 교회론

III. 소공동체로 엮어진 본당 공동체를 향하여
1. 먹여주는 교회
2. 사목협의회 중심의 교회
3. 자각하는 교회
4. 단체 중심의 교회
5. 소공동체로 엮어진 공동체

IV. 소공동체의 특성과 역할
1. 소공동체의 네 가지 요소
2. 본당에서의 소공동체 역할

V. 소공동체를 통한 통합사목적 접근
1. 영성적 통합
2. 사명적 통합
3. 구조적 통합

소공동체와 가족 -- 강완숙 (가톨릭여성연구원 연구위원, 서울대 강사)

소공동체와 가족 - 강완숙 (가톨릭여성연구원 연구위원, 서울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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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 례 >
1. 가족 이기주의 극복을 위한 장으로서의 소공동체
2. 소공동체 안에서의 만남과 나눔
3. 소공동체 운영을 위한 제언

1. 가족 이기주의 극복을 위한 장으로서의 소공동체

현재 한국 가족은 사회 전반의 구조적 변화에 따라 급격한 변화를 보이고 있으며 이 과정에는 긍정적인 면으로의 변화도 있지만 여러 가지 부정적인 양상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 가족에서 나타나고 있는 여러 부정적인 현상들 중에서도 특히 우려되는 것은 가족 이기주의의 만연과 그에 따른 여러 문제들을 들 수 있다.

가족 이기주의는 가족 중심적인 태도와 행위가 사회 전체의 공동체적 연대로 확산되지 못하고 배타적인 이기주의를 조장하여 다른 가족과의 갈등과 경쟁을 초래하는 것을 뜻하는데, 이는 사회 전체의 도덕적 통합성이 약화된 상태에서 전통적인 가족 중심주의가 시장 자본주의의 이기적 경쟁 논리에 의해 왜곡되어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세기 우리 사회가 겪어온 노정은 참으로 다채롭고도 험난하였다. 불과 한 세기 만에 한국 사회는 농업생산 위주의 왕정체제에서 식민지 시절을 거쳐 국권 회복과 혼란기, 동족 전쟁과 분단, 전후 복구 시기, 경제개발에 따른 본격적인 산업화 시기, 민주화 시기 등을 거쳐 탈산업사회로의 진입을 경험하였다. 이러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혼란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데에는 개인의 정체성과 공동체적 유대의 기반으로서, 그리고 경제 발전을 위한 양질의 인적 자원과 초기 자본의 조달 기지로서의 가족의 역할이 매우 컸으며, 이런 의미에서 가족은 한국 사회의 발전을 위한 초석을 제공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하여 지역과 계층을 초월하여 한국 사람은 누구나 급격한 사회 변화에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가족에 의존해 왔으며, 가족 중심적 삶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가족의 중요성에 비하여 가족을 지원하는 사회적, 정책적 배려는 미흡하였고 오히려 자녀의 양육과 교육, 노인 부양 등 모든 문제의 해결을 가족에 미룸으로써 가족은 일종의 기능적 과부하 상태에 빠져 여러 병리 현상을 초래하게 되었다. 또한 급격한 사회 변화의 와중에 기존의 공동체적 가치관이 해체된 상태에서 천민 자본주의적 사회 분위기와 맞물린 물질주의의 팽배와 불공정한 경쟁을 강요하는 편법주의의 만연, 그리고 성숙한 개인주의 대신 이기적인 쾌락 추구의 경향이 확산되면서 전통적인 가족 중심주의는 자기 가족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편협하고 배타적인 가족 이기주의로 변질되게 되었다. 그 결과 현재 한국 사회는 한편으로는 가족의 기능 상실 및 가족의 해체와 그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에, 다른 한편에는 가족 이기주의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공동체적 윤리를 망각한 가족 이기주의는 가족을 위해서라는 명분 아래 각종 반사회적인 행위를 정당화함으로써 여러 문제를 야기하고 이웃과의 갈등을 유발함은 물론, 자신의 가족에게도 해를 미치게 된다. 가족 이기주의는 얼핏 가족의 안녕에 기여할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못하다. 왜냐하면 “내 가족만은”, 혹은 “내 자녀만은” 이라는 배타적인 이기적 행태는 이기주의적 인성을 확대 재생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해당 가족의 통합성을 해치고 당사자의 사회적 부적응을 초래하게 되며, 또한 근본적인 가치에 대한 합의가 결여된 소비 위주의 피상적인 가족 관계는 가족 내에서 조차 서로를 대상화, 수단화하여 진정한 인격적 만남과 정서적 충족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가족 이기주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내부적으로는 가족 구성원의 상호 존중 및 발달이라는 새로운 가족 윤리와 가족 문화를 창출하는 한편, 외부적으로는 다른 가족들과의 연대를 통하여 보다 성숙한 공동체를 확대해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소공동체는 현재 한국 가족이 직면하고 있는 가족 이기주의의 문제를 극복하는 장으로서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2. 소공동체 안에서의 만남과 나눔

1) 만남 : 바람직한 인간관계의 경험의 장으로서의 소공동체

사회가 분화되면서 과거 가족이 담당하였던 많은 기능이 외부의 전문화된 제도나 기관으로 이전되었지만 가족은 여전히 다른 사회 제도나 기관이 대신할 수 없는 특화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전문화된 가족 기능의 대표적인 것이 개인에게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심리적, 사회적 유대를 제공하고 다음 세대인 자녀를 양육하고 사회화하는 기능이다. 특히 자녀의 사회화는 사회의 규범을 학습할 기회를 제공하고 기본적인 인간관계의 틀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큰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현재 한국 가족은 가족 이기주의로 말미암아 이러한 사회화의 기능을 제대로 담당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으며, 그 결과 공동체의 규범과 바람직한 인간관계의 틀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여 개인적인 적응의 어려움은 물론이고 그로 인한 사회적 문제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경험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런 점에서 인격적인 만남을 추구하는 장으로서 소공동체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매우 크다고 생각된다.

인간은 누구나 타인의 인정과 존중, 관심을 필요로 한다. 인간 행동의 가장 중심적인 동기 중 하나는 대인관계의 욕구를 충족하고자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개인의 자아는 의미 있는 他者의 반영적 평가에 의해서 형성되며, 타인과의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통해서 자기 존중감과 안전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인간관계는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위해 필수적이며, 개인의 성격과 삶에 대한 기본 태도는 그가 경험한 대인관계의 質에 좌우된다.

< 삶에 대한 기본 태도와 인간관계 유형, Thomas Harris >

I'm OK, You're OK
자신과 타인 신뢰. 적극적.
문제해결 능력.
I',m not OK, You're OK
자기 비하. 타인에 의존적.
끊임없이 타인의 칭찬과 관심추구
I'm OK, You're not OK
타인 불신, 경계. 적대적.
타이에 엄격, 타인 감독.
권위적이고 자기중심적 성격.
I'm not OK, You're not OK
체념, 위축, 자포자기. 냉소적.
자신과 주변세계에 의미부여 못함

그런데 물질의 소유와 성취가 우선시되는 사회에서는 타인의 인정과 사랑은 대부분 개인이 가진 여러 유형의 능력에 따라 좌우되기 쉽다. 즉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나 존재 자체로 인정받기 보다는 사회적 지위나 물질적 성취, 외모, 나이, 성별, 가족형태 등에 따라 사람들의 인정과 관심이 차별적으로 주어지게 됨으로써 전면적이고 인격적인 만남을 경험할 기회는 점점 줄어들게 되며, 한편으로는 “겉으로 보여지는 삶”을 중심으로 인간관계가 형성되면서 그 이면에 있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고 발달시키는 것 역시 어려워지게 된다.

< Johari's Window >

자신이 아는 모르는
Open (공개된 부분) Blind(맹목 부분)
Hidden (비공개 부분) Unknown (미지의 부분)

이러한 상황에서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긴밀한 유대를 나누는 개방적 친교의 장으로서의 소공동체는 진정한 만남의 경험과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삶에 대한 태도와 인간관계의 틀을 바로잡는데 큰 기여를 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개인과 가족, 그리고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2) 나눔 : 궁극적인 가치의 나눔과 격려의 장으로서의 소공동체

가족 이기주의는 중심가치의 상실에 따른 규범의 와해 및 이에 따른 심리적 공황에 기인하는 바가 크며, 특히 무분별한 물질주의의 팽배에 의해 더욱 부정적인 양상을 나타내게 된다. 즉 가족을 위해서라는 명분 아래 반사회적인 이윤 추구를 정당화함으로써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고 이웃과의 갈등을 야기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과 다른 가족 구성원의 정체성까지 물질적 기준에 맞추어 설정하고 평가함으로써 극단적인 소외와 가족 관계의 왜곡을 초래하기도 한다. 즉 배우자 선택 단계에서부터 물질적 소유와 성취가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고, 결혼생활에서도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이해하고 수용하지 못하고 상대방이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충족시켜줄 때에만 상대방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는 왜곡된 양상을 나타내게 된다. 또한 자녀 양육과 교육에 있어서도 기본적인 사회규범의 습득과 인성 형성은 도외시한 채 자녀의 능력과 희망을 무시하고 물질적, 사회적 성취를 위해 무조건 경쟁에서 이길 것을 강조함으로써 부모가 담당해야 할 사회화의 기능을 다하지 못함은 물론이고 오히려 자녀에게 해로운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물질주의는 정신적 가치나 인간적 가치보다 물질적 가치를 더 우선시하는 가치지향을 뜻하는데, 한국의 경우 전통적인 인간주의가 물질주의의 방향으로 변화되기 시작한 것은 가치체계 자체의 변화가 선행되었기 때문은 아니었으며, 산업화 등의 사회구조적 변화의 영향 때문이었다. 따라서 현대 한국사회에서의 물질주의는 윤리체계에 의해서 규제되는 것이 아니고 물질의 소유가 과거 전통사회에서의 신분적 지위를 대신하는 지위체계의 변화과정에서 급증하게 된 배금주의적 성격을 띠게 되었으며, 그리하여 수단에 상관없는 부의 축적과 과시적 소비를 특징으로 하는 “금전적 성공” 또는 “부자 되기”와 같은 물질적 성공주의가 현대 한국사회의 지배적 가치로서 지위를 굳히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1) 그러나 이와 같은 목표에 도달하는 수단이 충분히 제도화되지 못한 상태에서의 물질주의적 가치관의 확산은 범죄를 비롯한 여러 일탈행동의 원인이 되고 있을 뿐 아니라 전반적인 가치혼란과 인간관계 훼손의 중요 원인이 되고 있으며, 이러한 양상은 가족 이기주의와 맞물려 가족 내외에서도 여러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사회에 만연한 물질주의에 개인이나 가족이 개별적으로 저항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생명과 사랑, 상호 존중과 배려라는 근원적인 가치를 확인하고 현실의 삶에서 그것을 실천해가도록 서로 격려하면서,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의 삶을 초월하는 궁극적인 가치와 신념을 추구하도록 이끄는 역할이 필요한데 바로 이와 같은 역할을 소공동체가 담당할 수 있다. 단 가치관과 관련된 변화가 현실적으로 성과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이러한 논의가 피상적인 수준에서가 아니라 가족생활과 관련된 제반 영역에서 구체적으로 진행되어 실천으로 연결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3. 소공동체 운영을 위한 제언

1) 구체적인 공동의 목표 및 실천과제의 선정과 실행방안 마련

소공동체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지역적 특성이나 개별 가족의 특성 및 소공동체 구성원들의 요구를 반영하여 소공동체 구성원들이 자체적으로 장단기 목표와 실천과제를 능동적으로 선정하고,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소공동체는 교육이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수동적으로 제공받는 곳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방안을 함께 찾아가는 곳이라는 점을 재확인하고 소공동체 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동기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목표와 실천과제에는 가족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 뿐 아니라 지역사회에의 기여, 세계의 소외 지역에 대한 지원 등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2) 효율적인 소공동체의 운영 및 모임의 진행을 위한 모델/지침 마련

소공동체 구성원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참여 및 원활한 소공동체 운영과 모임의 진행을 위한 다양한 모델이나 지침을 개발하여 보급할 필요가 있다. 이때 workshop 등을 통해서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할 것이 요청된다.

3) 경계의 설정과 문호 개방

기존의 소공동체는 가족 단위보다는 개인별, 성별 모임이 일반적이었다. 지역에 따라 사정이 다르기는 하겠지만 다양한 가족 구성원들이 포함된 가족 단위의 참여를 격려하고, 개인으로 참여하더라도 자신의 가족을 대표한다는 생각으로 임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가족 단위의 참여로 인하여 소공동체의 효율적인 운영이 어려울 경우에는 전체 모임 뒤에 연령이나 성별 또는 실천 과제별로 소집단을 구성하여 별도의 모임을 갖고, 나중에 전체 모임에서 발표를 통해 논의된 사항을 공유하는 방안 등을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소공동체는 활동에 있어서 지역사회 내의 비신자 가족을 배려할 뿐 아니라 다른 소공동체와의 교류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소공동체 간의 교류와 협력은 개별 소공동체가 추진하기 어려운 사업이나 과제를 함께 펼칠 수 있게 하고, 또한 지역적 경계를 넘어서게 함으로써 자칫 소공동체가 가질 수 있는 폐쇄성을 극복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단 이러한 소공동체의 경계 설정과 문호 개방의 정도는 어느 경우든 구성원들의 합의에 따라 결정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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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수진, 최준식. 현대 한국사회의 이중 가치체계(아산재단 연구총서 제 108집). 집문당. 2002.

소공동체와 거룩한 독서 -- 정태현(전주교구 군산 팔마본당 주임신부)

소공동체와 거룩한 독서
정 태 현(전주교구 군산 팔마본당 주임신부) /사목 2004년 10월호

소공동체가 서울대교구를 통해서 한국교회에 소개된 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본당사목에서 소공동체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한국교회는 해마다 전국의 소공동체 책임자들을 불러모아 세미나를 열고 교구는 교구대로 반모임을 통하여 소공동체를 본당에 뿌리내리는 데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이고 있다. 잘 아는 것처럼 소공동체는 본당의 여러 신심 단체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교회 조직 자체에 속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아래로부터의 교회”를 지향하는 소공동체는 시대적 요청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소공동체를 위하여 아낌없는 노력과 투자를 하는데도, 왜 대부분의 일선 본당에서 소공동체의 정착과 활성화가 이다지도 터덕거리는가? 이론적으로 여러 가지 원인 분석이 나오겠지만, 시골 본당신부로서 본 대로 느낀 대로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해 본다.

1. 현실 진단

우리 본당은 인구 20여만의 중소도시에 속해있다. 교적상 신자수는 2,300명이 넘지만 오래도록(설립연도는 35년 전) 교적 정리를 하지 않아(사실은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할 수가 없다) 소재 파악이 안 되는 신자가 부지기수이고 주일미사에 참석하는 신자수만 따지자면 아이들과 중고생까지 합하여 450명 정도이다. 옛날에는 도심 한복판이었으나 아파트 문화 탓에 도심의 달동네로 전락하여 갈수록 빈곤화와 고령화가 심해지고 있는 이 본당은 주변의 특별한 상황변화가 없는 한 쇠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한국의 전형적인 보통 본당이다.

1) 소공동체와 레지오 마리애

우리 본당의 소공동체,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반모임 실태를 들여다본다. 26개 반이 각각 한 달에 한 번 모임을 갖는데, 모두 낮 시간이다. 자연히 숨 가쁜 생활전선의 남녀 교우는 거의 다 빠지고 나이 지긋한 자매님들이 주고객이다. 그나마 몸이 불편해서, 피치 못할 집안 사정 때문에 한 번 빠지고 두 번 빠지면 개인적으로 반모임에 참석하는 횟수는 일 년에 반도 안 된다. 반모임은 복음나누기 7단계를 바탕으로 꾸며진 교구의 반모임지에 따라 진행된다. 아무런 사전 준비도 없이 밑도 끝도 없이 주어진 복음의 한 대목을 놓고 나눔을 하려니 성서 말씀에 깊이 맛들이기보다는 신변잡담으로 흐르기 십상이다. 본당신부가 채근하지 않으면 이런 반모임이 제대로 유지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반모임과는 달리 레지오 마리애는 조직도 탄탄하고 구성원들의 참여도도 매우 높다. 한 개의 꾸리아 아래에 25개 쁘레시디움, 250여 명의 단원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쁘레시디움 단원들의 면모를 보면 대부 대자, 대모 대녀, 친구나 이웃, 선후배 등으로 구성되어 유대관계와 친화력이 끈끈하다. 지난주에 우리 본당에서는 레지오 마리애 도입 40돌 기념잔치를 벌였는데 대성황을 이루었다. 본당이 설립되기 5년 전부터 첫 번째 꾸리아 회합이 있었다는 것이다. 본당 자체로 특별 강의를 마련하면 호응이 별로 없지만 레지오 단원 교육이라고 하면 인원 동원이 잘 된다. 하다못해 다른 본당 신축기금 바자회 티켓을 팔더라도 레지오 조직을 이용하면 한결 쉽다. ‘레지오 마리애가 본당신부나 사목회와 상관없이 잘도 굴러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반모임을 매주 가지라고 했더니 그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소공동체는 교회의 기본 조직이고 레지오는 여러 신심 단체들 가운데 하나이니 당연히 반모임에 우선적으로 참석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해도 소용없다. 쁘레시디움 주회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건너뛰는 법이 없다. 명절이 닥치거나 본당의 큰 행사가 있어서 제날짜에 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다른 날로 시간을 바꾸더라도 반드시 모임을 갖는다. 무슨 모임이든지 한 달에 한 번 갖게 되면 형식에 지나지 않고 친목회 이상으로 발전하기 어렵다. 그래서 매주 쁘레시디움도 하고 반모임도 하라고 하니 사는 데 바빠서 도저히 그럴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레지오와 소공동체가 서로 상충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만하다.

소공동체와 레지오의 상충은 시간 문제만이 아니다. 책임 간부직의 중첩도 큰 문제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반장들은 레지오 마리애 단장직을 겸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사목회 임원들이고 그 밖의 다른 단체의 간부들이다. 시골 본당에서 활동할 만한 사람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한 사람이 서너 개의 간부직을 맡는 것은 보통이다. 결국 타성에 젖거나 과도한 활동으로 맡은 바 직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어렵다.

2) 모임의 장소와 시간

소공동체 모임은 원칙적으로 본당이 아니라 삶의 현장인 소공동체 구성원의 가정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아파트 촌에서는 반모임의 장소와 시간을 정하고 반원들을 불러모으기가 편하고 쉽다. 반원들이 단독 주택에 띄엄띄엄 떨어져 사는 시골 본당에서는 부지런히 뛰어다녀야 한다. 반모임의 장소와 시간을 정하고 이를 반원들에게 공지하여 한데 불러모으는 것이 여간 큰일이 아니다. 반장들에게 “하늘의 천사들이 여러분의 발걸음을 금자로 재고 있어요.” 하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격려하지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차라리 본당 회합실의 빈자리와 빈 시간을 이용하여 모임을 갖는 것이 훨씬 간편하다. 또 어려운 살림살이 덕분에 간단한 다과와 음료를 나누는 것 자체도 부담스럽다. 한 달에 한 번 가지는 모임이라면 몰라도 매주 모임을 갖는다면 이것도 보통 문제가 아니다. 우리 본당에서는 다과와 음료 비용을 2천 원으로 정하고 다달이 반장 모임 때에 모든 반장에게 지불한다. 소공동체 모임은 인구 밀집 지역인 대도시나, 중소도시라도 아파트 집성촌에서나 어울리는 모임이지 단독 주택이 많은 본당에서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본당신부들도 많다.

3) 반모임과 거룩한 독서

반모임의 핵심은 거룩한 독서이다. 소공동체에서 반모임을 하드웨어라고 한다면 거룩한 독서는 소프트웨어라고 할 수 있다. 거룩한 독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데, 반모임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그런데 반모임의 거룩한 독서는 남아프리카에서 개발된 룸코의 형식에 따라 복음나누기 7단계로 진행된다. 현재 각 교구 반모임에서 시행하는 복음나누기 7단계는, 모임이 있는 그 달 네 주일 복음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여 읽고 묵상하고 나눈 다음에 기도를 바치는 것으로 되어있다.

우리 교구에서 시행하는 복음나누기 7단계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① 성령께서 오시기를 청하는 기도를 바친다.
(두세 사람 정도 차례로 짧은 기도로 바친다.)
② 한 사람이 성서 본문을 천천히 읽는다.
(5분 정도 침묵한다.)
다른 사람이 본문을 다시 한 번 읽는다.
(들을 때에는 등장인물, 움직임, 동사에 특히 주의를 기울인다.)
③ 마음에 와 닿는 단어나 구절을 세 번씩 소리내어 기도하듯 외친다.
(외치는 사이에는 잠시 침묵을 지킨다.)
④ 다시 한 번 성서 본문을 읽는다.
(5분 정도 침묵하며 이 구절이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특히 그 메시지를 나의 삶 속에서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를 묵상한다.)
⑤ 마음 안에 들려온 말씀을 나눈다.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의 마음에 들려주시는 것을 형제들과 함께 나눈다.)
⑥ 침 묵
(형제들과 함께 나눈 것에 대해 잠시 묵상한다.)
⑦ 각자가 기도를 짧게 바친다.

이 7단계에 대한 전체적인 느낌은 ‘너무 고급스럽다!’이다. 여기서 요구하는 묵상 수준은 가히 수도자 급이다. 시골 본당의 나이 드신 분들이 이것을 그대로 따라 하기란 무리다. 앞뒤 문맥이 단절된 복음을 놓고 세 번씩이나 낭독하고 그 사이마다 계속해서 침묵을 지키며 묵상하라니 거룩한 독서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어떻게 하느님의 말씀에 다가가고 그 말씀이 나에게 다가올 수 있겠는가? 즐거운 거룩한 독서가 아니라 고역이다. 형식은 간단하고 내용은 알차야 한다.

나눔이 부담스러워서 반모임에 나가기 싫다는 사람도 많다. 또 나눔 시간에 개인의 사생활이 노출되고 이를 반모임 밖으로 유출시켜 말썽이 일어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래서 자신을 솔직히 드러내지 않으려고 성서 본문과 관련된 객관적인 사실이나 메시지만 나열하기도 하고, 아니면 성서 말씀과 전혀 관련 없는 뉴스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끝나는 경우도 많다.

나눔 시간은 자신을 선전하거나 강의·토론·잡담 등을 하는 시간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서 자신에게 전달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다른 이들과 나눔으로써 서로를 격려하는 시간이다. 바오로 사도가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 말 그대로이다. “내가 여러분을 애타게 만나보려는 것은 여러분과 함께 영적인 축복을 나눔으로써 여러분에게 힘을 북돋아주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함께 지내면서 여러분과 내가 피차의 믿음을 통하여 서로 격려를 받으려는 것입니다”(로마 1,11-12).

나눔이 제대로 안 되니 각자 돌아가며 하는 자유기도도 잘 안 된다. 그래서 묵주기도나 다른 소리기도로 대체하는 경우도 있다. 남이 지어준 기도에 익숙해 있으니 기존의 소리기도를 바치면 부담 없고 편하다.

거룩한 독서가 제대로 안 되는 상태에서 반모임을 끌고 가려니 힘들 수밖에 없고, 알맹이가 빠져 있으니 시간 낭비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본당신부는 소공동체가 교회의 본질이라느니 매주 모임을 가져야 효과가 있다느니 하면서 몰아대니 신자들로서는 마지못해 응하는 형편이다. 소공동체의 필요성을 느끼고 강조하는 본당신부가 있을 때는 조금 활성화되는 듯싶다가도 그렇지 않은 본당신부가 오면 사그라지기 일쑤다.

2. 대 안

몇 년 전 전주교구 사제들이 소공동체 세미나를 가지면서 이용한 「소공동체 자료 모음집」을 보니 소공동체의 문제점, 성공 사례와 더불어 소공동체의 활성화를 위한 여러 가지 이론과 대안이 제시되어 있었다. 자료 모음집은 본당신부의 사목방침과 관심사에 따라 소공동체와 레지오 마리애의 충돌이 일선 본당에서 생각보다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충돌을 막는 획기적인 대안을 제시한 예는 별로 없고 과도기인 만큼 인내하고 순명하는 자세로 기다리라고만 한다. 또 자료 모음집에 나와있는 설문조사에 따르면, 신자들은 복음나누기 7단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개선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 것인지 그 방안을 제시한 예는 찾아볼 수 없다.

일선 본당의 한 사목자로서 거룩한 독서의 정착을 통해서 레지오 마리애와 소공동체의 충돌을 어떻게 조정해 나가고 본당의 얼굴을 어떻게 바꾸어나가고 있는지 소개한다.

1) 거룩한 독서와 레지오 마리애

2년 8개월 전 부임하면서 첫 일성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의 모습을 재현하자!”였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서로 도와주며 빵을 나누어 먹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사도 2,42). 여기에서 ‘사도들의 가르침’은 구약성서와 나중에 신약성서의 핵심이 된 예수님에 관한 복음, 곧 그분의 삶과 가르침이다. ‘서로 도와주는 것’은 친교를 말하고, ‘빵을 나누어 먹는 것’은 성찬 또는 미사를 가리킨다. 성서, 친교, 미사, 기도, 이 네 가지에 전념하는 것이 바로 초대교회의 모습이다.

친교와 미사와 기도는 크게 강조하지 않아도 평균 수준이지만, 성서는 기대치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었다. 성서 봉사자는 한 사람도 없고 성서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지 않는 정도였다. 그래서 거룩한 독서를 시작하기로 하였다. 부임하고 2개월이 지난 뒤, 모든 신자를 대상으로 수요일마다 저녁 두 시간씩 거룩한 독서 입문 강의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본당의 모든 간부, 곧 사목회 임원들, 레지오 마리애 꾸리아와 쁘레시디움 단장·서기·회계, 각 단체의 장, 각 반의 반장, 꾸리실리스타들을 총동원하니 120명가량 되었다. 묘하게도 초대교회의 창립 멤버 수와 같았다(사도 1,15). 12개 반으로 나누어 거룩한 독서 모임을 갖게 되었는데, 한 달 정도 지나니 30여 명이 떨어져나가고 90명 정도가 꾸준히 나왔다.

수요일 저녁에는 미사도 없고 행사도 없다. 그래서 이때를 이용하여 거룩한 독서를 실시하였다. 유일한 교재는 구약성서와 신약성서, 유일한 교사는 성령, 안내서는 본당신부가 쓴 『거룩한 독서 1: 모세오경과 네 복음서』였다. 거룩한 독서를 시작한 지 15주간이 지나 모세오경이 끝났다. 그동안에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바라보며 레지오 마리애와 관련하여 본당신부의 머릿속을 스쳐간 생각들을 정리해 보면 이렇다.

첫째, 이 본당은 마리아 신심이 대단하다. 오래된 본당답게 레지오 마리애가 튼튼하게 뿌리를 내렸다. 그런데 레지오 단원들이 타성에 젖어서 회합 이외에 어린 양(미신자)이나 잃은 양(냉담자) 찾기 등 사도직 활동에는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다. 레지오 단원들이 성서보다 더 중요시하고 더 많이 읽는 레지오 교본을 보면 성서적으로 교리적으로 문제 되는 생각이나 표현이 적지 않다. 더구나 시대적 징표나 요청을 고려하기에는 교본의 내용이 너무 낡고 경직되어 있다.

둘째, 본당신부가 가장 중요한 사목방침으로 제시한 거룩한 독서에 레지오 간부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것 같지 않다. 두세 가지 이상의 직책을 맡은 간부들이 또다시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렇다고 어떤 본당신부처럼 레지오를 해체할 마음은 없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레지오와 거룩한 독서를 접목시켜 볼까 하는 생각까지 하였다. 교본 연구시간에 거룩한 독서를 하게 할까 아니면 레지오 회합이 끝난 다음에 하도록 할까 하다가 잘못하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되겠다 싶어서 좀 힘들더라도 둘을 독립적으로 끌고 가기로 하였다.

셋째, 내키지 않지만 레지오에 관심을 더 기울여주고 그 대신 거룩한 독서의 참여를 독려하는 데 레지오 마리애의 조직을 이용하기로 하였다. 꾸리아 간부들에게 관심을 더 보이고 쁘레시디움 회합에 충실히 얼굴을 비쳤다. 그랬더니 서서히 효과가 나타났다. 거룩한 독서에 불참하는 간부들은 개별적으로 만나 그 사정을 들어보고 왜 거룩한 독서를 해야 하는지 설명하였다.

모세오경 15주간이 끝나자 이번에는 모든 신자에게 문호를 개방하였다. 그리고 지난 경험을 바탕으로 모임을 이끌 만한 사람들을, 새로 조직하는 거룩한 독서의 그룹장으로 임명하였다. 그룹장의 역할은 출석 확인과 연락이 우선이고 모임에서 그룹을 가르치거나 지도하는 것이 아님도 주지시켰다.

새로 편성된 그룹들은 처음 모세오경부터 다시 시작하여 네 복음서까지 마치게 되었다. 그러고는 출석률에 따라 성물 상품권으로 개인 시상을 푸짐하게 해주었다. 출석률이 좋은 그룹도 한둘 골라 단체 시상을 하였다. 거룩한 독서를 시작한 지 1년쯤 지나자 신자들의 삶에 큰 변화가 왔다. 회개와 치유가 일어나고 친교의 분위기가 저절로 무르익는 가운데 전례 분위기가 좋아졌다. 무엇보다 할머니들이 “신부님 강론 말씀이 이제 귓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고 신기해하였다. 우려했던 레지오 마리애와 거룩한 독서 사이의 충돌은 전혀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둘 다 잘 되어나갔다. 레지오 단원들의 활동난에 거룩한 독서도 기입하게 하였더니 모두들 좋아하였다.

2) 반모임과 거룩한 독서

첫째 단계인 『거룩한 독서 1권: 모세오경과 네 복음서』가 끝나갈 즈음 반장들 모임에서 신자들의 의중을 떠보았다. 반모임을 매주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했더니 불가능하다며 강하게 반발하였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다소 형식적인 반모임은 그대로 지속하도록 버려두고 거룩한 독서 둘째 단계를 시작하면서 새 틀을 짰다. 이제껏 거룩한 독서를 충실히 해온 사람들이 어떤 반에 속해있는지 확인한 뒤에 그들이 속해있는 가까운 반을 두세 개, 인원이 안 될 때는 더 많은 반을 하나로 묶어 새 그룹을 만들었다. 반모임의 외적 구조를 참조하여 거룩한 독서 팀을 재편성한 셈이다. 이는 거룩한 독서를 제대로 할 수 있어야 반모임이 성공할 수 있다는 본당신부의 신념에서 나온 해법이다.

강론 시간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거룩한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거룩한 독서와 반모임을 위한 기도문’을 만들어 매일 미사 전에 바쳤다. 그러고 나서 8개월 정도가 흘러 구약의 역사서와 신약의 사도행전(『거룩한 독서 2』의 내용)을 마쳤다. 반장 모임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거룩한 독서를 꾸준히 하고 있는 신자들이 복음나누기 7단계의 분위기를 주도적으로 잘 이끌어간다는 것이었다. 염려와는 달리 거룩한 독서의 나눔 시간에 노출된 사생활 이야기가 외부에 발설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어떤 신자가 이런 말을 하였다. “신부님, 우리 성당에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총칼만 들지 않았지 이건 정말 혁명입니다. 예전 같았으면 나눔 시간에 나눈 이야기로 본당에 폭풍이 휘몰아쳤을 텐데 지금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본당신부가 답변하였다. “성령이 이끄시는 데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되지요.”

현재 거룩한 독서 모임은 어른들만 14그룹이다. 화요일 오전에 주일학교 자모회 1그룹, 수요일 저녁에 10그룹, 목요일 낮에 3그룹이 모인다. 수요일 저녁만 되면 7시 30분부터 여기저기에서 성가 소리가 들리고 거룩한 독서를 시작하는 기도가 울려퍼진다. 많은 신자들이 30분 전에 미리 나와 조용히 성서를 읽는다. 본당신부가 그룹에 들어가지 않아도 스스로 잘 한다. 성서 본문보다 말씀 봉사자와 성서 교재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기존의 성서 교육과는 퍽 다른 모습이다.

올해부터는 청소년과 중고생들을 위한 거룩한 독서 교재를 매주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주말에는 청년 두 그룹, 그리고 토요일에는 중고생들이 거룩한 독서를 한다. 어릴 때부터 성서가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라는 사실을 머릿속에 심어주고자, 창세기부터 묵시록까지 구원의 역사를 따라 이야기 중심으로 만들고 있는 교재다.

먼저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의 새 번역 성서 본문을 인터넷에서 발췌하여 소개하고, 거기에 간단한 해설을 한 다음 나눔 주제를 정해준다. 청소년들은 매주 재미있는 성서 이야기를 읽고 해설을 통해 이야기 안에 담긴 메시지를 깨우친다. 그리고 그 메시지를 삶과 연결시키는 나눔을 통해 성서 메시지를 자기 것으로 삼는다. 지금처럼 한국교회가 청소년, 특히 중고생들에게 속수무책인 시절이 없었던 것 같다. 입시 준비와 학원 교육 앞에서 일선 본당의 신앙교육은 발 디딜 틈이 없다. 각 교구와 본당마다 청소년 문제만 나오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렇다고 팔장 끼고 불구경하듯 바라볼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3) 성서 공부와 반모임의 복음나누기

현재 한국의 대표적인 성서 교육 프로그램들을 열거해 보면, 수도회에서 주도하는 가톨릭 성서모임, 성서 40주간, 여정, 통신 성서, 우리성서모임을 비롯하여 성서 백주간과 성서 못자리 등이 있다. 그런데 기존의 성서 교육과 거룩한 독서에는 몇 가지 차이가 있다.

첫째, 성서 공부는 말씀 봉사자와 교재에 크게 의존하는 반면, 반모임의 복음나누기는 성서 본문과 자발적인 참여에 의존한다.

둘째, 성서 공부는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신청을 받아 시행되지만, 반모임은 선택의 여지가 없이 모든 사람에게 요청된다.

셋째, 성서 공부는 성서 본문에 관한 지식이나 성서의 메시지를 얻는 데 중요한 의미를 두지만, 반모임의 복음나누기는 개인의 체험을 중요시한다.

이런 차이점이나 특성과 관련하여 반모임의 복음나누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 이유를 열거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복음나누기는 말 그대로 복음만 가지고 나눔을 갖기 때문에 매우 제한적이다.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밀접한 관련이나 성서 전체의 흐름, 또는 각 복음서의 특성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갑자기 주어진 주일 복음의 본문만을 대하다 보면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주어진 주일 복음이 성서 말씀 전체를 대표하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

둘째, 말씀 봉사자나 지도자가 없기 때문에 자칫하면 나눔 시간을 성서 본문의 깊은 메시지와는 상관없이 신변잡담으로 채울 수도 있다. 그러다 보면 반원들 사이에서 반모임 참석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셋째, 한 달에 한 번 반모임을 갖는 경우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 앞에서 말씀을 매개체로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열어 보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결국 피상적인 나눔만 하다가 끝난다.

4) 본당의 거룩한 독서

기존의 성서 공부와 반모임의 복음나누기에서 발견된 장점을 살리고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대안으로 본당의 거룩한 독서를 제시한다. 어떤 본당 사목자는 거룩한 독서는 수도자들이나 하는 것이지 본당 신자들에게는 해당이 안 된다고 잘못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거룩한 독서를 소개하는 책들이 너무 수준이 높거나 우리 실정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거룩한 독서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언제 어디서나 마땅히 실천해야 할 의무이다. 우리 본당에서 실시하는 거룩한 독서는 형식이 매우 간결하다.

거룩한 독서는 날마다 개인이 하는 거룩한 독서와 매주 한 번 하는 단체의 거룩한 독서로 나뉘는데, 이 둘은 반드시 겸해야 효과가 난다. 안내서는 네 권인데, 『거룩한 독서』 제1권은 구약의 기초가 되는 모세오경과 신약의 기초가 되는 네 복음서, 제2권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신앙의 안목으로 새롭게 해석한 구약의 역사서와 새로운 이스라엘인 초대교회의 역사를 다룬 신약의 사도행전, 제3권은 오경의 가르침을 일상의 삶에 접목시킨 구약의 시서·지혜서와 복음을 지역교회의 삶에 연결한 신약의 서간집, 제4권은 시대의 징표를 읽어 현실과 앞날에 필요한 가르침을 제시하는 구약의 예언서와 구약성서와 신약성서 전체를 아우르며 교회에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는 신약의 요한 묵시록을 다룬다. 1-3권은 이미 출간되었고 제4권은 10월 초에 출간될 예정이다. 이 네 권의 안내서는 성서 전체의 맥을 짚어주고 성서 각 권의 해제와 매주 독서할 본문의 주요 메시지를 짚어준다. 기존의 성서 공부가 추구하는 객관적 진리(또는 메시지)를 밝혀줄 뿐 아니라 그 객관적 진리를 주관적 진리로 바꾸는 방법을 제시한다.

날마다 개인이 하는 거룩한 독서는 전통적 방식대로 네 요소, 곧 독서, 묵상, 관상, 기도를 포함한다. 성령의 도우심을 청하는 거룩한 독서의 시작기도와 끝기도는 시편 119편을 바탕으로 간략하게 만들어 안내서마다 첫 속표지에 제시하였다. 성가는 『가톨릭 성가』에서 신자들이 잘 부르는 노래로 고르되 시편이나 성서 말씀을 가사로 지은 노래를 우선시하였다. 독서는 성서 본문(안내서에 보면 한 주간 동안 읽어야 할 본문의 범위가 주간마다 제시되어 있다. 각자가 알아서 이 범위를 날마다 조금씩 읽으면 된다.)을 조용히 읽으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묵상은 하느님의 말씀을 자기 현실의 삶에 연결하는 것이다. 관상은 추구의 대상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공짜로 주시는 선물이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다 보면 하느님의 현존과 사랑을 느끼게 되는데, 그 현존과 사랑에 편안히 머무는 것이 바로 관상이다. 기도는 하느님께 찬양과 감사와 청원의 말씀을 드리는 것이다. 안내서는 어디까지나 참고서일 뿐이고 거룩한 독서의 유일한 교과서는 오로지 성서뿐이다. 좀 더 깊이 공부하면서 거룩한 독서를 하고 싶은 이들이나 성서를 읽다가 의문점을 발견한 이들에게 안내서가 도움을 줄 것이다.

단체의 거룩한 독서는 매주 거르지 말고 해야 한다. 매일 거룩한 독서를 하는 사람들이 정해진 날짜에 모여 함께 주제 본문을 읽고 묵상하고 나눔을 갖고 기도한다. 그룹원들이 모이면 먼저 안내서에 제시된 성가 앞절을 부르고 거룩한 독서 시작기도를 바친다. 그러고는 주제 본문을 돌아가며 읽은 다음, 침묵 속에서 묵상을 하며 다시 한 번 본문을 숙독한다. 독서와 묵상이 끝나면 나눔 시간을 갖는데, 먼저 한 주간 동안 개인이 읽으면서 마음에 와 닿은 구절과 그 구절이 왜 나에게 와 닿았는지 발표하고 이어서 주제 본문을 읽으면서 마음에 와 닿은 구절과 묵상한 내용을 발표한다.

한 사람이 두 가지 발표를 한 번에 다 하고 발표가 끝날 때마다 다른 사람들은 “고맙습니다.” 또는 “잘 들었습니다.”로 응답한다. 발표를 할 때에는 반드시 단수 1인칭으로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저는 창세기 2장 7절의 말씀이 참 좋았어요. 하느님의 숨이 제 안에 있다는 것이 무척 고맙게 느껴졌거든요.” 이런 식이다. 3인칭(그, 그들)이나 복수 1인칭(우리) 화법은 성서 메시지를 객관화시켜 버릴 위험이 있다. 나눔 시간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려 하거나 충고 또는 상담을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이 시간은 형제자매들 안에서 말씀으로 다가오신 하느님의 현존과 사랑을 확인한다는 점에서 개인의 거룩한 독서 세 번째 요소인 관상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나눔이 끝나면 돌아가면서 자유기도를 바친다. 각 사람의 자유기도 끝에 다른 이들은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하고 응답한다. 마지막에 진행자는 “이 모든 기도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로 마무리하고, 다 함께 “아멘.” 으로 끝낸다. 거룩한 독서 끝기도를 함께 바치고 정해진 성가 뒷절을 부른다.

처음에 문제점과 어려운 점이 나눔과 기도에서 일어났다. 남을 가르치려는 전직 고등학교 선생님, 병치레 이야기만 늘어놓는 할머니, 자기 이야기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사람, 남의 말꼬리를 잡고 그게 아니라고 우겨대는 똑똑한 사람 등이 나눔을 어렵게 만들었다.
기도를 바칠 줄 몰라서 못하겠다는 사람들에게, “‘아이고 하느님, 거룩한 독서에 나오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는 기도는 바칠 수 있지요?” 했더니 그건 할 수 있겠단다. 이런저런 답답하고 어설픈 과정을 다 겪어내고 레지오 단원의 반 정도가 2년 반 가까이 거룩한 독서를 충실히 해오고 있다. 무슨 모임과 회합이든 본당신부가 시키지 않아도, 시작과 끝에 자유기도를 바치고 성서를 반드시 읽게 되었다. 회합 중에 성서를 봉독하는 쁘레시디움들도 생겨났다.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도 구분을 잘 못하고, 성서에 무슨 책들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신자들이 그나마 겨우 한 달에 한 번 모여 복음나누기만 해대니 소공동체가 밤낮 제자리걸음일 수밖에 없다. 먼저 말씀에 대한 본당 신자들 전체의 관심과 수준을 높여놓고 우리 삶에서 말씀이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지를 깨닫게 하는 일이 급선무다.

3. 남은 과제

거룩한 독서는 자발성이 관건이다. 소공동체의 성패도 이 자발성에 달려있다. 강제성을 띠는 레지오 회합과는 달리 거룩한 독서는 교우들이 좋아서 한다. 우리 본당 교우들은 레지오와 거룩한 독서를 매주 하면서도 시간 타령을 하지 않는다. 거룩한 독서는 방학도 없다. 지난여름 그렇게 더운데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거룩한 독서를 했다. 지금은 신약성서 서간편을 하는데, 앞으로 1년 정도 더 하면 창세기부터 묵시록까지 성서 전체를 거룩한 독서로 완독하게 된다.

지금 이 시점에서 보완해야 할 점은 거룩한 독서의 나눔 시간에 자꾸 자신을 반성하는 데 급급하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크신 자비와 사랑에 눈을 돌리지 않고 자기 영혼의 쓰레기통만 뒤지고 있다. 양심성찰과 자기반성에만 골몰하면 고약한 냄새뿐이 더 나겠는가?
청소년과 중고생의 거룩한 독서는 지금 24주째 하고 있다. 전체를 70주간 정도 생각하고 있는데, 3분의 1이 조금 지났으니 지금 평가하기는 이르지만 특히 청년들의 반응이 괜찮은 편이다.

신자들 전체가 말씀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깨닫고 말씀에 맛을 들이는 이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일선 본당에서 소공동체의 정착과 활성화는 앞당겨질 것이다.

소공동체와 예비신자 교리교육 - 김엠마누엘라 수녀

소공동체와 예비신자 교리교육:
- 소공동체와 함께 하는 예비신자 교리서「함께 하는 여정」

김엠마누엘라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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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1. 강의식 교리서와 「함께 하는 여정」의 일반적인 차이
2. 「함께 하는 여정」 소개
3. 「함께 하는 여정」 진행 순서
4. 「함께 하는 여정」 진행 방법
5. 「함께 하는 여정 길잡이」 소개
나가며

소공동체의 빛과 그림자 - 가톨릭 신문

한국인의 정서에 적합한 토착화된 소공동체 모델을 개발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된다.

한국교회의 ‘블루 오션’…이상인가 현실인가

“오늘날 한국 교회 최대의 사목적 화두는?”

이런 물음에 빠지지 않고 앞자리에 꼽히는 대답 가운데 하나가 바로 소공동체다. 이렇듯 소공동체는 이미 한국 교회와 뗄래야 뗄 수 없을 정도로 신자들의 삶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1990 년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개최된 제5차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가 ‘공동체들의 친교’를 ‘아시아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으로 규정하면서 소공동체는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으로 대두됐다. 이후 소공동체는 1990년대 초반부터 서울대교구를 필두로 교회 지도자들이 중심이 돼 전 교구로 확산되면서 한국 교회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대안이라는 인식을 심기에 이르렀다.

하 지만 운동의 형태로 도입돼 사목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기까지 한 소공동체가 지난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애당초 목표로 했던 가치와 이상을 얼마나 구현해오고 있는가 하는 면에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게 나타난다. 교회 안팎에 적잖게 퍼져 있는 이러한 평가는 소공동체가 앞으로도 한국 교회의 ‘블루오션(Blue Ocean)’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전망에 맞닿아 있다.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핏빛으로 물든 ‘레드 오션(Red Ocean)’의 반대 개념인 블루 오션은 미개척지이기 때문에 광범위하고 깊은 잠재력으로 상징된다.

문화적·종교적 다원주의가 범람하는 한국 사회에서 소공동체는 세속화된 사회는 물론 종교간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한국 교회의 새로운 성장 동력원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소공동체를 실은 ‘한국 교회호’는 여전히 블루 오션 개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이는 달리 말해 한국 교회가 그만큼 우리 사회나 신자들에게 매력적인 상품을 만들어내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방증이 된다. 나아가 블루 오션을 창출해낼 수 있는 효과적인 틀과 도구를 만들어내는데 실패하고 있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소공동체의 역사

제2 차 바티칸공의회의 한국적 적용을 위해 지난 1984년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을 기념해 열린 사목회의 후 교회 안에서는 사목회의 의안의 정신을 살려나가려는 다양한 노력이 이뤄졌다. 그 가운데 “교회 활력의 표지이고 신자 양성과 복음화의 도구이며…복음화와 기초적 복음 선포의 도구”(교회의 선교사명 51항)로 표현되는 기초공동체(소공동체) 운동은 사목회의 의안이 천명한 사목 목표이자 방법을 수용한 흐름으로 주목받아 왔다.

1990년 초 한국 교회에 처음으로 소개된 소공동체는 92년 서울대교구가 최초로 소공동체 운동을 공식화하고 이어 93년에 대구대교구가 소공동체 운동에 나서면서 새로운 진로를 확보하기에 이른다. 이후 전국 각 교구의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이 서울대교구가 마련한 소공동체 연수에 참여하면서 소공동체 사목의 원리들이 여러 형태로 도입되고 시도됐다.

특히 2001년 6월 25일 충북 음성 꽃동네 사랑의 연수원에서 최초로 열린 ‘소공동체 전국 모임’은 소공동체 운동의 새로운 원년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당시 참가자들은 소공동체가 복음화, 신앙쇄신 등 한국 교회의 당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라는데 공감대를 이뤄냈다.

제1차 소공동체 전국 모임 이후 각 교구 대표자들은 ‘소공동체를 통한 복음화’에 사목적 노력을 기울이며 전국 차원의 모임을 지속하기로 결의하고 이를 위해 주교회의에 ‘소공동체 소위원회’ 설립을 요청한다. 이에 따라 그해 가을 주교회의 정기총회의 결정으로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안에 ‘소공동체 소위원회’가 설립됐다.

2002년에 열린 제2차 소공동체 전국 모임을 계기로 한국 교회 안에 소공동체 중심의 사목이 확산되는 분위기가 한층 고양됐다. 나아가 각 교구 사목국장들이 중심이 돼 이뤄져온 교구 대표자 모임의 결실로 2003년 2월 15개 교구가 참여하는 ‘소공동체 사목 전국협의회’가 공식 출범하기에 이른다. 이후 소공동체 사목 전국협의회는 산하에 연구위원회를 구성해 소공동체 사목에 대한 신학적, 사목적 연구를 심화시키는 한편 확산을 도모해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2003년 9월 2~9일 의정부 한마음수련원에서 열린 제3차 아시파(AsIPA, Asian Integral Pastoral Approach, 아시아의 통합적 사목적 접근) 총회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각국 지역교회의 소공동체 활성화의 새로운 계기를 마련했다.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가 주최하고 서울대교구가 주관한 이 총회에는 13개국에서 123명의 소공동체 관계자가 참석해 미래 사목의 대안으로서 소공동체의 현재를 돌아보고 발전적 방향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앞서 열린 1, 2차 총회 때에 비해 아시아 각국의 소공동체가 성장했음을 보여준 3차 총회는 아울러 아시아 지역에서의 소공동체가 이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는 단계라는 평가를 낳았다. 총회 최종 선언문도 아시아 교회의 소공동체 활성화에 있어서의 어려움과 장애를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선언문은 “아시아의 소공동체 경험은 고무적이지만 여전히 공동체를 건설하고 유지하는 과정에는 장애들이 있다”며 교회 지도층의 무관심, 성경에 대한 몰이해, 잘못된 지도력 등 다양한 장애들을 지적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선언문은 신앙이나 교회, 말씀, 문화 등 신앙생활의 다양한 요소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더불어 이를 위한 적절한 양성과 교육 프로그램의 강화를 제안하고 있다.

이후 그간의 평가를 바탕으로 2004년 2월 13일 교구 대표자 회의를 통해 사무국을 실무 위원회로 명칭을 바꾸고 임시 사무국을 새로 구성하는 한편 양성위원회를 구성하기에 이른다.

소공동체 빛과 그림자

하지만 소공동체는 여전히 많은 신자들에게 안개 속에 쌓인 듯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는 아시아 지역 다른 교회 지도자들도 인정하고 있는 바다.

제3차 아시파 총회에 참가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대교구 소공동체 교육 담당인 탄 킴 혹씨는 “말레이시아 역시 오랫동안 소공동체를 추진해왔지만 뚜렷한 전망을 갖고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싱가포르대교구 사목센터 사무차장인 웬디 M. 루이스씨도 “아직은 소공동체에 대해 듣고 수용하는 수동적인 단계”라고 털어놓았다.

이러한 한편에서는 소공동체가 현대 사회가 겪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의 밑바닥에 깔린 가정 문제를 비롯해 교회는 물론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 해결에 실마리를 제공할 대안이 될 수 있다는 평가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실제 한국 교회의 소공동체 역사만을 돌아보더라도 구역 반장들을 대상으로 복음 나누기 7단계와 복음 나누기의 다양한 방법을 교육하고 지속적으로 시행한 결과 ‘말씀’이 신자들의 신앙생활의 중심에 자리 잡는 경향이 점차 확고해지고 있다. 또한 소공동체를 통한 복음화 과정에서 평신도사도직이 그 어느 때보다 활성화되는 등 적잖은 결실을 낳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소공동체가 여전히 단순한 ‘구역 반모임 프로그램’으로 이해되거나 일부 매니아들만이 찾는 것으로 인식되는, 불확실한 이해를 낳고 있는 현실을 볼 때 ‘새로운 교회상을 지향하는 총체적인 사목 원리와 체계’로서 소공동체 개념을 신자들의 삶에 뿌리내리기는 쉽지만은 않은 일로 보인다.

이러한 엇갈린 평가는 소공동체를 통한 복음화 노력이 10년 넘게 진행돼 왔지만 소공동체에 관한 연구 논문이 극히 미미한 현실에서도 나타난다.

이는 달리 말해 한국 교회가 선진 신학이라는 ‘그릇’을 수입하고도 거기에 맞는 내용을 채우지 못함으로써 신자들이 이미 힘을 얻고 살고 있는 신앙과 삶의 풍요로움에는 눈을 돌리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가능하게 한다.

따 라서 소공동체 사목이 표방하는 대로 교회가 끊임없는 친교와 쇄신의 공동체로서 참 모습을 찾기 위한 모색이며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대안이라면 우리 실정에 맞는 한국적인 소공동체 모델 개발에 더욱 노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결국 소공동체 앞에 가로놓인 벽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소공동체 사목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평가하고 이를 토대로 한국인의 정서와 의식구조, 문화와 실정에 적합한 토착화된 소공동체 모델과 방법 및 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노력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서상덕 기자 sang [at] catholictimes [dot] org

소공동체활성화에 관심있는 분들....무엇이 소공동체를 활성화시키는가?

무엇이 소공동체를 활성화시키는가?

(의정부교구 구리본당 사례를 중심으로) 박 현 준(우리신학연구소 연구위원)

결론을먼저 알고싶은분들을위하여

4. 결 론

지금까지 우리는 인구사회학적 요인, 인적 요인(봉사자 지도력), 인지적 요인(비전 공유), 영적 요인, 활동 요인(7단계 복음나누기), 본당의 지원 정도에 따라 소공동체의 활성화가 결정될 것이라는 가설 아래 제반 요인들을 분석하였다. 분석한 바와 같이 앞서 독립변인으로 설정한 제반 요인이 갖는 설명력은 상당히 큰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인구사회학적 요인과 관련하여 경제 수준과 주거지 특성에 따른 영향력은 매우 제한된 범위에서 의미를 가질 뿐이었다.

이 가운데 주목해서 보아야 할 것은 영적 요인과 인적 요인, 활동 요인이 소공동체 활성화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사실이다. 이들 세 요인은 다른 요인들에 비해 매우 광범위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으며 그 정도도 매우 높은 것이었다. 또한 이들 요인들은 서로 영향을 미침으로써 상호작용을 하고 있었는데 복음나누기는 구성원의 영성을, 봉사자 지도력은 복음나누기를 심화시키는 원인 변수로 작용하고 있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 가지 요인을 소공동체 활성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3대 요인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겠다. 이러한 결론은 구리본당 사례만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이기 때문에 많은 한계를 가질 수 있다. 구리본당이 한국 천주교회 전체를 대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지역적 특성에 따른 표본 본당을 선정하고 광범위한 자료를 수집해 이 같은 결론을 검증해야 할 것이다.

1. 머리말

한국 천주교회에 소공동체 사목이 도입된 지 10여 년이 지났다. 서울대교구를 시작으로 전개된 소공동체 사목은 이제 한국 천주교회의 중요한 사목적 비전이 되었고 전국 대부분의 교구들이 이를 중요한 사목 비전으로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소공동체 사목이 우리 교회에 정착되었다고 단언하기는 아직 어려운 실정이다. 그 이유는 소공동체에 대한 본질적 이해가 아직 충분하지 않고, 소공동체 사목에 대한 교회 구성원들의 동의 정도나 이해 정도가 다르며, 전형적인 모델을 제시할 수 있는 모범적인 사례가 없다는 점 등이다.

이 가운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소공동체에 대한 본질적 이해의 문제이다. 방법론으로서의 소공동체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두었지만 그것이 가지는 신학적 사회학적 함의와 기능, 상호작용의 메커니즘, 구성 요인 등에 대한 연구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정교한 방법론으로 발전하는 데 한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소공동체 사목이 심화하고 발전하려면 이에 대한 총체적이고 본질적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 연구는 이러한 광범위한 연구 영역 가운데 일부인 소공동체 활성화 요인의 추출을 목적으로 한다. 매우 다양한 요인 가운데 소공동체를 활성화시키는 요인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것을 개념화하여 소공동체의 구성적 이해를 돕고자 한 것이다.

이를 위해 “특정 요인들이 소공동체 활성화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라는 가설을 세우고 자료를 수집하였다. 자료 수집은 소공동체 모임에 참여하는 의정부교구 구리본당의 신자 764명을 대상으로 하였고, 수집 방법은 구조화된 설문지를 이용하였다. 이 가운데 376부를 수거하여 49.2%의 수거율을 보였다. 무응답이 많거나 신뢰가 떨어지는 설문지 19개의 사례를 제외한 357개 사례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2. 소공동체 활성화 요인과 측정 내용

소공동체 활성화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측된 특정 요인은 인구사회학적 요인, 인적 요인(봉사자), 인지적 요인(소공동체 비전 공유), 영적 요인(영성), 활동 요인(복음나누기 심화 정도), 환경 요인(본당 지원) 등이다. 인구사회학적 요인은 경제 수준, 교육 수준, 소공동체 모임 참여 경력 등으로 구성하였다. 인적 요인은 봉사자의 지도력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이는 초기 정착 단계에 있는 소공동체 사목에 이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선 본당 사목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소공동체의 봉사자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따라 해당 공동체의 활성화가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인지적 요인은 소공동체 비전에 대한 구성원들의 이해와 공유 정도를 의미한다. 이념과 비전에 대한 구성원들의 이해와 동의 정도에 따라 소공동체에 대한 참여와 헌신 정도가 달라질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영적 요인은 구성원들의 영성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교 영성은 하느님과의 일치와 이웃과의 일치를 근본 구조로 가지며 따라서 그것은 공동체적인 성격을 가진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에 대한 구성원들의 내면화 정도, 곧 영성 정도는 소공동체 활성화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이해된다. 활동 요인은 7단계 복음나누기의 심화 정도를 의미한다. 이는 소공동체 사목이 제시하고 있는 비전 가운데 하나인 ‘말씀 중심’에 근거한 것이다. 복음나누기는 복음적 삶의 실천과 반성의 순환구조를 연결하는 고리로 이해할 수 있다. 곧 소공동체 구성원들은 복음나누기를 통해 일상의 삶을 되돌아보고 그 결과를 다시 일상의 삶에서 실천하는 순환 과정을 거친다.

따라서 복음나누기는 구성원들의 신앙과 삶을 성숙시키는 중요한 공간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환경 요인은 본당의 지원 정도를 뜻한다. 이는 소공동체에 대한 본당신부나 수도자, 사목위원 등의 관심과 지원, 본당 사목구조의 성격 등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국 천주교회의 사목 구조상 본당의 이러한 관심과 지원이 소공동체 활성화에 끼치는 영향은 매우 클 것으로 이해된다.

소공동체 활성화 정도에 대한 측정은 다음과 같은 항목으로 구성하였다.

첫째, 공동체 의식이다. 이는 구성원들의 충족감, 연대의식, 소속감 및 상호영향 의식, 정서적 친밀감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둘째, 소공동체의 역동성이다. 이는 소공동체가 얼마나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는지를 측정하는 것으로, 공동의 목표와 문제의식의 공유 정도, 나눔의 일상화, 의사 결정의 민주성, 자발적 카리스마의 생성 정도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셋째, 개인적 실천이다. 이는 소공동체를 통해 자신의 삶이 얼마나 변하고 있는지를 측정하기 위한 개념이다. 곧 가정이나 직장, 이웃과의 관계 안에서 자신의 태도가 얼마나 복음적으로 변화했는지를 측정하는 것이다.

넷째, 공동체적 실천이다. 이는 소공동체 차원의 복음 실천을 의미한다. 곧 공동체 차원에서 이웃 사랑 실천을 어느 정도 하고 있는지를 측정하는 것이다. 다섯째, 신앙 행동. 이는 소공동체를 통해 자신의 신앙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측정하는 개념이다. 곧 소공동체에 참여함으로써 신앙이 어느 정도 성숙되고 자아가 어느 정도 성장했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개념이다.

측정 도구는 문헌 분석을 통해 구성하였고 전문가의 의견을 거쳐 수정하였다. 이 가운데 영성 측정도구는 하우덴(Howden)의 SAS(Spirituality Assessment Scale)를, 공동체 의식 측정도구는 김경준의 것1)을 약간 변형하여 사용하였다. 각 측정 도구의 신뢰도는 위의 표와 같다.

3. 연구 결과와 해석

1) 영성과 소공동체 활성화

이번 연구를 통해 나타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영성적 요인이 소공동체 활성화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공동체 구성원들의 영성 지표를 5점 척도로 측정하고 지표 수준에 따라 4개의 집단으로 나누어 집단별 소공동체의 활성화 정도를 비교하였다. 그 결과 영성 지표와 소공동체의 활성화 정도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왔는데 영성 지표가 높은 집단일수록 공동체 의식, 소공동체의 역동성, 개인적 실천 정도, 공동체 실천 정도, 신앙의 변화 정도가 높은 것으로 나왔다.

예컨대, 영성 지표에 따른 공동체 의식을 살펴보면, 영성지표가 가장 높은 집단의 공동체 의식의 평균값은 3.54, 다음 집단은 3.95, 다음 집단은 3.50, 가장 낮은 집단은 3.22였다. 이는 영성 지표가 높을수록 공동체 의식이 높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소공동체의 공동체성 형성에 구성원들의 영성이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개인적 실천 정도도 마찬가지 결과를 보이는데, 소공동체를 통한 생활의 변화 정도를 묻는 질문에 영성 지표가 높은 집단일수록 변화가 크다고 응답하였다. 이는 영성 지표가 높은 사람일수록 소공동체를 통한 생활의 변화 정도가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생활 안에서의 말씀 실천을 강조하는 소공동체 비전의 성취가 영성과 깊은 관계에 있음을 나타낸다.

공동체 실천과 신앙 행위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는데 신앙 행위와 관련해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곧 “소공동체를 통해서 나는 신앙의 맛을 알게 되었다.”는 질문에 대해 영성 지표가 높은 집단일수록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영성 지표가 가장 높은 집단 가운데 이 질문에 대해 긍정적으로 응답한 사람은 79.5%였고, 다음 집단은 57.8%, 56.8%, 29.8%로 나타났다. 따라서 우리는 소공동체를 통한 신앙의 변화 또한 영성 요인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2) 활동 요인(7단계 복음나누기)과 소공동체 활성화

영적 요인과 더불어 활동 요인, 곧 7단계 복음나누기의 심화 정도도 소공동체 활성화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복음나누기가 잘되는 집단일수록 공동체 의식, 소공동체의 역동성, 개인적 실천, 공동체 실천, 신앙 행위 등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보였다. 곧 복음나누기의 심화 수준이 높을수록 소공동체가 활성화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활성화 요인별로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복음나누기 심화 수준에 따른 공동체 의식의 평균값은 복음나누기가 가장 잘되는 집단이 4.15, 다음 집단이 3.66, 3.46, 3.16 순으로 나타났다. 곧 복음나누기가 잘되는 집단일수록 공동체 의식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밖에 소공동체 역동성, 개인적 실천, 공동체 실천, 신앙 행위 등도 같은 결과를 보이고 있다. 곧 복음나누기가 잘되는 집단일수록 개인적인 생활의 변화, 공동체 차원의 복음 실천, 신앙의 변화 등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7단계 복음나누기가 소공동체 활성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복음나누기와 영성의 관계이다. 복음나누기는 영성의 심화를 위한 중요한 공간으로 제시되기 때문인데 결과는 복음나누기 심화 수준이 높을수록 영성 지표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복음나누기 심화 수준이 가장 높은 집단의 영성 평균은 4.10인 반면 나머지 집단은 3.77, 3.53, 3.41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거꾸로 영성 지표 범주에 따른 복음나누기 심화 정도를 비교해도 같은 결과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복음나누기와 영성은 매우 깊은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복음나누기 심화 수준에 따른 생활과 신앙의 변화 등을 구체적으로 알아보고자 개별 문항과 교차분석을 했는데 결과는 복음나누기 심화 수준이 높을수록 소공동체를 통한 생활의 변화, 신앙의 변화가 긍정적으로 나타났다. 복음나누기 심화 수준에 따라 네 집단으로 분류된 응답자들의 응답 분포를 살펴보면 최상위 집단 가운데 70.1%가 소공동체를 통한 생활의 변화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반면 나머지 집단은 44.1%, 38.8%, 32.5%가 긍정적인 평가를 한 것이다. 따라서 복음나누기는 소공동체 구성원들의 생활 변화를 유도하는 중요한 요인임을 알 수 있다. “소공동체를 통해 신앙의 맛을 알게 되었다.”는 질문에 대한 응답도 같은 결과를 보이고 있다. 곧 복음나누기 심화 수준이 높을수록 신앙에 맛들이게 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높다고 할 수 있겠다.

3) 소공동체 비전과 소공동체 활성화

소공동체 비전 공유에 따른 공동체 의식, 소공동체의 역동성, 개인적 생활의 변화, 사회적 실천, 신앙의 변화 등은 모두 일관된 관계를 가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곧 소공동체의 비전 공유 수준이 높을수록 소공동체 활성화 변수의 평균값이 높게 나왔음을 의미한다. 유의 확률적 측면에서 모든 종속 변인은 매우 높은 상관성을 보여주었고 따라서 그것에 대해 어느 정도 인지하고 내면화했는지 소공동체의 활성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공동체 의식과 관련해서, 소공동체 비전 공유 수준이 가장 높은 집단의 공동체 의식의 평균값은 3.97, 다음 수준의 집단은 3.60, 가장 낮은 집단의 평균값은 3.15 등의 순차성을 보인다. 나머지 활성화 변수들도 같은 결과를 보이고 있다.

한편, 소공동체의 비전 공유 수준이 개인적 생활의 변화, 사회적 실천 정도의 변화, 신앙의 변화 등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고자 각 변수를 대표하는 문항들과 교차분석을 실시하였다. 우선 개인적 생활의 변화 정도는 비전 공유 수준이 높을수록 생활의 변화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곧 “소공동체 모임을 한 후 나의 생활은 많이 변했다.”라는 항목의 응답 분포는 비전 공유 수준이 높은 집단일수록 긍정적으로 나타났다. 소공동체 비전 공유에 따른 신앙의 변화와 사회적 실천, 곧 소공동체를 통해서 신앙의 맛을 알았다는 문항에 대한 긍정적인 응답분포는 역시 비전 공유 수준이 높을수록 높게 나타났으며, 지역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한다는 응답 분포 또한 높게 나타났다.

4) 봉사자의 지도력과 소공동체 활성화

소공동체 활성화와 관련하여 봉사자의 지도력 요인은 연구 초기부터 매우 중요할 것으로 예측하였다. 곧 소공동체가 체계적으로 자리를 잡는 전 단계에서 인적 요인은 매우 중요할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에서 나타난 결과도 이러한 예측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봉사자의 지도력 수준을 높게 평가한 집단일수록 공동체 의식, 소공동체의 역동성, 개인 생활의 변화, 사회적 실천 정도, 신앙의 변화 등에서 긍정적 분포를 보였다.

이 가운데 봉사자의 지도력 요인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으로는 소공동체의 역동성, 사회적 실천으로 보이며 나머지 공동체 의식, 개인적 생활의 변화, 신앙의 변화 등은 2차적인 관계에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들 변인은 봉사자의 지도력에 따라 소공동체의 역동성과 사회적 실천이 높을 것이고 이는 소공동체의 활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공동체 의식, 개인적 생활의 변화, 신앙의 변화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추정이다.

활성화 변수별 평균값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봉사자의 지도력을 가장 높게 평가한 집단일수록 소공동체의 역동성 수준을 높게 평가하였다. 곧 봉사자의 지도력을 가장 높게 평가한 집단의 소공동체 역동성 평균값은 3.86로 나타났고 다음 수준의 집단들은 3.54, 3.31, 3.08 순으로 나타났다. 사회적 실천도 같은 순으로 나타났는데 최상위 집단의 평균값은 3.54, 다음 수준의 집단들은 3.24, 3.10, 2.85의 순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공동체 의식, 개인적 생활의 변화, 신앙의 변화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한편, 봉사자의 지도력 요인과 밀접한 관계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복음나누기와의 관계는 다음과 같이 나타났다. 봉사자의 지도력을 높게 평가한 집단일수록 복음나누기의 심화 수준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 복음나누기에 대한 봉사자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5) 본당 지원과 소공동체 활성화

본당 지원 정도에 따른 활성화 변수도 상당한 상관성을 보였는데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소공동체의 역동성으로 보인다. 물론 본당의 지원은 다양한 요인들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그 가운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추정되는 요인이 소공동체의 역동성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본당의 지원 정도에 따른 소공동체의 역동성 정도는 본당의 지원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집단일수록 소공동체의 역동성을 높게 평가하였다. 소공동체의 역동성에 대한 본당의 지원을 가장 높게 평가한 집단의 평균값은 3.81였고 나머지 집단은 순위에 따라 3.53, 3.31, 3.14 등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종속 변인들도 같은 관계를 보였다.

6) 경제 수준에 따른 소공동체 활성화

경제 수준과 활성화 변수들의 관계는 별 상관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곧 소득 수준에 따라 공동체 의식과 소공동체의 역동성 등이 차이를 보일 것으로 예측하였으나 결과는 다르게 나타났다. 따라서 경제 수준에 따른 소공동체의 활성화 정도는 별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7) 주거지 특성과 소공동체 활성화

주거지 특성에 따른 소공동체 활성화의 차이도 별 상관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주거지가 아파트나 단독주택 지역이라는 특성이 소공동체 활성화에 미치는 영향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다만 유의할 것은 상업지역과 농촌지역을 제외하고 분석한다면 대체로 아파트 지역보다는 단독주택 지역이 소공동체 활성화 정도가 비교적 높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공동체 의식에서 단독주택 지역은 3.64로 나타난 반면 아파트 지역은 3.55로 나타났고 소공동체의 역동성은 단독 주택지역이 3.46, 아파트 지역이 3.45 등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변수들도 근소한 차이로 단독주택 지역이 우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활성화 요인 관련 평균 비교에도 나타나는데 대체로 단독주택 지역이 아파트 지역보다 영성 지표, 복음나누기 심화 수준, 소공동체 비전 공유 등에서 우위를 보이고 있다. 특이한 점은 봉사자의 지도력 요인은 아파트 지역이 높게 나온다는 점이다. 이는 봉사자의 지도력 요인이 지적 요소나 경제 수준 등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특징은 소득 수준에 따른 봉사자 요인 분석에도 나타난다. 소득 수준의 범주를 3개로 나누어 분석해 보면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봉사자 요인의 평균값이 높게 나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봉사자의 지도력은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아파트 지역에서 더 활성화되어 있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8) 성별과 소공동체 활성화

성별에 따른 소공동체 활성화 정도의 상관성은 복음나누기 심화 수준을 제외하고 별로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복음나누기의 심화 수준은 여자가 남자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여자는 3.65, 남자는 3.26으로 나타났다. 이는 복음나누기에 대해 여자가 남자보다 활성화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9) 학력과 소공동체 활성화

학력에 따른 활성화 요인의 상관성은 복음나누기의 심화 수준을 제외하고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복음나누기 심화 수준은 학력이 낮을수록 높게 나타났는데 국졸 이하가 3.94, 중졸이 3.72, 고졸이 3.59, 대졸 이상이 3.24으로 나타났다. 이는 고학력일수록 복음나누기에 깊이 빠져들기 어려움을 보여주고 있다.

(10) 소공동체 참여 경력과 소공동체 활성화

소공동체 참여 경력은 영성 지표와 복음나누기 심화 수준에 일정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성 지표와 관련하여 살펴보면 소공동체 참여 경력이 많은 집단일수록 영성 지표가 높게 나타났다. 곧 소공동체 참여 경력이 6-10년인 응답자는 3.76, 4-5년인 응답자는 3.66, 2-3년인 응답자는 3.60, 1년 이하인 응답자는 3.48로 나타났다. 이는 소공동체 참여 기간이 신자들의 영성에 일정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소공동체 모임의 복음나누기 등을 통해 신자들은 영적으로 성숙되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복음나누기의 심화 수준은 소공동체 참여 경력이 6-10년인 응답자가 3.68, 4-5년인 응답자가 3.51, 2-3년인 응답자가 3.58, 1년 이하인 응답자가 3.44로 나타났다. 이는 소공동체 참여 기간이 길수록 복음나누기에 대해 익숙해지고 깊어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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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적 관점에서 본 한국 천주교 소공동체 - 임병헌 신부

신학적 관점에서 본 한국 천주교 소공동체
(공동체 : 교회의 이해와 실현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

임병헌 신부(서울 대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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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차 -

1. 문제의 제기
2. 공동체 신학의 전사(前史) 이해
2.1 이원론적 세계관과 구원관
2.2 경직된 교회관과 협의의 사목 이해
3. 구세사적으로 정향(定向)된 신학
3.1 원천으로부터의 쇄신
3.2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관
4. 교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의 공동체
4.1 공동체 신학과 그 취지
4.2 사목의 원리로서 공동체
4.3 공동체의 구체적 실천
4.4 미래를 위한 한국교회의 새로운 모형으로서의 공동체
5. 글을 맺으며

신학적 관점에서 본 한국 천주교 소공동체
(공동체: 교회의 이해와 실현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

1. 문제의 제기

격동의 새로운 변화를 예감하며 설레임 반, 두려움 반으로 맞았던 새 천년기의 시작을 벌써 우리는 4년 째 뒤로 하고 있다. 기실 “정보화 사회”라 총칭되어지는 오늘날 여러 분야의 사회 변화들은 기존의 삶을 규정하던 산업 사회의 사고 구조와 행동 양식으로부터의 결별을 촉구하고 새로운 변화에 발 빠르게 적응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하루가 다를 정도의 엄청난 양과 빠른 템포를 가지고 변화하는 사회현상들을 체험해야 하는 현대인들은 숨 가쁘게 그 변화의 리듬을 쫓아가든지 아니면 그저 두 손을 놓은 채 무기력하게 바라보든지의 선택에 내몰려진 듯 여겨진다. 이러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주장되어지는 ‘기존하는 것’에 대한 기득권 혹은 우선적 가치는 설자리를 잃은 듯 보여 진다.1)

이러한 격변의 한 복판에 2000년 전통의 교회가 오늘도 순례의 여정을 걷고 있다. 어떤 눈으로 이 변화의 소용돌이를 바라보아야 할까? 이러한 사회 변화가 교회에는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일까? 기존하는 교회 현존 양식과 삶의 방식이 변화된 사회 상황 하에서도 변함없이 호소력을 지닐 수 있는 것일까?

이런 물음 앞에 교회는 자신을 적응하고 쇄신하기 위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개최하였고, 공의회 폐막 후 벌써 40년이 흘렀다. 물론 공의회가 오늘의 세대 변화를 예견하고 교회의 쇄신과 적응을 위한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해답을 명시적으로 제시하였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공의회의 전체적 기조와 신학은 적어도 오늘의 변화된 상황 안에서 교회가 자신을 쇄신하고 자신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풍부한 단초를 마련하였다고 할 수 있다.2)

“공동체 신학”은 바로 이 공의회로부터 영향을 받은 교회의 “쇄신된 자기 이해”이고 변화된 세상 안에서 교회가 자신을 구체화 하고 실현하기 위한 미래의 비전(vieion)이라 할 수 있다.3) 이런 맥락 하에서 한국 교회 ‘소공동체 사목’은 공동체 신학을 실천적으로 구체화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서울 대교구가 1992년 ‘소공동체 사목’을 시작한 것에서 비롯되어 점진적으로 전국 각 교구가 이에 동참함으로써 이제는 한국 교회 전체가 지향하는 구체적인 사목 프로그램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을 한 것으로 보여 진다.

그러나 문제는 실천적으로 확산된 ‘소공동체 사목’의 지속적 추진과 정착을 위해 그에 상응하는 이론적 성찰과 신학적 기반이 얼마나 숙고되어 있는지의 물음이다. 이러한 숙고의 전제나 병행이 없는 소공동체 사목의 추진은 그 지속성을 유지하기 힘들 뿐 아니라 사목의 방향이나 합목적성을 추구함에 있어 그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하의 고찰에서는 그러기에 소공동체 사목의 지속적 성장과 미래의 방향 설정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공동체 신학이 지니고 있는 공동체의 신학적 관점에 초점을 맞추어 공동체 신학의 의미를 서술하고자 한다. 다른 발표에서 소공동체의 실천적 문제들이 비교적 상세하게 다루어지기에 본 고는 특별히 공동체 사목의 근거가 되는 신학적 내용을 부각시켜 상술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공동체 사목의 신학적 배경과 의미는 무엇이고 교회의 미래를 위해 그것이 지니는 신학적 전망은 무엇인지가 이하의 글에서 주된 탐구 대상이 될 것이다.

2. 공동체 신학의 전사(前史) 이해

교회를 ‘믿는 이들의 공동체’4)로 파악하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공동체 신학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직전까지 천년을 넘게 중세를 지배해 온 신학적 기반과 교회관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공의회 이후 공동체 신학에서 강조되는 신학적이며 실천적인 주장들은 그 이전의 신학과 실천들에 대비되는 측면이 적지 않고 이런 대비의 내용을 파악함으로써 결국 공동체 신학이 지향하는 바를 보다 더 또렷하게 규명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래 항에서는 그러기에 20C 초엽까지도 강하게 영향을 미쳤던 중세적 신학 경향 가운데 공동체 신학과 대비되고 연관되는 몇 가지 관점을 선별하여 약술하고자 한다.

2.1 이원론적 세계관과 구원관
주지하는 바처럼 중세 전체를 관통하는 세계관과 역사관은 철저하게 이원론적이었다. Platon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원론적 세계관은 이승과 저승, 성(聖)과 속(俗) 그리고 영(?)과 육(肉)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였다. 이러한 세계관 하에서의 신학적 논의는 당연히 이런 이원론적 틀을 벗어날 수 없었고 이와 결부된 교회의 삶 역시 이분법적 사고의 틀 안에서 영위될 수밖에 없었다. 중세 전체를 통틀어 신학의 핵심을 이루는 윤리관, 교회관, 구원관, 신관 등은 바로 이런 이원론적 세계관의 이해 지평 안에서만 설명되고 실천되어졌던 것이다.
이런 이해 안에서 당시의 세계관은 이 세상이 저 세상을 위한 준비로서만 의미가 있을 뿐 단순히 짧게 지나는 과정으로서 그 자체로는 의미를 지닐 수가 없었다. 또 같은 맥락에서 하느님의 나라는 자연히 죽음 후의 실재이며 지금은 질곡일 뿐 미래 후세에 이루어질 구원을 준비하기 위한 의미 이외는 아무런 가치도 지닐 수가 없었다.5) 이와 병행해서 영은 가치 있는 것이요, 육은 무가치한 것에 중점을 두어 윤리관이 형성 실천되었고6) 성과 속의 구분은 교회적인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의 구분에 초점이 맞추어져 논의되었다. 그리고 역사는 단순히 수평적 연장선으로 차안과 피안의 구분 이외에는 별다른 큰 의미가 부여되지 않았다.

구원에 관한 논의에 있어서도 이원론적 구분은 명확했다. 의화(Justificatio)7), 신화(Divinisatio)8), 지복직관(Beatificatio)9) 등 이런 대표적 개념으로 설명되어졌던 구원에 관한 정의들은 현세와 하느님 나라를 분리시켜 서술하였을 뿐 아니라 지나친 사변적 개념화를 통하여 구원을 현실 삶과 괴리된 추상적 실재로 파악토록 만들어 놓았다. 자연히 일반인의 의식과 삶 속에서 구원은 ‘지금’ ‘여기’에서 현재화되는 구체적 실재(實在)요, 역동적으로 감지되는 현실적 체험이 아니라 현세적 삶과 무관한 추상적 개념으로나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하느님은 자연 현세와 무관한 피안의 하느님일 뿐, 역사(歷史) 안으로 개입하고 인간 삶 속에 현존하며 역사(役事)하는 성서에 나타난 하느님의 모습은 논의의 먼 뒷전으로 밀려나고 만다. 결국 성서에 계시된 하느님의 참 모습은 간과된 채 불변과 부동의 하느님으로서 피안에 안주하고 있는 개념적 하느님만이 전면에 부각되어 강조된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일반 신앙인의 의식과 교회적 삶은 탄력을 잃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2.2 경직된 교회관과 협의의 사목 이해
중세를 관통하는 교회관 역시 이러한 신학의 영향 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원론적 세계관 하에서 지상의 교회는 천상 교회의 대리요, 이런 한에서 지상의 교회가 지니는 권위 또한 천상의 권위를 대체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권위를 정당하고 올바르게 행사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제도적 장치를 잘 갖추어야 했고 이는 곧 교회의 외적 조직과 교계 제도의 강화로 이어진다.10) 처음 의도는 단순했고 필요에 의한 선의였으나 교회의 외적 규모가 거대해지고 시대가 거듭되면서 교회는 점점 외적으로 잘 조직되고 관리되는 교계 제도로 비춰지게 된다. 결국 교회는 잘 짜여진 교계 제도 안에 안주하게 되면서 성서가 보여 주는 ‘세상 속에 구원의 성사’라는 교회의 참 모습은 자취를 감추게 된다.

교계 제도가 부각되어 강조되는 교회관의 지속과 확대는 결국 교회 안에 성직주의(Clericalismus)를 확산시키는 원인이 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성직주의는 교계 제도를 구성하는 성직자들이 지니는 권위를 천상 교계적 권위를 대리하는 것으로 주장했었다. 이런 주장은 자연스레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에 이분법적 신분 구조를 만들어 내고 이를 성스러움과 속스러움의 이원론적 테두리 안에 결부시킴으로 해서 둘 사이의 괴리를 더욱 골 깊게 만들어 놓았다. 성직자는 성스러운 교회 내의 일에 그리고 평신도는 속(俗)에 해당하는 세상의 일에만 관심을 둘 것을 강조한다.11) 평신도는 교회의 일과 관련해서는 피동적 수혜자로서만 의미가 있을 뿐 능동적 참여자로서의 역할은 설자리를 갖지 못하도록 만드는 셈이 되었던 것이다.
이에 덧붙여 성직 중심의 교계 제도와 동일시되는 교회관에서 교회는 하늘 나라의 보화를 지상에서 간직하고 관리하는 은총의 보고로 이해되고 성직자는 그 은총의 관리자이며 평신도는 은총의 수혜자로 규정된다. 즉 지상의 교회에 보관된 천상의 은총은 성직자에 의해 합법적으로 집행되는 여러 성사들을 통해서만 평신도들에게 나뉘어 진다. 결국 평신도는 성사를 통해 성직자들에 의해 관리되고 은총을 선사받는 일방적 수혜자의 의미 이상이 되지 못한다. 이런 인식으로 인해 교회 안에 평신도들의 생동적인 참여와 책임 있는 역할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교회관은 교회의 사목 형태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난다. 교회는 천상 초원을 세상에 옮겨다 놓은 목장이요, 평신도는 양떼이고 성직자는 사목을 통해 양떼들이 풀을 잘 뜯도록 관리하고 보호하여 궁극적으로는 천상 목장에 들어 갈 수 있도록 양육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여기서 사목은 성사를 통한 영혼을 돌봄(Cura anima) 혹은 목자적 돌봄(Pastoral care)이라는 좁은 의미로 해석되어 정의된다. 그리고 이런 이유에서 사목은 성직자들의 행위, 그 중에서도 특히 성사 집전에 국한 될 수밖에 없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사목이 단순히 성사의 기계적 집행이라는 형식주의를 야기 시킬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다. 여기서 평신도의 지위는 항상 성직자에 예속되어 있는 것이었고 이런 한에서 당시 평신도에 대한 정의는 이성과 자유에 근거한 자율적 행동이라는 현대 의식과는 아주 동떨어진 사고(思考)였다 할 수 있다.

이러한 사목에 대한 이해가 총체적으로 그릇된 것이라 할 수는 없지만12) 그러나 성서에서 예수가 보여준 사목의 역동성을 담기엔 부족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고 성사의 거행에 있어 평신도들의 능동적인 참여와 사명 그리고 책임을 일깨우기엔 더 더욱 한계를 지닌 것이었다 할 수 있다. 결국 이와 같은 교회 이해와 사목 형태는 20C에 들어 급격히 변화된 시대적?사회적 상황에 직면하면서 그 타당성과 실효성에 대한 강한 의문을 유발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3. 구세사적으로 정향(定向)된 신학

위에서 약술한 바와 같이 기존하는 신학적 사고의 틀이 계몽주의와 자연 과학의 발달로 야기된 19C 말과 20C 초의 시대?사회적 변혁을 감당해 내고 해석해 내기에는 한없는 역부족이었다. 당시 변화된 상황은 신학과 교회에 하나의 도전이요, 위기 상황으로 인지되었다. 새로운 신학적 성찰과 교회의 변화는 피할 수 없는 것이 되었고 그 변화의 폭과 깊이는 당시 시대?사회적 변화에 상응하는 근본적이고 근원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었다.

3.1 원천으로부터의 쇄신
직면한 도전 그리고 위기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교회의 노력은 원천에 대한 숙고와 성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중세를 거치면서 등한시 되었던 원천에 대한 깊이 있는 새로운 신학적 성찰은 이 위기의 상황을 극복해 내기 위한 다양한 단초를 마련해 주었다. 원천에 대한 성찰에 있어 우선적인 대상은 교회와 신학의 원전(原典)에 해당하는 성서였다. 성서에 대한 새로운 연구는 그간 중세를 거치면서 교회와 신학이 얼마나 자신의 본질적 핵심인 구원 역사에 관한 문제들을 소홀히 하거나 간과했는지 속속 밝혀내기 시작한다.

히브리적 이해의 지평 속에 있는 성서는 세계를 이원론적으로 바라보지 않았고 인간 또한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놓지 않았다.13) 성서는 이원론적 세계관이 아니라 종말론적 세계관을 견지하면서 차안이 피안과 철저하게 구분되고 분리된 미래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이미 시작된 종말론적 현재임을 강조한다. 이런 성서적 사고 안에서 신관 역시 차안에 안주하는 부동(不動)의 하느님이 아니라 현재 안에 임재하는 하느님, 인간과 함께 살아 숨쉬는 역사의 하느님이 바로 신앙의 하느님임을 부각시킨다. 구원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도 기존의 오해를 불식시키기에 충분한 성과를 갖게 된다. 즉 구원 역시 저 세상에 유보되고 국한된 실재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능력과 하느님의 역사(役事)로 감지되는 현재임을 밝혀낸다.

원전의 연구 결과로 얻어진 이러한 새로운 이해들을 통해 이제 세계와 역사는 더 이상 아무 의미 없이 단순히 지나는 과정이거나 무가치한 현재가 아니라 하느님의 종말론적 구원 계획과 구원 역사가 구체화 되고 현재화 되는 구세사의 현장으로서의 중대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 받게 된다.14) 이는 또한 계몽주의와 자연 과학의 발전으로 크게 변화된 일반 의식 속의 세계관과 역사관에 상응하는 신학적 이해와 실천을 위한 토대를 마련해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렇게 새로이 구축된 신학적 이해 지평은 또한 교회의 자기 이해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연구 결과들은 결국 교회로 하여금 자신이 견지했던 기존의 신학적 주장들을 총체적으로 점검케 하였고 교회는 새로운 연구 성과들을 바탕으로 변화된 시대에 자신을 적응하고 쇄신하기 위한 공의회를 개최하여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교회의 국면 전환을 모색하기에 이른다.

3.2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관
‘신 신학 운동’으로 지칭되는15) 이러한 신학적 작업 결과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를 통해 종합되고 수렴되어 변화된 시대 안에 교회의 입지를 확보하는 데 커다란 공헌을 한다.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공의회의 주된 관심사는 빠른 시대의 변화에 교회가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자기의 주장이 어떻게 설득력 있게 이 시대에 선포될 수 있는지의 문제였다. 이는 자신의 실존과 직결된 절박한 물음이었고 자연스럽게 교회의 본질과 실천에 관심을 집중시키도록 하는 것이었다. 결국 공의회는 선행 연구의 결과인 구원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근거로 이런 시대의 요청과 관심에 부응하여 교회를 새롭게 조명하고 원천에 상응하는 새 교회상을 제시하기에 이른다.

공의회는 천지 창조에서부터 세말(世末)에 이르는 하느님의 원대한 구원 역사의 맥락에서 교회의 정체를 파악하고 정의한다.16) 이런 교회의 본질을 비유적으로 잘 표현하는 개념이 다름 아닌 ‘하느님 백성’이다.17) 인간을 구원하고자 원하시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맨 처음 이스라엘 백성에게 계시되고 구체화 한다. 당신이 지으신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맺고, 그 계약에 충실히 머무는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 ‘개입’ 하는 하느님이고 당신 백성 이스라엘을 ‘위한’ 하느님 그리고 그 백성과 함께 하는 ‘살아 있는’ 하느님이다. 이 하느님 백성 또한 현존하는 자신들의 하느님에게 희망을 걸고 잠정적인 것이긴 하지만 지금 여기에서 채워지는 희망을 구원으로 체험하며 감사하고 찬미하는 구원의 공동체로 자신을 이해하고 있었다. 바로 이 하느님 백성이 훗날 신약에 들어와 그리스도를 통해 온전한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는 교회의 원형이 되고 모델이 된다. 결국 공의회는 교회를 구원 역사 안에 내재되어 있는 하느님 사랑의 가시화요 구체적으로 지금 여기서 종말론적으로 선취되는 구원을 체험하는 하느님의 백성 그 자체로 정의한다.

교회는 이제 더 이상 지상에 옮겨 놓은 천상의 교계 제도이거나 후세의 하느님 나라를 위해 유보된 보화를 저장해 놓은 보고(寶庫)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제 교회는 그리스도의 파견과 성령의 역사를 통해 하느님에 의해 새로이 소집되고 형성된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이다. 하느님은 이 새로운 백성 안에서 옛 이스라엘인 당신 백성에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구원의 역사를 행하시고 구원의 순례를 지속하고 있는 이 백성과 ‘함께’ 그리고 이 백성을 ‘위해’ 현존하며 역사한다. 이런 하느님의 현존과 역사가 곧 하느님 백성에게는 지금 여기서 이루어지는 구원인 것이다. 바로 그 구원이 현재화 되고 선취되는 장(場)이 다름 아닌 새로운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교회인 것이다. 결국 공의회에 의하면 교회가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이 세상에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고 백성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구원을 선취하도록 하는 한에서 교회는 세상 안에 ‘구원의 성사’가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공의회는 교회가 지니는 구원의 성사적 측면을 강조하면서 교회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이 세상에서 구체적으로 실현하고 완성하기 위한 구원의 도구(Instrumentum Salutis)임을 분명히 한다.18)

이 같은 공의회의 교회관은 교회의 본질을 구원 역사적 관점에서 파악함으로써 교회에 본래적으로 함축되어 있는 구원의 역동성을 부각시키고 신자들로 하여금 ‘지금’, ‘여기’에서 선취되는 구원에 동참할 수 있는 가능성을 크게 열어 놓는 것이었다. 결국 하느님 백성인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공동체를 통해 현존하는 구원에 참여함으로써 활력을 얻고 이를 통해 교회는 세상에서 더욱 구원의 성사가 될 수 있다는 공동체 신학의 근본 기초가 바로 이 공의회에 의해 마련된 것으로 평가된다.

4. 교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의 공동체

공의회에 의해 새롭게 정의된 교회 이해를 이제 어떻게 구체적인 모습으로 표현해 내고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을까? 즉 어떻게 오늘의 교회가 이 세상 안에 구원의 성사요 구원의 공동체가 될 수 있을까? 바로 이런 구체적인 물음이 공의회가 폐막된 이후 교회 안에 최대의 현안 문제로 떠오르게 된다. 각 지역 교회들은 지역 시노드를 개최하여 공의회의 구체적 실천을 모색하였고 신학적인 후속 작업도 활발하게 진행하였다. 이런 여러 노력 가운데 크게 눈에 띄는 것이 다름 아니라 공의회가 제시하는 구원의 성사로서의 교회관을 ‘공동체’를 통해 구체화 하고 공동체의 삶을 통해 실천하려는 신학적 작업과 실천적 노력들이라 할 수 있다. 즉 공동체는 단순히 교회를 지칭하는 새로운 용어만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이 지니는 구원의 역동성과 세상 안에 구원의 성사로서의 교회 모습을 이 공동체에 담아 표현하려는 교회의 구체적인 쇄신 작업이라 할 수 있다.

4.1 공동체 신학과 그 취지
공동체 신학은 근본적으로 완전히 쇄신된 교회의 구원사적 자기 이해와 교회의 자기 실현을 지향하고 있다. 공동체란 용어는 새로이 만들어진 특수 개념이 아니라 거의 모든 성서 번역본에 교회라고 번역된 성서상의 용어 Ekklesia를 교회(Kirche 혹은 Church)라 번역하지 말고 공동체(Gemeinde 혹은 Community)라 번역해야 한다는 것이다.19) 이런 주장은 부분적이고 지엽적인 교회 쇄신을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용어 변화를 통해 변화된 시대에 걸맞는 총체적인 교회 이해와 쇄신의 문제를 다루고자 하는 의도를 보여 주는 것이다.

공동체 신학의 주장에 의하면 그동안 공의회 이전까지 중세를 관통하여 내려온 교회의 모습은 성서에서 제시된 교회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그러한 교회 모습 속에서 교회 안에 체험되던 구원의 역동성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교회가 교계 제도와 동일시되면서 교회를 정의하고 설명함에 있어 교회의 구조적이고 법적인 측면만 부각되어 강조되었다. 이로써 교회라는 용어가 담고 있는 본래의 성서에 나타난 구세사적 의미가 훼손되고 왜곡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교회라는 용어를 그대로 쓰면서 교회를 쇄신하고 성서의 교회 모습을 재현하기에는 이 용어가 시대?사회적 부하를 너무 크게 안고 있어 한계를 지닌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의 총체적 쇄신을 위해서는 Ekklesia를 성서적 의미에 맞게 공동체로 번역하여 사용하는 것을 통해 그 용어가 지닌 본래적 의미를 되살리자는 것이다.

물론 이런 주장이 단순히 용어상의 번역을 문제 삼고자 한 것은 아니다. 이런 용어의 변화를 통해 앞서 서술한 것처럼 성서적 의미에 상응하는 구원 역사적 관점에서 교회를 근원적으로 새롭게 이해하고 쇄신하자는 취지가 담겨 있다. 즉 교회가 공동체로서 성서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하느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이미 이 세상에서 선취한 종말론적 구원을 향유하는 장(場)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지금 여기서’ 선취되고 향유되는 ‘구원의 장(場)’으로서의 교회의 모습을 가장 적합하게 표현해 낼 수 있는 개념이 다름 아닌 ‘공동체’(Ekklesia)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개념이 초대 교회의 모습을 오늘에 가장 잘 재현해 낼 수 있는 것이고 또 현대 의식의 이해 지평에도 훨씬 더 부합된다는 것이다.

성서에서 보여지는 공동체는 우선 일차적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인 ‘믿는 사람들의 모임’(Ekklesia)이요, 하느님의 백성(Qahal Jahwe)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다 함은 인간을 향해 직접 건네시는 말씀 그 자체 뿐 아니라 인간을 위해 역사하신 하느님의 구원 사건을 듣는 것이다. 이 들음은 또한 단순한 청각적 들음 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 들음을 통해 공동체로 모인 하느님의 백성은 하느님의 말씀과 구원 역사를 기억(Anamnesis)한다.20) 하느님의 말씀과 역사(役事)는 이 기억을 통해 공동체 안에 현재화 되고 또 그 기억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느님 자신과 역사를 이루시는 하느님의 능력이 그 공동체를 통해 현존으로 체험된다.21) 이처럼 성서에 나타난 공동체들은 모든 하느님의 백성이 공동체의 형성과 삶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그 공동체를 통해 하느님의 현존과 하느님의 능력(구원)을 체험하고 향유하는 생동감 넘치는 구원의 공동체(구원의 場)였다.

성서가 보여 주는 이 같은 교회의 본질적 모습을 변화된 오늘의 시대 상황 안에 어떻게 재현할 수 있을까? 그 구원의 공동체가 지녔던 활력과 역동성을 오늘에 어떻게 되살릴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은 분명 교회의 쇄신에 있어 단순한 지엽적 질문일 수 없는 것이었다. 공동체 신학은 이러한 물음이 교회의 전반적인 구조와 제도, 전례와 신심 생활을 포함한 삶의 양식 그리고 기존하는 사목 방법에 대한 총체적 숙고와 성찰을 촉구하는 하나의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도전이 성직자나 평신도 혹은 수도자 중 어떤 한 부류에만 국한된 채 해당되는 것일 수는 없다. 공의회가 강조하는 바처럼 교회는 모든 하느님의 백성이 이루는 공동체이기에 그 안에 너와 내가 따로 없이 공동으로 이 도전에 응답해야 할 책임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한다. 공동체 신학은 바로 이러한 공동의 노력을 통해 비로소 구원을 중재하고 구원에 참여하는 구원의 공동체로서 ‘하느님의 공동체’(Ekklesia tou Theu)는 형성되고 이루어 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4.2 사목의 원리로서의 공동체
공동체는 이처럼 교회가 ‘무엇이냐?’라는 교회의 본질적 이해에 대한 교회론적 답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교회가 ‘어떠해야 하느냐?’라는 실천적 질문에 대한 사목 신학적 답을 제공해 준다. 즉 어떻게 교회가 변화된 오늘의 시대 상황 안에 자신의 본래적 역동성과 생동감을 표현해 낼 수 있을까 하는 사목적 물음에 공동체 신학은 그 기준과 목표를 설정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공동체는 단순히 하나의 새로운 신학적 교회 이해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의미에서 하나의 새로운 사목 원리가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선 공동체 신학은 ‘사목’을 구원 역사적 관점에서 조명하고 이전보다 더 광범위한 의미로 해석하고 정의한다. 이미 전술한 바와 같이 이전 이원론적 세계관 하에서의 사목 이해는 성직자들의 올바른 성사 거행을 통해 교회에 위임된 은총을 잘 관리하고 분배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22) 이것이 곧 내세를 위한 성실한 준비를 의미했고 그래서 더 사목은 좁은 의미에서 ‘영혼을 돌보는 일’(Cura anima)에 국한되어 이해되었다. 당연히 이런 사목에서는 성직자들의 역할이 부각되고 평신도는 일방적 수혜자로만 머물 수밖에 없는 수동적 삶의 형태가 평신도들의 신앙 생활 속에 넓게 자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비해 구원 역사적 관점에서 조망하는 넓은 의미의 사목은 예수의 삶을 모델로 삼아 그가 열두 제자 공동체와 함께 행한 구원의 행적들을 오늘의 공동체 안에 재현해 내는 것에 관심을 집중시킨다. 즉 예수의 삶이 지금 여기에 현존하는 하느님의 구원을 가시화 하고 중재하는 것이었고 그것이 사목의 원형에 해당하는 것이라면 그의 삶을 모범삼아 이 세상에 구원을 중재하고 가시화 하는 교회의 모든 삶과 행위들을 넓은 의미에서 사목이라 정의하는 것이다.23) 이런 입장에서 보면 예수의 삶을 뒤따르고 그 삶을 오늘의 시대에 재현하도록 불리움을 받고 그에 응답한 사람들이 하느님의 백성이라면 그 하느님 백성 모두가 신분의 구분 없이 이 세상에 구원의 중재를 위한 사목에 동참할 수 있는 자격과 사명을 부여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이제 평신도들은 교회의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 수동적 자세로만 머물 것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이 세상에서 구원의 체험과 중재를 위해 투신하고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공동체 신학은 사목에 있어 평신도의 역할을 부각시키고 이를 통해 공동체에 생동감을 불어 넣고자 한다.

기실 예수가 원했고24) 그의 뜻을 진정으로 재현하는 구원의 공동체는 모든 하느님 백성이 이 구원의 중재를 위해 공동으로 투신하고 그를 위한 책임을 분담함으로써 비로써 형성되어 질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투신과 책임의 분담을 통해 하느님의 백성은 공동체 안에 현존하고 공동체를 통해 중재되는 하느님의 구원을 향유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바로 공동체는 구원을 중재하는 모든 사목적 행위의 기준과 목표가 되는 것이고 또한 원리가 되는 것이다. 사목의 원리로서 공동체는 결국 모든 하느님 백성으로 하여금 구원의 공동체를 만드는 데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하고 그 참여를 통해 선취되는 구원을 체험하도록 하는 데 모든 사목적 관심과 방법을 집중시킨다.25) 이런 하느님 백성의 능동적 참여와 구원 체험이야 말로 공동체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것이요 이를 통해 비로소 교회는 활력과 역동성을 지닌 구원의 공동체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또 그런 한에서 교회는 공동체로서 세상 안에 '구원의 성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4.3 공동체의 구체적 실천
잘 알려진 것처럼 공동체의 구체적 실천 사례 중 시기적으로 가장 앞서 전개된 남미의 “기초 공동체” 운동들은 이러한 신학적 기반들을 근거로 하여 후에 만들어진 공동체가 아니다. 이 기초 공동체는 이론에 앞서 실천이 선행한 경우이다. 대다수 남미의 국가들이 처한 역사적 상황과 지역적 특수성은 그들이 지닌 풍요로운 문화와 풍부한 자원에도 불구하고 빈곤과 억압이라는 비구원의 상황을 야기시켜 놓았다. 오랫동안 비구원의 상황 하에서 고통을 견뎌내면서 그들은 복음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되었고 그들의 복음적 숙고는 구원이 차안의 실재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선취되는 종말론적 현재임을 자각하게 한다. 이러한 자각은 사람들로 하여금 복음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형성하도록 하였고 그 사람들은 이 공동체를 통해 자신들이 경험하는 비구원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함께 힘을 모으고(연대, Solidarity) 투신함으로써 하나 둘 씩 비 구원의 상황이 극복되어지는 구원 체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구원 체험은 그들로 하여금 결속력을 더하게 하고 그 공동체는 활력과 생동감을 얻게 된다. 물론 광활하게 넓은 땅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한 사제의 수 때문에도 현실적으로 사제 없는 이런 공동체의 확산은 탄력을 잃어가던 남미 교회에 커다란 활력을 불어 넣기에 충분한 것이었다.26)

이렇게 이론적 숙고에 앞서 현실적 필요에 의한 구체적 실천이 앞선 남미의 기초 공동체는 자신들 안에서 뿐 아니라 다른 대륙에도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킨다. 문제는 이들의 실천을 설득력 있게 설명해 내기 위해서도 또 그들의 실천이 지속성을 갖고 논리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이런 실천적 사례들을 이론적으로 정리하는 신학적 작업을 필요로 하게 된다. 여기에 많은 남미의 신학자들이 동참하게 되고 그들의 작업을 통해 ‘해방 신학’이라는 남미의 특수성이 반영된 신학적 관점이 차츰 자리를 잡게 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이 해방 신학의 근저에는 앞서 언급한 구세사적으로 정향된 역사 신학이 놓여 있다. 즉 하느님의 역사 또는 하느님의 능력으로서의 구원이 저 세상의 실재만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의 구체적 응답과 참여를 통해 지금 여기서 선취되고 현실화 되는 구원이라는 것이다. 하느님의 백성인 공동체가 함께 참여하고 응답하는 곳에 비 구원의 상황을 극복해 주는 하느님의 현존과 역사(役事)가 체험되며 그것이 곧 공동체 즉 하느님 백성 모두에게는 지금 여기서 선취되어 성사적으로 현시되는 구원의 체험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이제 이러한 실천과 정리된 신학이 남미와 유사한 상황에 처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나라 등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들 역시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비구원의 상황이라 인식하고 역사 신학의 취지를 근거로 하여 자기 나라의 고유한 상황과 문화에 걸맞는 신학적 이론과 실천적 공동체 모형들을 제시하고 구체화 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물론 이런 설명이 공동체가 빈곤과 억압의 상황에 처한 나라들에게만 필요에 의해 생겨난 것이고 그러기에 공동체는 그런 나라에만 해당되는 것이라고 폄하시키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처한 비 구원의 상황이 이러한 숙고를 하도록 한 촉매제는 되긴 했지만 그 주장과 실천의 근거에는 공의회가 제시하는 신학과 교회관이 자리 잡고 있고 그래서 오히려 남미를 중심으로 한 여러 대륙들의 공동체 운동들은 공의회가 제시하는 교회관을 구체적으로 더 잘 실천한 모델 사례 중 하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도 외적 상황은 다르더라도 유럽의 교회가 역으로 이 공동체를 통한 사목 방법을 활용하여 교회에 활력을 불어 넣으려는 시도를 하는 것은 우연의 결과라 할 수 없는 것이다.

4.4 미래를 위한 한국 교회의 새로운 모형으로서의 공동체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공동체는 변화된 시대 및 사회 환경에 자신을 적응시키기 위한 교회의 쇄신된 자기 이해요 동시에 자기 실현(사목)을 위한 사목의 원리이다. 이제 문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근거를 두고 그 후속 시대에 성장?발전되어 오늘에 이른 공동체의 이론과 실천들이 다가올 교회의 미래를 위해 어떤 의미를 갖느냐 하는 물음이다. 그리고 공동체가 교회의 새로운 실현 양식으로 미래의 사회에 호소력을 지닐 수 있을지의 물음이다. 특별히 이러한 질문을 단편적이나마 한국 교회 상황과 연관시켜 숙고해 보는 일은 한국 교회의 미래를 위해서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사회의 역동성과 변화는 그 양이나 속도에 있어 세계의 어느 나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특이하다. 한국 사회는 농경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탈바꿈한지 얼마 안 된 지금의 시점에서 다시금 그 산업 사회를 벗어나 정보화 사회로 진입하는 전환기적 혼돈 상황을 비교적 짧은 시기에 연이어 체험하고 있다. 이러한 역동성과 변화에 비례한 그만큼 또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안이 상존한다 할 수 있다. 윤리와 가치관의 혼돈 현상은 차치하더라도 가시적으로 보여지는 빠른 템포의 도시화와 그에 따른 주거 이동, 삶의 세분화와 전문화를 통한 생활 양식의 다양화 그리고 정보의 홍수와 인터넷 매체의 발달로 더욱 촉진될 개인화 경향 등만 보더라도 미래의 한국 사회가 얼마나 다변화 되고 다원화 되어 있을지 가히 짐작하고도 남는다.27)

변화된 미래 모습을 분명하게 제시할 수는 없지만 확실하게 예측되는 한국 사회에 불어 닥칠 변화의 거센 소용돌이 속에 교회는 무풍지대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그것이 아니라면, 미래를 위한 한국 교회의 실존 전략은 무엇일 수 있을까?

이 어려운 질문에 대한 화두 같은 대답으로서의 표제어가 공동체이고 그 공동체 이해 속에 함축된 ‘다양성 속의 일치’(Enheit in Vielfalt)이다. 다변화 되고 다원화 될 미래의 삶의 양식이나 방법 그리고 사회 형태와 가치관들… 교회 역시 이에 상응하는 다양한 삶의 구조와 표현 양식 그리고 다양한 사목 형태를 가질 수 있어야만 변화하는 시대 상황에 자신을 적응시키고 자신의 생명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Ecclesia semper reformanda). 물론 이 교회의 다양성이 교회의 본질로부터 유린된 채 그 본질을 호도하거나 왜곡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다양성은 일치의 중심인 그리스도를 정점으로 하나인 공동체에 수렴되고 일치되어 있을 때 의미를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다양성 속의 일치를 가능하게 해 줄 교회의 자기 표현 양식이 다름 아닌 공동체이다. 그 이유는 공동체가 이뤄지는 삶의 자리가 일정하게 정해진 제한된 지역(Territorium)일뿐 아니라 삶의 분야와 양식(Function)에 따라 하느님의 백성이 모여 있는 곳에 위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를 통한 사목 방법이 지역의 원리(Territorial Prinzip)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기능의 원리(Functional Prinzip)28)를 포괄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와 삶의 세분화 및 다양화에도 불구하고 세분화된 사회의 각 영역 그리고 다양화된 삶의 자리가 곧 공동체의 현존 장소일 수 있다. 이렇게 공동체가 현대 사회에 상응하는 다양성과 역동성을 확보하는 한에서 오늘날 교회의 대안일 수 있고 교회에 생명력과 활력을 불어 넣어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다양한 공동체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하나인 전체 공동체와 연결되어 있어 일치를 보존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미래의 한국 사회에 있어 공동체가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 또 하나의 다른 이유는 공동체가 구원을 선취하고 중재하는 場으로서 자신을 인식하고 실현한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앞서 언급한 두 번의 엄청난 전환기적 사회 변화를 체험하는 동안 한편으로는 엄청난 발전을 실감하면서도 다른 한편 그 발전 이면에 잠재된 여러 형태의 ‘비 구원 상황’을 체험하고 있다. 이전에 남미가 처했던 상황과 외적인 모양새는 같지 않지만 내적인 내용 면에 있어서는 유사한 소외와 단절 그리고 억압과 예속 등의 비 구원 상황이 지금 한국 사회에 산재해 있다.29) 이러한 상황 인식에서 비롯되는 현대인들의 구원에 대한 요청에 적합하게 응답할 수 있는 전략이 다름 아닌 공동체이다. 즉 다양한 삶의 영역과 기능에 따라 그 삶의 현장에서 유연하고 탄력 있게 형성될 수 있는 공동체는 그 삶의 자리가 하느님 백성으로 하여금 복음적 투신과 참여의 현장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하느님 백성의 복음적 투신과 참여를 통해 그 공동체는 구원을 체험하고 구원을 중재하는 장(場)이 될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또 공동체는 교회의 본질을 잘 반영하는 교회상이요 다양화 될 한국의 미래 사회 변화에 적합한 교회의 표현 양식이며 교회의 새로운 모형(패러다임)이라 할 수 있다.

5. 글을 맺으며

본 글은 그동안 한국 교회에서 수행되어 온 ‘소공동체 사목’을 성찰하고 미래의 진로와 발전을 모색하는 데에 있어 ‘소공동체 사목’의 근거가 되는 공동체에 관한 신학적 의미를 탐구함으로써 그 좌표 설정에 작게나마 보탬이 되고자 의도되었다. 소공동체 사목의 지속적 성장과 성숙을 위해서는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 제시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실천적 방법들이 숙고된 신학적 기반에 근거를 두지 못하면 지속성과 생명력을 유지할 수 없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본 고는 교회를 공동체로 이해하고 실현하고자 하는 신학적 배경과 의미 그리고 공동체가 교회의 미래를 위해 지니는 신학적 의미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하였다. 이런 서술을 통해 본 논문은 공동체가 교회의 본질에 부합하고 변화된 사회 상황에 상응하는 교회상이며 미래의 교회 이해와 실현을 위한 새로운 사목 원리요 교회의 새로운 모형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본 글은 공동체 신학이 함축하고 있는 광범위한 내용을 제약된 지면에 모두 담아내는 데에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공의회 이후 봇물처럼 터진 공동체 신학에 대한 논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것이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소공동체 사목이 시작된 이후에도 이에 대한 신학적 성찰은 상대적으로 빈약한 실정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약하나마 이 글이 소공동체 사목의 미래와 성숙을 위한 신학적 성찰의 작은 밑거름이 되길 기대한다. 그리고 한국 교회의 소공동체 사목이 이러한 신학적 배경을 기반으로 구원 역사와 구원 중재라는 사목의 더 큰 틀에서 즉, 교회의 자기 실현(구원 중재)을 위한 기본 기능인 Martyria, Liturgia, Diakonia, Koinonia를 활용하여 교회의 총체적 삶을 숙고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초석이 될 수 있길 희망한다.

‘신학적 관점에서 살펴본 한국 천주교 소공동체’에 대한 논찬

김정용 신부(광주 대교구)

I. 발제 논문의 주제

발제 논문으로 제시된 본래 주제는 ‘신학적 관점에서 본 한국천주교 소공동체’이다. 그리고 발제자가 제시한 또 다른 주제는 ‘공동체: 교회의 이해와 실현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그러나 논평자의 견해로는 이 두 주제가 서로 어떤 상관성이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본래 주제 자체에 따르면 지난 10여 년 동안 전개되어 온 한국 천주교 소공동체 사목의 현황을 신학적으로 성찰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여겨진다(발제자는 이를 분명히 의식하고 있다. 150쪽 참조). 그러나 발제자가 본래 주제와 더불어 새롭게 제시한 주제는 전혀 다른 맥락이라는 것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발제 논문의 내용을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아쉽게도 발제 논문에는 한국 천주교 소공동체에 대한 신학적 진단이 결여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발제자는 “실천적으로 확산된 ‘소공동체 사목’의 지속적 추진과 정착을 위해 그에 상응하는 이론적 성찰과 신학적 기반이 얼마나 숙고되어 있는지”(135쪽) 묻는다. 이 물음은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나온 것인가? 발제자가 던지는 물음의 근거불명은 문제 제기에서도 분명하게 확인된다.

II. 발제 논문의 문제 제기

발제자는 사회 현상에 대한 매우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언급으로부터 문제를 제시하면서 급속한 사회 변화의 한복판에 존재하는 교회가 과연 “기존하는[발제자에 따르면 전통적인] 교회 현존 양식과 삶의 방식”으로 이 변화를 감당할 수 있는지 의문에 처한다(134쪽 참조). 그러나 발제자의 문제 제시와 물음은 ‘문제 제기의 내용’ 자체로 보아 구체적으로 무엇을 지향하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앞서 언급한 대로 문제 제기가 피상적인 현상 읽기 차원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지적하고 싶은 것은 교회가 어디로 가야하는지는 현재 교회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진단과 함께 수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발제 논문에는 단지 변화되고 있다는 것 외에 사회 현상 변화가 내포하고 있는 징표에 대한 구체적 분석이 없다. 이러한 사회 현상 읽기 때문에 반듯하게 보이는 발제자의 물음 자체마저도 마치 고립된 것처럼 여겨진다.

매우 피상적인 세계 현상에 대한 진단으로부터 시작되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라는 역을 거쳐 공동체 신학이라는 내용물을 싣고 곧장 한국교회의 소공동체에 안착한 논문의 속도는 마치 추상화를 보는 듯한 현기증을 느끼게 한다. 발제자는 한국 천주교 소공동체의 구체적 맥락에 대한 진단을 무사 통과한 후 그에 대한 구체적 분석도 검증도 없이 곧장 ‘실천적으로 확산된 한국 교회의 소공동체 사목에 대한 이론적 성찰과 신학적 기반’을 문제 삼고 ‘신학적 숙고 없이는 소공동체 사목의 지속성과 방향’은 불투명할 것이라는 진단을 내놓는다(135쪽 참조. 또한 결론부분인 149쪽 참조). 그리고 발제자가 내놓는 처방이 이른바 ‘공동체 신학’이다.

그러나 발제자의 의도, 즉 ‘소공동체 사목’의 근거가 되는 공동체에 관한 신학적 의미를 탐구함으로써 그 좌표 설정에 작게나마 보탬이 되고자”(149쪽) 한 의도는 결정적으로 “그동안 한국 교회에서 수행되어 온 ‘소공동체 사목’을 성찰”(149쪽. 이 성찰이 발제 논문의 어디에서 이루어졌는가?)하는 과정이 생략되었기 때문에 이 공동체 신학이 어디에 땅(토대)을 두고 이루어진 작업인지 그 정체를 공감하기 어렵다.

발제자가 언급한 바대로 신학적 숙고 없이 구체적 실천의 방향을 가늠하기는 어렵다. 그와 동시에 논평자는 신학적 이론 역시 구체적 실천의 현장 속에서 익혀서 나온 것이 아니면 그 역시 생명력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III. 한국 교회의 소공동체 사목을 위한 신학적 기반으로서 “공동체”?

1. 한국 교회의 사회적 환경과 대안으로서 공동체
발제자는 한국의 사회적 상황과 관련해서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공동체론의 당위성을 정당화 한다. 우선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변화와 다원주의적 경향 때문이다. 농경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그리고 다시 정보화 시대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 속에 있는 한국 사회는 도시화, 생활 양식의 다양화, 그리고 정보와 매체의 발달로 인한 개인화 경향의 특성을 띠고 있다(147-148쪽 참조). 발제자에 따르면 이러한 사회적 환경의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한국 교회의 실존 전략’은 바로 ‘공동체’이다.30) 그리스도와의 일치 안에서 다양성을 기반으로 하는 교회 공동체는 일정한 지역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지역의 원리)와 삶의 분야와 양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공동체(기능의 원리)를 포괄하고 있어 현대 사회가 요청하는 다양성과 역동성에 상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148쪽 참조).

공동체론 주장의 또 다른 사회적 맥락은 한국 사회의 변화와 발전 과정에서 빚어진 여러 형태의 심각한 ‘비구원적 상황’이다.31) 이런 상황에서 교회 공동체가 복음적 투신을 통해서 구체적 삶의 현장과 역사 속에 현존하는 하느님의 구원을 체험하고 증거함과 동시에 현세 질서의 복음화와 하느님의 구원 체험을 세상 안에서 매개하는 역동적 구원의 공동체로서 존재해야 하는 것은 교회의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사명과도 상응한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공동체는 한국 교회의 새로운 모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148쪽 참조).

논평자가 보기에 발제자의 한국 사회 분석은 물론이고 그에 따른 공동체 교회론의 논거 역시 엄밀하거나 명료하지는 않다. 그러나 한국 사회 안에서 교회의 본질과 사명을 ‘공동체’라는 교회 스펙트럼을 통해 바라보려고 하는 발제자의 의도는 장차 한국 교회에서 더 심도 있게 숙고되고 논의되기를 바라고 싶다.

실천적 관점에서 본 한국 천주교 소공동체 - 곽승룡 신부

실천적 관점에서 본 한국 천주교 소공동체 - 곽승룡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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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여는 말
2. 새 천년기 교회
2.1 복음화는 공동체 사명
2.2 삼위일체의 친교 공동체, 새 복음화
2.3 탈조직적 친교
3. 한국 천주교 소공동체
3.1 왜 소공동체인가? 복음화
3.2 소공동체는 교회
3.3 각 교구의 소공동체 사목 현실
4. 본당 사목 구조
4.1 사목 구조
4.2 사목 분과의 전문성과 투명성
5. 교회 구조와 운영을 위한 제안
5.1 봉사자 선발과 양성
5.2 교회직 수여
6. 복음화 교육을 위한 네트워크
7. 신심 단체의 영성 네트워크
8. 공동체 네트워크와 사목 전망
8.1 신심 단체와 사목 협의회와 소공동체의 네트워크
8.2 공동체 사목의 전망
9. 닫는 말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상 실현을 위한 단체와 소공동체 관계모색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상 실현을 위한 단체와 소공동체 관계모색

곽승룡(대전 가톨릭대학교 교수 ‧ 사목기획국장 ‧ 신부)

1. 들어가는 말

하느님께서는 본디 인간을 혼자 있도록 부르시지 않고 함께 공동체로 살아가도록 부르셨다.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아 하느님께서는 하와를 창조하여 함께 도우며 살아가도록 가족 공동체를 창조하셨다. 성경에서 하느님의 구원은 바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와 그 사람들이 모여 이루는 공동체와 하느님의 관계 안에서 구현되어 나타나고 있다. 창조 때 아담과 하와를 함께 창조하신 것에서 이스라엘 성조들,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공동체로 묶어서 가나안 땅으로 불러내신 것뿐만 아니라 구세사 전체가 하느님과 공동체와 관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결정적으로 신약에서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할 구세주로서 마리아 요셉을 부모로 하는 가족 공동체에서 태어 나셨고, 가정 공동체에서 영에 이끌려 자라셨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이루시면서 제자 공동체를 이룩하셨고, 결국 수난의 파스카를 통해 부활하셔서 사도공동체가 형성되었으며, 성령을 보내시어 교회 공동체를 이룩하셨다. 한 마디로 하느님께서 인간을 공동체로 살아가도록 부르시고 이루시며 나아가도록 초대하신 것이다. 소공동체는 하느님께서 원하신다는 것이다.

교황 베네딕토16세께서 첫 회칙을 발표하시면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을 말씀하신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회칙을 발표하셨다. 바로 성경에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공동체는 바로 사랑의 공동체이시다. 구약과 신약 그리고 초기 교회부터 지금까지 교회 곧 하느님께서 부르신 공동체는 하느님의 사랑, 아가페를 살아가는 공동체를 살아가야한다. 따라서 소공동체를 이루어 나가는 모든 분야에서 하느님께서 원하신 사랑으로 실현해야 할 것이다. 소공동체 연구, 방법, 실행, 사목, 교육 등 모든 것은 복음적 사랑으로 실현해 나가야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친교의 공동체로서의 교회상을 구현하고 서울대교구 시노드 정신을 계승하여 함께하는 교회, 참여하는 교회를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통합사목연구소는 교회의 현안과 미래에 대한 사목비전 및 정책을 연구하여 교구 발전을 위한 실천적인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취지에 따라 소공동체 사목 현안 가운데 중요한 부분에 관련되어 있는 단체와 소공동체 관계모색은 이 시대와 미래 사목의 본질 가운데 한 가지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 주제를 전개하기 위해 먼저 교회, 본당의 어원과 역사적 기원을 살펴보고, 본당유형의 신학을 제시한 다음, 세계 교회에서 발생했던 공동체운동 곧 라틴 아메리카(BCC)와 아프리카(SCC) 그리고 아시아(AsIPA)에서 찾아볼 수 있는 새로운 교회상 실현 과정에서 그 주역을 살펴볼 것이다. 그런 다음 본 주제에 대한 신학적 성찰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친교 신학적 관점에서 살펴보고, 끝으로 본 주제에 대한 기존의 의견들을 간략히 살피면서 복음적 조화와 균형의 공동체 형성을 그 대안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2. 본당의 역사

2.1. 본당 용어의 기원

지금의 본당은 길고 복합적인 역사적 발전의 산물이다. 본당의 기본윤각은 먼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믿는 이들의 신앙과 이들이 살아온 역사와 문화적 조건에 의해서 그 형태가 이루진다. 본당은 그리스어 동사 paroikeo에서 유래된 것으로 그 의미는 ‘가까이 또는 옆에 살다.’ ‘시민권 없이 외국인 또는 이방인으로 살아가다.’이다. 이 동사는 70인역의 구약에서 60번 정도 사용되었고 일반적으로 ‘외국에 일시적으로 거주하다.’ ‘외국인으로 있다.’라는 의미로 주로 나타난다. 구약에서 paroikia는 ‘ 자기 집과 고향을 떠나 외국 땅에서 시민권이나 거주권 없이 유랑하거나 생활하다.’는 뜻이다. 아브라함은 이집트의 외국인 paroikos(창세17,10), 롯도 소돔에서 이국인 paroikos(창세19,9)이며, 이사악 역시 카나안에서 외국인이었다.

2.2. 본당의 기원은 신앙

paroikia 가 그리스말이면서 그것의 종교적 의미는 히브리 공동체의 신앙 경험에서 온 것이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공동체의 기원에는 세 가지 인자가 있다. 첫째 부르심, 둘째 약속, 셋째 계약인데 아브라함과 그의 백성은 늘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자로 머무름을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본당을 형성하는 것은 언젠가는 되돌려줘야 하는 빌려온 땅에서 살아가는 순례하는 공동체라고 보아야 한다.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히브리 공동체의 부분을 형성하려면 땅이 아니라 신앙을 통해 계약을 맺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계약은 땅의 주인들이 아니라 임시 머무르는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다. 땅이 아니라 신앙이 계약된 공동체를 일치하게 한 것이다.92)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참 본당을 형성하였다. 이방백성 가운데 노예로 살면서 그들은 약속의 땅을 향해 순례를 지속적으로 갈망하면서 계약에 믿음 충실하였다.

2.3. 본당은 공동체

본당의 또 다른 의미는 ‘모임’이다. 이 말은 그리스말 ekklesia, 히브리말 qahal의 어원적 기원을 가지고 있는데, ‘모임’이라는 히브리적 이해로부터 온 종교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구약에서 모임의 뜻은 네 가지 독특한 활동의 결과를 내포한다. 첫째 모임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백성의 최고 권위에 의해 함께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둘째 하느님 말씀과 설명에 귀 기울이는 것이며, 셋째 어떤 종교적 행위 희생제사로서, 강복 또는 감사로 하느님 말씀에 응답하는 것이다. 넷째 모임은 공적 감독에 의해 파견된다.

신약에서 본당은 드물게 사용되는데,93) 그 뜻은 외국 땅에서 거주하는 외국인으로서 구약에서 발견되는 뜻과 연결된다. 또 한편 매우 신비적인 의미로 나타나고 있는데, 그리스도인이 알고 있듯이 세상을 꾸려가는 인간의 삶은 시대의 본질을 살아가는 것으로 그가 태어난 참 아버지의 나라가 하늘인 것이다. 그는 순례자로서 땅 위에 있는 것이다. 신약에서는 교회와 본당의 의미가 주님께 영원히 돌아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이 땅이 영원한 고향이 아니라 순례하는 곳으로서 본당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신약에서 본당은 예배하는 장소로서 정해진 장소 주변에 살고 있는 이웃들의 공동체가 아니다. 오히려 이 세상 안에서 순례하는 이방인으로서 살아있는 신앙 공동체이다.94)

2.4. 그리스도교 초기 공동체

공동체의 신앙은 그들이 모여 있는 장소보다 더 중요하다. 곧 예루살렘 공동체는 기도를 위해 모이고, 말씀봉사가 다른 세 장소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1. 성전(사도2,4), 2. 이스라엘과 어떤 지속성을 가르침 3. 솔로몬 성전의 현관 위(사도5,12)

어디서 모이든지 상관없이 신약의 공동체는 세 가지를 제시한다. 1. 설교 2. 예배 3. 사목적 돌봄. 물론 사도들은 설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사도6,2-4) 바오로 공동체에서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말씀 선포를 위해 책임을 나누었다. “그러니 형제 여러분,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이 함께 모일 때에 저마다 할 일이 있어서, 어떤 이는 찬양하고 어떤 이는 가르치고 어떤 이는 계시를 전하고 어떤 이는 신령한 언어를 말하고 어떤 이는 해석을 합니다. 이 모든 것이 교회의 성장에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1코린14,26)

신약에서 교회는 본당(paroikia)과 교회(ekklesia) 모두를 표현하기를 선호한다. 먼저 순례하는 공동체 관점(본당)과 하느님 집의 식구와 성인들의 동료시민으로서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바라보는 관점(교회)등 이 모든 것이 본질적으로 기술적인 의미가 아닌 보다 정의개념을 뛰어넘는 상징적의미로 나타나고 있다.

첫 그리스도 공동체는 예루살렘, 안티오키아, 코린토, 에페소 등 주요도시에서 형성되었다. 초기 그리스도교회는 자체로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고 성서학자 브라운(Raymond Brown)은 말한다.95) 물론 초기 교회에서는 조직화된 교회 형태가 세워지지 않았다. 초기에 가족들의 소공동체는 말씀과 기도, 봉사를 위해 집에서 모였다. 그런 가정교회들은 60명보다 약간 작은 단위로 모였다. 이 가정교회는 3세기 초중반까지 지속되었다. 바오로 서간에서 교회의 리더들은 환대의 덕96)이 있어야 하며 그럴 때 그리스도인의 예배를 위한 장소로서 가정을 자발적으로 기대할 수 있다.(1티모3,2;티토1,7-9)

교회조직에서 Jean Colson은 두 가지로 그 발전방향을 분류하였다. 첫째는 바오로의 방향으로서, 주교 또는 의장이 아니라 장로단(college of presbyters)이다. 일치는 한 사람의 리더가 아니라 많은 맴버들과 많은 독특한 기능들로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몸 신비체의 신학 위에 기초된다. 장로(주교가 아니라) 공동체들은 후기 사도시대에서 오랫동안 유지되었는데 특별히 알렉산드리아와 이집트에서였다.

두번째 공동체 조직의 형태는 공동체에서 자리하고 있는 한 사람의 리더, 수도자 주교에 의해서 특성을 이룬다. 이 리더는 공동체의 살아있는 일치의 이미지이다.

사도시기 이후 이러한 수도 공동체(한 명의 주교)는 교회 조직형태의 지배적인 형태로서 부상이 되었다.

2.5. 트리엔트 공의회

우리가 알고 있듯이 오늘날의 본당은 기본적으로 트리엔트 공의회 전후에 모양을 갖추었다. 본당신부는 영혼의 돌봄을 위해 책임을 맡고 있다. 교구는 믿음 충만한 가운데 명백하게 본당들을 정의하고 나누며 본당은 주임사제에 의해 봉사 된다.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지역적(속지) 원리는 명백히 지역경계들과 함께 본당설립을 위한 규범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몇 가지 예외가 나타났는데, 인격적(personal) 원리는 특별한 본당을 세우는데 유용되었다. 특별한 본당이란 다른 전례를 사용하거나 소수 민족에 속해 있는 공동체이다. 본당신자는 일반 본당을 구성하고 있는 주변 사람들로 정의되는 것이 분명하다. 기본원리는 각 본당은 자기가 속한 본당을 가지고 있는 것인데 예외의 경우 로마는 같은 교회를 사용하는 몇 본당을 허락하는 것이다. 트리엔트 공의회와 함께 본당의 설립과 분리는 주교에게 유보되어 있다.

2.6. 2차 바티칸 공의회

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는 본당에 대해 특별히 그 어떤 신학적 방향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는 여전히 트리엔트 공의회를 따르고 있다는 뜻으로서, 사목자와 주교 사이의 의존적 관계에서 본당을 설명하고 있다. “주교는 자기 교회 안에서 자기 자신이 언제나 어디에서 모든 양 떼를 지휘할 수 없으므로, 반드시 신자들의 집단을 조직하여야 한다. 그 가운데에서 주교를 대신하는 사목자 아래에 지역적으로 조직된 본당 사목구가 가장 중요하다. 본당은 전세계에 세워진 가시적인 교회를 어느 정도 드러내기 때문이다.”97)

주교들의 사목임무들에 관한 교령에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트리엔트 공의회의 교구 속지 정의로부터 오히려 의미 있게 출발하고 있다. “교구는, 주교에게 사제단의 협력을 받아 사목하도록 위탁되어, 자기 목자를 따라, 그 목자로부터 복음과 성찬을 통하여 성령 안에 모여서 개별 교회를 구성하여, 그 안에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러 오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참으로 내재하며 활동하는 하느님 백성의 한 부분이다.”98)

그럼에도 불구하고 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론 정의에 따라 교회 곧 본당 공동체는 속지의 차원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하느님 백성 위에 그 속지적 관점을 강조하고 있다. 만일 속지로부터 백성에로 변화하는 것이 본당 수준에로 적용된다면, 본당의 많은 새로운 모델들이 변화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 먼저 본당 신학에 관한 일련의 토론들을 조명해보는 것이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3. 교회 공동체 모형 신학99)

역사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사랑을 몸소 백성들을 위해 실천하셨지만 오늘날 모습의 본당 공동체 형태를 위한 영원한 청사진을 주시지는 않으셨다. 공동체의 청사진은 하느님 백성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교회의 역사 안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교회와 본당의 변천은 매우 신학적인 흐름에서 성장해왔음을 알 수 있다. 본당과 교회의 변화성장에 영향을 끼친 데는 두 가지 인자를 통해서 이루어졌는데, 그 첫째 인자는 교회와 본당에 관한 신학이 살아있는 유기체로서 본당과 교회 발전에 그 힘을 제공해주었으며, 또 다른 한 가지는 교회와 본당이 지속적으로 변화된 문화, 상황, 살아가는 나라의 방식에 따라 적용되어 갔다. 결국 교회의 신학과 세상의 문화가 서로 만나 오늘날의 공동체가 변화 발전되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필자는 오늘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상 실현을 위해 본당 공동체 안에서 단체와 소공동체의 관계모색의 전단계로서 우선적으로 몇 가지 교회 공동체 모형을 신학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3.1. 예루살렘 교회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모두 큰 은총을 누렸다.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소유한 사람은 그것을 팔아서 받은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고, 저마다 필요한 만큼 나누어 받곤 하였다.” (사도4,32-35)

예루살렘 공동체가 오늘날 본당신자들에 관한 지속적인 영감을 받을 수 있는 모형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아마도 오늘날 본당 공동체의 모델로 예루살렘 교회를 적용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예루살렘 공동체는 목자 중심의 본당 공동체라기보다는 교구적 감독 공동체에 더 가까운 모형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교회가 영역을 나누어 가지고 있는 속지적 특성이 예루살렘 공동체의 주요 인자가 아니기 때문에, 현재의 본당과 같은 모델로 예루살렘 공동체는 느슨하거나 활력이 없는 구성원들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3.2. 이브 콩가르 모델

이브 콩가르 추기경은 두 가지 측면에서 교회 모델을 제시한다. 첫 째 본당과 교구가 가정과 사회시민 공동체와 어떻게 비교되는가를 서술한다. 그가 조심스럽게 지적하고 있는 바는 이러한 비유가 하느님의 법만이 아니라 나라에 대한 교회의 적용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사람들은 두 가지 공동체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말하면서 가정은 인간 삶의 중요한 필요성을 제공하고, 사회 공동체는 인간 삶의 특별한 발전을 위해 더 나아지도록 무엇인가를 제공하는데, 이는 사람의 성장을 위한 기회 제공이며, 직업의 기회들을 제시하는 구별(다양함)과 법과 강압에 의한 공동체 생활을 균일하게 하는 것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기가 가정에서 태어나는 것처럼 본당은 어머니의 모태로서 그 곳에서 그리스도인은 태어나기 때문에, 교회가 필요한 요소는 돌보는 모델이다. 한편 교구는 세례 받은 신자들에게 교회의 위대한 일들을 명한다. 교구는 신자들을 보다 큰 공공질서를 위해 일하며, 교회의 공동사업에 참여하기를 권한다. 국가와 사회가 시민들을 위해 시민의 영역 안에서 무엇인가를 하는 것처럼 교구는 신자들을 위해 교회 영역 안에서 해 나간다.

두번째 측면에서 콩가르는 본당은 두 가지 역동성으로 이루어져 성장한다고 설명하는데, 본당은 하나는 ‘위로부터’ 다른 하나는 ‘아래로 부터’ 기초된 공동체라고 설명한다. ‘위로부터’는 신적요소, 진리, 은총, 힘에서 오고, ‘아래로 부터’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모든 것에서 오는데, 서로 함께 특별한 공동체에서 살기, 기도의 친교 안에서 협력하기, 서로 봉사하는 사도적 활동 등이다. 본당은 아래로부터 형성되듯이 역시 작은 그룹들과 공동체들을 포함한다. 이 같은 큰 본당 공동체는 보다 작은 공동체들로부터 삶의 에너지를 얻는다. 콩가르가 본당을 공동체로 정의 내리면서 강조하고 있는 바는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와 ‘아래로부터’ 역동성이 본당 신학에 가치 있는 공헌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아래로부터의 역동성은 본당의 소공동체와 단체가 서로 협력하면서 든든하게 기초를 세운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체와의 관계모색은 당연히 복음적, 삼위일체, 그리스도론적으로 이루어야 할 것이다.

3.3. 칼 라너의 모델

칼라너의 본당 모델 신학은 콩가르와 사뭇 다르게 그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칼 라너가 제시하는 본당의 형태는 매우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라너에게 첫 주제는 본당이 교회의 지역적 대표성으로 나타나는 활성화이다. “교회는 본당을 중심으로 생활하고 있는 가운데 교회자체가 실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역적 대표의 특성을 실현하기 위해 본당은 특히 교회의 성사거행에서 장소적 필요성을 말하고 있다. “미사성제는 공동체에 의해서만이 거행될 수 있고, 공동체는 한 장소 한 백성 안에 함께 모인다. 가장 근본적인 본질의 측면에서 교회는 지역 속에 접속된 구체성에 연결 돼있다.”

라너의 두 번째 주제는 본당이 중요한 주체로서 교회의 제1원리 실현화이다. 교회, 본당은 첫째, 보편성과 기원의 형태로서 장소적 원리에 의해서만 존재한다. 본당은 백성들의 일치인데 그들은 특별한 장소에서 함께 살아간다. 공동체는 지역성의 원리위에 기초된다. 라너는 세 가지 요소들에서 그의 본당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1. 본당은 미사성제 거행을 통한 교회실현이며, 2. 중요한 일로서 본당은 성사거행의 장소이고, 3. 지역의 장소로서 본당이다. 따라서 칼 라너의 본당 신학모델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는 바는 성사 중심(미사성제)으로서 소공동체 영적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다. 그리고 지역에 근거를 주고 있는 장소로서의 본당과 같이 소공동체의 교회적 기초모델을 그 지역에 철저하게 뿌리를 두어야 하는 방식을 찾아야 할 것이다.

3.4. 미래의 본당모델 신학

라너의 모델은 교회에 대한 본당의 공동체 신학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지역성 역시 본당을 위한 원리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비평이 있다. 왜냐하면 그런 비평의 근거로서 교회의 긴 역사에서 많은 예외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역시 같은 장소에서 함께 생활하는 것만으로 공동체를 이루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본당에서 지역적으로 함께 살아가는 사실에도 어려움이 있는데 예를 들어 미국의 할렘가, 도시 주변에 흩어져 살고 있는 흑인들을 분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본당의 지역성이 경제적으로 형평을 이루고 산다면, 그 지역성을 뛰어넘어 가난한 자, 어려운자들에게 까지 복음적으로 다가갈 수 있어야 하는데, 만일 지역성이 교회다운 공동체의 모습을 가로막는 장애가 된다면 이는 바람직한 교회본당 모습에서 멀어져 있는 것이다.

한편 본당은 지역 공동체의 기원형태로 불리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비평을 말할 수 있다. 오늘날 본당은 주로 일반적으로 지역 공동체이다. 그러나 지역 공동체의 기원형태는 주교를 중심으로 함께 모인 사제단과 함께하는 감독 공동체이며, 그를 공동체의 필요들에 따라 봉사하도록 명받는다. 데이비스는 라너의 모델이 초자연주의 안으로 몰게 하는 위험이 내포되어 있다는 비평을 보이면서, 전례거행이 공동체 또는 본당을 건설하기 위한 핵심으로서 너무 가중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전례는 백성들의 삶을 세상 안에서, 일과 봉사의 삶으로 거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교회 안에 작은 교회와 교회법에 따른 본당실현을 말하는 신학들도 있다. Winter의 모델은 중세의 유럽 형태로 구조화된 본당이 오늘날의 세상에 응답할 수 있도록 기초되어 디자인되지 않았음을 비평하고 있다. 오늘날의 상황은 익명의 그리스도인, 후기 그리스인 세상, 소수 그리스도교 또는 디아스포라 상황 같은 용어로 종종 묘사된다. 본당은 주로 신앙이 당연한 일로 생각되지 않는 아주 세속적인 공동체 안에 처해 있다. Winter에 의하면 교회의 선교는 오늘날의 상황에 응답해야 하며, 선교는 기존의 구조를 넘어서 극복해야 한다.

Winter가 믿는바, 교회 곧 본당은 예배와 사랑실천, 증거와 사도의 공동체로 있어야 하는 점이다. 이 같은 공동체를 성취하기 위해서 교구와 본당은 근본적으로 다시 구조를 건설해야 한다.101)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공동체와 미사성제 중심에 대한 강조는 교회 안에서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전통은 신학적 사회학적 원리들 안에서 기본적으로 좋은 대안과 함께 적용되어야 한다.

지역도시를 위해 사도직은 누가 조직해야할까? 다양한 기초공동체의 사도직을 가꾸고 실행하는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사도직이 만일 미사성제에서 흘러나와야 한다면 공통 사도직을 위해 우연히 형성된 공동체는 지역 미사성제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오히려 약한 공동체 형성의 기초에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아닐까? Winter는 신선하면서 활기 있는 아이디어를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오늘날의 복합적인 사회에서 조직의 문제에 대해 양성된 주역들과 함께 인도해야 한다는 뜻이다.

4. 세계 교회의 공동체 운동

4.1. 기초공동체

라틴 아메리카의 기초 교회 공동체는 해방신학과 함께 억압의 상황에서 발생하였다. “기존 사회체제 안에서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의 문제”에서 발생한다고 구티에레즈가 말하였던 것처럼 비인간 실존으로 몰아가는 삶의 환경에서 새로운 삶의 실천을 위한 장으로서 기초공동체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기초 교회 공동체의 발생은 다분히 복합적인 것이다. 극심한 가난의 사회적 상황과 사제의 부족, 본당 구조의문제 등 종교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여 1960년대 초 브라질에서 처음 발생하였다.

라틴 아메리카 기초 교회 공동체 형성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몇 명의 주교들에 의하여 시도되었던 “복음화 캠페인”, “기초교육운동”들이 새로운 교회적 공동체들을 발생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공동체들은 평신도들에 의해 스스로 브라질 전역에 확산되었으며, 이와 같은 확산 과정에 대해 주교회의가 정책적으로 지원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브라질에서 시작된 기초공동체는 스스로 라틴 아메리카에 퍼져나가는 하나의 운동 형태로 확산되었는데 여기에 대해 메델린 주교회의는 사목적, 신학적 반성과 함께 기초공동체를 하나의 완전한 교회로 인정하는 결정을 내려준 것이다. 그러므로 기초공동체는 평신도가 주축이 되어서 발생한 가운데 주교회의에서 정책적으로 인정하고 강화함으로서 “교회안의 기초공동체”로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후 메델린 주교회의의 결정은 세계가 기초공동체의 형성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고, 1974년 제3차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에 의해서 공식적인 복음화의 유효수단으로 인정됨으로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라틴 아메리카의 기초 교회 공동체는 크게 4가지로 구성되는데 그것은 성서, 공동체, 현실, 전례이다. 이 가운데 성서가 생명의 원천으로 자리하고 있다.

4.2. 소공동체

아프리카의 소공동체는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현실과 문화의 토양 위에 새로운 교회의 형태를 구축하여, 그 결과 라틴 아메리카에서 발생한 기초공동체를 그들의 새로운 교회형태로 받아들이게 된다. 룸코 연구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을 실현하고 가톨릭 교회의 복음화 과업을 촉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공의회 정신에 따른 룸코 연구소의 사목비전을 살펴보면

첫째, 공의회의 ‘하느님의 백성’ 교회론에 의거하여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의 본질적인 동등성을 회복하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예언직, 사제직, 왕직의 사명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하고 둘째, 공의회에서 새롭게 발견한 ‘친교의 교회’를 실현하기 위해 하느님 말씀을 원천으로 하는 공동체를 활성화하며 셋째, 사회에서 예언자적 사명을 수행하는 참된 지역 교회 건설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룸코 연구소는 교회의 공동체성의 회복, 평신도의 교회사명수행을 위해서 ‘말씀’을 중심으로 한 소공동체 건설을 위해 노력하였다. 룸코 연구소는 교회, 소공동체, 성서, 교리교육,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 공동체 영성 등의 주제를 많은 신자들이 쉽게 이해하고 자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각 프로그램 형태의 교재와 포스터 등의 보조 자료들을 발간하였다. 이에 Harry Hoeben은 아프리카의 소공동체에 대해 세 가지 관점에서 언급하고 있다. 먼저 공동체 안에서 상호간의 가치와 동일함 그리고 공동 결속을 느끼게 되었다. 소공동체는 문화적 토양 위에서 모순 없이 서로의 유대를 강화하게 되었다. 둘째로 교회적 측면에서 바라볼 때 소공동체를 통해서 모든 이들이 참관자(參觀者)가 아닌 참여자(參與者)의 입장이 되었다. 참여의 입장은 공동체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역공동체의 문제에 대해서 비전을 공감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소공동체는 그 특징을 가진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4.3. AsIPA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FABC) 평신도 사무국 산하에 AsIPA(Asian Integral Pastoral Approach) 즉 ‘아시아사목을 위한 통합적 접근’은 아시아교회 안에서 소공동체가 정착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총 3회의 총회를 통해서 소공동체에 대한 미래의 전망을 제시하였는데 1996년에 있었던 1차 총회가 AsIPA의 소공동체 기초를 익히는데 머문데 반해서 2차 총회부터는 통합사목방법에 대해서 분명하게 밝혔다.

제2 차 총회에서 이해된 소공동체는 무엇보다도 전통적으로 교회 안에서 자연스럽게 행하는 방법이며, 이 안에서 모든 이들이 새로운 교회의 구성원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이며 특별히 가정교회를 활성화 할 수 있다고 밝힌다. 나아가 그리스도인의 소공동체는 변화하는 세상의 복잡한 체제를 하느님 나라의 관점에 놓고 변모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효과적인 선포방법임을 말하고 있다. 이렇게 이해된 소공동체에 대해서 몇 가지 과제가 부여되는데, 그것은 소공동체 안에서 받아들여지는 강생하신 하느님에 대한 토착화와 소공동체의 영성, 사회복음화, 새로운 형태의 지도력은 요청되었다.

AsIPA 제2차 총회에 이어서 제3차 총회에서도 역시 소공동체에 대한 전반적인 논의가 이루어졌다. AsIPA 3차 총회는 아시아 각 지역의 소공동체가 공동의 비전과 관심을 가지고 한 자리에 모여 토의를 하였는데 동시에 AsIPA 2차 총회에 이어진 소공동체 운동의 여정에 대한 평가도 이루어졌다. 그래서 가정, 영성, 지도력, 직무와 관련된 사목활동 나눔이 이루어졌고, 참여하는 교회, 공동책임, 교회비전의 실현과정과 결실에 대한 숙고를 통해 미래의 아시아 사목을 위한 방향성과 계획을 모색하였다.

제4 차 총회는 2006년 11월8-15일 인도 남부 트리반르룸에서 ‘소공동체, 친교의 교회를 향하여(SCC/BCC Towords a Church of Communion)’에 대한 주제로 친교의 교회론 심화, 소공동체를 통한 통합사목의 의미 검토, 소공동체 도입과 육성을 위한 혁신적 구조 발견, 소공동체 관련 자료 공유와 계획 수립으로 세분화되어 열렸다.104)

5. 단체와 소공동체 관계 모색을 위한 신학적 성찰

5.1. 다양성과 단일성의 조화

교회가 삼위일체 하느님의 모습을 닮았다는 것은 삼위일체 신비의 원리 곧 다양성(위격들)과 일치성(본성)의 신비를 재생산하고 있다는 뜻이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학적 영성적 원리는 나눔과 섬김의 자기비움(kenosis, self-emptying)으로 드러난다. 삼위일체 신비의 영성은 하느님의 자기비움, 성자의 자기 비움, 성령의 자기비움으로 나타나는데, 자기비움은 또 따른 표현으로 ‘사랑의 역동성’(dynamical Agape)이다. 하느님은 세상 창조부터 줄곧 인간을 향한 당신 사랑을 드러내셨으며, 결정적으로 하느님의 자기비움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벗어나 ‘탈자아’ 곧 사람이 되신 강생사건으로 드러난다. 성자의 자기비움은 죄인들이 받는 세례를 스스로 받으시고 결정적으로 세상의 죄를 위해 수난하시고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심으로 드러난다.

삼위일체 신비의 영성은 다양성과 단일성의 조화 원리로 드러난다. 다양성이 인정되면서 서로 서로 일치하여 자율적인 참여가 이루어지는 영성이 드러난다. 조화를 이루는 영성의 원리는 삼위일체 신비 가운데 특별히 성령의 역할로 드러난다. 성령은 서로 다른 다양성과 단일성을 하나로 통합된 조화의 원리이다. 이러한 조화의 원리는 삼위일체 영성과 신심운동단체의 영성으로서 교회 안에서 단체와 소공동체 관계모색에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 또한 소공동체 안에서 교계의 원리와 협의회의 원리 그리고 보조성의 원리가 다양하게 통합되어 나타나도록 한다. 물론 이 원리는 사제와 수도자와 평신도가 소공동체 안에서 사목적 협력을 위한 친교와 조화를 이루도록 한다.

5.2. 미래 공동체를 위한 통합과 조화

교회는 궁극적으로 위타(爲他) 공동체이기 때문에 변화된 사회 속에서 유동성과 다원성이 증가하는 것에 대응하기 위해 종래의 속지 공동체를 직장, 범주 공동체로 확대 보완할 필요가 있다. 소공동체는 독립성, 개방성, 인간성, 소규모성, 범주 공동체 및 직장 공동체 등의 특성을 지녀야 ‘세상과 내일을 위한 공동체 구조가’가 될 수 있다고 클로스터만은 말한다.

삼위일체 안에 세 위격들은 한 하느님이지만, 각자는 완전한 위격이다. 이렇듯 삼위일체 하느님 백성으로서 교회도 역시 다양한 인간들이 완전한 인격으로서 각자는 손상되지 않으면서 하나로 통합되어있어야 한다. 교회의 하느님 백성 역시 서로 상호 친교의 본성을 살아야 한다. 이같이 미래 본당의 바람직한 새로운 교회를 위해서 통합과 조화의 훈련을 시도해야 한다. 곧 소공동체와 단체와의 통합과 조화는 그 어느 쪽으로의 흡수와 축소가 아니라 한 공동체 안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가톨릭 교회는 제2 차바티칸 공의회에서 교회를 친교의 공동체로 강조하고 있지만 아직도 한국 가톨릭 교회가 친교의 교회론을 실현하고 증거 하는데 적지 않은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교회 안에는 자유와 권위 사이의 충돌은 존재하지 않는다. 교회 안에는 친교와 일치는 존재하지만 획일성과 전체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보편성을 의미하는 가톨릭은 하느님 백성 곧 여러 신자들이 친교와 일치의 삶을 살아간다는 다양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삼위일체 모습으로서 교회에 대한 관념을 드러내었고 친교의 교회론을 이해하도록 선언하였다. 공의회는 삼위일체적 본성의 표현이다. 삼위일체의 모습에 따른 다양성 속에서 친교와 일치는 공의회 속에서 모인 주교들이 성령의 인도 아래 공통된 정신에 도달함으로 행동 속에서 보여 질 수 있다.

5.3. 속지와 속인 공동체의 기능적 보완 및 다양성의 조화

차동엽 신부의 표현을 빌려서 말한다면 기초란 존재 즉 being의 차원에서 해석할 수 가 있겠다.106) 곧 소공동체는 속지차원의 기초, 존재의 차원을 말한다. 그러나 차동엽 신부는 또한 그라이나커 이론을 원용하면서 사회의 유동성과 역동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속지적 원칙을 기능적인 원칙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사회학적 연구를 통하여 현대 도시 사회의 복잡 다양한 구조와 다원적인 생활양식에 부합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교회가 종래의 거대하고 단색적인 존재방식에서 지역적 특색과 다양한 직능을 반영한 ‘공동체 교회’로 탈바꿈해야한다고 주장한다.107) 현재의 복음선교에서 특별히 밝히고 있는 소공동체의 필요성도 대도시화로 인하여 발생하는 ‘익명화’와 ‘집단화’를 주요인으로 꼽고 있다. 현 사회와 교회 그리고 가정 상황이 소공동체 사목과 모임을 위해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는 것도 사실이다. 곧 맞벌이 부부가 증가하고, 남성 신자들의 참여의 부족이 급격히 발생하였다. 더욱이 본당 주임신부의 열성으로 소공동체 모임이 빈번해지다보면 기존의 신심 사도직 단체(레지오 등)들과 마찰과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것도 본당 공동체의 현실로 나타난다.

소공동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지금 교회와 신앙생활의 본질을 살아가자는 복음운동 곧 교회다운 교회 살기 운동, 새로운 교회로 있는 존재방식이다. 익명성에서 탈피하여 만남의 기회를 제공하여 소그룹으로 만나 새로운 신앙 안에서 자기가 누구인지를 인식시켜줄 수 있다면 시간적으로 제한된 만남이라도 괜찮다. 제도교회의 결함을 보완하기 위한 소그룹을 조직해야 한다.

5.4. 위임과 책임을 나누는 교회의 주체, 평신도의 위상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헌장에서 교회 안에 직분상의 교계제도를 언급하기에 앞서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표제를 채택하여 모든 믿는 이들의 ‘일반적 사제직’이 ‘특수 사제직’에 우선함을 천명하고 있으며(제2장), 고유한 ‘평신도’부분의 장을 할애하여 평신도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사제직, 예언직, 왕직에 자신의 고유한 방법으로 참여할 뿐 아니라 그러한 삼중직무를 가진다고 밝힌다(제4장).108)

「평신도 교령」에서 역설하였던 것처럼 「평신도 그리스도인」에서도 평신도의 사명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몸을 건설하기 위하여 그리고 세계 안에서 그 구원사명을 위하여 직무와 은사를 부여하신다. 성령께서는 세례 받은 모든 사람들에게 교계제도와 은사의 여러 가지 은혜를 아낌없이 베풀어 주시며 각기 개별적으로 능동적인 공동책임을 지도록 그들을 부르신다.” 그렇기 때문에 “평신도들은 세례를 받은 신분과 그 고요한 소명으로 말미암아 각자의 능력대로 그리스도의 사제적, 예언자적, 왕적 생명에 참여”하는 것으로서 세례를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각기 받은 소명의식에 의해 차별을 받지 않고 각자가 받은 고유한 소명을 수행해야만 하는 공동체성안에 있는 존재임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그리스도인은 교회의 직무와 친교와 구원활동에 참여하도록 부름 받은 존재라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레오나르도 보프는 소공동체에서 평신도의 역할에 대해 “기초 공동체는 본질적으로 평신도 운동이다. 평신도는 소공동체 안에서 복음의 목적을 수행하고 교회의 향방과 현안의 결정 과정에서까지도 매체와 수단의 역할을 한다.”라고 말하였다.109) 최덕기 주교는 본당의 소공동체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모든 평신도가 교회 생활에 협조자로서가 아니라 교회의 주체로서 참여할 수 있게 해 주기에 교회의 주체 확립이란 차원에서 본당의 소공동체화가 요청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교회의 현재와 미래를 위하여 진지하게 고려되어야 할 우선 과제 중 하나가 평신도들이 교회의 주인으로서 교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사목적 제도가 마련되어야 하는데 교회의 기초공동체를 통하여 이것이 가능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됨으로써 평신도들은 소공동체 안에서 신앙과 삶을 연계하는 방법을 얻을 수 있을 것이며 이로 인해서 교회와 사회를 개선하고 변화시킬 힘을 얻을 것이다.110)

5.5. 신자 리더 양성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평신도의 특성을 세속성에 두고 평신도의 사명을 ‘세상을 성화하는 것’이라고 할 때 각기 공동체에서 평신도 사도직이 구체적으로 이행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 공동체는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소공동체가 결성이 되어 자신들의 삶을 말씀 안에서 정화하고 결심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성직자나 수도자로만 중심이 되어 움직이는 그 공동체는 자생력이 없어지게 된다. 실제적으로 그들의 역할은 공동체 안에서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러야만 한다. 이러한 면에서 공동체에서 평신도들이 차지하는 위치는 더욱 부각되어야 하며 더 나아가 공동체를 이끌어나갈 평신도지도자를 양성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게 된다. 더 나아가 교회를 이루는 구성원들 즉 평신도들의 역할이 새롭게 재고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럴 때 현재의 소공동체 운동이 생활 안에서의 공동체로 정착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것이다. 소공동체가 한 시대의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로부터 늘 새롭게 태어나는 교회 살기라는 것을 드러내는 충분한 신학적 근거를 갖고 있다. 한편 소공동체의 영성, 친교와 나눔과 조화는 소공동체 안에서 하느님 백성의 자율적인 참여와 역할 위임이 이루어지는 원천이 되고 있다.

6. 소공동체와 단체의 공동협력

6.1. 소공동체와 단체

구역반은 행정구역상으로 나눈 것이다. 과거에도 본당 쇄신 프로그램을 위하여 구역반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러나 소공동체 운동은 그 틀에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을 넣어 공동체의 삶을 엮어내는 과정이자 출발이다. 구역반을 심화시켜 교회가 되게 하는 것이다. 어떤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공동체를 이루고 복음의 맛을 들이게 하는 것이 소공동체이다. 복음 나누기는 복음의 맛을 들이게 하고 복음으로 살게 하고 빛과 소금이 되는 신앙인이 되게 한다. 레지오는 50년 된 좋은 나무의 하나일 수 있다. 여기에만 의존해서 살아야 하는가? 그 나무를 벨 수는 없다. 나머지 땅들도 가꾸어야 한다. 소공동체는 잘됐다/못됐다로 평가할 수 없다. 이제까지 교회는 바닥의 기초를 제대로 하지 않고 나무만 키워왔다. 소공동체 운동은 기초바닥을 튼튼히 하자는 것이다.

한국의 근대현대사회는 유교문화, 일제시대, 군사문화 등 계급 문화를 통해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 신자들은 80년대 이후의 신자들이다. 자율성, 합리성을 추구하는 신자들이다. 밭갈이는 신자들 사제 모두에게 힘든 일이다. 기존의 것을 없애서는 안된다. 사도직 단체를 모두 없애면 어려워진다. 신심단체들은 소중히 보호해야 한다. 척박한 땅이 소공동체이자 구역반이다. 소공동체 운동을 하면서 갈등을 겪을 수 있다.

소공동체, 레지오 모두 매주하면 너무 힘들다는 말을 들었다. 소공동체가 공동체성을 가질려면 매주 만나는 것이 좋다. 빠른 시간 안에 소공동체를 잘하려는 마음에 레지오와 소공동체가 겹치면 소공동체로 가라고 강요하는 것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소공동체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성급한 마음으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소공동체는 기초 신앙생활이다. 기본을 체험하지 않고 신심만을 추구하면 안된다. 교회의 본질을 놓치면 안된다.

6.2. 구역반을 레지오와 함께 하면 어떻겠나?

속성상 두 가지가 틀리기 때문에 함께하면 위험하다. 레지오는 계급을 지니고 있고 소공동체는 누구나 함께 평등하게 하는 것이다. 레지오는 신심 단체로 두고 소공동체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꾸준히 해나가야 한다. 소공동체는 가시적인 결과가 눈에 빨리 보이는 것이 아니다. 숫자로 평가해서는 안된다. 이렇게 되면 불만을 느끼고 소공동체에 불만을 느끼게 된다. 그것보다는 복음에 맛들이고 공동체의 체험을 느낀 이들이 얼마나 있는지를 봐야 한다. 본질적인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처음에는 많이 모이더니 이제는 많이 떠난다는 소리를 들었다. 공동체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첫번째 단계가 거짓 공동체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혼돈이 온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단점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런 단점을 받아주기 시작할 때 진정한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다. 혹시라도 신자들이 상처를 받고 떠난다는 건 꼭 겪어야 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6.3. 소공동체가 위에서부터 일방적으로 내려오는 공동체가 되는 것인가?

개인적으로는 소공동체의 정신에 따르면 아래에서 시작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랜 세월 성직자 중심이었다. 신자들이 뭔가를 할 수 있는 촉매가 없다. 신자들의 자율성이 취약하다. 소공동체는 위에서부터 하기가 어렵다. 사제들이 봉사하겠다고 내려가는 것이기 때문에 힘들다. 그러므로 위에서부터 하는 것은 쇄신의 뜻이 있는 것이다. 신부님들이 본당에서 소공동체를 하자는 것은 위에서부터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사목적 열정이다. 그런 후 신자들이 성숙한 후 빠져나가는 것이다.

우리 팀이 교회의 팀으로 살아가는 첫 번째 증거이다. 우리가 팀으로 일하는 것 자체가 책보다 더 좋은 교육도구 이다. 혼자서 이 내용을 가르친다면 자신이 가르치는 내용의 정반대로 가르치는 것이다. 교회를 말하는 것과 행동과 같아야 한다. 하느님 세분이 동등한 것처럼 교회 임원들 사이에 동등성이 있다. 동등한 이들이 모인 공동체로 함께 일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공동으로 일하는 것이 공동체를 변화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6.4. 본당의 단체와 소공동체 공동사목

몇년 전부터 한국교회에서 통합사목, 공동사목의 바람이 불고 있다. 물론 시대와 사회 그리고 인간의 삶이 변화되기 때문에 참으로 필요사목이다. 그러나 필자는 통합과 공동사목의 본질적 실천 원리는 ‘함께 살아감’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성직자들이 함께 살아가는 삶이 공동사목의 본질을 증거 하는 것이며, 본당에서 단체와 소공동체의 조화가 공동사목의 기초이다. 다시 말해서 사목위원과 구역반장들과 단체장들이 공동으로 협력하는 것이 바로 이 시대의 공동사목의 기초이며 이럴 때 단체와 소공동체가 함께 공동으로 협력하여 조화를 이룰 수 있다. 그러므로 성직자 수도자 신자가 서로 하느님 백성으로서 협력하고112), 본당의 단체와 소공동체의 조화와 협력이 바로 공동사목의 기초모델이라고 생각한다.

7. 나가는 말

7. 1. 단체와 소공동체

한국천주교회에서 소공동체사목이 전개되면서 몇 가지 갈등구조가 발견되어 왔다. 첫째 소공동체를 사목중심에 두는 본당주임사제와 기존의 단체중심의 사목을 하고 있는 사제들 간의 갈등이다. 전자의 사제들은 대부분 기존의 사목협의회를 구역중심으로 본당의 사목적 사업과 결정을 자문 받고 때에 따라서는 자문뿐 아니라 함께 결정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주고 있는데, 이것이 소위 구역중심의 본당사목협의회이다. 이러한 모습은 한국천주교회의 교구들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둘째로 단체와 소공동체간의 갈등구조이다. 특히 레지오 마리애와 소공동체와 관계가 갈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확한 통계를 분석한 것은 아니지만 본당에서 소공동체중심 사목을 해가면서 레지오 마리애의 프레시디움수가 줄어든다는 보고이다. 물론 사목자나 봉사자들이 소공동체 사목을 중심에 둔다고 레지오를 물리적으로 줄어들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레지오 마리에가 이 시대에 보다 복음을 중심으로 마리아영성과 삶에 비추어 대안적으로 제시되면서 교우들에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결국 단체와 소공동체는 삼위일체 신비와 복음의 가르침으로 서로 협력관계로 존재해야 하며,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성향으로 무엇이 먼저인가?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를 굳이 가리는 소공동체와 단체의 우열 기준은 누가 ‘더 복음적’인가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원리적으로는 공동체의 기초, 기본은 가정이고 소공동체이고 본당이며 교구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형태와 원의 그리고 추구하는 경향을 두고 볼 때는 공동체의 기본 못지않게 그들이 자유롭게 선택하는 단체들도 삶의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단지 기계적인 공동체 구조의 교회론적 강조로 소공동체를 주장한다면 단체를 통한 공동체적 신앙의 활성화는 더욱 소원해질 것이고 교회 공동체 주변으로 숨어들어 가는 경향을 띌 것이다. 이러한 몇 가지들이 현재로서는 갈등구조로 남아있다 하더라도 장기적이며 단계적으로 단체와 소공동체의 공동 공동체적 교회론의 합의 선언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래서 공동체의 본질인 공동체들의 친교가 이루어야 할 것이다.

7. 2. 미래를 향한 조화와 협력을 통한 복음적 통합만이 살길이다.

인간은 존재론적으로 ‘혼자’ 그리고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도록 하느님께서 창조하셨다. 인간은 ‘혼자’이면서 ‘함께 곧 우리’인 것이다. 내가 생물학적인 개체성으로 나타나는 것은 나를 감싸고 있는 ‘막’ 곧 살덩이 피부이다. 나의 몸 안을 들여다보아도 세포 세포들이 서로간의 경계인 ‘막’과 ‘막’ 사이를 가지고 있는 수많은 세포덩어리들로 나를 만들고 있다. 부분적으로 보면 세포와 세포는 개체이지만 전체적으로는 ‘나’를 형성하고 있는 우리 세포들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곳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대전에서도 용전동에 살고 있다. 용전동과 옆의 송촌동은 다른 동네이지만 대전이라는 관점에서는 같은 시민이다. 또 같은 충청도민이고 대한국민이다. 지구라는 행성도 다른 행성과 구별되는 ‘막’이 있다. 대기권이다. 함부로 대기권내에 들어오거나 나가기가 힘들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더 큰 관점에서는 같은 태양계, 은하계.....등 공동체성의 동질성을 가지고 있다.

소공동체와 단체와의 관계도 이와 같이 이해할 수 있지 않겠는가? 지금당장은 단체와 소공동체가 다름과 갈등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하더라도, 미래와 거시적 관점에서는 서로 조화와 협력을 통한 복음적 친교공동체성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단체와 소공동체의 단계적인 성장과정을 통한 소공동체 중심의 복음적 대통합의 공동체론을 지향하고 하느님 백성의 참여구조를 과감하게 제도화할 것 제안하는 바이다. 여기서 단계는 여러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어떤 사목자는 처음단계에서 단체를 지양하고 소공동체를 집중 활성화하고, 어떤 사목자는 단체와 소공동체의 다양한 일치와 협력을 강조할 것이며, 어떤 사목자는 단체 중심의 사목을 현실적으로 양성화할 수 도 있을 것이다. 어떤 사목자는 교구와 협력하여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교육을 우선적으로 하여 그 비전을 공유하면서 전략을 함께 만들어 갈 것이다. 그러나 처음 단계에서 어떤 방식을 취하든지 복음과 성체와 이웃사랑이라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공동체성이 잘 나타나도록 미래를 향해 복음을 중심으로 조화와 협력의 공동체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복음적 친교공동체로 거듭나기 위해 복음나누기의 한국적 심성과 문화에 가까운 방법이 토착화되어야 할 것이며, 교리, 신앙체험, 영성, 사목, 전례, 교회운영 등에 있어서 복음 중심의 친교와 사랑의 본질이 한국문화와 한국인 심성과 만나 토착화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특별히 한국초기천주교회 박해시대의 교우촌 등을 심도 있게 연구해야 하는 것도 우리의 공동체를 발견하는데 중요한 몫이라고 본다.

7.3. 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실현과 교회구조

십년 이상 소공동체 사목이 전국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필자도 2001년부터 소공동체 전국모임이 첫 번째로 개최되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참여하였다. 그런데도 한국의 소공동체는 아래로부터의 역동성 보다는 위로부터의 역동성에 너무 의존되어 있기도 하다. 필자는 교구의 사목국장으로서 소공동체 전국모임 등 대외적으로는 단체도 소공동체라고 강조하면서 소공동체와 복음적 협력을 매우 강조하여왔다. 왜냐하면 소공동체와 단체가 갈등을 발생하는 자체가 복음적 내지 공동체적이 아니기 때문이며, 소공동체와 단체는 근본적으로 본당 공동체의 다양성으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교구나 본당에서 단체 특히 레지오는 그 영성과 비전에 따라 변화하면서 소공동체가 본당의 중심에 있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왜냐하면 전국적으로는 기존의 단체(레지오)가 교회발전의 밑거름이었다는 것이 분명하며 그 가치를 인정해 줄 뿐 만아니라 이제는 소공동체와 협력하여 본당 공동체를 일구어 나가야 하는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한편 몇 년 전부터 교구마다 교구와 본당의 사목구조를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변경하고 있다.113) 그러나 분명히 교구나 본당의 구조는 가장 나중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현재의 교구나 본당의 구조는 2차 바티칸 공의회의가 트리엔트 공의회의 구조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따라서 그 구조를 바꾸고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왜 2차 바티칸 공의회가 그 신학과 정신으로 새로운 교회의 모습답게 새로운 구조를 제시하지 않고 기존의 구조를 수직성에서 수평성이라는 표현으로 강조하면서 트리엔트 공의회의 구조를 그대로 따랐는가를 깊이 있게 숙고해야한다. 오랜 세월 살아 온 구조는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을 뿐 아니라 위에서 몇몇이 변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 있다. 왜냐하면 서둘러서 교황청에서 법으로 그 구조를 바꾼다 해도 지역교회까지 그렇게 구조변화의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구조가 아니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도 40년이 지나간 요즘에도 알아듣고 실현하기가 쉽지 않은데, 구조를 위로부터 바꿨다고 해서 그대로 살 것인가? 실제로 소공동체의 어려움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정신은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수평적 사고를 말하면서도 그 구조는 곧 트리엔트 공의회의 구조 아니 더 나가서 유럽의 봉건구조 같은 틀이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이라고 하니, 갈등이 아닐 수 없다. 하느님 백성과 정신은 그렇게 수직적으로 구조화한다고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외적으로 교회의 구조가 달라진 것이 어디 있는가? 교황, 주교, 사제, 부제, 신자 교회신분에는 어떠한 것도 생성과 소멸된 것이 없다. 다만 2차 바티칸 공의회 전에는 수직적으로 이뤄졌고, 지금은 수평적으로 교회를 말하고 있는데, 새로운 구조라고 말하는 틀이 과연 복음과 삼위일체 신비 그리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인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도 구조가 먼저 변화될 것이 아니기 때문에 트리엔트의 구조를 기초로 두고 그 위에 새로운 정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하느님 백성을 함께 살아가자는 것이다. 구조가 새롭게 변화할 교회의 중요한 인자가 아니라는 것이 아니다. 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은 트리엔트 공의회의 구조에 먼저 하느님 백성의 친교를 열심히 살아가자는 것이다. 대화하며 나누며 봉사하며 복음적 수평 공동체로 그렇게 살아가면서 하느님 백성의 동의와 협력으로 성령께서 그 정신에 맞는 구조를 언젠가는 이루어 주실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지금 한국천주교회가 서둘러서 교구와 본당의 구조를 하느님 백성들과 함께 그 비전과 인식과 협력의 공유과정을 거치지 않고 위로부터의 역동성과 큰 목소리로 변화시켜 간다면 분명히 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도 실현될 수 있을 지 의문이 된다. 사회와 국가도 헌법과 대통령 중심제나 내각책임제나 그 구조를 바꾸는 것은 동의와 협력으로 그리고 역사와 문화와 정서가 녹아든 삶이기 때문에 마지막에 총체적 종합적 합의로서 가능한 것이지 몇 사람이 많은 이들이 살아가야하는 구조를 뚝딱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물론 하느님 백성이 온전히 드러날 수 있도록 현재의 구조를 동의와 협력으로 그 비전을 공유 하면서 서서히 아래로부터 움직임의 결과로서 최종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단체와 소공동체는 서로 구조적 조정에 앞서 복음적이며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적으로 협력과 사랑의 구체적 실현으로 2차 바티칸 공의회정신을 실천해가야 할 것이다.

8. 부록: 룸코 프로그램: 단체와 소공동체 관계

1) 과거에 단체들이 필요했던 이유는?

규 모가 큰 본당 공동체에서 단체들이 그렇게 중요해진 이유는? 단체들은 평신도들이 교회 내에서 활동할 수 있는 유일한 장이었기 때문이다. 단체들은 사람들에게 서로 관심을 기울이고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인간 적인 공동체 역할을 하였다.

단 체들과 수도회들은 어떤 면에서 비슷한가? 수도회들은 전체 교회가 실천해야 할 어떤 특은을 강조한다.(예 가난) 그리고 그것들은 교회 모든 신자들이 해야 할 과업이나 사명을 보충한다. (예를 들면 병든 사람을 돌보기, 신앙을 전수하기,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기 등)

2) 우리 본당에 있는 단체들이 창설될 당시 목적으로 삼은 특정한 “특은”이나 과업은 무엇인가?

그 런데 지금 그들은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예를 들면 특별한 형태의 신심을 도모하기, 어머니들과 젊은이들 그리고 가난 한 사람과 앓는 이들을 돕기 등 단체들은 교회 내 모든 신자들이 해야 할 사명이나 과업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목활동에 관계하여, 창설될 당시 의도했던 것을 넘어설 때가 많다.

3) 단체들 중에서 지역의 요구에 응답하기보다는 외국의 사고방식을 반영하는 것이 있는가?

어떤 단체들은 지역 본당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낀 결과로서 생긴 것이 아니 라, 그냥 외국에서 받아들인 것들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그것을 없애고 지역 의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단체들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4) 단체와 소공동체의 구성원들

단 체와 소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어디에서 오는가? 단체 회원들은 본당의 어느 곳에서든지 심지어는 다른 본당에서도 올 수 있다. 그것들은 교회 내 어디에서나 사람들을 모을 수 있다. 그런데 소공동체의 구성원들은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모인 것으로서 가장 지역적인 교회를 형성한다. 단체나 소공동체의 “가입 조건”은 무엇인가? 단체에서는 일정한 가입 조건을 제시한다. 예를 들면 교회 안에서 결혼했다든 지, 노래를 잘한다든지, 여자 혹은 남자여야 된다든지, 재정적인 기여를 해야 한다든지, 회칙을 지킨다든지 등 소공동체에는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예비 신자들, 이혼한 신자들, 술주정꾼, 낯 선 사람 등 모두가 들어올 수 있다.

5) 소공동체와 단체가 하는 일들

단 체들은 창설될 당시 목적으로 삼은 일을 한다. 소공동체는 지역 교회의 모든 기본적인 기능을 책임지도록 불림받는다. 일의 목록에는 한계가 없다. 주일 전례(사제가 없더라도), 신앙 전수, 병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기, 사회 정의를 옹호하기 등 수도 없이 많은 것이다. 예 : 낯선 사람이 “이 지역에 가톨릭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하고 묻는다면, 그 사람을 단체에 안내하겠습니까 아니면 소공동체에 안내하겠습니까? 그 이유 는 무엇입니까? 동아프리카 협의회는 “우리가 세우고자 하는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하나이며, 거룩하고, 공번되고, 사 도적인 교회가 가장 지역적으로 육화한 것이다.” “학교나 운동들, 직업이나 관심사에 따라 생긴 모임들도 가치가 있고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들은 소공동체를 보충하는 것으로 여겨야 한다.”

6) 단체나 소공동체에서 성서는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

단체들은 성서보다는 회칙에 더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소공동체에서는 복음나누기를 삶의 영적 기반으로 삼도록 되어 있다.

7) 단체들과 소공동체에서 제복이나 회칙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제복이나 회칙을 강조하는 단체들이 많다. 소공동체에는 복음 나누기, 지도자의 교대, 필요할 때마다 함께 일하는 것외에 정해진 “회칙”이 없다. 제복은 소공동체 정신에 위배된다.

8) 단체들과 소공동체에서 지도력을 어떻게 행사하는가?

엄격하게 상위하달식의 구조를 가진 단체들이 많다. 소공동체에서는 팀으로 이루어진 지도력, 교대하는 지도력, 그리고 “떠오르는 지도력” 즉 그룹 중의 어떤 사람들이 전체 그룹을 대신해서 일을 맡는 지도력 에 대해 이야기한다.

9) 단체와 소공동체의 가장 본질적인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단체는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소공동체는 교회가 가장 지역적으로 육화된 것이다.

10) 단체들과 소공동체 사이의 긴장

단체들과 소공동체들 사이에 긴장이 생길 수 있는 영역은 많다. 이러한 긴장들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인가? + 하는 일들이 부분적으로 같다. + 모임 시간이 같을 때가 있다. 둘 다 속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짐이 무겁다고 느끼고, 단체들을 위협을 느낀다. + 소공동체 구성원들은 열등감을 느낀다. + 본당 사목 협의회나 사제가 둘 중의 어느 하나를 선호하고 다른 하나는 소홀 히한다. 등 그 이유는 + 단체들은 자기들이 소공동체보다 역사가 깊다고 생각한다. 초대 교회에 이미 소공동체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고 말이다. + 단체들은 소공동체가 하는 일을 많이 하고 있다. (하나의 절충안으로서. 왜냐 하면 전에는 평신도가 교회의 일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 단체들은 그 창설자가 본래 의도했던 것보다 더 많은 일들을 떠맡는다. + 단체에서는 사회적 지위가 같은 사람들이 선택적으로 가입하기 쉽고, 인간 본성을 어느 정도 충족시켜 준다. 예) 제복 등 + 주된 이유 : 소공동체가 지역 교회라는 개념을 무시하는 것

11) 소공동체는 가장 지역적으로 육화한 교회라고 본다. 그렇지만 아직도 본당 에는 단체들이 필요하다.

우리는 질문한다 :단체들은 소공동체의 삶을 어떤 방법으로 협조하고 보충해야 하는가? + 단체에는 열심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소공동체를 운영하는 데 추진력이 될 수 있다. + 단체들은 소공동체가 할 일 즉, 사람들을 교육하는 일, 깊은 신앙 체험을 제공 하는 일, 소공동체가 할 수 없는 특정한 관심사를 제공해 주는 일(예 어머니 들, 간호사들, 교사들)등을 한다. + 단체들은 규모가 큰 일을 수행하도록 돕는다. 예를 들면, 앓는 사람이 있을 때 재정적인 지원을 해주고, 학교에서 교리를 가르치고, 산업적인 관계 등.

12) 단체들이 자신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오늘날의 교회 안에서 자신들의 새로 운 역할을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 교회를 소공동체들로 엮어진 공동체로서 이해하기 위해서 단체들을 위한 자각 프로그램을 한다. + 소공동체와 단체들 사이의 대화 + 단체들의 자체 평가 + 본당 사목 협의회에서 소공동체들과 단체들을 조정, 정리한다. + 수도회나 전교회로부터 배운다. + 사제가 겪어야 할 변화로부터 배운다. 잠비아에 있는 모든 교구의 단체들과 운동들은 (그 대표들이 잠비아 주교 협의회의 평신도 위원회에 참석하는데) 다음과 같은 결정을 내렸다. (1) 매주 목요일은 단체들의 회합을 위해서 남겨 둔다. 그날 소공동체 모임은 없다. (2) 소공동체에 속하지 않으면 단체에도 속하지 못한다.

한국 교회 위기인가? 그 대안은? - 서춘배 신부


소공동체로 엮어진 교회, 효과적인 복음화 수행에 적합

한국교회는 위기상황인가? 교세증가율은 둔화되고 냉담자는 속출하고 교회를 찾는 예비신자는 줄고 있다. 젊은층의 교회이탈도 눈에 띈다. 당연히 적극적인 선교의지와 함께 마땅한 대책이 강구되어야 한다. 아니, 처음부터 우리가 목표로 하는 복음화가 무엇인지 다시 규명할 필요도 있다.

우리는 복음화율이라는 말을 한다. 신자가 많아지면 그만큼 그 사회는 복음화가 이루어진다는 단순논리다. 그러나 이런 양적인 면에만 관심을 두는 패러다임은 빈곤 심리에서 출발한다. 늘 허기질 수밖에 없다. 타종교와의 관계에서도 제로섬 상황이 연출돼 갈등을 빚을 수 있다. 남미나 과거 유럽 국가들의 대다수 국민들은 세례를 받은 신자들이다. 그렇다고 복음화가 이뤄졌다고 말할 수 있는가.

『복음화란 종래의 교회에서 전통적으로 말해오던 전교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보다 역동적이며 복합적인 개념이다. 그리스도를 모르는 이에게 그리스도를 알리고 신자로 만들 뿐 아니라 그들이 생활하는 삶의 현장에 구체적인 변혁과 역전이 전개되도록 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복음화라고 말할 수 있다』

소공동체를 시작하던 당시 서울대교구장이던 김수환 추기경의 93년 사목교서의 일부다. 우리가 어떤 복음화를 목표로 해야 할 지 명확하게 정의하고 있다.

지금 교회가 가지는 도덕적인 힘, 영향력은 많이 약화되었다. 대사회적 면에서만이 아니라 교우들에게서도 마찬가지다. 단적인 예로, 교회가 단호하게 금하고 있는 인공유산이나 이혼율이 비신자와 다를 바가 없다. 회칙과 교서 등 교회의 가르침과 사목자의 설교가 교우들의 삶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신앙과 삶의 분리현상은 우리 교회의 고질적인 병폐다. 일각에서는 더욱 강도 높은 교육을 외치기도 한다. 그런데 어떤 식으로 교육할 것인가.
『지키도록 가르쳐라』(마태 28, 20). 단순히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지키도록」 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누가 지키고 행할 것인가. 바로 세상 속의 평신도들이다. 그렇다면 평신도 스스로가 문제의식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 이들이야말로 복음화를 이루는 핵심이고 주체이기 때문이다. 평신도는 사제들에 의해 가르침을 받고 성화되어야할 피동적인 존재만이 아니다. 이 시대의 사목은 한마디로 평신도의 역량을 길러주는 방향으로 가야 된다. 평신도가 주체가 되어 스스로 삶을 바꾸어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사명감과 소명의식이 투철한 평신도를 어떻게 양성할 수 있을까. 그 대안이 바로 본당의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소공동체다. 소공동체 안에서 약한 이들도 교회의 지체로서 존중되며(1고린 12, 12~27참조) 자기 목소리를 내게 된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교회의 소명에 소공동체 사목은 우선 충실하다.

소공동체는 어떤 의미에선 스스로 돕고 함께 성장하는 자조모임이다. 가정문제에서부터 삶의 모든 부분을 복음에 비추어 성찰하고 실천해나갈 것이다. 자신들이 처한 환경과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행함으로써 차츰 역량은 커질 것이다. 소공동체는 고정된 틀에 매인 획일적인 사목도 아니다. 농촌이면 농촌, 도시면 도시, 학력이 있든 없든 모든 이를 담아낼 수 있다. 구성원들이 스스로 찾아 나서게 되는 열려져 있는 사목이다. 적어도 복음에 입각하여 삶을 나누면서 소박하지만 「신앙 따로 삶 따로」를 극복하게 된다.

한국교회는 지나친 본당중심 사목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만 주일미사에 빠지지 않고 단체나 행사에 참석하는 것을 좋은 신자의 표지로 삼았을 뿐이다. 사목자는 단순한 성무집행자로 만족할 수 없다. 사목자는 관할구역 전체를 염두에 두는 선교사요 교우들의 일상 삶에 관심을 내는 어버이 마음을 가져야 한다. 즉 삶의 현장을 중시하고 평신도 스스로 역동적인 신앙생활을 익혀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복음화의 열매는 본당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짐을 명심해야한다.

김추기경은 퇴임 후 피데스(FIDES)지와의 인터뷰에서 교구장 재임 30년 동안 가장 큰 업적은 소공동체의 발전이라고 밝혔다(가톨릭신문 98년 5월24일자). 당시에도 논란이 없지 않았던 소공동체를 으뜸으로 꼽았다. 그것은 바로 소공동체야말로 교회의 비전이기 때문이다. 「소공동체로 엮어진 교회」는 복음화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에 적합한 교회의 자기존재양식이다. 신앙과 삶을 통합시킬 수 있는 역동적인 의미의 복음화다. 총체적인 사목이며 새롭게 보이지만 원천으로서의 교회 모습인 것이다.

- 가톨릭 신문 2004. 12. 5 에서

한국 교회의 미래를 생각하며: 한국 천주교회와 소공동체 - 이제민 신부

한국 교회의 미래를 생각하며

- 한국 천주교회와 소공동체 -

이제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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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차 -

시작하는 말
소공동체의 긍정적인 면
뜨거운 얼음
한국형 소공동체
언제까지 우유를 - 평신도의 자발성과 자율성
한국형 소공동체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공의회 교회론(하느님 백성 개념)
소공동체와 사목
소공동체와 복음
멍석 위에서 춤추는 평신도
소공동체와 신심단체
한국 교회에 대한 제언
사목적 대안
에피소드

한국 천주교 소공동체 도입에 대한 성찰 - 강우일 주교

한국 천주교 소공동체 도입에 대한 성찰 - 강우일 주교

가. 제5차 아시아 주교 연합 총회(V FABC Plenary Assembly)

인도네시아 렘방에서 1990년 7월 17일-27일에서 개최되었고, 아시아 16개 주교회의 소속 참석자, 전문가, 성좌 대표, 그리고 다른 대륙의 대표 등을 포함하여 모두 160여명이 참가하였다.

이 회의는 주교들의 회의이지만 16명의 평신도들이 이에 동참하였고 “1990년대의 아시아 교회가 당면하는 도전과 이에 대한 응답” 이라는 주제를 다루었다.

이 회의 기간 중 그룹 작업, 기도 모임, 전체 모임, 전례, 친교 모임 등에서 주교들만이 아니라 사제, 수도자, 평신도도 함께 하여 아시아 교회의 풍요로운 체험을 나누고 사귐을 갖는 새로운 장이 마련되었다.

최종 선언문에 드러난 4가지 요점:

I. 도입
II. 도전과 희망
a. 아시아에서의 누룩과 변화의 도전
b. 계속되는 불의의 도전
c. 교차로에서의 도전
III. 현대 아시아 교회의 복음 선교
a. ‘선교’의 의미의 쇄신
b. 아시아에서의 선교 유형
c. 평신도의 역할
d. 아시아 교회의 얼굴
IV. 영으로 살아감: 사목적인 응답 - 4가지
a. 당면하는 사목적 과제
b. 구체적인 사목적 방향
신앙 선포, 아시아 사회에 봉사,
다원주의 사회에서 정의와 평화 그리고 창조의 온전성 추구.
신앙의 심화.
c. 1990년대의 새로운 교회의 존재 양상
A new way of being Church in the 1990's
존재론적 차원에서의 응답
d. 이 시대의 영성
지역적으로도 방대하고 인구도 세계에서 제일 많은 아시아 대륙에서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거기에는 복잡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내포되어 있다. 이는 이 아시아 대륙이 교회에 그만큼 많은 도전을 해오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 많은 도전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평신도들의 적극적인 동참과 교회 안에서 평신도들의 새로운 존재 양상이 반드시 새롭게 정립되어야 함을 전제한다.

총회 마지막 선언문의 발췌:

“주님께서는 아시아 대륙의 새로운 쇄신을 위하여 다른 종교적 전통에 속한 이들, 선의의 사람들과 대화와 협력을 추진하도록 명하고 계신다. 이 대화와 협력을 위해서는 교회 전체의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주교들과 사제들은 평신도들의 양성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며, 평신도들 자신은 복음적 가치에 따라 아시아의 사회를 쇄신하기 위한 구체적인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 평신도들이야말로 다양한 문화, 또 사회 생활의 기본적인 구조를 복음화 할 수 있는 최전선의 일꾼들이다. 그러므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가톨릭 신자의 삶에서 사회적, 직업적 제반 활동과 종교 생활이 대립되는 것으로 나타나서는 안 될 일이다(현대 사목 헌장 43항).

이를 위하여 가톨릭 신자들은 사회 교리를 배우고, 오늘의 아시아 사회를 더욱 의롭고 정에 넘치는 사회로 탈바꿈하려는 마음을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이렇게 양성된 그리스도인들만이 그들 사회의 복음화 일꾼이 될 수 있다. 즉 젊은이가 다른 젊은이를, 노동자가 다른 노동자를, 전문인들이 다른 전문인들을, 공무원이 다른 공무원들을, 가정이 다른 가정을 복음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시아 사회의 변화를 위한 누룩이 될 것이다.”

제5차 FABC 총회는 선교의 개념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촉구하면서 이는 각 지역교회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이는 보다 적극적인 평신도들의 교회 활동 참여를 유발할 수 있는 합당한 양성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나. LUMKO

남 아프리카(South Africa) 주교회의 소속 교리 신학원 부설 기관인 LUMKO에서 30여년에 걸친 연구와 경험을 통해 만들어지고 검증해 온 총체적인 사목 연수, 사목자들과 animator들을 위해 한 달간 이루어지는 훈련 과정은 참여하는 교회(Participatory Church)를 기본 비전으로 삼고 있다.
이는 하느님 말씀을 중심으로 하고 신자들 모두가 자신의 신앙을 적극적인 봉사로 표현하며 공동체로서 성장하도록 이끄는 것을 목표로 하며 이를 촉진하는 효율적인 지도자를 양성해 나가는 것을 지향한다.

이것은 새로운 교회의 모습을 일구어 나가는 과정이다.
즉 ‘공동체들이 모여 친교와 일치를 이루는 교회(communion of communities)이며 성령께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시는 은사가 다 인정받고 활성화되는 교회,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우리 모두의 전인간적인 해방을 이룰 때까지 다른 종교와 신념을 지닌 사람들에게까지 그 친교의 범위를 넓혀나가는 교회다’(FABC 5차 총회 선언문 8.1.3).

다. 1991년 9월 9일-10월 5일, 타이 후아힌 LUMKO 1개월 과정

아시아 9개국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28명의 사제, 11명의 수도자, 7명의 평신도 등 총 46명이 참가하였고 소공동체(SCC)의 도입과 활성화를 통하여 본당을 개편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에 대한 연수를 하였다.

* 복음화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성찰 : 단순히 예비 신자를 모아들여 세례 주는 일에 국한하는 것이 아닌 더 종합적인 개념이다.
* 신자들이 공동체로 복음화를 일구어 가는 도구로 복음 나누기를 활용해야 한다.
* 그리스도인이 소수인 아시아에서 우리들의 이웃과 우리들의 희망을 나누는 방법이다.

연수의 평가:

타이 사제-‘현재 많은 가톨릭 신자들은 미사 참례와 기도문 암송을 신앙 생활의 대부분으로 알고 있다. 이런 신앙 형태는 하느님 말씀과 유리되어 있다. 소공동체에서의 복음 나누기는 사제가 없을 때도 자발적으로 하느님 말씀과 접할 수 있는 효과적인 길이고 평신도 지도자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말레이시아 사제-‘우리 젊은 사제들은 사목을 어떻게 펼쳐갈 것인가에 대한 기본 노선을 찾고 있다. 우리는 많은 신자들이 신앙의 질적인 면에서 대단히 미성숙한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고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우리는 새로운 사목의 기본과 방향, 전략을 필요로 한다. 이 연수를 그런 우리들의 갈망을 채워 주었다. 나는 미래를 향한 사목적인 비전을 얻었고 그 비전을 실현하는 도구도 배운 것 같다.’

싱가포르 사제-‘우리 신자들을 양성할 수 있는 도구를 배웠다. 교회의 새로운 비전을 얻었고 교회 안에 공동체를 활성화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 이를 위하여 지도자를 키울 수 있을 것 같다.’

라. 1992년 8월 동아시아 지역 평신도 대회

‘교회 생활에서의 평신도의 참여’를 주제로 마카오, 홍콩, 일본, 대만, 한국의 대표들이 참가하였다.

사회 속의 교회 :
- 복음적 가치가 요구하는 것, 교회의 사회 교리에 대한 평신도들의
인식 결여
- 개인 신심에 머물고 사회의 변화와 이웃의 필요에 대한 관심 부족
- 현대 소비 문화 영향으로 안락한 삶을 추구하고 복음적인 과제와
사명에 민감하지 못함
-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하여 교회 사회 교리를 평신도 양성과정과 교육 과정에 포함시켜야 함

본당에서의 교회 생활:
- 본당이 신자들의 신앙과 활동의 가장 중심
_ 본당 사목 평의회와 소공동체 활성화를 통해 신자들의 참여와 양성
을 구현 가능
- 소공동체를 구축, 유지, 성장 시켜나가기 위하여 지속적인 양성과
사후 care가 필요하므로 교구 차원의 Mobile Team이 필요
- 본당 생활에서 여성들이 실질적인 결정 과정에서의 참여가 요청
- 친교와 일치의 정신을 육화해 나가기 위하여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이 서로 열린 마음으로 협력해 나가는 지속적인 양성이 필요
- 평신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발하기 위한 분위기 조성, 전례, 활성화 요청

마. 1993년 ASIPA

1993년 10월 30일부터 11월 3일 사이에 말레이시아 Petaling Jaya에서 FABC Office of Laity와 Office of Human Development 공동 주최로 Consultation 모임이 열렸다. 이 모임의 목적은 FABC 총회의 비전을 실현해 가기 위한 창조적인 방법의 발견과 모색이었다. 즉 새로운 교회의 모습으로 태어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노력으로 평신도 지도자들의 종합적, 체계적 양성 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고 이 모임에서 과거 3년 사이에 아시아 여러 곳의 교회에서 LUMKO 계획이 광범위하게 전파 보급되었음이 인정되었고 이에 대한 성찰과 평가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평신도 지도자 양성은 이론적인 주입식 강의의 반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성장 과정에서 경험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임을 확인하였다. 공동체 안에서 하느님 말씀을 묵상하고 나누면서 우리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일은 하느님 구원의 징표요 도구이다.

아시아 여러 교회에서 도입되고 적용되고 있는 LUMKO 계획은 아시아의 각 지역 상황에 맞게 탄력적으로 적용되고 운용되어야 함에 공감하였다. 즉 LUMKO 계획에서 도입된 여러 가지 교재와 방법론이 아시아 지역에서 구체적으로 적용되는 과정에서 장애가 되는 것과 도움이 되는 사례를 잘 검토할 필요를 느꼈다.

이러한 관점에서 LUMKO 계획을 아시아에서의 새로운 교회상을 찾아 나서는 사목적 과정으로 받아들인다면 이제는 LUMKO라고 하기보다 Asian Integral Pastoral Approach라고 불리는 것이 좋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1. Asian;
* 아시아 지역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 아시아 사람들이 오랜 역사 속에 지녀온 종교심성을 전제하고
* 아시아 지역의 여전한 불의, 가난, 군사화의 상황을 바라보고
* 수많은 젊은이들을 염두에 두고
* 다양한 희망적 표지를 바라본다; 교회 일치, 타종교와의 대화,
젊은이들의 활력, 여성 운동, 환경 운동

2. Integral;
+ 내용면에서,
* 불의를 용인하지 말고 일어서야
* 교회일치와 타종교와의 대화
* 직접적인 복음 선포
* 평신도의 적극적 참여
* 모든 피조물의 조화 추구
* 신앙의 심화
* 소공동체 지향
* 공동체들의 공동체를 만들어야,
*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을 중심으로

이 모든 요소들은 ‘현대 복음 선교’ 그리고 ‘인간의 구원자’ 안에 나타난 복음화의 복합적 과정에 부합하는 새로운 선교 개념의 정립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다.
+ 사목 활동의 주체인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모두의 협력과 연대가 전제 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도 Integral.
+ 아시아 대륙 전체, 국가 차원, 교구, 본당, 소공동체 차원의 수직적, 수평적 관계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도 Integral.

3. Pastoral ;
새로운 교회상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일이라는 의미에서 Pastoral.

4. Approach ;
어느 한 가지의 활동이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풀뿌리 차원에서 신자들이 자신들의 공동 사명을 인식하고 사회적 책임을 깨닫도록 일깨우는 종합적이고 경험적인 공동체 건설의 과정이라는 의미에서 Approach.
* 복음 나누기로 하느님 말씀과 우리 자신의 삶을 통합하고
신앙을 심화하며 그리스도 중심의 공동체를 구축하는 일
* 모든 것을 심어주는 리더십에서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을 계발하는
리더십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일
* 혼자서 모든 것을 지시하는 리더십에서 팀 구성원과 나누는 리더십
으로 나아가는 일
* 의사 결정의 과정, 계획, 실천 모든 단계에서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방법
* 하느님 말씀과 일상 생활을 통합하는 토착화의 길을 모색.
* 사회적 의식을 계발하고 사회적 필요에 그리스도교적인 응답을
찾아가는 실천적인 과정을 포함

바. 1990년대 초의 한국 교회의 소공동체 도입 과정

한국 교회는 1984년 선교 200주년을 맞아 기념 신앙대회, 기념 사목회의, 기념 사업, 기념 정신 운동 등을 전개하며 선교 200년을 돌이켜 보고 새로운 시대의 좌표를 설정하려고 애썼다. 이러한 계기는 한국 사회 안에서의 가톨릭 교회의 위상에도 큰 변화를 주었고 제2의 도약을 겨냥하는 전기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1989년 세계 성체 대회를 개최하면서 한국 교회는 다시 한 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목 방문을 받고 세계 교회와 함께 함으로써 선교 3세기를 준비하는 자세를 가다듬게 되었다.

1970년대가 한국 가톨릭 교회가 한국 사회의 사회 정의 문제,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시대였다면 1980년대는 한국 교회 교세 성장의 시기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80년대를 지나면서 급격히 성장하고 팽창한 한국 교회는 그러한 외형적 성장에 비해 그 외적인 성장을 근접 지원하고 지탱할 수 있는 내적, 영성적 성숙이 동반되지 않아 일종의 정체성 위기를 조금씩 느끼기 시작한다. 정체성 위기라 함은 ‘우리 교회는 밖으로는 급성장하는데 속도 충분히 익어가고 있는가? 한국의 가톨릭 교회는 이대로 좋은가? 지금의 한국 교회가 살아가는 모습이 참된 교회의 모습인가? 제3 세기 한국 교회가 나아갈 바람직한 방향은 어느 곳인가?’ 이런 질문이 우리 내부에서 솟구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적인 성찰의 소리가 선교 200년을 지내고 세계 성체 대회로 세계에 그 200년의 열매를 보인 한국 교회에 90년대의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대단한 성장과 활력을 갖추기 했으나 한국 교회는 정말 올바른 길로 나아가고 있는가? 라는 문제 제기가 교회 여기저기서 서서히 부각되고 있었다.

92년 10월에 내가 어느 수녀원에서 강의한 강의록을 들쳐보았다.

그 제목이 이렇게 되어 있었다. ‘2천년대를 향한 한국 교회 안의 수도자의 역할은 무엇인가?’ 라고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내용에 들어 가보니 1부에서는 ‘교회란 무엇인가?’ 에 대해서 다루고 있었고 2부에는 ‘오늘의 한국 교회는 하느님 나라 건설에 어느 정도 접근하고 있는가?’ 라는 내용이었다.

이제부터 12년 전 즉 1992년 10월에 내가 했던 이야기를 소개하려 한다. 이 이야기는 나 혼자만의 성찰이 아니라 그 시대의 한국 교회의 성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는 지난 30년 동안 큰 변화를 이룩했다. 적으로 신자가 30년 동안 6배로 증가했다. 그러나 교회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고 세상 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존재라면 그런 점에서는 과연 어떤 성장이 있었나? 오늘의 본당 하나의 예를 들어 생각해 볼 때 주변 지역 사회 속에 얼마나 파고 들어가 있으며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며 어떤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가? 오늘날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본당 사목의 현실은 대부분 내향적, 자기 보존적 양상을 띄고 있다.

1961년 1991년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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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본당수 29 147 5배
신자수 83,775 1,019,514 12배
신자/본당 2,888 6,935 2.4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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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본당수 261 883 3.3배
신자수 492,464 2,923,386 5.9배
신자/본당 1,886 3,310 1.7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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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 방문을 나가면 년간, 월간 행사 내역, 성사 집행 통계, 단체 현황, 교육 현황, 재정 현황에 대한 보고를 받는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이 본당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이 본당 신자 자신들을 위한 것, 본당 자체를 위한 것이다. 지역 사회의 문제가 무엇이고 거기에 본당이 어떻게 대처하고 있으며 애로점이 무엇이라고 하는 보고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사목자들은 예비 신자를 모아서 교리를 가르치고 세례를 주고 단체에 가입하도록 권장하고 사순절, 대림절에는 특강을 마련하고, 봄철이나 가을철에 성지 순례나 체육 대회 등의 행사로 본당 분위기를 활발하게 하는 정도에 만족하고 있다.

성당 문밖에서 신자들의 삶의 현장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는다. 물론 70년대, 80년대에 국가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교회가 대사회 발언도 하고 태도 표명도 하고 또 구체적인 증거의 행동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국가적, 정치적인 차원에서 큰 영향을 주긴 했지만 백성들의 일반 사회 생활, 지역 사회의 차원에서는 외부와 거의 무관하게 살았다. 우리가 열심히 선교하여 신자는 6배로 불려놓았으나 세상 속에서 신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가르치지도, 행동하지도 못했다.

교황 바오로 6세는 ‘현대의 복음 선교’에서 ‘복음화’라는 것을 매우 강조하신다. ‘복음화는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에게 설교하고 교리를 가르치고 세례를 주고 기타 다른 성사를 주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17항) ‘복음화는 교회가 선포하는 메시지의 힘으로 모든 개인과 집단의 야심, 활동, 생활과 구체적 환경을 변혁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다.’(18항) 또한 ‘복음화는 하느님의 말씀과 구원 계획에 배반되는 인간의 판단 기준, 가치관, 관심, 사상, 생활 양식에 복음의 힘으로 영향을 미쳐 그것을 역전시키고 바로잡는 데 있다’(19항).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까지 전교는 했지만 진정한 복음화 작업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하느님 나라를 진실로 건설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복음화를 이루어 가야하는데 우리는 그동안 골조 공사만 하고 지붕도 안 덥고 벽도 안 세우고 문도 해 달지 않았다. 이것은 비단 한국 교회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세계 교회 모두가 반성하고 대책을 강구해야 할 문제이다. 그래서 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2천년대를 향해 새로운 복음화 Nova Evangelizatio를 강조하고 계신다(교회의 선교 사명).

이러한 성찰을 바탕으로 당시 서울 대교구에서는 2천년대 복음화의 핵심과제로 FABC에서 시작된 교회의 소공동체 건설과 활성화에 착수하게 되었다. 또 서울이라는 대도시의 지역적 특성이 소공동체의 출현을 요구하고 있기도 했다. 그것은 당시 서울 대교구의 본당 평균 신자수가 대체로 6천-7천 명에 달하고 있었고 본당 신자 중 많은 수가 세례 후 냉담 상태에 들어가고 있고, 본당의 신심 단체에 가입한 사람, 본당 신자 전체로 보면 10% 정도의 사람들만이 사제와 비교적 가까운 접촉을 가지며 사목적인 혜택을 받을 뿐 나머지 90%에 달하는 사람들은 교회에 대한 소속감도 적고, 오히려 소외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는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 서울 대교구에서는 이를 타개하기 위하여 2천년대 복음화의 핵심 과제로 FABC가 제시한 소공동체 건설을 선택했다. 당시 서울에는 이미 80년대 중반부터 실시해 온 구역 반의 월 모임이 존재하고 있기는 했으나 이것은 주로 본당의 행사를 안내하거나 교구에서 제시한 묵상 자료를 듣고 기도 좀 하는 것으로 끝내는 행정적인 성격이 강한 조직이었다. 정부가 주도하는 반상회 같은 것이었다. 소공동체 구성에 제일 중요한 것은 하느님 말씀인데 하느님 말씀에 대한 중요성의 인식이 없었고 또 세상 속에 살아가는 자신들의 삶과 교회 안에서의 신자들의 신앙을 하느님 말씀을 통하여 연결하고 통합하는 안목이 전혀 감지되지 못했다.

그리하여 서울 대교구는 소공동체 구성과 활성화야말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가르치는 교회관에 따라 교회의 내적인 체질을 개선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받아들이면서 10년에 걸친 장기 사목 계획을 설정하고 단계적으로 서서히 소공동체를 심고 교구 전체의 사목적인 체질을 개선하기로 방향을 설정하였었다.

처음에 이런 장기 사목계획을 설정하고 소공동체 건설을 교구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을 때 비판, 저항, 비협조적인 자세들도 많았다. 그러나 이 소공동체의 본질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본당에서는 눈에 띄는 내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어떤 본당 반모임에서는 교우들이 자신들의 삶을 복음의 빛에 비추어 반성하고 무엇을 행동할 것인가를 공동으로 모색한 끝에 여러 가지 실천 방안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당시 서울 시내 전세 값이 2배로 갑자가 올랐을 때 그 본당 교우들은 안올리기로 결심하였고 실천하였다. 또 노량진 수산 시장에서 복음을 읽고 신자로서 시장 안에서 어떻게 증거의 생활을 하는가를 모색하던 수산 시장 상인 교우들은 시장에서 상인들끼리 싸움하지 말기, 생선 속여서 팔지 않기, 생선에 물감 안 칠하기를 실천했다. 이런 모습을 본 주변 상인들이 함께 동참하고 영세를 받는 사람도 생겼다. 또 어떤 본당에서는 소공동체를 시작한 이후 남편들의 생활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전에는 설거지 같은 것은 꿈도 안 꾸던 남편이 조금씩 아내를 돕기 시작했고 자고 나서 이부자리 정리하는 것도 아내에게 맡기지 않고 스스로 해내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런 사례는 아주 드문 사례였다. 대부분은 한참동안 헤맸다. 복음서를 읽는다는 것에 부담을 느꼈고 더구나 그것을 생활과 연결시키는 일은 더 부담스러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많은 변화를 감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웃 신자들 간에 우선 많이 알고 지내게 되었다. 성경이라면 깜깜하던 가톨릭 신자들이 조금씩 하느님 말씀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이러한 소공동체를 통한 교회의 체질 개선 노력은 자연스럽게 한국 교회 전체에 서서히 확산되어갔다. 특별히 확산시키려고 권유하거나 주교회의에서도 말한 적이 없다. 아시아 대륙 차원에서도 서서히 확산되어 갔다. 이웃 나라 일본 교회에서도 이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나가사끼 교구, 삽포로 교구에서 요청하여 소공동체에 관한 내용과 현실을 설명하고 소개하여 대단히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한국 천주교 소공동체의 전망

한국에서 소공동체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한지 12년이 넘었다. 나는 처음에는 10년이면 그래도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었다. 사실 소공동체 건설이란 교회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 헌장이 제시하는 교회의 이상적인 모습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하나의 기초적인 방법론이고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교회 헌장이 제시하는 교회의 이상적인 모습에 나아가는 과정이란 기나 긴 여정일 수밖에 없다. 사실 교회는 초대 교회 이후 끊임없이 변화의 역사를 겪어 왔다. 그 변화의 한 페이지를 우리는 경험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한 교회의 변화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대단한 도약이라고 생각된다. 교회의 외적인 조직보다 내적인 체질의 개선이 요구되고 또 그런 변화를 살고 있다. 한국 교회가 활성화하려고 애쓰는 소공동체는 그런 교회 역사의 본류의 중심을 함께 살아가는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긴 시간과 많은 노력이 요할지라도 반드시 이루어 가야 할 과정이다.

한국 천주교 소공동체와 리더십 - 강윤철 신부

한국 천주교 소공동체와 리더십(본당 사목 구조)
-교회의 새로운 길과 새 지도력-

강윤철 신부 (마산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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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1. 교회론과 사회 구조에 대한 성찰
1.1 교회란 무엇인가
1.2 새로운 사회의 패러다임
1.2.1 새로운 사회의 구조
1.2.2 이루어야 할 사회 제도
1.3 요구되는 지도력

2. 교회의 새로운 길
2.1 소공동체들의 친교인 교회
2.2 참여하는 교회
2.2.1 그리스도와의 친교와 사명에 참여
2.2.2 공동 책임의 동료 일꾼
2.2.3 평신도의 본질과 사명
2.2.4 참여와 성장
2.3 버려야 할 교회의 모습

3. 새로운 양식의 지도력
3.1 안내하는 지도력
(Guiding Leadership)
3.1.1 안내자

3.1.2 지배적인 지도력과
안내하는 지도력 비교
3.1.3 촉진자(facilitator)
3.2 활기를 주는 지도력
3.2.1 예수님과 초대 교회의 지도 양식
3.2.2 활기를 주는 지도자의 태도
3.2.3 지도력의 전환
3.3 참여시키는 지도력
3.3.1 함께하는 지도자
3.3.2 참여와 공동 책임

4. 새로운 지도력의 시도들
4.1 기초 공동체의 추대로 사목 협의회 구성
4.2 가정 교리(소공동체 교리) 운영
4.2.1 가정 교리란
4.2.2 취지와 성과
4.2.3 교리 교사의 역할

나가며

한국 천주교 소공동체와 사도직 운동 - 강영옥 선생(서울 대교구)

한국 천주교 소공동체와 사도직 운동 - 강영옥 선생(서울 대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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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차 -

1. 들어가면서
2. 사도직 운동
2.1 레지오 마리애
2.2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2.3 꾸르실료
3. 소공동체
4. 소공동체와 사도직 단체들과의 관계 정립
4.1 소공동체에 대한 공감대 형성
4.2 평신도의 자발성
4.3 권위주의의 청산
4.4 사도직 단체들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방향
4.5 소공동체의 심화
5. 나가면서

한국 천주교 소공동체와 영성 - 김현준 신부(춘천 교구)

한국 천주교 소공동체와 영성 - 김현준 신부(춘천 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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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차 -

Ⅰ. 들어가는 말
1. 소공동체 영성 개발 필요성
2. 두개의 실마리

Ⅱ. 소공동체 영성
1. 소공동체란
2. 영성이란
3. 반둥 선언과 소공동체 영성
4. 아시파 3차 총회 기조 연설과 소공동체 영성
5. 아시파 3차 총회 최종 선언문과 소공동체 영성

Ⅲ. 소공동체 영성 심화의 도구인 복음 나누기 및 기도 평가
1. 복음 나누기는 소공동체의 기초
2. 복음 나누기 평가 ①
3. 복음 나누기 평가 ②
4. 복음 나누기 평가 ③

Ⅳ. 한국 교회와 한국인의 심성에 맞는 대안적인 영성 심화 도구 제시
1. 주님의 기도
2. 춘천 교구 - 말씀 그림으로 복음 나누기
3. 춘천 교구 - 공동체로 나누는 성독(Lectio Divina)
4. 복음 나누기 4단계(듣,깨,결,기)
5. 말씀 뽑기 - 일용할 양식 만들기
6. 복음 나누기를 가족 기도로
7. 감사와 칭찬 1․3․3 실천
1) 감사와 칭찬으로 누리의 모습을 새롭게
2) 소공동체 영성 심화 덕목으로서의 감사와 칭찬
3) 감사와 칭찬 1․3․3 실천표

Ⅴ. 나오는 말.
1. 도시에서 먼저 시작하지 마라
2. 꿈을 키워가게 하소서

[사례] 대구대교구 소공동체 활발 성 정하상본당


말씀’으로 공동체 친교 일군다

하느님 말씀의 힘으로 사는 공동체는 두려울 것이 없다. 거칠 것이 없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친교의 공동체를 일구며 하느님 말씀과 뜻에 따라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해나간다.

소공동체의, 소공동체에 의한, 소공동체를 위한 본당이 있다. 대구 성 정하상본당(주임 류승기 신부)은 모든 활동이 소공동체 중심으로 운영된다.

각각의 소공동체 안에 전례.청소년.사회복지 등의 분과와 위원들이 있다.

곧 소공동체 모임 일원이 되면 한 분과에 들어가 분과 위원으로 활동하도록 조직돼 있다.

현재 17개 팀이 매주 모임을 가지며 각자의 지역 안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앞으로 구성될 팀까지 더하면 30여개 팀이 본당 공동체에서 움직이게 된다.

주일학교 교사반 등의 별도 단체가 없는 것도 성 정하상본당의 특징이다. 모든 것이 소공동체로 통한다. 예를 들어 청소년 신앙교육도 소공동체 내 청소년 분과에서 모두 전담한다. 그러다 보니 교육장소도 성당이 아닌 집이다.

그리고 각 분과위원들은 해당 분과별로 별도의 모임을 갖는다. 거기서 각 위원들이 위원장도 직접 선출하고 분과별 활동들을 추진해나간다. 한마디로 모든 제반 사항들을 각 팀별, 분과별로 직접 챙기고 있다.

본당에서 열리는 사목회의에는 주임신부를 비롯해 각 팀별 대표와 분과위원장, 총회장 등이 참석한다. 여기에서는 본당의 중요한 사안이나 각 팀.분과별로 해결하기 힘든 일 등을 상의하고 해결해나간다.

이제 1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지만 조금씩 자리를 잡아나가고 있는 모습이다. 어떻게 이처럼 빠른 시간 안에 체계를 갖출 수 있었을까? 이는 성경말씀의 힘과 자발성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하기 싫은 신자들을 억지로 모아서 만든 모임이 아니라 본인들이 원해서 시작했다. 본당 주임 신부는 모든 신자들의 집을 가정방문해 본인 의사를 묻고 원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모임을 만들었다. 그리고 모임 때마다 일일이 다 연락하는 방법은 취하지 않았다. 늘 그런 방식에 익숙해져 있던 팀원들은 처음에 의아해했지만 오히려 더 활성화됐다. 철저하게 나누고 싶고 알고 싶은 신자들 중심으로 운영되다 보니 모임 자체에 힘이 생겼고, 점차 참여하지 않던 신자들도 함께 동참하게 됐다고.

최순희(글라라)씨는 “예전엔 성당에 관심이 없었는데 모임을 가지면서 우리 집과 내 마음을 다른 이들에게 활짝 열게 됐다”면서 “모든 팀원들과 하느님 말씀을 나누고 친교를 돈독히 하면서 신앙생활의 기쁨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본당 총회장 강정기(마리아)씨는 “많은 신자들이 매주 모임 날짜만 기다릴 정도로 모임의 참 맛을 알아가고 있다”면서 “팀원들 모두가 하느님 말씀을 함께 듣고 실천하며 친 가족처럼 가까워지다보니 이것이 바로 진정한 교회 공동체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각자의 터전에서 본당 공동체와 지역사회에 봉사하며 나눔을 실천하는 삶을 살고 있는 성 정하상본당 신자들. 이들은 하느님 보시기 아름다운 공동체 건설을 위해 힘을 모으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것도 하느님 말씀이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든든한 힘을 바탕으로 친교의 공동체, 나눔의 공동체 실천하는 공동체를 만드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가톨릭 신문 : 2007-03-25

[사례] 미국 가톨릭교회 소공동체 현황(상)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조직... 친교의 교회상 구현 "

긴급 점검/ 미국 가톨릭교회 소공동체 현황(상)

개인주의가 팽배한 미국에서 소공동체 운동이 활발하리라고 기대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지난 8월 미국에서 열린 '2007 미국교회 소공동체 전국대회'에 참가한 뒤 미국교회 소공동체 현장을 둘러본 한국교회 소공동체 관계자들은 "한국교회 소공동체와 다른 점은 많지만 소공동체를 통해 '친교의 교회상'을 구현하겠다는 의지는 결코 다르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미국교회 소공동체 탐방에 함께한 서울대교구 통합사목연구소(대표 전원 신부)측이 제공한 자료를 토대로 미국교회 소공동체를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미국교회와 소공동체

1976년 몇몇 주교들과 몇몇 사제들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자 팀을 구성했고, 2년여 준비기간을 거쳐 1978년에 '쇄신'(RENEW)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소공동체'를 핵심으로 하는 쇄신 프로그램은 지금까지 미국 전역 1만3000여개 본당 2500만여명의 신자들에게 보급됐다. 이를 계기로 형성된 다양한 형태의 소그룹/소공동체들을 지속적으로 지원ㆍ양성하고자 전국 차원에서 조직된 것이 '소공동체를 위한 북미 포럼'(NAFSCC)이다.

1980년대 들어 소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과 노력이 펼쳐졌다. 하지만 소공동체 사목에 역점을 두고 활성화하고자 노력을 기울여온 본당이 기대만큼 많지 않은 것 또한 현실이다. 소공동체를 본당 활성화를 위한 프로그램들 가운데 하나로 잘못 인식하는 경향도 있다. 소공동체에 대한 주교들과 사제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반면 긍정적 요소와 자원들도 많다. 80년대 중반 이후 소공동체가 크게 성장하는 데는 많은 조직과 활발한 연구 및 자료들이 기초가 됐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소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노력해온 세 조직이 소공동체의 본질과 중요성에 대한 공통된 이해와 성찰을 일관되게 표명해왔다는 점이다. 즉 '본당은 소공동체들의 공동체'이자 '소공동체는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으로 세상에서 말씀을 실천하는 표지이며 성사'라는 것이다. 세 조직은 공동으로 5년마다 한번씩 소공동체 전국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참고로 미국교회는 △신자 6800여만명 △본당 1만9000여개 △교구 190여개 △사제 4만2300여명(수도회 소속 1만4000여명 포함) △여성 수도자 6만5000여명, 남성 수도자 5000여명 △신학생 5200여명이다.

 ▨3개의 소공동체 전국 조직

▲본당을 공동체로 건설하기 위한 국가 연대(NAPRC: The National Alliance of Parishes Restructuring into Communities)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a new way of being church)인 소공동체를 추진하고 있는 본당들을 지원하기 위한 조직이다. 창립자는 현재 디트로이트대교구 성 크리스토퍼 본당 주임인 아더 바라노우스키 신부다.

NAPRC는 현재까지 약 90여개 이상의 교구에서 소공동체 교육을 실시했으며, 미국ㆍ캐나다ㆍ오스트레일리아에 있는 300여개 본당이 '바라노우스키 모델'이라는 본당 소공동체 모델을 채택하고 있다. 본당 구조 자체에 문제가 있으므로 그 구조를 소공동체를 중심으로 쇄신해야 한다고 것이 NAPRC의 입장. NAPRC는 본당 구조 자체의 쇄신과 소공동체 건설을 지향하며, 이를 위한 많은 자료들을 보급해왔다.

▲소공동체를 위한 북미 포럼(NAFSCC : North American Forum for Small Christian Communities)

본당 소공동체를 발전시키는 데 참여하고 있는 교구 활동가들(사제ㆍ수도자ㆍ평신도)을 지원하는 조직. NAFSCC는 구성원들이 소공동체와 관련한 문제들을 지속적으로 토론하고, 아이디어와 자료를 나눈다. 이를 위해 매년 정기회의를 개최하고 매월 소식지를 발간한다. 1985년에 설립됐으며, 현재 미국과 캐나다의 약 60여개 교구가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소공동체 연대(SCCC: Small Christian Community Connection)

소공동체 현장의 뿌리에서부터 올라와 형성된 조직으로, 본당과 교구 기관 등에 소속된 700여 명이 회원이다. 소공동체 발전을 지향하지만 특정 모델을 권장하지는 않는다. 주된 목적은 지역 소공동체 지도자들과 구성원들이 서로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상호 지원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자료와 매월 소식지를 발간한다.

 ▨미국교회 소공동체 특징

미국교회는 소공동체의 모든 요건들을 다 갖추지 못한 다양한 형태의 소그룹들까지도 소공동체에 포함시킨다. 소공동체는 살아있는 유기체로서 탄생과 성장의 발전 단계를 거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개방적 입장은 미국의 다양한 사회ㆍ문화ㆍ역사적 배경을 인정할 때 가능하다.

그럼에도 소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본질적 요소는 다음과 같이 제시된다. 즉 '기도, 신앙 나눔, 상호 지원, 지속적 배움, 봉사 또는 선교활동'이다.

소공동체 모임은 교구나 본당 지침에 따라 조직적으로 이뤄지기보다는 구성원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이뤄진다. 영적 성장, 교회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에 대한 갈망,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더 잘 실천하려는 바람에서 비롯된 것이다.

소공동체는 대체로 8~12명이 한 집에서 2주일에 한 번꼴로 모임을 가지며, 특별히 지도자를 선출하지 않고 구성원들이 공동으로 책임을 나눠 맡아 함께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지도자를 뽑을 경우 돌아가면서 맡고 자체적으로 선출한다.

대다수 소공동체는 특정 프로그램을 이용하지는 않으나 소공동체의 본질적 요소를 포함하는 형태로 모임을 갖는다. '기도와 묵상→신앙/삶 나눔→ 성경 묵상이나 나눔 또는 신앙서적에 대한 토론→실천활동 나눔→마침기도'가 일반적 순서다. 교구나 본당 차원에서 매주 소공동체 모임을 위한 자료를 제공하거나 소공동체 모임 프로그램 또는 진행순서를 제시하기도 한다. 미국교회 소공동체는 현재 7만여개로 추산되며, 약 75%는 본당과 긴밀한 연계를 갖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 잔다르크본당(미네소타주 성 바오로-미니아폴리스대교구 소속) 소공동체

▲본당 차원

소공동체라고 이름 붙이지는 않았지만 30여 년 전부터 성경 나눔이나 영적 성장을 위한 공부나 기도 등 소규모 모임이 있어왔다.

20여 년 전, 본당에 소공동체 비전과 목표가 소개되면서 소규모 모임들이 소공동체라고 불리게 됐다. 초창기에는 미사를 통해 소공동체의 중요성을 신자들에게 전하는 한편 미사 때 소공동체 경험을 나누고 그 경험들을 본당 주보에 실어왔다.

20여년간 500여개의 소공동체가 생성ㆍ성장ㆍ소멸 과정을 거쳤다. 소공동체는 자발적으로 구성되기에 현재 몇 개의 소공동체가 활동하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신자 1만여명의 이 본당에 100여개의 소공동체가 있으며, 그 가운데 30~40개가 활성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소공동체는 본당 공식 조직이 아니라 자발적이고 독립적인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각 소공동체들은 본당의 여러 직무와 실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사목회 구성원 대부분 소공동체 활동에 적극적이다.

소공동체 지원과 활성화를 위한 '소공동체 위원회'가 일년에 5~6회 모임을 갖는다. 이 위원회는 기존 소공동체 지원과 새로운 소공동체 조직, 소공동체 모임을 위한 계획 수립과 피정 등을 담당한다. 특별히 새로운 소공동체 모임을 시작할 때 이 모임을 어떻게 구성하고 유지하는지에 대해 도움을 주고 관련 자료 등을 제공한다. 지원은 하되 어떤 지침이나 방침을 반드시 따르도록 요구하지는 않으며 소공동체 스스로 주도권을 가지고 해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실제 사례

8월 15일 오후 6시 이레네씨 집에 손님 1명을 포함해 모두 9명(남성 3명, 여성 6명)이 모였다. 2쌍은 부부였고, 2명은 개신교 신자여서 눈길을 끌었다. 6년째인 이 소공동체는 2주일에 1번꼴로 각 가정을 돌아가며 매회 2~3시간 모임을 갖는데, 각자 준비해온 음식으로 저녁식사를 함께 한다. 모임은 다음과 같이 진행됐다.

△기도/묵상(15~20분): 다양한 형태의 기도, 묵상이 가능하다 △신앙나눔(15~30분) : 자유롭게 저녁식사를 하면서 각 구성원들이 차례로 지난 2주간의 삶을 나눈다. △토론(60분) : 성경ㆍ신앙서적ㆍ특정 주제에 대한 토론으로, 구성원들이 무엇으로 할지 미리 결정한 뒤 모임이 열리는 가정에서 구체적으로 준비한다. △실천활동(15분) : 토론에서 얻는 아이디어와 통찰과 관련해 소공동체 차원에서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 결정한다. △기도(짧은 마침기도나 전례).

정리=남정률 기자 njyul [at] pbc [dot] co [dot] kr

[사례] 소공동체의 기쁨 - 조연숙 마리아 / 청주교구 이월 본당

소공동체의 기쁨

조연숙 마리아 / 청주교구 이월 본당

저는 이월 성당 관할지역의 덕산공소 소공동체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신부님의 추천으로 소공동체학교 교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부족한 점이 많았던 저는 8주간의 교육을 받으며 여러 가지 배운 점도 많았고 느낀 점도 많았습니다. 그 이후로 저희 공소는 7개의 소공동체로 나뉘어졌고, 한 소공동체에 8-9세대로 구성되어졌습니다.

제가 맡은 소공동체는 젊은 사람들보다는 나이 드신 분들이 더 많았습니다. 처음엔 어색하고 어설프고 그래서 어려움이 있었지만, 한 달 두 달 모임을 해가면서 조금씩 나아져가기 시작했습니다.

복음 나누기에 있어서도 처음엔 서로 눈치만 보고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망설이곤 했었는데 달이 갈수록 가족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또 처음과 달리 성서를 읽고 복음 나누기를 할 때면 같은 말씀 안에서도 각자 다르게 느끼지만, 대화를 하다보면 함께 공감하고 일치감을 이루게 되어 너무 좋아들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함께하고 계심을 모두가 느끼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주님을 초대하는 기도도 자연스럽게 잘 하고 계십니다. 기도문을 적어 가지고 오셔서 정성껏 바치는 분도 계시기도 합니다. 또 어떤 분은 소공동체 모임이 늦어지면 언제 모임을 갖느냐고 물어오기도 하신답니다.

소공동체원들의 이러한 열의와 관심 속에서 저희 소공동체는 소공동체원들간의 친목을 도모하고자 야외에서 모임을 가졌습니다. 어른과 어린이가 함께 한 이 모임은 서로에게 따뜻한 친근감을 더하는 계기가 되었고 너무들 즐거워하셨습니다.

저희 소공동체에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늘 참석치 못하는 한 가정이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참석하길 권고하고 또 그 가정을 위해서 소공동체원들과 함께 끊임없이 기도도 바치고 있습니다.

지금은 소공동체원들이 나보다 남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는지, 이웃을 생각하는 소공동체가 되고자 다짐들을 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저에게 커다란 힘이 되어준 소공동체원들의 사랑에 감사드리며 아울러 좋은 체험의 시간을 갖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위 사례는 저희 천주교 산호세 한국 순교자 성당의 소공동체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함께 모여 기도하고, 친교와 나눔을 가지고, 참여하지 않는 교우님들을 위해 기도하며, 선행을 다짐하는 모임입니다.

소공동체는 '작은 교회'라고 표현됩니다. 주일에만 미사를 위해 모이고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우리 주변에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 소공동체라는 작은 교회를 만들고, 그 안에서 친교와 나눔을 하면서, '선행'을 실천하여, 그리스도의 모범을 보이기 위해 노력합니다.

[자료] 소공동체 복음 나누기 7단계 (영문)

복음 나누기 7단계와 공동응답 등 영문 순서입니다.

Life - Bible - Notes

(The following "Notes" should be completed in a leaders' meeting together
with the pastoral animator. The "Notes" will help them to conduct a
session with their own groups at home.)

1. A situation from Life

A common problem in our life today:

Guiding questions:
- We share all the facts and details that we know about the problem.
- How do people feel about this problem?
- Why do we have such a problem? But why?...But why?... But why?
- Who suffers and who gains in this situation?
- What does TV say about our problem?
- What does public opinion say about our problem?
- How is our problem handled in our local customs?
- Other questions which look at our particular problem from different
angles:

2. God's Word

A Bible text in which our problem is reflected:

Guiding questions:
- At what word or sentence in the biblical text did you think, "That is
right. I am happy to hear that?"
- At which sentence did you think, "I did not expect that?"
Tell us why you thought differently.
- What do you think God's opinion is about our problem?
- How is our problem handled in the Church?
- Other questions which can help to connect our problem with the message
of the Bible:

3. Our Response

- What does God want us to do?
- We gather different proposals without discussing them.
- We discuss the advantages and disadvantages of one proposal which
looks promising.
- We decide on one action : WHO will do WHAT and WHEN?

(For a detailed explanation of these four ways of Gospel Sharing see No.
20 of the Lumko Series: The Pastoral Use of the Bible.
Lumko, PO Box 5058, Delmenville 1403, South Africa
Phone: (011) 827-8924 Fax: (1011) 827-5774)

The Seven Steps

1. Invite

We remind ourselves that the Risen Lord is with us.
- Would someone like to invite Jesus in a prayer and welcome him.

2. Read

- Let us open our Bibles to . . . Chapter . . .
- (When all have found the place:)
Would someone like to read verses ...

3. View with wonder

- We pick out words or short phrases, read them aloud prayerfully and
repeat them three times.
(The silence after each repetition should be long enough for us to repeat
the same word once or twice in our hearts.)

- (Afterwards:)
Will someone, please, read the same text again (from a different
version.)

4. Listen

- We keep silence for . . . minutes and allow God to speak to us.

5. Share

- Which word has touched us personally?
We do not discuss any contribution, even though some may not share
personally but comment instead.

- (Afterwards, the group may choose a Word of Life:)
Which word from the text shall we choose as our "Word of Life" for the
coming week or month?

6. Plan for action

Now we discuss any task which our group is called to do in our
neighbourhood or parish.
- Report on the previous task.
- What new task needs to be done?
- WHO will do WHAT and WHEN

- (In step 6 we may also share some examples of how we have applied
the "Word of Life" in certain situations of daily life.)

7. Pray

- Anyone who wishes may pray spontaneously.
- (Afterwards:)
We end with a prayer or a hymn which everyone knows.

Group Response

1. Invite

Today we follow a gospel sharing method called "Group Response"
We shall NOT share with each other how the Word of God has touched
us personally. Today we shall use the Bible as a mirror in which the life
of our whole community is reflected.

- We remind ourselves that the Risen Lord is in our midst. Would someone
like to invite Jesus in a prayer and welcome him.

2. Read

- We read our chosen text twice.
- We pick out words or short phrases and repeat them prayerfully three
times. We pause briefly after each repetition.

3. Look

- Let us discuss the following question with the person next to us
(for 3-5 minutes):
"What life-situation or problem in our parish, village, town or country is
similar
to the situation mentioned in the text?"

(After 3-5 minutes:)
Each group reports back.
- Let us choose one problem to discuss further.
- Does anyone know more about this problem?
Why do you think this problem exists?

4. Listen

- We now keep silence for three minutes and ask ourselves:
"How does God look at our problem?
In other words, what does God think, feel and say about it?

- (After three minutes)
We tell each other what we think God is saying to us about our problem.

5. Plan for action

- What does God want us to do?
- WHO will do WHAT and WHEN?

- (Afterwards:)
Anyone who wishes may pray spontaneously.

- (Afterwards:)
We end with a prayer or a hymn which everyone knows.

Look - Listen - Love

Today we do not begin our meeting by reading the bible.
We begin by looking at events in our daily life.
We follow the steps of the“Look-Listen-Love" method.
- Would someone like to invite Jesus in a prayer and welcome him int our midst?

1. LOOK - at life

- Anyone who wishes may relate a recent personal experience.
Please tell us about an experience or event in which you were involved
personally. Think of an event which happened at your place of work, at
home, in the parish etc. This should be brief.

- (Afterwards:)
Let us now select one of these experiences for discussion.

- (Afterwards:)
We ask ourselves: What exactly happened?
Can we be told more about it?
Are there reasons why it happened?
How do we feel about it?

2. LISTEN - to God

- We keep silence for three minutes and ask ourselves:
"What does God think and feel about our event?"

In these few minutes let us put aside our own feelings about the event.
We take God's side and look at our event with God's eyes.
We just imagine: if God were to speak about this event now - what would
God say? We do not open the Bible but remember silently words or events
which we already know from the Bible.

- (After three minutes)
Please share with us now what you think God feels about this event.
What is God's "point of view"?
(Relevant words from the Bible, especially from the Psalms, may be read
or told from memory at this time. If no suitable passage comes to mind,
continue with the next step.)

3. LOVE -in action

(We do not give mere moral advice but ask ourselves:)
- "What does God want our whole group to do in this situation?
How can we together assist and support the member of our group in his/her
situation?"
- WHO will do WHAT and WHEN?

- (Afterwards:)
- Anyone who wishes may pray spontaneously.
- (Afterwards:)
- We close with a prayer or a hymn which everyone knows.

[특별 기획] 미국교회 소공동체의 역사와 현황

미국교회 소공동체의 역사와 현황

- 다양성 안에서 본질에 충실하며 성장
- 신자 20명 중 1명꼴 소공동체 참여
- 인식부족 어려움 딛고 연대 활성화

서울대교구 통합사목연구소 대표 전원 신부와 의정부교구 서춘배 신부(구리본당 주임) 등 한국교회 소공동체 관계자들은 8월 3일부터 19일까지 미국을 방문, 미국교회 소공동체 현황을 둘러보고 돌아왔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교회에 비해 미국교회 소공동체는 비교적 한국교회에는 낯설다. 본지는 소공동체 관계자들의 이번 미국 방문을 계기로 서울대교구 통합사목연구소의 협조를 받아 미국교회 소공동체의 역사와 현황, 특징을 소개한다. 아울러 미국 소공동체 현황을 보고 돌아온 전원 신부의 특별기고문을 통해 한국교회 소공동체의 발전 전망을 알아본다.

자료제공=서울대교구 통합사목연구소

신앙과 삶을 연결시키는 고리 ‘소공동체’ - 미국 소공동체 역사와 현황

미국교회 소공동체의 태동은 30여 년 전인 1978년, 뉴왁(Newark)대교구가 ‘쇄신(Renew)’ 프로그램을 개발한 데서 비롯됐다.

프로그램 실현 핵심을 ‘소공동체’라고 천명한 쇄신 프로그램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 특히 교회헌장과 사목헌장을 통해 나타난 교회 비전과 사목방향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쇄신 프로그램을 계기로 미국교회 안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소그룹·소공동체가 생겨났으며 1980년대 이후에는 소공동체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됐다.

미국 로욜라대학교 사목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현재 미국교회 내에서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 소공동체는 6만여 개이고 미사참례 신자 20명 중 1명꼴로 소공동체에 참여하고 있다. 또 소공동체의 75% 이상은 본당과 연계돼 있으며 구성원 상당수가 본당 활동에 더욱 적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연구소는 ‘소공동체가 신자들의 신앙과 삶을 일치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결과라며 매우 인상적이고 고무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소공동체 정착과 활성화 기여 - 미국교회 소공동체 관련 조직들

소공동체 정착과 활성화에 어려움도 있다. 많은 본당에서 소공동체를 본당 활성화를 위한 많은 다른 프로그램들 중 하나로 잘못 인식하는 경향도 있으며, 특히 젊은 신자들의 소공동체 참여가 저조한 것도 문제다. 소공동체에 대한 주교들과 사제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도 미국교회가 당면한 과제이자 도전이다. 이는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와도 다를 바 없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미국교회 소공동체가 꾸준히 성장한 데는 3개 소공동체 관련 전국조직의 역할이 크다. 이 조직들은 모델 개발과 활동가 양성, 네트워크 구축, 포럼 개최 등 다양한 차원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소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노력해 왔다. 특히 조직 모두가 다양성 안에서도 소공동체에 대한 비전과 목적, 소공동체의 본질과 중요성에 대한 공통된 이해와 성찰을 일관되게 표명해 왔다는 점은 주목받는다.

‘본당은 공동체들의 공동체’이며 ‘소공동체는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으로 세상에서 말씀을 실천하는 표지이며 성사’라는 점을 조직운영의 지표로 삼고 있다는 의미다.

디트로이트대교구 아더 바라노우스키(Arthur Baranowski) 신부가 창립한 ‘본당을 공동체로 건설하기 위한 국가 연대’(NAPRC, The National Alliance of Parishes Restructuring into Com munities)는 교회 쇄신을 위해서는 본당 구조 자체가 변해야 한다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창립자의 이름을 딴 소공동체 모델인 ‘바라노우스키 모델’은 미국 내 90여 개 교구에 전해졌으며 미국과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의 300여 개 본당이 이 모델을 채택해 소공동체 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소공동체를 위한 북미 포럼’(NAFSCC, North American Forum for Small Christian Communities)은 소공동체 활동가들을 지원하고자 구성된 조직이다. NAFSCC는 소공동체 관련 현안에 대해 지속적으로 토론하고 자료를 나누며 다른 소공동체 프로그램과의 네트워크 조성을 위한 포럼을 개최한다. 현재 미국과 캐나다의 60여 개 교구가 NAFSCC의 회원이다.

‘소공동체 연대’(SCCC, Small Christian Community Connection)는 지역 소공동체 지도자들과 구성원들이 서로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상호 지원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소공동체 발전을 지향하고 있지만 특정한 모델을 권장하지는 않는다. 전국적으로 700여 명의 회원을 둔 연대는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아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하자는 뜻에서 명칭을 ‘부에나비스타’에서 ‘소공동체 연대’로 고쳤다.

소공동체 본질 기초로 다양성 인정 - 미국교회 소공동체 특징

인종전시장이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 미국은 수많은 인종과 문화가 뒤섞인 사회다. 때문에 미국교회 소공동체는 이러한 미국의 사회·문화적 배경 아래서 이해해야 한다. 이번에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한 소공동체 관계자는 “너무도 다양한 소공동체 모임이 미국 전역에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소공동체의 모습을 정확히 무엇이라고 정의하기는 어렵다”면서 “오히려 이런 다양성이 미국교회 소공동체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처럼 다양한 형태와 모습을 갖춘 소공동체에 대한 미국교회의 대응은 탄력적이고 유연하다. 미국교회는 소공동체의 모든 요소를 갖추지 못한 여러 형태와 단계의 소그룹까지도 소공동체의 범주 안에 포함시키고 있다.

소공동체는 살아있는 유기체로서 탄생과 성장의 발전단계를 거치기 때문이라는 거시적인 맥락에서다.

다만 이러한 탄력적인 소공동체 활성화 노력 속에서도 미국교회는 소공동체의 본질적인 요소, 즉 소공동체를 통한 기도와 신앙나눔, 상호지원, 지속적인 배움, 봉사, 선교활동 등을 과제로 제시한다. 대부분의 소공동체 모임은 본당 구조나 조직에 구애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운영되며 특정한 프로그램을 이용하지는 않는다. 다만 소공동체 활성화에 보탬이 될 수 있는 몇 가지 모범 모델과 모임 방법은 교구나 본당 차원에서 제공되고 있다.

◎성 바오로·미니아폴리스 대교구 성 잔다르크본당 소공동체 모임

수렴된 의견 실천으로 결실

미국 신자들은 어떻게 소공동체 모임을 할까.

지난 8월 15일 오후. 이레네씨의 집에서 소공동체 모임이 열렸다. 2주 만에 한 자리에 모인 구성원들의 종교는 제각각이다. 이레네씨는 루터교 목사이고 이날 초대된 손님은 감리교 신자다. 피터씨와 토마스씨는 성 잔다르크본당의 평신도다. 종교가 다른 구성원들이 소공동체 모임을 하는 것 자체가 이색적이다.

2~3시간가량 진행되는 모임의 시작은 20분간의 ‘기도와 묵상’.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어떤 형태로든 기도를 바친다. 이어 ‘신앙 나눔’을 갖는 데 이 때 각 구성원들은 미리 준비된 초에 불을 붙인 후 지난 2주 동안 살아온 자신의 이야기를 나눈다. 이 시간에는 각자 준비한 음식으로 저녁식사도 함께 한다.

신앙 나눔이 끝난 후에는 본격적인 ‘토론’에 들어간다. 성경이나 신앙서적 혹은 특정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토론 주제나 성격은 이전 모임에서 모든 구성원들의 의견을 모아 결정한다. 토론 후에는 이에 따른 ‘실천활동’을 정한다. 토론을 통해 얻은 결론이나 생각들을 한 데 모아 소공동체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할지를 결정하는 시간이다. 이어 짧은 기도와 전례를 통해 모임을 마친다.

미국교회 소공동체 모임은 대체로 2주일에 한번 구성원 가정에서 열린다.

구성원은 8~12명 정도. 특별히 지도자를 뽑지 않고 구성원들이 공동으로 책임을 나누어 맡는다.

1만여 명의 신자가 다니는 성 잔다르크본당에는 100여 개의 소공동체가 구성돼 있으며 현재 30~40개 소공동체가 활성화 돼 있다. 소공동체가 본당의 공식적인 조직은 아니지만 사목협의회 임원 대부분은 소공동체에 속해 있으며 본당 내에 ‘소공동체 위원회’도 만들어져 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2003년. 본당의 한 소공동체가 전쟁반대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 활동을 시작했고 본당 정의평화위원회의 도움으로 전쟁반대 집회를 열었다. 소공동체가 주축이 돼 개최한 집회에는 약 4만여 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소공동체의 작은 실천이 만들어낸 결과물로는 그 성과가 무척 크다.

이승환 기자 swingle [at] catholictimes [dot] org
기사입력일 : 2007-09-02

[특별기고] ‘미국 가톨릭교회 소공동체를 바라보며’

[특별기고] ‘미국 가톨릭교회 소공동체를 바라보며’

- 말씀안에 삶·신앙 나눌 구심점 필요
- 물질 풍요에서 비롯된 개인주의 극복하고 복음에서 삶의 가치 찾으려 소공동체 형성
- 본당과 유대 적어 ‘친교모임’ 될 위험 내포, 신앙공동체 고유성·실천활동 지침 찾아야

미국 가톨릭교회에서 제5차 소공동체 전국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설렘과 기대 그리고 호기심을 가지고 이 대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미국 소공동체 전국대회와 본당 탐방 및 소공동체 모임 참여를 통해 필자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소공동체의 비전과 희망을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발견할 수 있었고 한국 교회 소공동체의 긍정적 가치와 힘 그리고 풀어야 할 과제 역시 깊이 체험할 수 있었다.

“소공동체는 ‘운동’(movement)이 아니다. 소공동체는 살아 움직이고 있는 ‘교회’이다.” 이번 대회에 강사로 초빙되었던 호세 마린스 신부(‘뿌리에서 올라오는 교회’ 저자)의 말이다. 소공동체가 단순히 한 시대의 필요에 의해 나타난 ‘운동’이라면 그 창시자와 그에 따른 카리스마가 존재하겠지만 소공동체는 그것을 기초 놓은 사람도 교본도 없다. 오로지 그 안에 말씀과 교회의 본질적 사명만을 내포하고 있을 뿐이다. 굳이 소공동체의 창시자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교회를 세우시고 이끄시는 성령이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의 많은 지역교회에서 작은 기초교회 공동체들이 태동되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미국에서도 이미 30여 년 전부터 소공동체 중심의 교회상을 향한 움직임과 노력이 계속되어 왔음은 그동안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소식임에 틀림없다. 미국 교회 역시,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아시아 교회가 선포한 것과 같이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a new way of being Church)을 실현하기 위해 소공동체를 추진해왔다고 밝히고 있다. 이번 미국 소공동체 전국대회는, 세계 각 대륙이 사회, 정치, 문화적 배경이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 교회를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가 작은 기초교회 공동체를 통해 싹터왔음을 분명하게 증언하는 자리였다.

미국에는 1970년대 중반부터 교회 ‘쇄신’(renew) 프로그램이 개발 보급되었고 소공동체를 지속적으로 지원할 전국차원의 조직이 탄생하여 활동하고 있었다. 1990년부터는 이미 5년마다 소공동체 전국대회를 개최해왔을 뿐만 아니라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각 분야 연구자들이 소공동체에 대한 체험과 노력을 광범위하게 연구하여 소공동체에 대한 실천과 이론이 상호 발전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미국의 소공동체는 물질적 풍요가 빚어낸 지나친 소비주의와 개인주의의 환경 속에서, 신앙인들이 서로 인정(人情)을 나누고 삶의 참된 가치를 복음에서 찾고 실천할 수 있는 이웃과 공동체를 필요로 하면서 아래로부터 자발적으로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들 소공동체는 이민자와 가난한 이들, 병자들을 돕기도 하고 사회문제에 대한 식별과 참여 등 구체적인 실천 활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실제로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를 이끌어 낸 것도 필자가 방문했던 잔다르크 본당의 한 소공동체였다. 이렇게 소공동체는 성령의 역사 속에 미국 교회 안에서도 새로운 교회상을 꿈꾸며 하느님 백성들 안에서 살아 숨쉬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 교회 문화에 익숙한 필자의 눈에 비친 미국의 소공동체는 아직 풀어가야 할 많은 과제들이 남아 있었다. 미국의 소공동체는 구성원들의 자율성과 자발성은 뚜렷하게 드러나지만 보편교회와의 유대는 비교적 낮아 보인다. 미국 교회 소공동체들 중 약 75% 만이 본당과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아직도 많은 공동체들이 가톨릭의 이름으로 소그룹 모임은 하고 있지만 본당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실제로 본당과 유대를 갖고 있는 소공동체들도 본당으로부터 지속적인 양성이나 프로그램을 제공받지 못하고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미국의 소공동체는 가톨릭교회 신앙 공동체의 고유성을 상실하고 일반 사람들의 모임과 별로 차이가 없는 친교 모임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 미국 교회 본당은 또한 속지적(屬地的) 차원의 본당 경계가 희박하여, 본당 환경과 전례분위기 등을 고려하여 신자들이 자신들이 다닐 본당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소공동체도 그들이 사는 지역과 관계없이 친한 친구, 또는 취미나 사회적 배경이 비슷한 이들이 어떤 계기를 통해 자발적으로 모임을 형성한다. 이러한 모임은 구성원 간에 강한 결속력과 친밀감을 경험하게 하지만 경제적 여유와 시간이 있는 사람들만의 모임이 될 수 있고, 폐쇄적이며 가난한 이들을 교회 공동체로부터 더욱 소외시킬 수 있는 우려가 있다. 또한 미국의 소공동체에는 말씀을 중심으로 삶과 신앙을 나누고 실천 활동을 이끌어줄 적절한 형태의 지침이 없었다. 가톨릭교회의 소공동체 모임을 특징지어주는 내용과 형식이 부족하다는 것이 아쉬웠다.

미국 소공동체가 안고 있는 이런 문제와는 달리 한국 소공동체가 지니고 있는 고유한 특징과 큰 힘, 장점들이 있다. 모든 본당에 구역 반이라는 소공동체가 조직되어 있고 많은 평신도들이 교구, 지구, 본당의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소공동체 지도자로 훌륭하게 양성되었으며, 소공동체 구성원들이 적어도 복음나누기 7단계의 말씀을 중심으로 한 나눔에 익숙해져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 교회의 문화에 익숙한 이들이 한국의 소공동체를 들여다보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그들의 눈에는 우리 소공동체가 너무 경직되고 형식적인 것처럼 보이거나 자율성과 자발성이 부족하고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 형식적인 복음나누기가 반복되는 것처럼 비추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미국 교회와 한국 교회 소공동체가 서로 다른 사회문화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는 ‘차이’에 대한 인식과 수용 그리고 서로 다른 지역교회이지만 교회 쇄신을 위한 소공동체의 비전과 본질에 있어서는 ‘일치’한다는 신뢰와 확신을 바탕으로 서로 배우고 발전해가야 한다는 점이다.

칼 라너가 ‘미래의 교회는 뿌리에서 올라오는 교회가 될 것’이라고 예견한 것처럼 소공동체는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 백성들이 주체적으로 교회의 본질적 사명을 수행하는 보편교회의 구체적 현존이다. 소공동체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추상적인 교회를 실현하기 위한 교회상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초대교회가 누렸던 첫 경험의 순간을 향해 역류해 나가는 과정에서 생긴 교회상이다. 소공동체는 교회 쇄신의 여정에서 성령의 인도로 우리 시대가 경험해보는 교회상일 뿐이다.

전원 신부 (서울대교구 통합사목연구소 대표)

사진설명: '뿌리에서 올라오는 교회' 저자 호세 마린스 신부와 함께. 왼쪽부터 서울 통합사목연구소 노주현 연구원, 호세 마린스 신부, 서울대교구 정월기 신부, 필자.

기사입력일 : 2007-09-02